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의 진짜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안경을 벗기고 한 발짝 다가섰다. 이 남자가 가진 특별함이 그 안 깊숙이 잠겨 있었다.

베스트와 팬츠는 시스템 옴므.슬리브리스 톱은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베스트와 팬츠는 시스템 옴므.
슬리브리스 톱은 돌체앤가바나
(Dolce & Gabbana).

유준상이 안경을 벗었다. 한순간도 안경을 쓰면 안 된다고 했더니, 그게 뭐 어렵겠냐는 듯 그는 안경을 내려놨다. TV라는 대중 매체의 장악력은 그만큼 강렬하다. 지금까지 수없이 안경을 벗은 그의 모습을 봤음에도, 심지어 일주일 전에 그가 안경은 물론 윗옷까지 벗은 <다른 나라에서>를 봤는데도 여전히 안경을 벗은 그의 얼굴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유준상은 그런 아주 재미난 얼굴을 가졌다. 드라마 속에서 그는 모든 여자가 함께 살고 싶어 하는 남자고, 홍상수표 영화를 촬영할 때에는 지리멸렬한 먹물부터 순수해서 눈치 없는 라이프가드를 오가고,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서는 선이 깊고 굵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별다른 디테일을 더하는 것도 아니며 억지로 발성을 바꾸는 것도 아닌데 그는 언제나 새로워 보인다. 카멜레온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배우의 세상에서 그는 한순간도 배우가 아닌 적이 없다. 심지어 다른 촬영장, <얼루어>의 촬영장에서도 그랬다. 골몰해서 연기한 다음에 서운할 정도로 탁 끝냈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게 그의 원칙이라면서 말이다. “영화와 마찬가지예요. 찍은 다음에 미련을 두면 더잘 나온 걸 바랄 거 아니에요? 미련은 끝이 없기 때문에… 난 열심히 했으니까.” 그러곤 다음 말을 재촉했다. “자, 인터뷰 합시다!”

슈트는 앤 드묄미스터(AnnDemeulemeester). 티셔츠는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슈트는 앤 드묄미스터(Ann
Demeulemeester). 티셔츠는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배우의 촬영도 드라마 같아요. 사진가의 카메라라는 것만 다를 뿐이죠. 매 컷마다 당신은 어떤 생각에 골몰하는 것 같았어요.
연기하는 생각으로 찍어야죠. 사진만 찍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처음에 무슨 생각을 했더라? 소품인 유리잔의 술을 마시고 확 놀라서 잊어버렸네. 이 촬영장에서는 에디터가 감독이잖아요. 감독이 만족하면 나는 된 거예요. 나는 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정말 아무하고도 닮지 않은 것 같아요. 보통은 조금씩 닮은 다른 배우들의 얼굴 조각이 보이는데, 못 찾았어요. 아버지는 닮았겠지만.
아버지와도 안 닮았어요.

그럼 정말 하나밖에 없는 얼굴이네요.
우리 둘째 민돌이랑 닮았죠. 딱 두 명 있는 얼굴입니다.

스스로 배우 하기 좋은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얘기해줬거든요. 자꾸 듣다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대세’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때요?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계속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있을 뿐이죠. 하하. 예전에도 한번 큰 사랑을 받았었잖아요? 그런데 또다시 더 큰 사랑을 받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계속 이렇게 버텨야지, 이렇게 쭉 가야 된다, 하고요.

배우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큰 행운이죠. 특히 어르신들, 아이들, 젊은 친구들 등 다양한 연령대에서 다 사랑받을 수 있는 건 큰 행복이에요.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원래 주말 저녁 드라마는 젊은 분들이 잘 보지 않잖아요. 그런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쿨당>>은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요.

언뜻 듣기에도 올해는 배우 유준상에게 유독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더군요. 드라마는 연장을 결정했고, <다른 나라에서>가 아직 극장에 걸려 있는데 <리턴투베이스>가 곧 개봉을 하죠.
작년에 찍은 영화들이 올해 개봉해요. 세 편 찍었다 그러면 다 놀라요. 그러면 저는 작년에 찍었다고 말하죠. 왜 관심을 안 가져주냐고! <다른 나라에서>는 개봉했고 두 편 남았거든요. 또 한 작품은 <터치>예요. <리턴투베이스>와 달리 작은 작품인데 많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거든요. 배우 인생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터치>는 어떤 영화예요? 도통 소문이 돌지 않네요.
그건 직접 보셔야 될 것 같아요. 어떻게 설명이 안 돼요.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예요. 아주 거칠고, 인간의 양면성도 보이고. 연출자가 잘해요. 저랑 오래된 친구인데 아주 잘한 거 같아요.

최근 인터뷰한 남자 배우들은 공통적으로 감독이 자신에게 늘 비슷한 역할만 요구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더군요.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죠. 정형화된 이미지가 없기 때문일까요?
저는 오히려 20대에 고정적인 캐릭터를 많이 했어요. 점점 다양한 역할이 들어와서 재미있어요.

