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 동안 공연장에서 함께 웃고 뛰고 노래하던 페퍼톤스를 조용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게 참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건네지 못한 말이 많다. 다시 그들을 만나게 되면 꼭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여기 멋진 우주 한복판에서 페퍼톤스, 너희를 만나 정말 기뻤다고” 말이다.

이장원(왼쪽) 재킷은그라운드웨이브. 셔츠는아워레거시 바이 므스크샵.팬츠는 씨와이초이. 안경은안네발렌틴 바이 홀릭스.신재평(오른쪽) 재킷은 와프바이 므스크샵. 셔츠와 팬츠는그라운드웨이브. 안경은안네발렌틴 바이 홀릭스.

곧 있으면 EP앨범 이 나온다. 정규 앨범을 발표한 지 6개월 만에. 뭐가 그렇게 급했나?
신재평 4집 앨범을 내면서 공연에 대한 욕심이 컸다. 공연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레퍼토리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가을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서 틈틈이 써둔 곡을 발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겠다.
신재평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을 했고, 페스티벌은 물론 전국 클럽 투어를 했다.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일은 우리 안의 무언가를 소진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와 기운을 얻는 일이었다. 열심히 음악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무대 위의 당신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저렇게까지 좋을 수 있는 건가 싶어서.
신재평 공연장에 오는 사람들은 늘 바뀐다. 모든 게 영원할 수 없지만 그 순간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우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매일 있을 수 있구나’를 생각하면 자극을 받게 된다.

공연이란 게 매 순간 즐겁기란 힘든 일인데, 페퍼톤스는 ‘우울증을 위한 뉴 테라피’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게 가능해진다. 당신들도 그걸 충분히 즐기고 있겠지?
이장원 그렇다. 공연장은 그걸 가장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사람들과 함께 즐겁기 위해서 우리가 계속 음악을 하고 있는 건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게으른 것으로 유명했던 당신들이 한순간 이렇게 변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나?
신재평 앨범 내고 활동이 마무리되면 나태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더 부지런하게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3주 동안 녹음을 끝냈다. 그 시간 동안 녹음하고 믹싱하고 마스터까지 끝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그게 가능했다. 뭔가 그런 에너지가 있었다.

이장원 사실 이제 슬슬 부지런해질 때도 됐다. 항상 둘 중에 한 명이 성실하면 다른 한 명이 성실한 사람을 따라가는 편인데 유일하게 둘 다 성실한 한 해였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밝고 명랑한, 치유의 이미지가 부담스러울 때는 없나?
신재평 사람들이 기대하는 우리가 되는 것,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사는 건 중요한 일이다. 기대를져버리는 건 우리 음악을 즐겁게 들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일 수 있다. 때로는 돌발 행동도 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길을 찾는 게 우리의 역할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4집이나 이번 EP앨범도 페퍼톤스에게는 또 하나의 모험이었겠다.
이장원 음악 하는 사람들도, 팬들도 4집을 많이 좋아해줬다. 우리 나름대로 앨범을 쌓아가는 철학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의 앨범을 내서 색을 굳혀가기도 하지만 전작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앨범은 후자였고,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모험을 즐기는 편이다.

명랑 만화를 걷어낸 자리에 음악 하는 두 남자가 보인다.
신재평 음악을 시작해서 이래저래 부딪히며 온 사람들이 만들고 부를 법한 노래다. 예전엔 멜로디를 만들어놓고 가사를 붙이곤 했는데 이제는 단어나 문장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곡을 붙이다 보니 우리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21세기의 어떤 날’, ‘바이킹’ 같은 노래가 특히 그렇다. 예전에 비해 두 사람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것도그 이유 때문이겠지?
신재평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었으니 우리가 부르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여성 보컬이 빠지면서 남자 팬들도 덩달아 빠졌다는 거다.

공연이 얼마 남지 남았다. 어떤 시간을 준비하고 있나?
이장원 이번에 발매하는 EP앨범에 수록된 곡을 처음으로 들려주는 자리가 될 거다. 이제까지 보여주지 못한 많은 것을 보여줄 계획이다.

내년에도 작은 공연장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건가?
이장원 계속 올해처럼 살다가는 요절할 것 같다. 그런데 올 한 해 열심히 살아서, 살 수 있어서 참 기쁘고 행복했다. 체력만 따라 준다면 계속 달려야지. 기대된다. 일단은 12월 21일, 악스코리아에서 만나자.

신재평 그래 초대할 테니 연락해라.

이장원 그건 인터뷰 보고 결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