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초에는 분명히‘ 발라드 왕자’였다. <1박 2일>에서는 잘 먹는다고‘ 성충이’가 됐고, 요즘엔‘ 욕정 발라더’, 혹은‘ 나쁜 옆집 오빠’라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드러운 남자였던 그가 어떻게 옆집 오빠가 됐을까? 확실한 건 성시경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심지어 남자들까지도!

터틀넥 스웨터는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 바이 비이커(Band of Outsiders by Beaker), 시계는 베르사체 바이 갤러리어클락(Versace by Gallery O’Clock), 안경은 랑방 바이 세원 ITC(Lanvin by Sewon ITC).

<마녀사냥>이 화제예요. 그나저나 여대생들이 출연하면 눈에 띄게 좋아하던데요?
‘요즘 대학생은 정말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엄마 나이대의 여자, 제 나이대의 여자, 20대 초반의 여자는 완전히 다른 동물인 것 같아요.

어떤 점이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던가요?
요즘 20대를 많이 만난 건 아니지만 솔직하고, 개방적이고, 그리고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 분위기잖아요. 여자들은 더욱 그렇고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이런 말도 안 되는 표현도 있을 정도니까. 일에서나 연애에서나 자기 의견을 확실하 게 말하는 건 정말 중요한데 말이죠.

확실히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같긴 해요.
얼마 전에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은 미팅에 나가면 전화번호를 뽀뽀로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얼굴을 키패드라고 생각하고, 호감이 있는 상대의 얼굴에 뽀뽀를 해서 전화번호를 알려준대요.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진중함을 모르는 세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본인은 어떤 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제 선배들의 마지막 후배죠. 중간에 끼어 있는 세대. 삐삐를 알고, 전화를 마음대로 걸지 못하고, 노래 한 곡의 소중함을 아는 세대요. 예전엔 헤어지면 거의 사별과도 같았잖아요. 다시 찾을 길도 없고. 하지만 자기 의견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지금이 어릴 때부터 바라던 사회이긴 해요.

라디오에서도 연애 상담을 오래 했고, <마녀사냥>에서도 여러 사연을 듣고 있어요. 실제로 주변 사람들의 연애에도 조언을 잘해주는 편인가요?
그럼요. 그런데 남 얘기니까 쉬운 거예요. 언젠가 제가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작곡가 김형석 씨가 이렇 게 대답하더라고요. “시경아, 난 그 이야기를 지금 막 들었는데 넌 오래 고민했잖아. 그럼 답에 누가 더 가까이 있겠니? 난 들어줄 수는 있지만 결정은 할 수 없어”라고. 어떻게 보면 냉정한 이야기인데 전 그 말이 참 좋았어요.

‘알아서 판단하라’는 거군요!
사실 답은 본인이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네가 이런 점은 못 보고 있는 것 같아’하는 말은 해줄 수 있겠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자주 해주는 조언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79년생이에요. 20대 초반인데 연애 문제를 망설이는 친구들에게 하는 말은 ‘네가 지금부터 10년 동안 사법고시 준비해도 나보다 어리다’는 거예요. 이 사람을 만나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잖아요. 기회가 너무 많죠. 30대와는 달라요.

30대가 되면 대부분 남자들이 20대 때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계산적이 되는 것 같아요. 왜일까요? 30대 남자를 대표해 그들을 변호한다면?
결혼을 게임의 마지막 관문에 비교한다면, 오락실에 갔는데 처음에는 많았던 동전이 거의 없어진 상태인 거죠. 마지막 단계를 깨고 집에 가고 싶은데 동전은 없고, 시간은 자꾸만 가고. 동전이 많다면 미친 듯이 게임을 할 텐데 말이죠. 20대 때는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냥 좋아 죽겠는데. 물론 체력도 떨어지고요. 30대부터 운동은 취미가 아니라 필수예요, 정말!

블루 재킷은 에트로(Etro), 시계는 페라가모 바이 갤러리어클락(Ferragamo by Gallery O’Clock), 팬츠와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 방송에서 들었던 연애 사연 중에 ‘이건 정말 너무하다’ 싶었던 것도 있어요?
아마 곧 방송될 텐데, 2년 사귄 남자친구랑 스킨십을 거의 하지 않는 여자 이야기였어요. 더 심각한 건 예전 남자친구하고는 잤고, 지금 남자친구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정말 스튜디오에 있던 남자들이 모두 분개했어요.