점점 다양한 캐릭터를 맡게 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공연을 계속 해왔잖아요.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역할만 많이 했을 때도 대신 공연에서는 안 해봤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어요. 뮤지컬엔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죠. 작품은 같아도 공연은 매번 다르고요. 거기서 많은 에너지를 얻지 않았나 해요.

그러고 보니 다음 달에 공연 스케줄도 있군요! <잭 더 리퍼> 말예요. 예전에 당신이 공연하는 <살인마 잭> 버전을 본 적 있어요.
오, 그래요? 그럼 다시 보세요. <살인마 잭>과 <잭 더 리퍼>는 꽤 달라요. 노래도 좀 추가되고, 세트도 좀 변형되고 이야기 자체도 조금 바뀌었어요. 공연은 작년에 잡혀 있던 거예요. 8회 출연해요. 이미 했던 뮤지컬이고,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죠.

이렇게 많은 스케줄을 다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은 무언가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정신 바짝 안 차리면 훅 가니까. 그런데 일할 땐 재미있으니까, 그 재미로 피로는 다 잊어요.

드라마 촬영장과 영화 현장, 공연장에 갈 때 마음가짐이 다른가요?
내 마음은 똑같아요. 단지 공연장 갈 때는 계속 소리지르면서 가고 드라마 촬영장 갈 땐 대본 보면서 가죠. 영화 현장 갈 때는 ‘오늘 어떤 신을 찍지?’ 이런 생각하면서 가고.

지난달 출간한 <행복의 발명>도 잘 읽었습니다. 일기를 쓰는 배우, 그리고 그 일기를 출간하는 배우라뇨. 일기는 충실한 내면의 고백인 셈인데, 배우로서 너무 많은 걸 보여주는 건 아닌가요?
그런 부담은 없었어요. 아주 오래 썼거든요. 지금쯤은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햇수로는 24년 동안 쓴 일기예요.

하지만 글을 쓴 시점은 빠져 있어요. 의도가 궁금해요.
몇 년 몇 월 며칠을 적어놓으면 보는 사람들이 자꾸 그 시점만 생각하게 되니까,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빼버렸어요. 인간은 다 똑같기 때문에 누구나 글을 읽다 보면 ‘꽂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신과 맞아떨어지는 지점 같은 거요. 그런데 시점을 적으면 그걸 방해할 것 같았어요. 지금의 유준상과 대화해줬으면 했어요.

저는 ‘배우는 연기하지 않는 시간이 고통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견딜지 찾는 게 숙제다’라는 부분에 꽂혔어요. 연기하는 시간도 고통이고 아닌 시간도 고통이죠. 이제는 찾았어요?
아니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당신이 가진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이죠?
내가 지금 어떤 걸 보고 영감을 얻고 계속 반복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혹시 소리가 안 나면 어떡하나. 어떡하지? 나와야 하는데. 이러면서 계속 건반처럼 목을 쳐보는 거죠. 아, 나오는구나. 나오면 안심해요. 언젠가 소리가 안 나올 수 있다는 공포가 있죠.

셔츠는 코데즈 뉴욕(Codes New York).베스트는 우영미(Woo Young Mi).

셔츠는 코데즈 뉴욕(Codes New York).
베스트는 우영미(Woo Young Mi).

뮤지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지는데요.
첫 작품이 <그리스>에서의 대니였어요. 그것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소중함이 있어요. 지금처럼 잘됐을 때 시작했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절부터 시작했거든요. 그 시절의 열정과 노력이 항상 기억 나요. 잊지 못하죠. 하지만 요즘은 내가 뮤지컬 배우 출신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지금 뮤지컬 현장은 20년과 많이 달라졌나요?
똑같아요. 똑같지만 그때는 돈도 제대로 못 받았죠. 그때부터 나를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어요. 그런 팬들이 아는 척해줄 땐 기쁘죠.

배우는 건조함과 냉정함을 가져야 한다고 되뇌었는데, 그게 궁금했어요. 배우는 항상 열정적이고 감정표현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너무 많이 표현해서 관객들이 감정 바다에 빠지거나, 아니면 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배우만 감정 바다에 빠져 있거나 그 어느 쪽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내가 저 인물이라면 그렇게 할까? 만약 나라면 그 상황에 그렇게 울었나?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이러면서오히려 나를 더 냉정해지고 침착하게 만들어요. 연기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잖아요.

실제로도 건조하고 냉정한가요?
보시면 아시잖아요. 하하.

그럼 언제 가장 냉정해져요?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

예를 들자면, 시나리오 고를 때?
아뇨, 그런 상황은 아니고 오히려 내가 아주 박수를 많이 받을 때예요. 그 때 나는 가장 냉정해져요. 작품 속에서, 특히 관객들과 만나는 뮤지컬에서 만약 오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쳐요. 그렇다고 해도 내일 또 받으라는 보장은 없거든요. 그리고 기립박수가 안 나온 날도 안 나왔다고 흔들리면, ‘왜 박수가 안 나왔지?’ 이거 고민하기 시작하면 다음 신으로 못 넘어가요. 박수가 안 나왔지만 ‘나는 여기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분명히 지금 이분들은 박수 이상의 다른 것으로 응원해주고 있을 거야’라고 밀고 나가요. 그렇지 않고 박수를 유도하기 위해서 오버하거나 재밌게 하거나 순간 애드리브를 쳐서 관객들이 한번 웃었다고 그 작품이 좋아지는 건 아니거든요.

