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벅차게 예쁜 그녀가 담담하고 뜨겁게 말을 이어갈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혜진의 ‘힐링’은 누가 해줄까. 화가의 뮤즈처럼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그녀는, 빛이 가득 들어오는 스튜디오에서 꼭 그만큼 빛났다.

드레스는 케이수 바이 김연주(Kaye Su by KimYeon Ju). 귀고리는 제이미앤벨(Jamie&Bell). 드레스는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슈즈는 게스(Guess). 뱅글은 CK 주얼리(CK Jewelry).

내일은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간다면서요?
<힐링 캠프> 촬영이 있어서요. 제주도는 <힐링 캠프> 촬영으로만 가게 돼요. 벌써 세 번째예요. 촬영이라도 바다를 볼 수 있으니까 좋아요. 예전에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에는 사람 없는 해변에서 하루 종일 물에 동동 떠 있었는데 정말 행복했거든요. 제주도 갈 때마다 그 추억이 생각나요.

<힐링 캠프>가 이렇게 중요한 프로그램이 될 줄 몰랐다는 걸 사과해야겠어요.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어요! 원래 이름이 <힐링 캠프 – 기쁘지 아니한가>잖아요. 뭐야, 이름도 이상해 그랬죠. 반응이 별로 없으니까 주변에서는 괜히 한 것 같다고 걱정하기도 했는데 전 괜찮았어요. 원래 뭘 하든 안 되면 할 수 없지 그런 성격이에요. 그런데‘힐링’을 대중화하는 데 저희가 한몫한 것 같지 않아요?

포기가 빠른 편이에요?
어떤 작품을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이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도 ‘아, 그건 그 사람 거였나 보다. 또 내가 할 게 있겠지’ 하며 속상해하지 않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안 된 건 잘 잊어버리니까요. 그래서 걱정하지 않았어요. 작년에 드라마를 했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거든요. 하하.

<힐링 캠프> 덕분에 작년의 마지막은 ‘연기 대상’이 아니라 ‘연예 대상’에서 볼 수 있었어요. 정말 즐기는 것처럼 보이던데요?
왜 이렇게 연예 대상이 편하고 좋은지 모르겠어요. 연기 대상은 뭔가 불편하고 어색한 게 있거든요. 그런데 연예 대상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돼요. 진정한 축제 같아요.

배우 인생 최초로 ‘고정 프로’가 생긴 셈인데, 어때요?
마치 처음으로 직장에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가끔은 한 달이고 두달이고 저만을 위한 시간을 내고 싶은데 1주일에 한 번씩 녹화가 있고, 스케줄도 게스트에게 맞추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그래요. 아, 내가 힐링이 필요한데….

하하. 궁금했어요. 한혜진의 힐링은 누가 해줄까 하고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걸 계속 끌고 나가는 게 배우로서 옳은 일일까? 계속 고민이 되죠. 제 직업은 연기잖아요. 연기만 하는 게 맞는 걸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노출이 되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거든요. 진행자로서의 밝은 모습과 작품의 모습이 너무 차이 나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까 걱정되고요.

그래서 그 답을 찾았어요?
아뇨, 여전히 모르겠어요. 어쨌든 <힐링 캠프>를 통해서 제가 얻어가는 것이 여전히 많다는 걸 알아요. 게스트를 통해서도 배우고, 저희 팀에서도 배우고요. 특히 이경규 선배님이 정말 잘해주세요. ‘선배님~’ 하고 제가 딸처럼 적극적으로 대하면 마음을 활짝 여세요. 저뿐만 아니라 힐링팀 모두를 열정적으로 챙겨주세요.

