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의 성장통을 뚫고 나온 이장우는 확실히 더 단단해져 있었다. 시종일관 특유의 낙천적인 얼굴을 보이다가도 배우의 역할과 자세를 이야기할 때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간절하고 강렬하며 담대한 그의 눈빛에서 배우 이장우가 앞으로 만들어낼 경이로운 시간을 확신했다.

셔츠는 준지(June. J). 팬츠는 디그낙(D.Gnak). 슈즈는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안경은 장 마릴(Jean Maryll).

셔츠는 준지(June. J). 팬츠는 디그낙(D.Gnak). 슈즈는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안경은 장 마릴(Jean Maryll).

<아이두 아이두>가 끝났어요. 첫 번째 주연작품인 만큼 처음의 기대도, 끝나고 난 뒤의 아쉬움도 예전 같지는 않았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드라마에 기대를 정말 많이 했어요. 김선아라는 여배우의 상대역이고, 좋은 대본이 있고 훌륭한 스태프가 모였으니 당연히 인기도 많고 시청률도 잘 나올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4회쯤에 확 무너졌던 시간이 있었어요. 바로 마음을 다잡긴 했지만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선아 누나가 큰 힘이 되어줬어요. 누나와 함께한 남자 배우들이 다 잘됐잖아요. 상대 배우가 잘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누나는 그런 게 없어요. 자신보다 작품이 먼저고, 함께하는 스태프가 먼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항상 저를 배려해주고 이끌어줬어요.

결과적으로는 한 단계 성장한 당신이 느껴지네요.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평생 연기를 할 거고, 앞으로 정말 많은 작품을 하게 될 거고, 그중 한 작품일 뿐인데 처음에는 조급했어요. 과한 욕심을 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이 많이 들어오고 있겠네요. 딱 지금 나이에 욕심나는 역할이 있다면요?
<시크릿 가든>의 현빈 선배처럼 멋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역할이 배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요. 찌질한 역할을 많이 했더니, 저도 왠지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인디밴드나 아이돌 가수를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를 꽤 오랫동안 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분명 염려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걱정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드라마를 보는 분들이 감정이입이 어려울 수도 있고 <우결>의 저와 혼동할 수도 있고 그 때문에 배역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어떤 도움을 말하는 건가요?
먼저 대중에게 저의 이름을 알려준 프로그램이에요. 이장우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죠. 또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에서 노는 법을 배웠어요. 촬영때마다 약 20대의 카메라가 저희를 따라다녀요. 그 앞에서 밥도 먹고 요리도 하고 심지어 키스도 하는 거잖아요. 덕분에 카메라와 많이 친해졌고 드라마와는 또 다른 예능의 맛을 알았어요.

<우결>을 찍다 보면 연애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지 않나요? 일종의 대리 만족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아니요. 오히려 더 하고 싶어져요. 물론 가상이지만 연애가 아닌 결혼을 한 것 같아요. 1년 넘게 하다 보니 서로 짜증을 내기도 하고, 진짜로 싸우기도 해요. 서로 챙겨주기를 바라고 권태기도 경험했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풋풋한 연애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결혼도 하고 싶어졌어요. 촬영 끝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갔을 때 혼자라는 느낌이 싫더라고요.

결혼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우결>이 꽤 도움이 될 것 같네요.
한번 해봤으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저랑 잘 맞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어디 얽매이지 않고 훌쩍 떠나는 거 좋아하고, 맛있는 거 먹는걸 좋아하는 그런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어요.

<뮤직뱅크>에서는 생방송으로 MC도 맡고 있어요. 배우로서 또 다른 도전이었겠죠?
<뮤직뱅크>가 드라마를 촬영할 때의 제 활력소였어요. 그곳에 가면 열정적인 어린 가수들을 만나게 되죠. 무대 위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노래하고 춤추는 걸 보면 저도 덩달아 힘을 얻게 되요. 지치고 힘들 때 그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할까,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게 되요.

 

재킷과 셔츠, 모자는 모두 디그낙. 슈즈는 준지, 보타이는 김서룡 옴므.

재킷과 셔츠, 모자는 모두 디그낙. 슈즈는 준지, 보타이는 김서룡 옴므.

경험을 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요즘 관심있게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정글의 법칙>에 꼭 한번 나가보고 싶어요. 살면서 언제 그런 오지에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해보겠어요. TV 프로그램에서 보내주고 평생 소장할 수 있도록 영상으로 남겨주니 얼마나 좋아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캠핑 마니아답네요. 요즘에도 자주 다니나요?
드라마 끝나고 벌써 몇 번 다녀왔어요. 용인에 있는 캠핑장에 아예 월세를 내고 텐트를 쳐놨어요.