세상에. 그분은 대체 왜 그랬을까요?
남자친구와의 스킨십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아니 그걸 왜 여자가 남자한테 주는 거라고 생각하죠?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거지. 평범하고 안정적인 연애에서 ‘준다’는 표현은 이상해요. 정신적인 사랑이 육체관계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같이 궁금해하고, 탐구해야죠! ‘어떤 걸 좋아하지? 이런 걸 좋아하나?’ 이렇게요.

성시경은 연애를 아주 잘할 것 같은 남자예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겠죠?
되게 순진했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고, 아마 그만큼 상처도 많이 줬을 테고요.

혹시 너무 서툴러서,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기억도 있나요?
있었죠.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런데 저는 ‘내 매력에 다 빠질걸?’ 하며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도 아니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사람이라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진 않았어요. 다행이죠.

그렇게 조심스러운데 연애가 시작되기도 하는군요.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2만 퍼센트는 있을 때 접근하니까요. ‘사귀자’는 말을 하고 시작한 적이 거의 없어요. 여러 사람이랑 같이 밥 먹는데 눈이 자꾸 마주친다거나, 그런 신호들 있잖아요. 같이 걷다가 자연스럽게 손이 스치면 살짝 잡아보고, ‘아, 이건 되는 거구나’, 그러면서 서로 더 궁금해하죠.

말만 들어도 설레는데요?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점차 확실한 관계 정립을 원하게 되죠. ‘어장관리’도 어떻게 보면 연애에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장치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확신을 준다면 아무 문제 없는 거죠. 굳이 ‘오늘부터 사귀자’고 안 해도 알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전 긴가민가할 때가 연애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 불안해하던 걸요!
불안하면서 좋은 거죠. 결과도 중요하긴 하지만 늘과정이 더 설레는 법이잖아요. 앨범도 마찬가지예요. 앨범을 준비할 때는 괴롭지만 ‘이 앨범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는 과정이 좋아요. 물론 그것도 결과가 좋을 거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어야 즐겁겠죠? 희망고문을 당하거나, 나쁜 여자를 만난다면 속상하긴 하겠네요.

당신이 여자라면 ‘성시경 같은 남자’는 어떨 것 같아요?
괜찮은 것 같아요. 여자 마음도 다른 남자보다 좀 더 알고, 유머감각도 꽤 있고, 경제력도 나쁘지 않고, 체력도 아직 괜찮고, 직업도 꽤 분명하고. 잘해주는 편이고, 책임감도 가지려고 하고…. 음, 괜찮지 않아요? 하긴 뭐, 대부분의 남자들이 ‘나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하긴 해요.

하하. 괜찮죠! 우리나라 남자들도 괜찮고요. ‘여자’ 자체를 비하하고 적대적인 남자들을 제외하면 말이에요. 그 사람들의 심리는 대체 뭘까요?
반대로 극단적인 여성 우월주의자들도 있죠. 이런 남자도 있고, 이런 여자도 있는 것 같아요. 어찌 됐든 그들 대부분이 성숙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상대를 안아주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없으니까 열등감을 느끼는 거겠죠. 막 밉고, 쟤 때문에 내가 망한 것 같고. 물론 트라우마가 생길 만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온전하게 행복하지 않으니까 남을 비난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거 아니겠어요?

당신은 행복한 편인가요? 방송에서는 부쩍 ‘외롭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긴 하던데.
우리나라 남자들, 가을 되면 거의 다 외로워요. 요즘 전 외롭다기보다도 그냥 ‘내 상태가 요즘 이렇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있죠.

그레이 스웨터는 매료(Maeryo), 시계는 휴고 보스 바이 갤러리어클락(Hugo Boss by Gallery O’Clock), 구두는 캠퍼(Camper), 바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즘 당신의 상태는 어떤데요?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부쩍 들어요. 어른들이 ‘남들 다 할 때 하면 좋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됐다고 할까요? 결혼이 너무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마냥 ‘솔로가 좋다’고 하기에는 선택하지 않은 것의 장점도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결혼해서 아기도 있고, 아내가 있고, 장인
장모가 있어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요.

