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를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프리마돈나라고만 생각했다면 당신은 그녀를 절반밖에 모르는 거다. 작업복을 입고 유기견 보호소를 청소하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위해 객석의 가장 좋은 자리를 비워놓는 조수미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드레스는 데니쉐르바이 서승연. 귀고리와 반지는까르띠에(Cartier).

드레스는 데니쉐르
바이 서승연. 귀고리와 반지는
까르띠에(Cartier).

이틀 전 상하이에서 공연을 마쳤죠? <얼루어> 인터뷰를 위해 서울까지 와주었군요!
오랜만에 한국에 오니 참 좋네요.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시아까지 오페라가 어려운 영역이 아니라는 걸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 자주 공연을 갖는 편이에요. 만 19살에 로마에 갔을 때 저를 중국이나 일본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아시아 전체 이미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죠. 일본에서는 1년에 다섯 번 정도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고, 중국도 자주 방문하고 있어요.

상하이에서의 공연은 어땠나요?
이번에 상하이를 찾은 건 서머 페스티벌이라는 교육 프로그램 공연을 위해서예요. 상하이 시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초청해 클래식 공연을 선물하는 거죠. 굉장히 기쁜 마음으로 공연을 하고 왔어요. 내년에도 참여할 거예요.

개인 공연에도 늘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좌석을 따로 마련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뭔가 베일에 싸여 있어야 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야 하는 예술가의 시대는 지났어요. 지금은 소통을 필요로 하는 시대고,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의 노력이 필요한 때예요. 특히 몸이 불편하거나,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단 몇 시간만이라도 아름다운 선율,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마음 같아서는 공연장을 통째로 빌려서 그런 기회를 주고 싶지만 저 또한 기획사에서 마련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죠.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명예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고, 유기견 보호소에서의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지구가 사람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건 아니거든요. 숨을 쉬는 다른 생명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존중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제가 유기견 시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 부분이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에요. 그게 안타까워서 더 신경을 쓰게 되요. 세계 여러 나라의 유기견 보호소를 찾았는데 우리나라 시설은 굉장히 열악해요. 미국이나 호주, 이탈리아의 경우는 후원도 많고, 동물들이 깨끗한 시설에서 건강하게 보호받는 경우가 많죠.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특히 눈에 밟히는 유기견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맞아요. 수백 마리 중에서 꼭 눈에 들어오는, 계속 생각나는 강아지가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다 데려오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더 마음이 아프죠. 몇 해 전에 유기견인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를 입양했는데 지금은 서울에 있는 제 동생이 키우고 있어요. 로마의 제 집에 데려가고 싶었는데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인천시보호소를 자주 찾는데 한번은 거기에 또 불이 난 거예요. 그래서 시장님께 다시 지어달라고 부탁을 드린 적도 있어요.

로마에서도 반려견을 키우고 있나요?
두 마리의 유기견을 키우고 있어요. 로마의 시골에 살 때 옆집에 양치기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돼지우리에 강아지들을 넣어 놓았더라고요. 돼지들이 그 조그만 강아지들을 밟고 다니더군요. 저러다 일 나겠다 싶어 제가 키우겠다며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그 애들이 커서 지금은 13살, 사람 나이로는 할머니가 되었어요. ‘신디’라는 12살 요크셔테리어도 있고요. 나이가 드니까 아픈 데도 많고, 저는 계속 공연으로 집을 비워야 하니 잘 보살펴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 크죠.

작업복을 입고 강아지를 목욕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유기견 보호소 외에는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있나요?
몇 년 전 함께 일하는 스태프와 장애 아동 보호센터를 찾았어요. 손발을 전혀 못 쓰기 때문에 먹여주고, 입혀주고, 모든 걸 해줘야 돼요. 저는 거기 갔다가 일을 하나도 못하고 울기만 하다 나왔어요. 집에 와서도 우느라 공연 연습도 못했죠. 그때 ‘불쌍하다고만 느낄 게 아니라 이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더 강해져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굉장히 감성적이라 불쌍한 생각이 들면 눈물부터 나오고, 목이 메여요.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계속 생각나서 공연할 때도 영향을 받고요. 그래서 장애인 보호센터는 좀 더 강해진 후에 찾기로 했어요. 제가 좀 더 강해져서 저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 때요.

