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이 시집 같은 앨범을 들고 왔다. <꽃은 말이 없다>라는 앨범 제목부터 ‘강’, ‘나비’, ‘검은 개’에 이르는 노래 제목, 멜로디까지 한 권의 시집처럼 낮고 희미하고 아름답다.

1 6집 로 돌아온 루시드폴 2 한 권의 시집 같은 그의 새 앨범

지난밤에도, 아침에도 <꽃은 말이 없다>를 들었다. 자연으로 귀의한 도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하. 복잡하고 시끄러운게 좀 싫어진 것 같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원래 내 모습인데 몰랐던 부분들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이사 간 한옥집 마당에 꽃을 기르고 있다고 들었다. 그 시간을 온전히 앨범에 담은 것 같다.
대문자초도 키웠고 금잔화, 문빔도 키우고 있다. 계절마다 다른 꽃을 심고 있는데 잘 커서 신기하고 고맙다. 꽃을 키우는 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악기 소리가 막 세수한 얼굴처럼 말끔하다.
녹음할 때 소리의 기술적인 면에 깊이 관여했다. 모든 미세한 소리를 잡는 데 더욱 신경을 썼다.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 과정은 아주 옛날 방식을 가져왔다. 전자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의 보정 작업도 하지 않았으니까.

미세하게 음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역시 의도된 것이었나?
녹음을 하다 보면 음을 더 낮게 부르게 되는데 보통은 그걸 기계로 올린다. 그러면 음색이 가늘어지는데 그게 싫었다. 다행히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라서 그대로 내보냈다. 자신 있어서가 아니라 그대로를 인정하게 된 거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꽤 만족스러운 앨범이다.

8현 기타, 바리톤 기타와 같은 낯선 악기를 등장시키고, 5명이 팀을 만들어 앨범 전체 녹음을 마쳤다. 유독 소리에 집중한 이유는 뭔가?
6장의 앨범을 냈지만 음악적 성장은 빠르지 않은 편이었다. 지금도 배우고 공부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에 더 예민해지고 욕심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그게
소리였던 거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으로, 또 그 다음 곡으로 물 흐르듯 흘러간다. 유독 이번 앨범에서 그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가사가 안 떠오를 때가 찾아온다. 그때는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발버둥을 치는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가사로 쓰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가장 깊이 관여하는 것들이 상실, 동경, 소망 이 세 가지였다.

시를 쓰고 소설집을 냈다. 이 시간들은 당신의 음악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나?
지난해 한 번역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세상 모든 일은 결국 번역이라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내가 뭔가를 보고 생각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다 번역의 과정이더라. 그러고는 의문이 생겼다. ‘음악을 하고 있지만 순수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가사를 쓰고 있지만 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난 뭘 번역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요소들을 하나씩 떨어뜨려놓고 멀리서 보고 싶었다. 가사 대신 시를 쓰고 또 그렇게 소설을 쓰게 된 거다.

그래서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나?
지난해 장기 공연을 하면서 매일 노래를 부르고 집에 와서는 글을 썼다. 난 노래로 번역하는 사람이고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한 책이 곧 나온다고 들었다.
4월 말에 장기 공연을 끝냈고 브라질의 음악인이자 작가인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 번역을 최종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바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책 제목은 <부다페스트>다.

곧 열흘간에 걸쳐 단독 공연을 한다.
요즘에는 앨범을 내면 활동 패턴이란 게 있다. 뮤직 비디오를 찍고, 선공개를 하고, 티저를 내고, 방송을 잡고 인터뷰를 한다. 그중에 한 거라곤 이렇게 인터뷰를 한 것뿐이다. 그리고 공연이 남아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다.

공연이 끝나면 좀 쉬는 게 어떨까?
번역도, 음악 작업도 하루에 10시간 넘게 하니까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오더라. 공연 끝나면 재활에 힘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