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도 봄바람 대신 입김만 피어오르던 날, 열두 명의 뮤지션과 함께 봄을 기다렸다. 봄에 부르고 싶은 노래와 듣고 싶은 노래, 봄에는 끝내야 할 일. 봄 얘기만 실컷 했더니 문득 창밖의 햇살이 달라져 있다.

연진

“봄을 생각하면 뛰어나가는 것보다 한가로운 할머니처럼 벤치에 앉아 있는 풍경이 그려져요.” 그러다가도 가장 듣고 싶은 음악은펑크라고 말한다. 종잡을 수 없는 게 ‘라이너스의 담요’ 연진의 매력.

봄에 들려주는 노래 ‘Misty’. 소니뮤직과 함께한 1집에 들어 있어요.
나만 아는 이야기 가사의 내용은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을 내 사랑으로 보듬어주겠다는 거예요. 너에겐 안개 낀 것 같은 슬픔이 느껴지지만, 내가 너를 편하게 만들어주겠다. 나와 함께라면 그럴 것이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봄인 것 같아요. 겨울 같은 심상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내가 봄을 주고 싶다고. 키가 높고 느낌이 워낙 여리여리해서 녹음하는 과정이 좀처럼 쉽지 않았어요. 아마 지금까지 가장 여러 번 녹음한 노래일걸요.
봄에 해야 할 일 봄에는 연애를 해야 해요. 연애를 안 하면 데이트라도 정기적으로 해야 해요. 연애를 안 하는 인생 너무 칙칙해요. 예전부터 찻집의 테라스에서 야외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이루어졌음 좋겠어요.
흥미로운 일 요즘 후배 뮤지션의 앨범을 도와주고 있는데, 오히려 음악은 항상 공부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내가 지금까지 음악을 대한 태도가 너무 ‘팬시’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어요. 음악을 하는 것만으로 좋았던 혈기왕성했던 시기가 지나고, 이젠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듣고 싶은 노래 펑크 밴드인 스트라이커스의 음악. 노동에 가까운 이들의 음악을들으면, 뭐든 열심히 할 수 있다는 힘이 솟을 것 같아요.

텐시러브

“원래 생일이 지나면 따뜻해져요. 생일이 ‘입춘’이거든요. 텐시러브의 보컬 고지후가 말했다. 그 말이 무색하게 함박눈이 오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눈이 그친 하늘은 봄날 같았다.

봄에 들려주는 노래 ‘마음에 머무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아닌 피아노 곡이에요.
나만 아는 이야기 ‘5월의 기억은 너’라는 가사가 있어요. 실제로 첫사랑 얘기를 썼고 그래서 봄에는 그 곡이 가장 먼저 생각나요. 우리는 처음에 ‘작곡가 선생님’과 보컬로 만났어요. 작곡과 작사의 영역도 나누어져 있었는데 활동을 하면서 점점 더 요구하게 되었죠.
봄에 해야 할 일 3월 초나 2월 말쯤 새 앨범이 나와요. 처음으로 소속사에 들어가서 만드는 앨범이라 좋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앨범 제목도 정해지지 않았고, 타이틀곡의 제목도 뭐가 될지 몰라요. 하지만 제목이 뭐가 되었든 타이틀곡은 봄을 깨우는 것처럼 평화스러운 곡이에요. 정말 혹독한 과정으로 만들었지만.
흥미로운 일 얼마 전에 차를 긁었으니, 다른 색으로 도색을 하고 싶어요(황예준). 그래서 요즘 제가 바르는 매니큐어 색에도 관심을 보여요. 이 색으로 도색하면 어떻겠냐고. 저도 요즘 진심으로 차를 사고 싶어졌어요(고지후).
듣고 싶은 노래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After the Love has Gone’. 굉장히 좋아하는 곡인데 이 노래는 봄과 가을을 동시에 생각나게 해요(고지후). 반 헤일런의 ‘Jump’. 봄이니까, 연진 활기차게(황예준).

조태준

“사람이 이리 고민이 없어도 되노”, 우쿨렐레를 연주하다 말고 조태준은 문득문득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알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낙천적이고 행복한 남자.

봄에 들려주는 노래 ‘집으로 가는 길’. 하찌와 TJ 1집 앨범에 있는 곡이에요. ‘진달래’라는 곡도 있는데 그 노랜 좀 슬퍼요. 광주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나만 아는 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은 하찌가 작곡하고, 작사는 내가 했어요. ‘내 사랑 별들아, 그 별 안에 내 하늘아.’ 그런 가사를 썼어요. 내가 원하는 꿈이 있지만 그 속에 있는 내 마음도 늘 잊지 않고 싶다는 가사죠.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구한 집이 신설동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그 언덕 길을 올라가면서 보던 풍경과 마주친 사람들을 떠올리며 썼어요. ‘지팡이 도장을 찍는 할머니’도 실존 인물이에요. 벌써 5년 전. 지금 들어보면 정말 어린 목소리예요. 하찌와 나는 밴드 할 때보다 훨씬 사이가 좋아요. 이제 아저씨 대신 형이라고 불러요.
봄에 해야 할 일 솔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지금까지 참 편하게 산 것 같아요. 물론 나도 가지고 싶은 것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가지는 데에는 대가가 필요해요. 오히려 세상의 공짜가 더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적당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싶어요.
흥미로운 일 라디오 프로그램의 고정 게스트를 다섯 곳이나 하고 있다는 것. 성시경, 이현우, 최강희, 정선희… 다들 인기 프로그램인데 이상한 건, PD도 작가도 내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냥 편한 대로 하래요. 홍대 뮤지션들하고만 있다가 새로운 ‘강남 사람들’을 만나니까 재미있어요. 그나저나 나를 왜 부르는지. 사투리 쓰는 사람을 좋아하나?
듣고 싶은 노래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

