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다 하고 끈질기게 따져 물어도 어쩐지 얄밉지 않았던 <호구의 사랑>의 ‘인공미’가 말간 얼굴의 송지인이 되어 <얼루어>의 카메라 앞에 섰다. 송지인의 봄날이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톱은 마르니(Marni).

몸이 아주 단단하네요!  
헬스도 하고 요가도 했는데 이제 필라테스를 해보려고요. 주말에 등산하는 걸 좋아해요. 체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서 높은 산은 못 가고 아차산 같은 낮은 산 위주로 다녀요.
  
인스타그램을 보니 뷰티에도 관심이 많더라고요.
네. 굉장히 많아요. 피부관리도 꾸준히 하고 있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이너 뷰티에 더 신경을 쓰게 돼요. 꾸준히 비타민도 사 먹고 손톱이나 헤어 영양제도 챙겨 먹어요. 음식도 가능하면 건강식 위주로 먹으려고 노력하고요.
  
<호구의 사랑>의 인공미로 산 지난 3개월은 어땠나요? 

계속 시대극을 하다가 오랜만에 하게 된 현대극이라 맘껏 멋 부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또래 배우가 많아서 촬영 분위기도 좋았고요. 그렇게 예쁘고 발랄한 역할은 처음이었어요. 변호사의 비서이지만 변호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차게 행동하는 캐릭터라 재미있었어요.
  
표민수 감독님은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해 촬영한다고 들었어요. 

권위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분이에요. 예를 들어 고등학교 회상 장면이 있었는데 ‘춤을 좀 우스꽝스럽게 쳐보면 어떨까요?’ 하고 물어보면 좋아해주시고 ‘그렇게 해보자’는 식이었어요. 배우들이 자신이 돋보이는 연기를 할 때가 있잖아요. 상대방을 잘 받쳐주면 본인이 훨씬 돋보인다고, 욕심을 부리기 전에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연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드라마 끝나고 또래 배우들과 따로 모임을 가졌나요? 
다들 바빠서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저희끼리 하는 단체카톡방이 있어서 여전히 거기서 수다를 떨어요. 덕분에 드라마를 하는 동안에도 현장에서 만나면 그 분위기가 이어져서 친근하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당신이 <카트>, <인간 중독>, <우아한 거짓말> 등 꽤 다양한 필모그래 피를 쌓았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름 없는 작은 역할도 가리지 않고 해요. 저는 뒤늦게 연기를 시작했거든요. 늦게 시작한 만큼 정말 가리지 않고 오디션을 봤어요. 작은 역할이라도 주어진 장면을 만족스럽게 해내면 되는 거니까요. 물론 그 마음을 지켜가는 게 쉽지는 않아요. 영화를 보면 내가 나오는 장면이 너무 짧아서 아쉬워지거든요. 그래도 욕심은 부리지 않을 거예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작은 역할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싶어요.
  
그 이름 없는 역할 중에서 특별히 마음이 갔던 캐릭터가 있다면요? 
영화 <카트>에서의 비정규직 역할이 기억나요. 그전에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도 비정규직 역할을 맡았었거든요. <카트>에서 시위하고 물대포 맞으면서 고생했는데 촬영하면서 그 역할에 공감이 많이 갔어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도 비정규직이잖아요. 작품이 끝나면 쉬는 게 아니라 백수생활로 돌아가는 거예요. 다음 작품을 언제 하게 될지도 모르고, 하다가도 또 언제 끊길지 모르니 불안한 마음이 없을 수 없죠.
  
작가를 꿈꾸던 국문학도가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막연히 국어선생님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방송작가를 꿈꾸게 되었고,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어요.  

어떤 프로그램이었나요?
SBS <동물농장>에서 처음으로 작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작가 언니들 심부름도 하고 촬영해온 비디오를 보면서 정리도 하는 일이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캐스팅이 되었어요. 아르바이트 월급이 안 들어와서 PD님을 찾아가 돈을 달라고 따졌는데 마침 그분들이 대차게 항의하는 여대생 역할을 찾고 있었던 거예요. 연예기획사에 온 예쁜 배우 지망생들만 보다가 진짜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러 온 여대생을 보니 뭔가 신선하게 느껴졌나 봐요. 처음엔 할지 말지 고민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연기가 아니면 안 돼!’ 하는 열정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할수록 재미있고, 재미있는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같이 일한 작가 언니들이 신기해하겠어요.

네.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데 매번 많이 예뻐졌다고 말해요. 그 언니들은 제가 아무렇게나 입고 머리도 안 감고 일하던 모습을 기억하니까요. 
  
함께 작업하면서 닮고 싶은 배우를 만난 적이 있나요?

함께 작업하다 보면 옆에서 보고 느끼는 게 많아요. 가끔씩은 ‘아, 나는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연기를 하면서 만난 배우 중에 여러 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김혜수 언니예요. 언니는 10대 때부터 30년간 톱을 지키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주위를 돌아볼 줄 알고, 이름 없는 배우 한 명, 스태프 한 명까지 챙기고 기억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직장의 신>을 찍으면서 배우 이미도 언니와 많이 친해졌는데 우리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해요. “혜수 언니는 인격의 완전체야.” 
  
만약 그때 여대생 역할에 캐스팅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비슷한 시기에 라디오 막내 작가로 갈 기회가 있었거든요. 라디오 작가로 들어서서 지금쯤 메인 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일을 계속 했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어요. 봄을 좋아하나요?

네, 봄을 기다렸어요. <호구의 사랑>에서 보여드린 인공미 역할은 그동안 제가 맡은 역할 중에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이에요. 지금의 좋은 기운을 앞으로 쭉 이어가고 싶어요. 매달 챙겨 보는 <얼루어>와 인터뷰도 했으니, 제게도 봄날이 온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