동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오래전에 고속도로에서 ‘로드 킬’을 당하는 동물을 다룬 프로그램을 봤어요. 원래 동물의 영역이었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고속도로를 만드니 그런 비극이 생길 수밖에요. 좁은 땅에 하루가 다르게 길과 건물이 들어서니 동물이 살 곳이 점점 없어져요. 다람쥐가 먹는 도토리처럼 동물이 한겨울에 먹어야 할 양식이 필요한데 그걸 빼앗기고, 굶주리다가 먹을 것을 찾아 산에서 내려오면 죽임을 당해요.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동물에게 잘하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제대로 배워야 해요. 동물을 바르게 대하는 방법, 키우는 동물뿐 아니라 먹는 동물들까지도요. 요즘 유럽에서는 소, 돼지, 양 같은 식용 동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윤리적인 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어요. 육식을 한다면 최소한 고기가 식탁에 올라오기 전에 어디서 어떤 식으로 자랐는지, 어떤 식으로 사살되고 운송하고 저장되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채식을 하고 모피를 입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겨울을 굉장히 싫어해요. 감기에 걸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딜 가든 따뜻하게 몸을 보호하고 그러기 위해 모피도 입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모피 공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죠. 살아 있는 동물의 껍질을 벗기고, 작은 우리 속에 몇 십마리씩 밀어 넣고,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분리되고…,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한 시스템이었어요. 죽어가는 동물이 생각나면서 모피를 입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 후로는 모피를 입지않아요. 인조 모피 패션쇼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인조 모피도 얼마나 따뜻하고 예쁜지 몰라요. 인조 모피 홍보대사 제의도 받았는데 그건 사양했어요. 홍보대사를 하게 되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정말 추운 나라에서는 모피를 입지 않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영하 30도의 혹한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모피를 입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대신 윤리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된 모피를 입는 게 중요하겠죠.

대한적십자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트위터를 보니까 얼마 전에도 헌혈을 했더라고요.
헌혈은 정말 중요해요. 지금 당장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대한적십자에서는 헌혈뿐만 아니라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 다문화 가족들, 탈북자들에게 교육과 건강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대한적십자의 후원금을 가지고, 적십자 회원들을 1대 1로 보살피고 관리하는 거죠.

드레스는 데니쉐르 바이서승연(Denicheur by SeoSeung Yeon). 귀고리와목걸이는 티파니(Tiffany).

드레스는 데니쉐르 바이
서승연(Denicheur by Seo
Seung Yeon). 귀고리와
목걸이는 티파니(Tiffany).

카라에서 짓고 있는 동물교육후원센터를 후원하고 있죠?
국어, 수학도 중요하지만 윤리에 대한 교육이 정말 중요해요. 동물의 복지 환경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생명에 대한 존엄성, 이 지구상에 인간 외에 다른 생명이 존재하고 그들 역시 이 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우리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거죠. 다큐멘터리도 보고, 생활 체험을 하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직접 양육하는 법까지 다양하게 교육을 받는 거예요. 동물과 현명하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함께 살고 있는 이탈리아의 도우미 할머니가 당신의 나누는 삶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정이 많은 아이였지만, 유학을 가서부터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오페라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는 동양인 소프라노로서 악바리가 되어야 했고, 인정을 받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했거든요. 철저하게 혼자서 오직 성공을 바라보며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 저를 보살펴주신 분이 바로 니나 할머니예요. 그분은 길 잃은 고양이와 강아지를, 방황하는 집시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재우고, 또 어느 날에는 기차역에서 쓰러진 노숙자를 집에 데리고 와서 먹여주고, 일주일 동안 자신의 침대를 내주기도 했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죠. 그래서 여러 번 싸우기도 했고요. 심지어 그 노숙자가 할머니의 보석을 가지고 사라졌을 때는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냐며 할머니를 몰아세웠죠. 그런데 보석을 가지고 도망간 남자가 15년 뒤에 할머니를 다시 찾아왔어요. 그 보석을 팔아 캐나다로 갔고, 거기서 성공을 해서 할머니를 만나러 온 거예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죠. 그게 바로 인간애 아닐까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만큼 다 받게 되어 있어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똑같이 받게 되요. 할머니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나누는 일에도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죠. 아직도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제겐 가족이상의 존재예요.

