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윤종신>이 언제까지 발행될지 모르겠다. 신치림이 언제까지 신치림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 무대에 선 윤종신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했다는 거다.

텅 빈 객석의 공연장으로 들어갔을 때 윤종신은 ‘내일 할 일’을 부르고 있었다. 2013년 <월간 윤종신> 2월호에 성시경이 불렀던 그 노래, “이른 아침 일어나야 해, 내일 우리들이 이별하는 날”을 나지막이 부르는 그에게서 ‘오래전 그날’을 부르던 젊은 날의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곧 멈춘 건, 후렴으로 가기도 전에 노래가 끊겨서다. “여기서 기타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아, 건반은 좀 더 나와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몇 번을 멈추고 다시 부르기를 반복하고 난 후에야, 다음 곡 ‘몰린’으로 넘어갔다. 조금은 피곤한 얼굴이었다. 지난밤 잠을 조금 설쳤는지도 모르겠다. 3년간 쉬지 않고 한 달에 한 곡씩 만든 노래들. 그는 팬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투표해달라 했고, 높은 순위에 오른 곡을 이번 콘서트의 세트리스트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이건 구독자들이 직접 선택한 <월간 윤종신>의 ‘특별판’이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거두고 머리를 자꾸 긁적인 건.

윤종신은 조정치와 하림에 이어 투개월, 박지윤까지 영입하며 윤종신 사단 ‘미스틱89’를 확장하고 있다. 오늘은 그 사단이 총출동하는 10일간의 투어, <2013 미스틱89 릴레이 콘서트>의 첫 날이다. 앞으로 4일 동안 ‘구독자들의 선택’이라는 소주제로 <월간 윤종신>에 참여한 게스트와 함께하게 된다. 그 다음 3일은 윤종신, 하림, 조정치가 각자 나서서 미니콘서트 형식으로 꾸미는 ‘어쿠스틱 테라피’로, 그 다음 3일은 신치림과 투개월, 박지윤 등 윤종신 사단이 총출동하는 ‘미스틱89 레이블 콘서트’로 꾸며진다. 그러니 오늘, 이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은 <월간 윤종신>의 정기 구독자인 셈이다.

윤종신은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MC도 본다. 2010년 4월, 그가 <월간 윤종신>의 편집장을 자청했을 때, 많은 이들이 머지않아 ‘폐간’을 예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월간 윤종신>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그 스펙트럼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발간되고 있다. “처음에는 저와의 약속이었어요. 원대한 프로젝트를 생각한 건 아니고 ‘이렇게 음악과 놀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예요. 곡을 즉흥적으로 쓰는 편인데 만든 곡을 묵혀두었다가 2년 후에 부르려니까 만들 때와는 다른 감정으로 불러야 하는 게 어색하기도 했고요. ‘지금 만든 노래를, 지금 부르자’라는 생각이 컸죠.”

여러 명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책을 내기도 힘든데, 혼자 곡을 쓰고, 노래 부르고, 함께할 가수를 섭외하고, 연주자를 모아 녹음한다. 거기에 뮤직비디오를 찍고, 앨범 재킷 디자인까지 결정한다.“ 한 달에 한 곡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만 그게 없으면 또 재미없죠. 곡이 좀 늦어질 것 같으면 솔직하게 말해요. ‘죄송해요. 이번 달은 좀 늦어요’라고.” 그는 어디까지나 이것이 ‘놀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매번 힘을 주지도, 한 곡 한 곡의 반응에 기뻐하거나 실망하지도 않는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 버릇 하면 돼요.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의미를 두고 굳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죠.” 매달 그의 노래가 발표되기를 기다리고, 꾸준히 음원을 모으는 ‘컬렉터’도 생겼다. <월간 윤종신>을 시작하며 예능과 음악의 균형을 찾게 된 것도 윤종신에게는 큰 수확이다.

조정치와 김그림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조정치는 다시 수줍은 기타리스트로 돌아와 있었다. 김그림은 2011년 9월호 수록곡인 ‘니 생각’을 조정치의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하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던 윤종신이 화음을 넣었다. 또 그 옆에는 하림이 앉아 하모니카를 불 예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콘서트에는 조정치, 정인,규현, 김그림 등 의객원 가수들이 게스트로참석했다. 리허설을 진두지휘하는윤종신에게서 음악을 대하는진중한 자세가 그대로 느껴졌다.

이날 콘서트에는 조정치, 정인,
규현, 김그림 등 <월간 윤종신>의
객원 가수들이 게스트로
참석했다. 리허설을 진두지휘하는
윤종신에게서 음악을 대하는
진중한 자세가 그대로 느껴졌다.

지난해 신치림이 결성되었을 때, 윤종신은 양옆에 선 조정치와 하림에 대한 자신감을 비췄다. 영민한 기타리스트 조정치와 월드뮤직의 스페셜리스트인 하림이 더 많이 알려지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윤종신의 바람은 분명 결실을 맺었다. 그들은 기타를 들고 도시로 여행을 떠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음악 프로그램 <디렉터스 컷 시즌 2>에 함께 출연한 것을 계기로 신치림을 만들었다.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포크’를 좋아했고 ‘각자가 가진 복고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기에 신치림만큼 좋은 대안은 없었다. 물론 그들이 언제까지 신치림으로 활동하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당분간, 그들은 신치림이다.

이번엔 윤종신과 조정치만 나란히 앉았다. 조정치는 말할 때의 표정이 그러한 것처럼 기타를 칠 때도 표정에 변화가 없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내는 기타 소리는 참 많은 표정을 지니고 있다. 커다란 공연장을 가득 채운그의 기타 소리에 윤종신이 목소리를 얹는다. ‘결국 봄’을 부르는 동안, 두 사람 뒤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8시 정각, 무대 위의 조명이 켜졌고 윤종신은 크게 한 번 호흡을 하고 무대 위로 걸어나갔다. 10일간 이어질 이 콘서트의 첫 번째 곡, ‘사랑의 역사’의 반주가 시작되자 관객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지금 막 시작된 이 ‘사랑의 역사’처럼 윤종신의 역사도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