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일드>의 두 주인공이 만났다. 바로 원작자 셰릴 스트레이드와 극중에서 셰릴을 연기한 리즈 위더스푼. 두 사람은 영화 <와일드>, 그리고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드레스는 구찌(Gucci). 반지는 뤼피에(Ruifier).

드레스는 제이멘델(J. Mendel). 귀고리는 유리베(Uribe). 골드 반지는 뤼피에. 다이아몬드 반지는 리즈의 것. 샌들은 나르시소 로드리게즈(Narciso Rodriguez).

“당신을 꼭 껴안아주고 싶어요!” 회고록 <와일드(Wild)>를 읽은 리즈 위더스푼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건넨 첫 마디다. 그녀는 영화 제작에 나서는 것뿐 아니라 직접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리즈 위더스푼이 ‘나’를 연기한다니! 앞으로 이어질 3년간 우리가 얼마나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직접 연기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유대감이다. 리즈에게 내 책을 보낸 것은 배우로서 그녀를 존경했기 때문이다. 겨우 29세의 나이에 첫 번째 아카데미상을 거머쥐게 한 <앙코르>의 준 카터부터 <금발이 너무해>의 엘르 우즈까지, 연기를 통해 선보인 수많은 캐릭터 안에 숨겨진 그녀의 진실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예감은 적중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결혼의 실패를 이겨내기 위해 4,000km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acific Crest Trail, PCT)을 홀로 횡단한 나의 이야기를 담은 <와일드>를 통해 리즈는 그녀만이 지닌 뛰어난 재능과 훌륭한 인성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영화 개봉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리즈와 나는 차를 마시며 <와일드>를 비롯해 그녀의 남편 짐 토스와 세 아이, 그리고 행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셰릴 스트레이드(이하 셰릴) 오늘 어때요, 리즈?리즈 위더스푼(이하 리즈) 좋아요! 당신 아주 귀엽네요. 머리가 마음에 들어요. 지난밤에 아주 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것 같은 모습이에요.
셰릴 거친 여자처럼요! 자, 이제 우리는 영화와 인생에 대해 얘기를 나눌 거예요. 사람들은 내게 리즈가 <와일드>를 통해 ‘평소 모습에서 벗어난’ 연기를 선보였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녀의 평소 모습이 뭔데?”라고 물었더니 ‘미국의 달콤한 연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나를 연기하면서 평소 모습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나요?
리즈 내가 망가졌다고 생각하냐고요?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한 가지 모습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의 인생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요. 14세부터 연기해온 탓인지 내 모습은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셰릴 내 눈에는 당신이 미국의 달콤한 연인으로 비치진 않아요.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리즈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스스로를 그 누군가의 달콤한 연인으로 평가하고 싶진 않아요. 나는 친절하긴 하지만 달콤하진 않아요. 그리고 아주 솔직하죠.
셰릴 사람들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수식어를 붙이길 좋아해요. 내 의견에 동의하나요?
리즈 맞아요. 남자 배우들에게는 ‘가장 섹시한 남자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곤 하죠. 하지만 여자 배우가 인생 최고의 명연기를 선보여봤자 사람들은 ‘세상에, 섹시 배우가 저런 연기를 하다니’라고 말할 뿐이에요.
셰릴 섹시한 여배우로 꼽힌 적도 있나요?
리즈 절대 아니죠!
셰릴 내가 당신을 추천할게요. <와일드> 촬영에 들어가기 몇 주 전, 당신은 두렵다고 말했죠. 나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 어떤 부분이 두려웠나요?
리즈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두려웠어요. 베드신이 두려웠어요. 혹독한 촬영 현장과 맨 얼굴을 스크린에 공개하는 게 두려웠어요. 메이크업을 못하는 게 싫었던 게 아니라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지 않는 것, 스스로를 망가지게 허락하는 것이 두려웠죠. 당신이 너무나 용감하게 책을 통해 이뤄낸 것들이요.

셰릴 베드신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어려웠나요?
리즈 낯선 사람들과 베드신을 촬영하는 건 늘 어려운 일이죠. 절대 즐겁지 않아요. 그건 남자 배우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에게 화내며 전화하기도 했었죠. “이건 정말 하기 싫어요!”라고 하면서요.
셰릴 장 마크 발레 감독은 모든 부분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고 싶어 했어요. 내가 책 속에서 했던 모든 것을 당신에게 요구했죠.

