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의 배우들을 떠올려보자. 이종석의 연기, 얼굴, 캐릭터와 겹치거나 비교할 대상이 있었던가?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이종석이 마우이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린트 셔츠는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팬츠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손목시계는 스와치(Swatch).

프린트 셔츠는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팬츠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손목시계는 스와치(Swatch). 

마우이에서의 화보 촬영은 처음이죠? 
네. 하와이도 처음이에요. 엄청난 바람도 맞고 모래에 드러눕기도 하고 촬영이 좀 버라이어티했죠. 하하. 근데 마우이 오는 길은 좀 힘들었어요. 엉덩이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작품을 쉼 없이 이어왔으니 휴식은 꽤 오랜만이겠네요.
시차 때문에 계속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가져온 시나리오를 세 번이나 읽었어요. 그러고 나서 야외 선베드에 누웠는데 참 좋더라고요. 오랜만의 휴식이라 뭘 하면서 쉬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와이에 오면 하고 싶은 건 없었나요? 
어딜 가도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그래도 여기 왔으니까 유명한 음식은 먹어봐야지, 어디는 가봐야지 그 정도예요. 그런데 그것도 의무감이지 사실 귀찮아요. 런던에 갔을 때 처음으로 관광이라는 걸 해봤어요. 이것저것 보러 다녔는데 그것도 나름 재미있더라고요.

즐길 게 많은 나이인데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은 좀 안쓰러워요. 
데뷔 이후로 계속 일을 하다가 막상 쉬니까 할 게 없었어요. 2주 넘게 집에만 있다가 얼마 전부터 승마와 클라이밍을 시작했어요. 운동밖에 할 게 없더라고요. 클라이밍은 예전에 맥주 광고 찍을 때 배운 적이 있고, 승마는 언젠가 말 타는 연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배워놓는 거예요.

 

1 티셔츠는 H&M. 팬츠는 일레븐티(Eleventy). 선글라스는 오클리(Oakley). 슬립온 슈즈는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 2 재킷은 토즈(Tod’s). 프린트 티셔츠는 일레븐파리(Eleven Paris). 화이트 팬츠는 노앙(Nohant). 샌들은 프라다(Prada).

티셔츠는 H&M. 팬츠는 일레븐티(Eleventy). 선글라스는 오클리(Oakley). 슬립온 슈즈는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 2 재킷은 토즈(Tod’s). 프린트 티셔츠는 일레븐파리(Eleven Paris). 화이트 팬츠는 노앙(Nohant). 샌들은 프라다(Prada)

 

집에서 하는 유일한 취미생활은 텔레비전 시청이라고 했잖아요. 취미생활이 모두 연기와 연결되어 있네요. 
예전에는 드라마, 영화만 봤는데 요즘은 배우들 연기하는 걸 보면 촬영 현장이 그려지고 그 배역에 저를 대입하게 되어서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주로 예능 프로그램을 봐요. 

당신의 지난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인생을 더 즐겼으면, 그리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인기를 모으면서 갑작스레 큰 관심을 받으니까 다음 작품을 할 때는 부담감이 엄청났어요. 원래 걱정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연기를 하면서 좀 나아졌는데 연차가 쌓일수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신인 때는 오디션 보러 가서 자신감 있게 하곤 했는데 지금은 더 긴장돼요. 일 하는데 있어서 만큼은 ‘쪽 팔리지 말자’고 늘 생각해요.

간절히 원하던 자리에 올라가면 걱정 없을 것 같지만 또 다른 걱정이 생겨나기 마련이죠. 
사실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은 없어요. 그때그때 시기마다 새로운 고민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밖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보는 건 어때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친구가 없어요.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은 잘 안 만나게 되요. 작품을 많이 해서 아는 사람은 많은데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좀처럼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가 선배님들을 참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잘 못해요. 실례가 될까 봐 안 하는 것도 있고, 통화를 하다가 정적이 흐르는 걸 ‘마 뜬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불편해요. 통화를 하면서 다음 말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잘 안 하게 되요. 집에서 소속사 대표님, 실장님하고 일 이야기를 할 때도 문자로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외롭지 않아요?
외로워요. 괴로울 정도로 외로워요. 그렇지만 이게 익숙해요. 집에 있다가 너무 지치면 나가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그냥 드라이브를 하거나 피시방에 가요. 혼자 있어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곳이 피시방이거든요. 신인 때는 일이 없어서 시간 때우러 자주 들렀었죠. 거기 가면 예전 생각이 나요. 