짙은

두 사람으로 시작했던 ‘짙은’은 이제 성용욱 혼자만의 밴드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다.
봄에 들려주는 노래 ‘시크릿’. 짙은 1집을 만들 때 봄의 정취를 담고 싶어서 쓴 노래예요.
나만 아는 이야기 멜로디를 먼저 썼는데, 아주 느리게 썼어요. 술집에서도 쓰고, ‘흐르는 강물처럼 내 곁에 흘러’, 그 부분은 한강에서 쓰기도 했죠. 원래 제목은 ‘시크릿 워터’였어요. 그런 이름의 향수가 있는데, 과거 사랑했던 사람의 향수 냄새를 떠올렸죠. 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느낌과 가장 좋은 순간의 상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봄에 해야 할 일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봄맞이 대청소와 내팽개친 듯한 삶의 관계를 좀 다독이고 싶어요. 봄에는 사람들도 더 만나고 해야죠.
흥미로운 일 음악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편곡이나 미디(Midi)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요즘은 관심이 생겨요. 새 앨범은 아마도 올겨울쯤 내면 성공이에요. 원래 작업을 빨리빨리 하는 타입은 아녜요.
듣고 싶은 노래 루시아의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줄 건가요?’ 봄은 너무 짧아서 기대를 배반하는 계절이에요. 학교 다닐 때도 봄에는 소개팅과 미팅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뭔가 어렵고 잘 안 되는 느낌도 있어요.

융진

융진은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녀는 참 웃는 게 예쁜 여자지만 억지로 만드는 웃음은 잘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캐스커’의 음악처럼.

봄에 들려주는 노래 ‘네게 간다’. 캐스커의 5집 <Tender>에 수록되어 있어요.
나만 아는 이야기 좋아하는 곡이야 많죠. 우리 앨범에 있는 모든 곡을 정말 좋아하지만, 봄과 어울리는 곡을 떠올리니 ‘네게 간다’가 가장 먼저 생각나네요. ‘이 길을 지나 초원 넘어 네게 간다 숨차오르는 언덕 넘어 네게 간다 가느다란 다리는 조금 떨려와도 멈출 수가 없는 길 너에게 간다’는 가사를 가지고 있어요. 이번 겨울이 너무 추워서 그런지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날 초원이 보고 싶어요.
봄에 해야 할 일 올해 새로운 정규 앨범을 낼 거예요. 작업을 해야만 하고, 또 작업을 하고 싶고. 아마도 일을 열심히 하는 봄이 될 것 같아요.
흥미로운 일 봄이 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새 앨범 작업 중에 어떤 곡이 나올지 그게 가장 궁금하고 설레요.
듣고 싶은 노래 김현철의 ‘봄이 와’.

최고은

“연극하는 사람은 좋을 것 같아요. 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잖아요. 곡을 전달하는 5분은 내겐 너무 짧은 것 같아요.” 최고은의 노래를 들을 때, 나만 아직 모르는 유명한 뮤지션일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건 그녀가 영어로 작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깊은 곳에서부터 명징하게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 오해를 부른다.

봄에 들려주는 노래 ‘로즈’. 제 첫 번째 EP에 들어 있어요.
나만 아는 이야기 도쿄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벚꽃여행을 떠났어요. 꽃이 피기 시작해서 질 때까지 딱 한 달 정도를 여행했어요. 강물에 떠내려가는 벚꽃을 보니까, 또 이 봄이 지나간다는 뉘앙스만 오랫동안 남더라고요. 그때 난 20대 후반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내 청춘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이 노래를 생각하면 그날의 봄이 많이 떠올라요.
봄에 해야 할 일 계절 중에서 겨울과 봄 사이를 가장 좋아해요. 하루로 따지자면, 봄은 아침과 같은 계절이죠. 미완성된 곡이 많아요. 이것들을 어떻게 완성해나갈 것인가. 그게 가장 고민이에요.
흥미로운 일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어요. 원래 타고난 천성이라는 것과 음악을 만들고 있는 나의 인간성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음악은 늘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치열한 경쟁이 있거든요.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해낼지 고민해요. 목표가 생기면 사람은 변하기 쉽더라고요.
듣고 싶은 노래 엘리어트 스미스의 ‘Say Yes’. 엘리어트 스미스의 음악은 늘 슬픈 느낌이 드는데, 그래도 그 안에 기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