리즈 맞아요.
셰릴 영화 제작에 들어가기 직전에 내게 “혹시 제모를 했나요?”라고 물었던 걸 기억해요. 나는 “횡단 중인데 당연히 제모하지 않았죠”라고 대답했고요. 
리즈 그리고 내가 감독에게 “제발 다리는 제모했다고 말해줘요!”라고 말했죠.
셰릴 “내 한계는 여기까지예요! 나는 남부 출신이라고요!”라고 소리질렀죠. 어떻게 캐릭터에 녹아 들어갔나요? 당신 스스로에 대해 생각했나요? 아니면 나에 대해?
리즈 아마 반반이었을 거예요. 어쩌면 3분의 1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당신, 나, 그리고 어머니요. 어머니가 겨우 20세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아직도 그 슬픔을 안고 살아요. <와일드>에서 외할머니를 일찍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셰릴 극중에서 내 어머니인 바비를 연기한 로라 던과 함께 우리가 얼마나 어머니를 존경하는지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잖아요.
리즈 네, 맞아요. 우리 어머니는 로라의 어머니와 이 영화를 함께 봤는데, 상영 시간 내내 두 손을 꼭 잡은 채였다고 해요. 로라와 나중에 이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직접 얘기한 적이 없었을지라도 영화를 통해 다 느끼셨을 거라고요. 우리에게 어머니의 존재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요.
셰릴 어머니도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얘기도 했었죠. 어머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요. 가장 중요한 건 어머니가 우리를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거죠.
리즈 맞아요. 어머니는 종종 내게 “직업을 갖는 건 인생의 보험과 같아. 아무도 그걸 뺏어가지 않도록 하렴”이라고 뻔한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얼마 전 딸 에바가 “엄마가 나한테 물에 레몬을 넣어 먹으면 좋다고 얘기했잖아”라고 하는 거예요! “세상에, 내 말을 기억하긴 하는구나!”라고 말하며 너무 크게 웃어서 눈물이 날 뻔했어요. 교육이 효과가 있긴 있네요.
셰릴 에바에게 여자가 되는 것에 대해 가르쳤나요?
리즈 스스로 경험한 것에 대해 창피해하지 말 것. 호기심과 사랑을 가지고 풍성한 삶을 살 것. 그리고 늘 용감할 것.
셰릴 두 아들에게는 남자가 되는 것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나요?
리즈 같은 걸 말해줬죠.
셰릴 나는 첫 아이를 서른다섯에 출산했어요. 당신은 어땠나요?
리즈 스물둘이요.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어요. 너무 어렸었죠. 출산은 충격적이었어요. 사람들이 “아이는 언제 가지는 게 좋을까요?”라고 물을 때마다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기에 가장 완벽한 날을 고르면 되요”라고 대답하곤 하죠. 물론,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기 좋은 날은 존재하지 않지만요.
셰릴 맞아요. 내 시간을 잃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죠.
리즈 에바가 태어난 이후로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단 한 시간도 되지 않아요. 에바에게 별일 없나? 디콘에게 별일 없나? 테네시에게 별일 없나? 그리고 다시 에바를 걱정하게 되죠.
셰릴 아직 스스로 성장하고 있을 시점에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거죠. 그때를 뒤돌아보며 스물두 살 리즈에게 조언할 수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줄 건가요?

리즈 또 나를 울릴 건가요, 셰릴? 당신은 언제나 날 울게 만들죠.

셰릴 맞아요. 내가 그랬죠.
리즈 네가 걱정하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어요. 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아니 괜찮은 거 이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요. 이미 충분히 잘해내고 있으니 스스로를 들볶지 말라고요. 인생을 살아가며 너를 돕고 사랑해줄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요.
셰릴 옳은 말이에요. 
리즈 20대에는 다른 누군가가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거 같아요. 내 행복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것이라는 걸 서른하나쯤 되어서야 깨달았어요. 모든 건 내 책임이에요. 남편, 자식, 그 무엇도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대신 만들어주지 않아요. 매일 내 스스로의 행복을 선택하고 가꿔나가는 건 내 몫이에요.
셰릴 때론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었죠. 편안한 환경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아주 근사한 경험을 하게 될 때가 많으니까요. 스스로 느껴야만 해요.
리즈 3년 전까지만 해도 제작사를 직접 차린다는 것과 <와일드>와 같은 작품 출연에 대해 확신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아. 내 꿈을 쫓을 거야’라고 용감히 결단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와요.
셰릴 최근 들어 더 많은 모험을 감행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리즈 남편을 통해 나는 끊임없이 치유받아요. 나를 지지하고, 사랑하고, 최고의 팬을 자처하는 배우자와 함께한다는 건 너무나 근사한 일이죠.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이기도 하고요. 나는 스스로를 위해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셰릴 그런 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내가 먼저 준비되어야 하죠.
리즈 스스로의 행복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해요.
셰릴 나는 짐의 최고의 팬인걸요. 여자친구들도 중요하지 않나요?
리즈 나는 정말, 정말로 운이 좋아요. 인생에 닥친 어떤 속상한 일 때문에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 씻기고, 옷 입혀주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식사를 챙겨준 친구들이 있죠. 내 여자친구들을 정말 사랑해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할 거예요.
셰릴 여자친구들은 보물 같은 존재예요. 질투심 많고 서로를 험담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내 경험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리즈 할리우드에서도 여자들끼리 더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내 경험 역시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여자친구들은 따뜻하게 감싸주고,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늘 친절한 말을 건네줘요.

