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질문, 이승철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받는다면? 장재인의 답은 “영광이죠”가 아니라 “음악 색깔이 너무 다른데, 괜찮을까요?”였다. 첫 미니 음반<데이 브레이커>는 싱어송라이터 장재인의 음악 스타일을 들려주는 첫 무대다.<슈퍼스타 K>에서 그녀가 들려준 ‘가로수 그늘 아래서’는 이제 잊어도 좋다. 뮤지션 장재인의 음악 인생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장재인이 <슈퍼스타 K>를 통해 얻은 것은? 유명세도 아니고, 그녀를 사랑하는 팬도 아니고, 부와 명예는 더더욱 아니었다. 적어도 장재인에게는 그랬다. “<슈퍼스타 K>에 출연하면서 사교적인 성격이 되었어요. 예전에는 제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연을 깊이 생각했고,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다는 것에 조심스러웠죠. 한 사람을 가슴 깊이 품는 스타일이었어요. 지금은 좀 덜하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면, 깊이 품기는 어려우니까요. 이렇게 말하니, 좀 슬프네요. 하지만 좋은 점도 있어요. 굉장히 낯을 가렸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한 번 만난 인연’으로 끝나기가 쉽더라고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흘러가는 인연이 되는 건 싫으니까요.”

첫 음반의 마지막 녹음이 한창인 장재인은 <슈퍼스타 K>에 출연하기 전에 홍대 인디신에서 만나고 흘려보낸 사람들을 회상했다. 남성 듀오 십센치도 홍대에서 음악을 하면서 만났고, 얼마 전 데뷔한 옥상달빛도 <슈퍼스타 K>에 출연하기 전부터 알던 사이. 그땐 지금처럼 야무지게 말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수줍음이 많고 말수도 적은 소녀였다. 장재인이 오로지 대담해졌던 때는 무대 위에 있을 때였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그리고 잘할 자신도 있었어요. 주변의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요. 유행은 돌고 돌잖아요. 곧 통기타의 시대가 올 거라고 믿었고, 제가 좋아하는 록 음악과 포크 음악도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했죠. 몇 년 전 미국에서 에이브릴 라빈이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국의 10년 후가 우리 음악계의 모습이니까, 제 음악도 머지않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장재인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 살면서도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좁은 고시원에서 살다 보면 사람이 좀 이상해져요. 흔들릴 때도 많았죠. 3~4년 동안 음악 작업을 해왔는데 이렇다 할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 내가 가는 길이 맞나, 의심하게 되죠. <슈퍼스타 K>에 출연한 가장 큰 수확은 음반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일지도 몰라요. <슈퍼스타K>를 통해 얻은 팬덤은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땐 제 노래를 부르지 않았잖아요. 그때 얻은 인기는 제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인기였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진짜 제 팬을 만드는 거죠.”

장재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녀의 첫 미니 음반 <데이 브레이(Day Breaker)>를 손에 넣게 되었으니까. 비틀스의‘ 데이 트리퍼(Day Tripper)’를 연상시키는 이 제목은 ‘일상을 깬다’는 의미. 획일화된 사회,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을 표현했다. “’데이 브레이커’를 작곡했을 때, 이거다 싶었어요. 타이틀 곡인 동시에 앨범의 주제로 정했죠.”

이번 앨범은 장재인이 작사, 작곡, 편곡을 비롯해 피아노와 기타 연주까지 직접 한 앨범이다. “곡을 쓸 때, 편곡까지 생각해요. 무대 구성은 어떻게 할지, 내가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지, 어떤 악기를 쓸 건지 등 편곡의 구성을 생각하면서 곡을 쓰죠. 제가 이번에 작사와 작곡만이 아니라 편곡까지 욕심을 낸 건, 지난 3월에‘ 그곳’과‘ 풍경’의 음원을 내면서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이었죠. 내 손을 떠나 편곡되고 완성된 두 곡은 듣기에 매우 좋았어요. 대중도 좋아해주셨고요. 그런데 내 마음에는 차지 않았죠. 편곡이 싫었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제가 생각했던 느낌이 아니었어요. 저는 대중적이고 듣기 편한 곡이 아니라, 좀 더 블루스에 가까운 느낌의 곡이기를 바랐거든요. 제가 18살 때 이 곡을 쓰면서 A를 생각했는데, B 로 완성된 거죠. 그때‘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면, 고집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번엔 제가 원하는 대로 편곡했어요. 제가 고집불통일 수도 있겠죠. 형석 교수님이 많이 힘들 거예요. 많이 죄송해요.”

국내 가요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꼽히는 김형석 PD가 전체 프로듀싱을 했다. “얼마 전까지는 열심히 준비한 음원이니까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초심으로 돌아왔죠. 잘 팔리면 좋겠지만, 대중에게‘ 이런 음악도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된 것만으로 만족하자고. 대중에게 제 음악을 소개하고 익숙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식 음반 발표를 앞둔 장재인은 떨지 않았다. 너무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신인 가수의 모습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홍대에서 활동하는 시절에 만들었던 곡들은 내 배설물 같았어요. 내 안에서 만들어 토해냈지만, 저 스스로 자주 부르진 않았죠. 그런데 이번에 만든 곡들은 반복해서 부르고 싶어요. 너무나 마음에 들어요.” 장재인은 두 얼굴을 가졌다. 어눌한 말투, 수줍은 표정의 여대생 장재인과 자신감 넘치고 꺾이지 않는 고집불통의 뮤지션 장재인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여대생 장재인은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고, 뮤지션 장재인은 단단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