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불리는 <안나 카레니나>. 이 영화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한 키이라 나이틀리는, 그 캐릭터만큼이나 복잡미묘했다. 이제 막 스물여덟살이 된 키이라 나이틀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실크 재킷과 팬츠는톰 포드(Tom Ford).

실크 재킷과 팬츠는
톰 포드(Tom Ford).

어머니는 늘 제게 ‘축복받은 불완전함’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어요.” 키이라 나이틀리가 말했다. “결점, 혹은 결점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보는 방식말이에요. 사람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건 바로 그 결점 덕분일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하는 게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이 놀라운 여배우가 가진 이중성을 깨달았다. 짙은 눈, 사랑스러운 긴 목을 가지고 있으며 훌륭한 연기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여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눈앞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결점이 동시에 커다랗게 확대되는 스크린이 그녀에게 늘 친절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슈팅 라이크 베컴(Bend It Like Beckham)>의 매력적인 축구 선수는 키이라 나이틀리를 스타로 만들어주었고, 21세에 만난 <캐리비안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 시리즈는 그녀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었다. 관객은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감독들이 관객과 의견을 같이하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 당시에도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배우라는 직업의 가혹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연기라는 기회는 오늘 주어졌다고 내일도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매우 작아요. 그 자리가 없어지면 무엇이든 하는 수밖에 없어요. 다시 찾아올 확률은 너무 적으니까요. 관객들은, 대중들은 너그럽지 않아요.” 그녀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한번 더 힘을 주어 말했다.“ 사람들은 너그럽지 않아요. 물론 그게공평한 거지만요.” 너그럽지 않은 수많은 대중 앞에 서게 된 또 다른 열정적인 여자가 있다. 바로 어둡고 격렬한 안나 카레니나다. 역사극에 많이 출연한다는 걸 차치하더라도, 그 역에 그녀가 캐스팅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톨스토이가 창조해낸 19세기의 안나 카레니나는 세상의 규칙을 위반했다. 지루하지만 고명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어린 아들을 버리고 브론스키 백작과의 불륜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브론스키 백작은 젊고 잘생겼지만 세상에 노련한 여성이라면 무시하고 넘겼을 법한 하찮은 상대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영화 촬영을 하며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에 대해 종종 감독과 의견을 달리했다고 털어놓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에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브론스키에게 느끼는 섹스와 열정의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것도 그래요. 그래서 안나를 파악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녀가 빠져든 건 그저 쾌락일 뿐이에요. 하지만 안나는 그때까지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고, 그런 로맨스를 경험하지 못했고, 그런 섹스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여겼던 거죠.” 그것은 쉽게 소모되는 사랑이지만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우리 모두 원하고 갈구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최근 약혼을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치곤 꽤 흥미로운 얘기였다. 과묵한 것으로도 유명했던 그녀가 갑자기 세상사를 통달하기라도 한 걸까?“ 제가 이런 말을 하다니 참 재미있죠? 어쩌면 요즘 좀 긴장을 풀고 있는지도 모르죠.”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단순한 디자인의 약혼 반지가 손가락에서 반짝이고 있는 게 보였다. 록밴드 클락손스(Klaxons)의 멤버 제임스 라이턴(James Righton)이 끼워준 반지다. 그녀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할 예정이라면서요? <얼루어>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 “웨딩드레스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어요. 그 소문은 완전히 거짓이에요! 결혼 계획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언제가 됐든 결혼식을 올릴 그때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모르겠어요. 영원히 약혼만 하는 건 어떨까요?” 어쨌든 그녀는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할동반자를 찾는 위대한 행운을 거머쥐었다. “우린 완전히 반대예요. 그에게 음악은 인생의 전부이지만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약혼자의 직업을 퍼즐이나 외국어에 비유했다. “내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는 영화관이나 극장에는 잘 가지도 않아요.” 그녀는 평생 연기 이외의 직업은 꿈꿔본 적이 없다. 3세 때에 매니저를 구해달라고 떼를 쓸 정도였다. 배우와 극작가였던 부모님이 모두 매니저가 있었고, 전화 통화를 자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6세 때에 매니저를 달라는 그 꿈을 이뤘다! 16세 때 <더 홀(The Hole)>에 출연했고, 곧이어 영국 TV에서 제작한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에서 라라를 연기했다. <슈팅 라이크 베컴>과 <캐리비안의 해적>이 뒤를 이었다. “돌아보면직감이 늘 옳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직감에 의존한 건 기술적인 부분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더 재킷(The Jacket)>의 오디션을 봤을 때,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 <슈팅 라이크 베컴>만 알고 있던 존 메이버리 (John Maybury) 감독은 망설였다. 그는 나중에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키이라에게 말했죠. ‘나는 이 영화에 당신을 캐스팅하고 싶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내게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내가 당신을 왜 캐스팅해야할까?’ 그녀는 이렇게 답했어요. ‘지금 이 작품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20년 동안 코르셋만 입어야 할 거예요’”.

