예술가들을 위한 주택이 서울의 오래된 동네, 만리동에 등장했다.

1 만리동에서 발견한 물건들로 꾸며진 5층 전시실. 2 5월 입주를 마친 공공주택. 3 1층 공용공간에 걸린 작품.

예술가들을 위한 주택이 서울의 오래된 동네, 만리동에 등장했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만리동은 서울역과 공덕역 사이에 위치한 오래된 동네다. 재개발이 한창인 만리동 언덕의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걸어 올라가면서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은 제법 흥미롭다. 그리고 길의 끝에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이하 막쿱) 공공주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시와 SH 주택공사가 함께 기획한 예술가들을 위한 이 공간은 아마도 지금 서울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거공간일 거다. 긴 정식명칭을 가진 이 주택의 입주조건은 사실 서울시의 임대주택인 SH주택의 입주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하나, 예술가들만이 입주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2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완성된 공공주택은 5층짜리 건물, 총 세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5월 30일을 기점으로 연극, 음악, 문학, 건축, 디자인,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29세대가 입주를 마친 상태. ‘예술가들의 집’이라고 하지만 공공주택의 풍경 자체는 여느 주택 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1층 공용공간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구성도 싱글을 위한 원룸부터 4인 가족을 위한 투룸형 주택 등으로 나뉘어 있다. 입주 기념 오프닝 전시인 ‘만리재로 27길 오프닝 쇼’에 전시했던 입주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는 1층과 5층의 공용공간을 비롯해 복도와 통로, 계단마다 조각, 회화,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공간은 ‘주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공공주택이 협동조합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연극 연출가이자 협동조합에서 홍보이사를 맡은 이은서 씨의 말대로 예술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공공주택에서 함께 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만리동의 공공주택이 특이한 지점도 바로 협동조합이라는 형식에 있다. 이는 운영의 방향성이나 목표를 입주민들이 기본적으로 공유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013년 9월 처음 모인 이후 2014년 12월 정식으로 협동조합이 설립되기까지 꾸준한 만남과 협의를 갖춘 끝에 선정된 29가구는 만리동의 예술인 마을이 의미 있는 ‘사건’이 되기를 바란다. 입주민의 면면도 흥미롭다. 이미 음악자립협동조합을 통해 음악인들의 생계와 안정의 문제를 고민해온 야마가타트윅스터(한받)를 비롯, 연극 <노인과 바다>를 연출한 김진만, ‘한가의 제사상’ 시리즈로 주목받은 곤도 유카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 분야와 관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예술적 자극을 주고받으며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셈이다. 수업이 상대적으로 불규칙하고, 작업실까지 필요한 예술가들에게 주거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복지와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예술가들의 생존권을 지자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인 것이다. 막쿱의 김경표 이사장은 이곳의 안정된 주거환경은 예술인들로 하여금 보다 활발한 창작활동을 가능케 할 것이며, 지역사회에도 지속적으로 문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입주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교류할 수 있다는 작업적인 이점 외에도 옆집에 누가 사는 줄도 몰랐던 예전 거주지에 비해 식사, 육아 등 생활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웃이 많다는 사실도 만족스럽다는 평. 생활과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예술인들이 모인 이 공간이 어떤 재미있는 사건을 일으킬지, 두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