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가장 참혹한 현장이었다는 소문과 올해 가장 대단한 영화가 될 거라는 기대를 동시에 안고 있는 영화 〈고지전〉.신하균은 이 영화로 네 번째 군복을 입었다. 전쟁 같은 영화를 이야기할 때는 많이 말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물을 때는 많이 웃었다.

티셔츠는 바나나 리퍼블릭(Banana Republic). 피케셔츠는블리커(Bleecker), 팬츠는 디그낙(D.Gnak), 컨버스슈즈는 사눅(Sanuk), 시계는 탁스(Tacs).

ALLURE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힘든 현장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어요. 장훈 감독은 ‘다시 군대 가는 심정으로 찍겠다’면서 머리도 짧게 잘랐던데.
신하균 군대는 나이 들어서 가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죠. 아무래도 지형이 주는 피로가 있었어요. ‘고지전’이니까 산속 고지에서 촬영을 하는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30분씩 산을 탔어요.그곳에는 평지가 없어서, 늘 비탈에서 몸을 지탱하고 서 있어야 했죠.

ALLURE 그래도 군대보단 영화 촬영장이 낫잖아요. 정말, 군대에서의 보직은 뭐였어요?
신하균 군대를 빨리 다녀왔거든요. 21살에 다녀왔으니까. 기갑병이었고, 자주포를 조종했어요. 장갑차 조종수였는데. 자대는 철원이었고.

ALLURE 어쩌다 그 먼 곳까지….
신하균 제 의지로 가나요. 가란 데로 가는 거죠. 이젠 정말 군복 입는 영화는 그만해야 겠어요.

ALLURE 그러고 보니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북한군복도 입었었죠.
신하균 남자들은 제대하면서, ‘다시 군복을 입나봐라’ 하는데, 저는 무려 세 번을 더 입었어요. 이제 현장을 뛰는 군인 연기는 안 해야죠. 나이도 있고, 이제 후방에서 작전을 한다거나….

ALLURE 힘든 거 좀 즐기는 편 아니었어요?
신하균 내가요? 아니요! 웬만하면 피해야죠.

ALLURE 작품 선택에 시나리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해왔는데, 이번 시나리오의 인상은 어땠어요?
신하균 후방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전쟁 회담이 2년이나 진행되는 동안 전방에서는 치열한 전쟁과 희생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을 다뤄요.그런 숨은 역사를 다룬 점이 좋았어요.

ALLURE 이번 시나리오는 <선덕여왕>의 박상연 작가가 썼죠.
신하균 처음에는 소설가로 만났죠. 라고, 영화 <공동구역 JSA>의 원작자예요. 젊은 나이에 소설을 발표하고 화제가 되고, 영화화될 때 만났어요. 그 사이 작가님은 다른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하시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만난 작품이에요. 벌써 10년이 넘은 사이죠.

ALLURE 영화 속에서 가장 강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는데, 이번에 맡은 ‘강은표’는 아니더군요.
신하균 전쟁 때문에 의대를 휴학해서 방첩부대에 있는 인물이지만 투철한 군인 정신을 가졌거나 한 사람은 아니죠. 사실상 영화상 시점이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액션보다 리액션이 많은 캐릭터거든요. 그런 인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사실 도전이 되었어요. 전쟁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잖아요. 사람이 문명을 버리고 정글로 뛰어들어가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거죠. 강은표는 그 시대의 사람이라기 보다는, 전쟁을 겪지 않은 지금 관객을 대변할 수 있어요.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ALLURE 장훈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어요?
신하균 정말 섬세하고,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아요. 그냥 넘어가는 장면이 없고, 테이크도 여러 번 가고. 배우가 힘들고 피곤할 수는 있지만 결과물은 잘 나올 수밖에 없어요. 서로 잘 맞았어요.