 

스냅백은 레이서 헤드웨어(Lacer Headwear). 티셔츠는 클럽모나코(Club Monaco). 팬츠는 폴 스미스(Paul Smith). 샌들은 르꼬끄 스포르티브.

스냅백은 레이서 헤드웨어(Lacer Headwear). 티셔츠는 클럽모나코(Club Monaco). 팬츠는 폴 스미스(Paul Smith). 샌들은 르꼬끄 스포르티브.

늘 웃고 있어요. 외롭다고 이야기하는 이 순간에도요. 
부족한 사회성을 웃는 얼굴로 극복한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 저와 작품을 한 사람들은 제가 애교가 많다고 해요. 처음에는 ‘정말? 내가 애교가 있나?’ 싶었는데 사회생활을 위한 방법을 저도 모르게 터득한 것 같아요.

작품을 할 때는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럼에도 이렇게 쉬는 방법을 잊을 만큼 쉬지 않고 일하는 이유가 뭔가요? 
촬영할 때는 정말 턱까지 숨이 차서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해요. 잠을 못 자서 몸이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방송을 보면 이상한 쾌감을 느껴요. 이종석의 삶은 무기력하고 한심한데 극중 인물은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요.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아요. 

또래 배우들에 비해 눈에 띄는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어요. 
요즘 제가 했던 작품들을 계속 보고 있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부터 <닥터 이방인> <피노키오>를 보는데 연기가 변하는 것도, 얼굴이 변하는 것도 보이더라고요. <닥터 이방인> 할 때는 ‘내용이 왜 이렇게 전개되지?’, ‘인물이 왜 이렇게 움직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되게 재미있었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영화 <노브레싱>과 같이 찍어서 정신이 없었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잘했다 싶어요. 단순히 판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전달하는 메시지도 확실했고요. <피노키오>도 그렇고 참 좋은 작품들만 했구나 싶어요.

작품을 고르는 안목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제가 드라마 ‘덕후’예요. 게다가 제 취향이 지극히 대중적이라 남들이 재미있어 하는 건 저도 재미있게 봐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작품을 대중들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실 해외 영화제에서 극찬한 작품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잖아요. 왜 재미있다고 하는지 이해 불가능한 작품도 꽤 있어요. 하하. 

그런 기준 안에서도 새로운 캐릭터를 찾고 도전하는 게 보여요. 
제 기준에서 재미있는 걸 찾되 안전한 걸 찾지는 않아요. 배우들의 공백이 길어지는 이유 중에 현재 가지고 있는 걸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이것저것 재다가 지나가버리면 그 시간은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럴 바엔 작품으로 남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1 스웨터와 팬츠는 모두 우영미(Wooyoungmi). 스니커즈는 르꼬끄 스포르티브. 2 셔츠와 팬츠는 러브 모스키노(Love Moschino). 플라워 패턴 손목시계는 스와치. 3 셔츠는 알레그리(Allegri). 팬츠는 펜필드(Penfield). 샌들은 프라다. 선글라스는 오클리.

스웨터와 팬츠는 모두 우영미(Wooyoungmi). 스니커즈는 르꼬끄 스포르티브. 셔츠와 팬츠는 러브 모스키노(Love Moschino). 플라워 패턴 손목시계는 스와치. 셔츠는 알레그리(Allegri). 팬츠는 펜필드(Penfield). 샌들은 프라다. 선글라스는 오클리.