배우를 평가하는 기준이 관객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뜻인가요?
네. 관객들이 아무리 좋아해도 내가 이 순간 ‘아, 놓쳤다’ 이런 생각이 들면 기쁘지 않아요. 하지만 다행이죠. 공연의 좋은 점은 내일 또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내가 오늘 이 부분은 놓쳤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에선 했기 때문에 그래. 나만 알 거야 이러면서 내 스스로를 정리하죠.

그 모든 것을 다 계산하고 따져본다니, 공연이 끝난 후 머릿속이 가장 바빠지겠어요.
모든 공연을 녹음해서 집에 가는 길에 다시 들어요. 노래를 모두 체크해요. 열심히 잘한 날에는 누가 얘기 안 해줘도 다 알아요. 그런데 누구 한 명이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날 힘들었다면 그럼 그 친구를 격려해주고요. 극 전체가 너무 산만해지면 모두 모아놓고 확인하죠.

매번 공연을 복기한다니, 대단한데요?
테니스 선수들은 세트 플레이를 계속하면서 자기가 3세트까지 가는 동안 내가 2대4에서 어떤 걸 칠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다 안대요. 내가 그때 샷을 백핸드에서 슬라이스로 쳤어야 했는데 슬라이스를 못 쳐서 매트에 걸렸지. 오케이. 그래서 러브 상황이 왔구나. 그러고 다시 실수를 안 하게 스스로를 다잡는대요. 그럼 다시 정확히 쳐서 위기를 넘긴다죠.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어요. 어, 우리 배우와도 같네. 그러니까 어떤 스포츠든, 어떤 인생이든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느 순간.

공연은 복기할 수 있지만 다른 촬영을 그럴 수 없을 텐데요.
영화는 연출자가 있기 때문에 연출자가 ‘오케이’하면 끝이에요. 그래서 나는 개봉하기 전까지 영화를 안 봐요. 극장에서 보거나 상영이 끝난 다음에 혼자 DVD를 보거나, ‘완성품’을 봐요. 감독님이 편집하는 것도 안 보고요. 영화는 완성되기 전에 본다는 것이 의미가 없더라고요.

어떤 면이 그렇죠?
어떻게 편집되어서 어떻게 나올지를 모르니까 거기에 괜히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는 마음이 흔들려요. 편집하면서 보면 사견이 들어가게 되고, 배우의 사견으로 작품이 흔들릴 수가 있는 거죠. 배우는 작품 전체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 것만 보니까요.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마음에 드는 장면이 편집되면 속상하잖아요? 안 보는 게 편하죠.

최근에는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요. 홍상수 감독은 그날그날 손으로 쓴 대본을 주잖아요. 평소 방식과 많이 다르지 않아요?
아침에 대본이 나오는 편이라 그 순간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해요. 감독님이 여기서 원하는 약 40~70가지의 기운들이 있어요. 그걸 찾아내는 거죠. 감독님은 50개 정도 생각했는데 내가 10개밖에 못 찾으면 ‘오케이’가 안 나오죠. 예를 들어 ‘오케이’가 됐어도 ‘아, 더 찾을 수 있었는 데…’하는 게 배우의 역량이에요. 어떻게든 더 찾아보려고 하는 거.

그럴 때 더 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서나요?
아니요. 감독님이 ‘오케이’하면 나도 끝. 왜냐하면 이미 충분히 반복해서 40~50번 찍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오케이 사인 나면 뒤도안 돌아보고 바로 다음 신으로 갑니다.

이번에는 ‘먹물’ 역이 아니라 ‘몸’ 역을 맡았죠. <다른 나라에서>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인 텐트와 등대가 당신 것이라면서요? 영화 속에서 계속 텐트를 이자벨 위페르에게 주겠다는 장면이 나오죠. 정말 줬어요?
네. 그거 말고 새 거를 주문해서 하나 줬어요. 좋아했죠. 촬영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재미있는 캐릭터였고, 모항도 아름다웠어요.

관객 10만 명이 넘으면 관객과 함께 모항으로 MT를 가겠다고 공언 했는데 말이에요.
그러게 말입니다. 5만 넘기도 힘드네요.

그 다음 작품은 ‘흥행 보증수표’라는 강우석 감독의 <전설의 주먹>이죠. 이 작품을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우석 감독님이 저를 또 찾아주셨다는 것. 좋아하는 감독님이 찾아주면 정말 행복합니다. 내가 존경하는 감독님이니까 어떤 역할이든 같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왜 당신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하던가요?
그런 건 안 물어보죠. 괜히 물어봤다가 다음에 또 안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그냥 하자고 하면 시나리오 보고, 스케줄 보고 ‘네!’ 해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감독이 “하자!” 그러면 시나리오 안 보고 “예!”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