캠핑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산에서 자는 게 좋아서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건강한 기운이 느껴져요. 뭔가 정화되는 느낌도 들고요. 산속에 들어가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는 게 참 신기해요. 캠핑가서 경치 보면서 한량처럼 가만히,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

캠핑을 가면 각자의 역할이라는 게 있잖아요. 당신이 담당하고 있는건 뭔가요?
제가 고기를 기막히게 잘 구워요. 캠핑 가서 먹으면 어떤 고기든 다 맛있지만 제가 구우면 고기 맛이 어마어마해지죠. 숯도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종류의 숯을 다 써봤는데 참숯이 최고예요. 참숯에다 고기를 구워주면 다들 그 고기맛을 못 잊어요.

캠핑도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어떤 방식을 즐기나요?
스무 살부터 시작했는데 계속 바뀌고 있어요. 처음에는 오토캠핑으로 시작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고, 그 다음엔 오지캠핑이라고 해서 차가 못 올라가는 힘든 곳으로만 다녔어요. 캠핑장이 아닌 산속 깊은 곳에 가서 텐트를 치는 거죠. 처음에는 스릴도 있고 재미있었는데 좀 무섭더라고요. 곰이나 뱀이 나오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캠핑 야영장으로 바꿨어요.

캠핑을 떠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집에 혼자 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술 마시러 나가죠.

술을 좋아해요?
너무 좋아해서 탈이에요. 술 자리나 술 취하는 걸 좋아하기보다 술의 맛을 좋아하는 정도니까요. 어떤 날은 막걸리가 너무 맛있고, 어떤 날은 소주가 맛있고 어떤 날은 사케가 맛있어요.

진정한 애주가네요. 당신의 낙천적인 성격은 연기에 도움이 되겠죠?
낙천적인 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해요. 낙천적인 게 좋긴 한데 ‘내일 해도 돼, 괜찮아’ 하면서 넘겨버리니까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겨요. 배우란 때론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하는데 한 번도 완벽주의자가 되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슈트와 셔츠, 모자는 모두 디그낙. 안경은 톰 포드(Tom Ford).

슈트와 셔츠, 모자는 모두 디그낙. 안경은 톰 포드(Tom Ford).

배우가 자신의 길이라는 걸 확신하나요?
제가 원래 욕심이 없어요. 공부를 못하는 것도 창피해하지 않고 “그래 너 잘하는구나. 네가 해라” 이런 성격인데 연기는 좀 달랐어요. 중학교 때 연기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갔다가 울어버렸어요. 40명이 저를 보고 있는 게 너무 무섭더라고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울면서 뛰쳐나왔고 그런 저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어떤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재미있지만 알면 알수록 어렵고, 못하면 부끄러운 유일한 게 바로 연기예요.

제대로 해보고 싶은 연기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어요?
영화를 세 편씩 빌려서 봤어요.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어떤 표정과 제스처를 만드는지 그런 생각들만 하고 살았어요. 친구들 상대로 거짓말도 하고 연기도 하고 배우들을 따라 하기도 하고요. 특히 최민식 선배님을 많이 흉내 냈는데 대사로도 모자라서 <올드보이>의 호일 파마까지 따라 했어요. 비디오 가게 아저씨가 “너 이제 볼 거 없어”라고 얘기할 정도로 많이 봤죠.

롤 모델로 생각하는 배우가 있나요?
정우성 선배님을 정말 좋아해요. 볼 때마다 자극을 받아요. <비트>를 지금까지 천 번 정도 본 거 같아요. 엑스트라 대사까지 다 외울 정도예요. 그때 그분 나이가 24살이었는데 그 나이에 어떻게 저런 느낌이 날 수 있을까, 하면서 볼 때마다 놀라워하죠.

실제로 만나면 꼭 이야기하세요. 정말 반가워할 것 같은데요?
본 적 있는데 너무 떨려서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는 도망갔어요.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어요?
드라마 끝난 지 2주 정도 됐는데 딱 3일 쉬니까 일하고 싶어졌어요. 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요즘 <아이두 아이두> 재방송을 보고 있는데 열심히 살았던 순간들을 보니까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더라고요. 다른 드라마를 봐도 현장의 모습이 그려지니까 빨리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져요. 물론 빨리 복귀하는 것보다 좋은 작품과 좋은 배역을 만나는게 더 중요하겠죠. 그래서 더 신중하게다음 작품을 보고 있어요.

인터뷰가 끝났고 마침 해도 지고 있으니 한잔하러 가셔야죠. 오늘은 뭐가 맛있을 것 같아요?
비잔 클리어라고 아세요? 일본 소주인데 그걸 토닉워터에 타 마시고 싶어요. 정말 맛있어요. 꼭 드셔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