예능 프로그램을 멀리하는 이유가 있나요? 
<힐링캠프>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거기 나가면 인생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젊은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할 이야기도 없고 시청자들에게도 실례가 될 것 같아 거절했어요. 그런데 팬들은 작품 외에는 저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거 같아요. 뭔가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은 느끼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맞아요. 예전에 미투데이를 했는데, 저도 모르게 푸념을 하게 되더라고요. 과장해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그런데 또 팬들이 제 소식을 궁금해하니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간간이 인스타그램으로 생존 신고 정도만 하고 있어요.  

투 톱으로 연기하고 싶은 남자배우가 있나요?
선이 굵은 배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학교 2013>에서는 멜로가 없었는데 우빈이와 함께 ‘브로맨스’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유는 그가 남자다운 느낌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제게는 여성성이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아직도 신인 배우들과 연기수업 받고 있나요? 
똑같은 대본을 갖고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걸 볼 기회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해석하는 방법, 톤이나 억양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내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연기수업을 받으면서 재충전이 되더라고요. 

해보니 어떻던가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배우를 꿈꾸며 선생님께 혼나면서 배우던 시절이요. 신인 때와 같은 선생님께 배웠는데 선생님은 그때와 변함없이 대해줬어요. 함께 있던 신인 배우들의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저를 보는 눈빛이 좀 무섭긴 했죠.

 

티셔츠는 버버리 프로섬. 팬츠는 엠비오(Mvio). 선글라스는 오클리.

티셔츠는 버버리 프로섬. 팬츠는 엠비오(Mvio). 선글라스는 오클리.}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용기 있고 적극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해야 하는 일, 그러니까 연기에 있어서는 그래요. 그렇지만 이것 외에는 수동적이에요. 

쌓인 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풀 데가 없으니 속병이 드는 것 같긴 해요. 연기를 하면서 없었던 증상들이 생겨요. 예를 들면 요즘 얼굴이 되게 잘 빨개져요. 감정이 변할 때마다 빨개져요. 이게 연기할 때는 너무 괴로워요. 신인 때도 안 그랬는데 왜 이러나 싶어요.  

미소년의 이미지를 벗는 것도 배우 이종석에게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하나의 과제겠죠?
예전에는 빨리 서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얼굴로는 할 수 있는 배역의 폭이 좁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그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곱게 나이 들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아닌 배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젊고 하얗고 주름도 없으니 미소년 이미지가 있지만 나이 들었을 때 진짜 연기를 잘하지 않는다면 잊혀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의 목표는 뭔가요? 
누군가에게 제 이름을 말했을 때 ‘그 사람, 배우지’라고 생각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런 배우들 있잖아요. 그 사람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보고 싶은,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팬들에게는 항상 이렇게 말해요. ‘오빠 사고 안 칠게’.

팬들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배우네요. 
아침마다 제 이름을 검색해봐요. 그날 제 기사가 안 올라오면 참 좋아요. 작품에 대한 기사가 뜨는 건 괜찮지만 개인적인 기사가 뜨는 건 정말 싫어요. 하와이에 와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몇 장 올렸어요. 배경을 찍은 것도 아닌데 이미 팬들은 어딘지 알고 있더라고요. 다른 연예인들 보면 해외 나가서 화보 찍는 모습도 올려놓잖아요. “해외 나가서 화보 찍고 돈도 벌고 좋겠다.” 그런 말을 듣는 게 싫어서 전 안 올려요.

그런 말에는 이제 좀 무뎌질 때도 되지 않았나요?
상처를 받긴 하는데 또 금방 잊어버려요. 그렇지만 밑도 끝도 없는 말들은 싫어요. 사실, 되도록이면 눈에 안 띄고 그저 작품만 하고 싶어요. 팬들에게만 가끔씩 얼굴 보여주고 기사는 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배우이지만 눈에 띄는 걸 싫어하고 인스타그램은 하지만 그걸로 기사 나는 건 싫어하고. 제가 생각해도 저는 참 모순 덩어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