ALLURE 장훈 감독과는 첫 작품이었잖아요. 소문으로 듣던 감독과 실제의 감독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신하균 <영화는 영화다>를 정말 짧은 시간에 찍은 분이라, 영화를 정말 빨리 찍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어떻게 전작을 그렇게 빨리 찍었을까, 싶을 정도였죠. 생각보다 술자리가 많진 않았어요. 다음 날 새벽에 촬영을 해야 하니까. 산이니까 해가 금방 떨어져요. 오후 4시 이후로 아예 못 찍는 날이 많았어요. 빠를 땐 새벽 4시부터 시작했죠.

ALLURE ‘고지’ 세트에 많은 공을 들였다던데요?
신하균 촬영장에 가보니 산불이 난 지역을 미술감독님이 훌륭하게 재연해 놓았더라고요. 이 세트가 우리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봐요. 우리의 상처 같은 모습이죠.

ALLURE 마종기 시인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전쟁 직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고향의 봄’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너무 참혹해서 비행기 승객 모두가 흐느껴 울었다고 하더군요.
신하균 그런 모습이에요. 찢기고 파이고, 포탄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풀한 포기 자랄 수 없는 사막이죠.고지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 속에는 군인이 한 명도 없어요. 왜인 줄 알아요? 늘 포탄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곳을 피해서 좀 더 떨어진 곳에 대기하는 거예요. 사진 한 장으로도 그 슬픔이 느껴져요. 후방의 사람들은 전쟁 후를 준비하는데, 전장은 휴전이 된 상황이 아니죠. 어떤 연장선에 있다는 게 슬프고 웃기죠.

ALLURE 전쟁 영화에는 많은 조연이 있죠. 그들과의 호흡은 어땠어요?
신하균 중대원을 연기한 그 친구들이 아니면 안 되었을 영화죠. 든든한 벽이 되어준 친구들이에요. 학생도 있고, 연극배우도 있는데 이 자리를 빌려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더 많이 뛰고, 더 미리 준비한 그 스무 명이 우리 영화의 결을 만들었죠.

ALLURE 특별히 아끼는 후배도 생겼나요? 극중‘ 남성식’이라거나.
신하균 그 친구가 제일 막내인 다윗인데 연기도 잘하고 똑똑한 친구예요. 그래서 만날 놀렸어요. ‘내가 걔를 좋아한다고? 아낀다고? 내가?’ 이렇게 되는 거죠. 원래 군대에서도 고참 되면 놀리고, 괴롭히고 하듯이 말이죠.

ALLURE 유독 여자 배우보다 남자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일이 많아요. 송강호, 원빈, 이번에는 고수죠.
신하균 그러니까요. 항상 남자네요. 많이 할 만큼 했는데, 왜 그럴까요.

ALLURE 이번 영화에서도 적인 북한군과 어떤 교감이 되는 지점이 그려지는데, 그 장면은 어떻게 생각해요?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영국군과 독일군이 크리스마스에 축구한 이야기가 유명하잖아요. 일명‘ 크리스마스 휴전’이라고.
신하균 그 부분은 악어 중대원의 이야기고, 나는 그냥 목격을 하죠. 같은 언어를 쓰고, 지도상에서 1cm밖에 안 되는 고지를 뺏고 빼앗기고를 반복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이 영화가 한국전쟁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작하는 영화는 많았고, 마무리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없었잖아요.

ALLURE 전쟁 영화를 많이 하면서 어떤‘ 입장’이 더 생겼어요?
신하균 나는 원래 평화주의자예요. 하지만 영화를 통해 더 많이 배웠어요. 많은 자료사진과 기록을 보고,공부를 하게 되었죠.

ALLURE 올해 최대의 기대작이고 블록버스터 영화나 다름없는데 흥행에 대한 기대도 하나요? 올 상반기에 400만을 넘은 영화가 <조선명탐정>과 <써니>밖에 없어서 기대가 더 높아졌어요.
신하균 그런 감이 없어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맞춘 적도 없어요. 흥행은 늘 모르는 일이에요. 마음으로는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이 영화에 참여한 분들, 이 영화를 위해 같이 일했던 수고가 그 정도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땐 그런 생각을 잘 못했는데 점점 그런 생각이 커져요. 흥행에 대한 제 생각은, 최소한 본전은 하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