이름만 ‘힐링’이지 녹화 과정은 아주 힘들다던데….
완전 체력전이에요! 한번 녹화하면 열두 시간씩 촬영하기도 하니까요. 졸릴 때도 있어요. 나중에 보면 제 눈도 많이 풀려 있어요. 제가 눈 밑 ‘애교살’이 없거든요. 나중에 방송 보면 눈이 이렇게 축 내려가 있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솔직한 분들이 나오면 녹화가 재미있어서 괜찮아요. 솔직한 분들이 나올 때 반응도 가장 좋아요.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솔직한 게스트는 누구예요?
효리 씨! 편집된 분량이 아까울 정도로 녹화 내내 재미있었어요. 반응도 정말 좋았고요. 차인표 선배님도 최고의 게스트였어요. 이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구나 싶었어요. 제 생각에는 차인표 선배님 편이 <힐링 캠프>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만약 당신이 게스트가 된다면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본 적 있어요?
생각해봤죠. 나는 100% 솔직할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더라고요. 하지만 엄청 긴장할 건 분명해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모든 게스트들이 초긴장 상태예요.

늘 인터뷰이의 입장이었다가 인터뷰어의 입장이 되어보니 어때요?
이제는 인터뷰어가 더 편해졌어요!

기자들 사이에서 당신은 ‘착한 인터뷰이’로 통했는데요.
진짜요? 정말 궁금해요! 다른 분들은 인터뷰할 때 어느 정도로 어떻게 대답하는지 말예요.

질문하는 것도 어렵죠? <힐링 캠프>에서 ‘돌직구’를 맡고 있는 건 어때요?
질문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눈치를 봐요. 이 질문을 지금 하는게 맞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궁금한 걸 대신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또 유일한 여자니까 그 입장에서도 해봐야겠고요. 이게 제 역할이다 하고 해요.

게스트에게 물어보고 나중에 후회한 적도 있어요?
너무 많아요. 잘못된 질문 하나로 마음이 닫히잖아요. 그럼 다시 마음을 열게 하기까지 오래 걸리거든요. 특히 배우들이 마음을 가장 나중에 여는 것 같아요. 확실히 더 예민하고 감성적이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게스트 중 제일 어려운 게 배우고, 그러면서도 가장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것도 배우예요.

화이트 톱은 쟈뎅 드 슈에뜨. 롱 스커트는 케이수 바이 김연주. 슈즈는 슈즈 원(Shoes One). 톱은 펜디(Fendi). 롱 스커트는 드민(Demin).반지는 바네사 아리자가 바이 반자크(Venessa Arizagaby BbanZZac). 뱅글은 미샤(Michaa). 슈즈는 슈즈원.

<26년>은 여러모로 당신에게 각별한 영화인 것 같아요. 시사회 때도 그 설렘이나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관객들이 제작 두레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26년>만 생각하면 정말 짠해요. 그래서 저로 인해 영화가 잘됐다는 생각은 정말 요만큼도 안 들어요. 처음부터 ‘아 영화 정말 잘되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뿐이었어요. 영화에 참여한 모든 분이 안쓰러웠고, 또 자랑스러웠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돈도 좀 벌었으면 좋겠고, 최소한 이것을 했다는 것에 있어서 뿌듯함을 느꼈으면 했어요. 최종적으로 295만 명이 들었거든요. 정말 다행이에요.

워낙 저예산이라 현장이 힘들었다면서요? 게다가 유일한 여배우였잖아요.
스태프들이 너무너무 힘들었지 그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죠. 오히려 이 영화를 찍으면서 현장이 되게 행복한 곳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 전까지 제게 현장은 전쟁터였거든요. 항상 긴장하곤 했었는데 <26년>을 할 때에는 늘 현장에 가고 싶었어요.

<26년>은 소속사에서는 말렸는데, 워낙 강하게 마음먹었다면서요.
제가 좀 고집이 세요. 한번 이렇게 하겠다고 생각한 건 좀처럼 안 꺾는 걸 회사도 알아요. 그리고 저희 대표님이 배우가 하고 싶다는 것에는 마음이 약하시거든요. “그럼 하게 해야지” 하시더라고요. 뭐든 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거잖아요.

