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단단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하고있다. 좋은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고, 사람 냄새가 나는 배우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 많은 사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가죽 재킷은 Z.제냐(Z. Zegna),티셔츠는 지방시 바이 무이(Givenchy by Mue)

가죽 재킷은 Z.제냐(Z. Zegna),
티셔츠는 지방시 바이 무이
(Givenchy by Mue)

 

재킷, 스웨터, 팬츠, 양말, 슈즈는 모두 프라다(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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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우리 3개월 전에 만났죠?
네, 기억해요. 같이 스파게티 먹었잖아요.

다이어트 한다더니 스파게티 한 접시를 싹 비웠잖아요.
하하, 제가 좀 잘 먹어요.

그때 막 <오작교 형제들> 촬영 들어가던 때였는데 벌써 20회가 넘었네요.
조금씩 습득해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운이 좋구나’ 하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하고요. 시청률이 잘 나와서가 아니라 좋은 분들과 함께해서 참 좋아요. 백일섭, 김자옥 선생님도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이제는 진짜 아버지, 어머니 같아요. 밥 먹는 장면 있으면 진짜로 막 먹으라고 챙겨주시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 다른 드라마팀에서 부러워할 정도예요.

자은과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더군요.
<제빵왕 김탁구> 촬영할 때 유진 누나랑 러브신이 있긴 했지만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는 없었어요. 영화 두 편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예쁘게 연애하는 연기를 좀 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게 된 거죠.

아무래도 주말 드라마라 어른들이 많이 알아볼 것 같아요.
네, ‘셋째 아들이네’ 그러면서 많이 알아봐주세요. 아직 마준이를 기억해 주시는 분이 많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편의 드라마가 참 빨리 잊히는구나’ 싶어요. 시청률이 아무리 높고 인기가 있어도 어느 순간 확 잊혀 버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첫 번째 영화 <특수본>이 곧 개봉하네요.
제가 정말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엄태웅 형을 만난 것도 그렇고, 성동일, 정진영, 김정태 선배님이나 그 외 다른 배우 분들도 일로 처음 만났지만 개인적으로 많이 친해졌어요.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에요. 아직 실감은 안 나지만 곧 개봉을 한다고 하니 좀 떨리긴 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귀여움을 독차지했겠어요.
처음에는 조금 낯을 가렸는데 친해지니까 말도 막 놓고, 사실 전 너무 좋으면 말을 놓거든요. 나중에 태웅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말을 너무 일찍 놓아서 깜짝 놀랐다고. 좀 친하다 싶으면 저도 모르게 말을 놓아서 사람들이 당황해요. 나중에는 목소리 톤도 막 올라가고 선배님들한테 애교를 부리고 있더라고요.

<제빵왕 김탁구> 끝나고 시나리오가 꽤 많이 들어왔을 텐데 <특수본>을 택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딜레마가 있는 역할에 매력을 느껴요. 아픔과 시련이 클수록 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 제가 맡은 김호룡은 FBI 출신의 똑똑한 범죄 분석관이지만 머리만 쓸 줄 알죠. 현장 경험도 없고 한국의 상황도 잘 모르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반감을 사요. 처음에는 왜 저러나 싶지만 알고 보면 사연이 있는 아이죠. 그 인물의 예민하고 미묘한 감정을 잘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때 한창 <크리미널 마인드>에 심취해 있었는데 비슷한 역할이 들어와서 더 도전해보고 싶었고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범죄 심리 관련 책과 영화도 많이 찾아 보고 그랬죠.

엄태웅 씨와 사이가 각별하겠어요. 같은 소속사에 영화도 같이 찍고.
사람들이 제가 태웅이 형 이야기할 때 눈빛부터 달라진대요. 원래 좋아했지만 같이 작품 하면서 더 좋아졌어요. 어느 날에는 제가 문자도 보냈어요. ‘형, 반했어요’라고요. 마음이 무척 따뜻한 사람이에요. 어깨에 힘주거나 권위를 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함께 있으면 배울 게 많은 분이에요.

처음 도전한 장르인 만큼 처음 경험하는 신도 많았죠?
엄청 더운 날 촬영했던 시위장면이 기억나요. 그날 정말 너무 더웠거든요. 보조 출연자 중에 탈진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엄청난 시위대 안에 저랑 태웅이 형이랑 들어가서 찍는데 촬영하는 공간이 폐건물이라 환경도 열악하고, 땡볕에 서서 찍어야 하는데 시간도 부족하고…. 정말 정신 안차리면 쓰러질 수 있겠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더라고요. 촬영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어요.

첫 영화의 개봉을 한 달 앞둔 소감이 어때요?
부끄러워요.

주말마다 TV에 나오는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요?
드라마에서는 화면이 빨리 지나가기도 하고 매일 촬영하니까 다음에 만회할 기회가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는 실수한 게 있어도 그대로 몇 달 동안 전국에 상영되고, 결정적으로 영화관의 스크린은 너무 커요. 엄청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 사이에 제가 주연으로 들어가 있는 게 좀 민망하기도 하고요.

연기 욕심은 여전하네요.
집에서 혼자 편하게 있는 순간조차 대사를 중얼거려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요. 연기 말고 정말 좋아하는 뭔가가 생기면 거기에 집중할 텐데 아직 그걸 못 찾아서인 것 같아요. 촬영하고 있을 때 다른 뭔가를 하면 죄책감마저 들어요. 책을 보다가도 ‘내가 이걸 볼때가 아니지, 대본을 좀 더 봐야지’ 해요. 못 마시는 술을 왕창 마시고 길거리에서 잠도 자보고 싶은데, 그것도 그렇게 하면 연기에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 그런 거예요.

연기도 좋지만 밖으로 나가서 좀 놀아요. 너무 좋은 나이에, 심지어 날씨도 이렇게 좋잖아요.
요즘 날씨 정말 좋죠. 제가 여름하고 가을을 좋아하거든요. 겨울도 좋아하긴 하는데 추위를 너무 많이 타서 촬영할 때 온몸에 핫팩이 붙어 있어요. 모든 계절이 다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가을을 타진 않나봐요.
잘 몰랐었는데 요즘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집에 가면 부모님도 계시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지만 좀 공허하다는 생각을요. 옛날에는 돈이 없고 작품을 못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나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사랑을 받고 작품을 하고, 원하는 것들이 충족되어도 뭔지 모를, 말로 표현하기 힘든 허전함이 있어요. 가을이라 그런 생각을 한 건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시점에 가을이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