2년 전 인천공항 ‘스카이뮤직 페스티벌’에서는 장애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오르기죠 했죠. 아이들도, 당신도 절대 잊지 못할 공연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데 감동받았고,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기쁨이었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더 행복하더라고요. 함께 공연했던 사람들, 제 공연을 본 아이들이 저의 홈페이지에 메시지를 남기거나 팬레터를 보내는데 그걸 읽고 있으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매번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답장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요즘에는 특히 트위터를 통해 많은 팬들과 소통하고 있더군요.
트위터는 저처럼 친구가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낼 수 있는 즐거운 창이 되어주죠. 공연이 끝나면 또 떠나야 하고 다음 공연을 준비해야 하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궁금해할 여유가 없었어요. 때문에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힘들었고요. 트위터로 알게 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쓴 글로 인해서 그 사람에 대해 상상하는게 재미있어요.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걱정되고, 저도 한마디씩 거들게 되고요. 덕분에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이 더 많아졌어요. 처음 유학 왔을 때는 전화 한 번 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었는데 세상이 이렇게 빨라졌으니 얼마나 좋아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통해 감동을 주는 사람은 많지않죠. 오늘 당신의 그 노래에 우리가 감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따뜻하지 않은 사람의 노래는 따뜻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정이 많다는 것에 대해, 세상을 따뜻하게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해요. 주위에 성공한 예술가들 중에는 갑자기 변하는 사람도 꽤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노래는 울림이 없어요. 그들은 노래가 끝나면 ‘오늘은 뉴욕에서 공연했으니까 빨리 런던으로 가서 다음 공연을 해야지’라는 생각뿐이죠.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기계처럼 노래하는 건 무의미해요. 단 한 번도 그렇게 노래한 적은 없어요.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관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온 정성을 쏟아요.

성악가로서의 꿈은 이미 다 이룬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아직 갈 길이 멀었어요. 이제 100분의 3 정도 온 것 같아요. 아직 부르지 못한 노래가 많아요. 음악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많죠. 제가 몰랐던 음악을 녹음하고 연주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노래한 음악을 듣고, 그것을 다시 나만의 음악으로 만드는 게 좋아요. 매번 공연할 때마다 다른 레퍼토리를 만들어요.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거죠. 영화음악도 하고, 가곡도 하고, 오페라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소유하려는 욕심은 없지만 스스로에 대한 욕심은 많아 보여요. 그런 당신이라서 힘들지는 않나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 운명을 타고났으니까요. 저는 욕심이 많은 게 다행이라 생각해요. 도전을 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내 자신에게 경쟁을 걸어보는 것도 좋고요. 실패했을 때 자신을 꾸짖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죠.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못할 게 없을 것 같아요.

사람과의 인연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게 느껴져요.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는 재능이라는 게 있어요. 때문에 살다가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에게 뭐든 나눠주고 가야 해요.넬슨 만델라처럼 인류에 커다란 봉사를 하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크지 않아도 돼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우리에게는 나눠야 할 책임이 있어요. 처음 세계 무대에 서고, 모든 사람의 극찬을 받을 때 저는 정말 제가 최고인 줄 알았어요. 모든 사람이 제 밑에 있는 것만 같았죠. 그런데 곧 그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알게 되었어요. 각자의 재능을 성장시켜가면서 서로 돕고 나누고 의지하며 살아야 해요.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의 인연에 감사하면서 말이에요.

오랜 해외 생활은 이제 익숙해졌겠죠?
많이 외로운데 워낙 바쁘다 보니 삭이는 법을 배웠어요. 외로울 때는 그냥 외롭게 나둬요. 어떨 때는 더 외롭기 위해 슬픈 음악을 듣기도 해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기쁨이 더 커지더라고요.

서울에서는 언제 당신의 공연을 볼 수 있나요?
오는 9월 14일에 올림픽공원에서 <라 판타지아>라는 공연을 해요. 세계 각국을 돌며 공연을 하지만 역시 한국 무대, 한국 팬들에게 가장 애착이 가요. 그날 공연은 ‘달’이 주제예요. 향수, 미지에 대한 세계를 음악으로 풀어 노래할 거예요. 리처드 용재 오닐, 앙상블 로티니, 차세대 지휘자인 아드리엘 김이 이끄는 디토 오케스트라와 함께 재미있고 근사한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바람 좋은 가을 날, 우리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