조근현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땐 긴장감이 대단했다는데 정말이에요?
지난 7월이었는데, 정작 감독님께서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저는 ‘아, 나 이거 해야 하는데’ 생각했고, 감독님께선 ‘아, 쟤를 어떻게 잡지’ 생각하셨대요. 초반에는 저를 당돌하게 보셔서, 많이 꺾어놓으려고 하셨대요. 그런데 사실 저는 작품을 하면 감독님께 굉장히 의지하는, 순종적인 배우거든요. 영화에서 감독님과 대본 연습을 가장 많이 한 것도 저였어요. 나중에 감독님 인터뷰를 보니까 저더러 ‘완전 순둥이’라고 하셨더라고요. <26년>은 모든 배우가 알고 보면 다 순둥이였어요.

당신이 처음 생각한 대로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많이 달라졌죠. 제가 생각한 미진은 그렇게 겉으로 당찬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제 목소리가 원래 저음이에요. 그리고 대사도 차분하게 천천히 했는데 감독님 생각은 달랐어요. 안 그래도 심각한데, 미진도 그러면 극이 더 처질 거라고요. 말도 툭툭툭 빨리 하고, 목소리도 좀 높고 빠르게 내고, 말투도 당돌하게 바꿨죠. 처음 생각했던 건 그게 아니니까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감독님 생각이 옳았어요.

상대 배우였던 진구와 연기 호흡이 좋던데요?
그렇죠? 제가 진구 오빠에게 나중에 우리 꼭 멜로 한번 하자고 했어요. 호흡이 잘 맞았어요. 오빠도 ‘순둥이’예요. 마초처럼 구는데 연기할 때도 다 제게 맞춰서 해요. 역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그 사투리 연습이며… 제가 만난 최고의 파트너예요.

당근과 채찍 중에서 어떤 게 당신을 달리게 만들어요?
저는 완전히 당근이 필요한 타입이에요. 질책받으면 소심해져서 하던 것도 못해요. 감독님이 그걸 잘 아셨나봐요. 진구 오빠에게는 칭찬 한마디 안 하셨대요. 하지만 저랑 슬옹에게는 칭찬만 해주셨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진심으로 칭찬을 하기 시작하셨죠.

작년 말,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잖아요.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상실이고 슬픔이니까요.
문득문득 슬퍼요. 문득문득 슬픈 게 또 슬퍼요. 계속 슬퍼야 되는데. 밥 너무 잘 먹고, 할 거 다하면서 평상시처럼 웃기도 하면서 사는 거예요.

가끔은 실감이 나지 않을 때도 있죠?
아빠가 아직 병원에 계신 것 같다가도 아빠가 앉아 있던 의자나 쓰던 물건을 보면 갑자기 눈물이 막 흘러요. 여기, 가슴속에서부터 울음이 와락 나와요. 이렇게 슬프다가 점점 괜찮아지는 그 시간이 길어지겠지 싶어요. 그럼에도 이 감정이 나중에 제 연기에 도움이 참 많이 되겠다는 잔인한 생각도 떠오르고요.

사람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숙명이니까요.
인생에 대해, 가족과 제 자신과 제 직업에 대해 정말 많은 걸 생각했어요. 빈소에 찾아오는 고마운 분들도 많았고, 장지에서 상복을 입고 있는 저를 보고도 반가워하며 사인을 해달라는 분도 있었고요. 그런 것을 보면서, 이게 내 삶이라는 걸 알았어요. 많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제가 아버지를 떠나보낸 게 뉴스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거든요. 가족끼리 ‘우리 아빠 유명해졌네. 아빠가 좋아하시겠다…’ 그런 이야길 하기도 했죠.

큰일을 겪으면 깊어진다고 하는 게, 상실에 대한 유일한 좋은 점일지도 몰라요.
생각지도 못했던 분들이 빈소로 와주시는 걸 보면서 정말 감동받았어요. 잘 살아야겠다고, 제가 누군가 기쁠 때 함께하는 것은 물론, 슬플 때도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거예요. “정말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앞으로 정말 잘 살아야겠지 않아? ” 가족이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큰일 치렀다고, 큰일을 치른 거라고 다들 그렇게 말하곤 하잖아요.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