보통 그 나이 즈음에 하는 일들을 의심 없이 해낸다는 건 대단한 일이죠.
맞아요. 친구들이 명절 때 어딜 가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 나도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희생하느니 차라리 합의하고 2세를 낳지 않겠다’고 말한 적 있어요. 요즘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누나가 조카를 키우는 걸 옆에서 지켜봤어요. 우리 누나는 분명히 여자였는데, 갑자기 그냥 엄마가 된 거예요. 내 꿈, 자기 관리, 이런 걸 절대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런 모습이 숭고하게 느껴지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속상하죠. ‘그냥 사랑하니까 결혼해서 아기도 낳자’라고 의심 없이 결정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출산과 양육에서 행복을 느끼는 여자들도 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렇겠죠? 엄마가 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릴 수도 있고요. 그런데 임신, 출산, 양육의 과정을 보면 몸이 일단 너무 힘들어 보여요. 어떤 책을 읽었는데, 엄마들이 ‘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나도 꿈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한대요. 남자도 할 만큼은 하겠지만 여자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을 텐데 그런 점을 성인끼리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죠.

요즘 당신은 남자들에게도 ‘야한 얘기도 잘하는 똑똑한 형’이 된 것 같아요. 한때는 ‘공공의 적’ 같은 존재였는데 말이죠. 그런 변화를 느끼고 있나요?
집과 방송국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사실 인지도의 변화를 느끼긴 힘들어요. 콘서트가 매진되는 것처럼 확실한 수치가 있어야 ‘아 그래도 내가 팬이 있나 봐’ 하고 조금 실감하는 정도죠. 다만 주변에서 이야기를 점점 많이 해주긴 해요. ‘사람들이 많이 보더라, ’‘네 장점이 많이 나오는 방송이더라’라면서요.

최근 변화한 이미지를 음악에 반영할 생각은 없나요? 2011년에 낸 7집이 마지막 정규앨범인데요. 그때도 가을이었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요. 다음 달에 드라마 OST에 참여하긴 하지만 앨범을 낼 생각은 없어요.‘요즘 내 이미지가 이렇다는데, 이번엔 이런 걸 해볼까?’ 할 정도로 영민하게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어떤 한 수를 노리고 변신을 한 적은 없었네요. 데뷔 초기의 ‘미소천사’를 제외하면 말이에요.
어휴. ‘미소천사’는 너무 셌고요. 바보같이 아직도 내 진짜 모습은 이렇다고, 사람들한테 호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버터왕자’라는 말을 들을 때 도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왜 그럴까, 속상해했죠.

정말요? 당신은 사람들의 이야기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성시경 씨 실제로 보니까 어떻네요’ 같은 말을 하면 내가 뭐가 그렇게 달라 보였을까 싶어요. 팬클럽 사이트에서 나에 대해 너무 말도 안 되게 좋은 이야기를 봐도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지?’싶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날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잖아요. 직접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마음을 쓰니까 문제인 거예요.

문득 화제가 됐던 당신의 발언이 생각나네요. <무릎팍 도사>에서 ‘유승준 씨의 입국 문제에 나라가 개입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던 것 말이에요.
그때 정말 욕 많이 먹었죠. <나는 가수다>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도 그랬고요. 인터뷰를 되게 길게 했는데, ‘발발 떠는 모습 참혹… <나가수> 안 나가’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거든요. 그 프로그램이 싫었던 이유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선배들, 내 영웅들을 콜로세움에 몰아넣고 한 주에 한 명씩 잔인하게 찔러 죽이는 형식 때문이었는데 말이에요. 아직도 그 기사를 쓴 신문사 이름이 기억난다니까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무척 용기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냥 합리적인 게 좋아요. 회사에 다녔다면 ‘부장님 때문에 많은 직원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사회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말 안 하는 게 낫다는 건 알죠. 그런데도 ‘이 말을 왜 못해?’ 하는 심보가 있어요. 자꾸만 확인하고 싶은 거죠. ‘이건 잘못된 거잖아요, 그렇죠? 제 말이 듣기는 싫겠지만…. 그래도 인정하긴 하죠?’ 이렇게 말이에요.

여자친구랑 다툴 때도요?
아마도요. 뭘 그렇게 피곤하게 따지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아니 그런데 대체 진지한 게 왜 피곤해요? 해야 할 말은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