그녀는 메이버리 감독 앞에서 대본을 읽었고, 마침내 역을 따냈다. 하지만 성공에 마땅히 따르는 그림자도 경험하게 되었다. “여배우들이 옷을 벗고 있거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찍은 파파라치 사진의 가격이 치솟았어요.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이 거칠고 때로는 폭력적이죠. 20명이 한꺼번에 내게 소리를 지르고, 침을 뱉고, 함께 있는 남자에게 싸움을 걸었어요. 오로지 자극적인 사진을 찍어 돈을 벌기 위해서요.” 그녀가 이어 말한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정말 심했던 때도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법으로 대응했고 나는 그냥 도망갔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The Duchess)> 촬영을 끝낸 2007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벽에 부딪혔다는 걸, 배워야 하는 것들을 위해서는 한 걸음 물러서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곧바로 짐을 싸 기차를 타고 9개월간 유럽을 여행했다. 여행 기간 동안 뭘 했을까? 그녀는 이렇게만 답했다. “창문 밖을 내다보고 책을 많이 읽었죠.”

파파라치와의 전쟁과 함께 황색 저널리즘과도 싸워야 했다. 영국의 한 신문사는 거식증과 싸우다 죽음에 이른 어린 소녀의 얘기를 다룬 기사에 그녀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그녀는 신문사를 고소했고, 그들은 결국 키이라 나이틀리가 소녀의 죽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거식증 사건은 언제까지나 충격으로 남을 거예요. ‘어쩌면 정말 나 때문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기 때문이죠. 나는 내가 거식증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쩌면 내 몸은 어딘가 잘못됐는지도 몰라요. 얼굴이 잘못됐던지요. 또는 내가 말하는 방법이요. 그런 식으로 나에 대한 많은 비판을 받다 보면 ‘어쩌면 내가 뭘 잘못했나봐’라는 생각이 들죠. 그리고 무조건 숨고만 싶어지거든요.”

팬츠는 톰 포드.

팬츠는 톰 포드.

그녀의 몸은 언제나 찬사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언론의 터무니없는 조롱을 받아온 몸이기도 하고,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형되기도 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이 주제에 있어서 언제나 유머로 일관한다. “영화 포스터 속 내 모습 위에 커다란 가슴을 그려 넣는사람도 있었어요. 내가 정말로 화가 났을 때는 단 한번, <킹 아더(King Arthur)> 포스터에서 후반 작업으로 완전히 축 처진 가슴으로 만들어놨을 때뿐이었어요. 깜짝 놀랐어요. 얼굴은 내 얼굴인데 몸은 뭐죠? 나는 아예 처지고 말고 할 가슴 자체가 없어요! 가슴을 만들 거라면 적어도 봉긋하게 그려주지, 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제 가슴이 작아도 괜찮아요. 정말로.” 그 모든 문제 속에서도 그녀는 배우를 그만두지 않았다. “언제나 내 안에서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었어요.”

2008년에는 <어톤먼트(Atonement)>가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불안하지만 매력적인 세실리아를 완벽하게 연기한 감동적인 작품이다. 감독 조 라이트(Joe Wright)도 “굉장히 용감하고 매혹적인 연기”라는 찬사를 표했다. 영화 속에서 많은 관객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 장면은 머메이드 라인의 아름다운 녹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벽에 기대어 제임스 맥어보이(James McAvoy)가 연기한 가정부의 아들과 적막에 가까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섹스가 고급스러운 화려함으로 빛나는, 영화사에서도 극히 드문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배우에게 있어 몸은 여러 도구 중 하나예요. 나는 페미니스트지만 내 자신을 분명하게 상품화 할 수 있어요. 그건 페미니스트의 원칙과 완전히모순되지만요. 또 여배우는 남자보다 더 많이 스스로를 상품화하게 되죠.”

<안나 카레니나>를 보는 관객은 그녀 덕분에 섹스 신이 크게 진화했음을 느낄 것이다. 브론스키 백작 역을 맡은 애런 테일러-존슨(Aaron Taylor-Johnson)의 누드는 영화의 러브 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안나의 몸은 침대보에 신중하게 가려져 있으니까.“ 나는 영화의 섹스 신과 노출의 선에 엄격한 편이거든요. 영화계에서 여배우는 항상 모든 걸 드러내야 하고 남자 배우는 그렇지 않죠. 전 하반신 노출은 절대 하지 않아요. 가슴은 어차피 작기 때문에 신경 안 써요. 사람들이 그다지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하하하!” 쾌활한 웃음이 이 발언에 동반되었다. 하지만 이 떠들썩함 아래에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모든 걸 떠나 자신이 더 이상 다들 이렇게 하니까 더, 더 섹시하게 옷을 입어야 한다고 느끼는 순진한 청춘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시절은 지났다. “점점 그냥 있는 그대로가 단순하다는 걸 깨닫죠. ‘네’ 그리고 ‘아니요’를 말하는 게더 쉬워지고요.” 그녀가 내린 결론이다.

아름다운 인생과 풍성한 필모그래피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대부분 성공적이었다고 말한다. “일과 관련되어 내가 경험한 행운은 정말 많아요! 함께 일한 사람들과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게 된 것 등 말이죠. 완전하게, 너무나 특별하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운이 좋아요. 하지만…” .그녀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무례하거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비춰질까 걱정하는 걸까? 그녀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하지만’은 없어요. 그게 제 얘기의 끝이에요. ‘하지만’은 취소할게요.” 하지만, 그녀가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배우라는 직업은 여자에게 잔인하다. 그녀도 나이가 들수록 배역과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저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능숙하니까요.” 그녀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사실은 아직 스물 여덟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10년 후에 다시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