셰릴 힘이 되어주는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리즈 제3세계에 백신을 배포하기 위해 노력하는 멜린다 게이츠와 아동을 위한 교육과 의료 제도 개선을 위해 힘써온 미국아동보호기금의 회장 메리언 라이트 에덜먼이요. 당신처럼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 감정의 중심을 헤아릴 수 있고 단편적 사실에서 결론을 도출할 줄 아는 사람 역시 나를 감동시켜요. 몽유병 환자처럼 인생을 멍하게 보낼 수도 있는 반면 모든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갈 수도 있어요.
셰릴 당신은 <와일드>에 생명을 불어넣었어요. 사랑을 준 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했고, 사랑을 주지 못한 아버지를 용서한 한 여자의 인생을 세심하게 표현했죠.
리즈 횡단을 통해 마음의 짐이 모두 해소되었나요?

셰릴 상당 부분요.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큰 과제는 해결한 거 같아요.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치유할 수 있으니까요.
리즈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본 적이 있기에 당신의 책에 더욱 공감이 가요.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했고 이혼을 겪기도 했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창피한 경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경험 하나하나가 쌓여 내 인생을 만들었고,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한 거겠죠.
셰릴 자랑스러운 경험은 뭐가 있나요?
리즈 전 세계의 여성 판사 100명이 모여 여성들의 인권 보호에 대에 논의하는 행사가 몇 년 전 워싱턴DC에서 열렸어요. 그 자리에서 “변호사는 아니지만 <금발이 너무해>에서 변호사를 연기한 적은 있어요”라고 말하자 모두가 박수를 보냈어요. 여성들의 인생에 어떠한 의미로든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에요.
셰릴 <금발이 너무해>를 언급하니 생각나는데, 신발 얘기를 좀 해볼까요? 횡단 때 신은 트레킹화가 문제가 좀 있었어요. 발에 잘 맞지 않아 결국은 발톱 여섯 개가 빠져버렸죠. 영화 촬영 때에는 어떻게 분장을 했나요? 
리즈 인조 발가락을 붙였어요.
셰릴 영화 덕분에 나는 할리우드에 걸맞은 변신을 해야 했죠! 시사회 때에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기도 했고요. 횡단 때도 그렇게 발이 아팠는데 19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이런 일을 겪네요.
리즈 원점으로 돌아온 건가요? 나 때문에 고생한 것 같아 미안해요. 하지만 하이힐을 신은 당신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언니를 괴롭히는 여동생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줘요.
셰릴 유튜브를 즐겨 보진 않지만 지난여름 한 결혼식에서 당신이 춤추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아주 유명하더군요.
리즈 어땠어요? 동영상이 재미있었어요? 지금 내 춤 솜씨가 질투 나서 웃는 거죠?
셰릴 본 적 없어요?
리즈 없어요! 우스꽝스러운가요?
셰릴 당신은 정말 사랑스러워요. 알고 있죠? 내 질문에 내가 스스로 답하네요! 이게 바로 당신이 미국의 달콤한 연인인 이유예요. 당신은 우리와 같거든요. 춤출 때 당신 모습은 정말 흥겨워요.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훨씬 더 공통점이 많아요.
리즈 그럼요.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걸요.
셰릴 속전속결로 가볼까요? 여태껏 경험한 가장 야생의 순간은?
리즈 아이를 낳던 순간은 정말 동물적이었어요. 뱃속에 품고 있던 아이를 출산해 품에 안았을 때 느끼는 격렬한 사랑의 감정은 정말 경이로워요.
셰릴 금발이 좋아요 갈색 머리가 좋아요?

리즈 글쎄요. 16세 이후로 계속 염색해온 탓에 진짜 머리 색깔은 기억도 나지 않는걸요! 나는 남부 출신이에요. 우리는 천연 모발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셰릴 마지막으로 크게 웃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리즈 셰릴, 나는 지금 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웃고 있어요!
셰릴 마지막으로 울었을 때는요?
리즈 우리가 얘기하던 도중 한 네 번쯤 눈물 흘리지 않았나요?
셰릴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나와 이 인터뷰를 한 건 아니겠죠?
리즈 나는 그 무엇도 후회하지 않아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피할 수 없는 거니까요.

 

 

드레스는 뮈글러(Mugler). 귀고리는 파인 바이 페이지 노빅(Phyne by Paige Novick).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아’라고 용감히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