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웨스트>는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오스틴(조정석 분)과 방랑자로 살라온 형 리(오만석 분)의 대립을 다룬 블랙 코미디다.

[트루웨스트]는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오스틴(조정석 분)과 방랑자로 살라온 형 리(오만석 분)의 대립을 다룬 블랙 코미디다. 8평 남짓한 무대에서 120분간의 혈투가 이어지는 동안 치고 박고 으르렁거리는 두 배우의 거친 숨소리와 팽팽한 긴장이 소극장 안을 후끈하게 달군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수확은‘ 조정석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 감춰둔 탐욕과 폭력성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곱상한 그의 얼굴이 서서히 살기와 광기로 변해가는, ‘지킬 앤 하이드’ 못지않은 충격적인 페이스오프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배우들은 이토록 진지한데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참으로 독특한 작품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조정석의 순진한 미소와 살기 어린 표정이 번갈아 떠올랐다. 당장 조정석을 만나야 했다.(경고! 아직 공연을 보기 전이라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음)

냉소적이고 음울하며 공포스러운 유머’에 기초한다는 점이 블랙 코미디의 정석이긴 하지만, 서로를 향해 분노를 폭발하고, 물건을 던지고, 때리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게 편치만은 않았어요. 배우의 입장에서 느끼는 블랙 코미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배우들은 심각하게 연기에 몰두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관객이 웃음을 터트린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트루웨스트> 역시 사전에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를 전혀 마련해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첫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이 웃을 때마다 의아한 부분도 많았어요.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갑자기 골프채를 휘두르니 배우도, 관객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것, 그게 블랙코미디란 장르의 매력이 아닐까요?

무대 세트의 전환도 없고, 중심 인물이 리와 오스틴뿐인데도 2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지나간 이유가 있었군요. 대사량과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할 것 같아요. 결코 쉽지 않은 배역인데, 오스틴 역에 도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오만석 씨와 대사를 맞추는데 무척 재미있었어요. 5년 만에 해후한 두 형제가 말은 많이 주고받는데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서로 지지 않으려는 신경전이 대단하거든요. 오스틴도 겉으로는 리에게 당하는 것 같지만 또박또박 받아 쳐요. 대사를 숨가쁘게 주고받다 침묵이 흐르는 장면에서는 무대와 객석에 긴장감이 흐르는데, 그 순간도 스릴 있고요.

극 초반 반듯하고 소심한 모범생에서 점점 형처럼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오스틴을 연기하려면 오스틴이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형제 간의 대립을 다룬 작품인 만큼 오스틴을 이해하려면 형 리와 동생 오스틴의 관계뿐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관계와 성장 배경을 정확히 알아야 했어요. 형은 어릴 때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고, 어머니는 이로 인한 모든 상처를 안고 무기력하게 살아가죠. 오스틴은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행복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늘 안고 살아가요 .실제 성격과 그 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면 리와 오스틴 중 어느 쪽에 가까운 것 같나요? 누구에게나 오스틴처럼 가족관계로 인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그 기준이 굉장히 주관적이기는 하지만요. 많은 분이 저의 첫인상을 잘 웃고 밝은 이미지로 봐주시는데, 저 역시도 잠재된 상처가 있어요. 그래서 가끔 욱하는 성격이 나오기도 하고요. 오스틴과 리의 단면을 조금씩은 갖고 있다고 봐야죠.

극 초반, 오스틴이 리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리 역을 맡은 오만석 씨마저 정말 얄밉게 느껴졌어요. 다음에 같은 작품을 하게 된다면 리와 오스틴 중 어떤 역을 맡고 싶나요?
오스틴을 연기해봤으니 다음에는 리 역을 맡고 싶어요. 그때 오만석 씨가 오스틴 역을 맡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공연이 끝날 무렵에 서로배역을 바꿔보면 어떨까 농담 삼아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극 중에서 리와 몸을 부딪치는 격렬한 장면이 유독 많은데, 혹시 다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어요. 두 배우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위험한 장면을 촬영할 때는 서로 집중해서 하기 때문에 다행히 다친 적은 없어요. 오만석 씨와 같은 작품에 더블 캐스팅된 적은 있었지만 무대에서 함께 연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오만석 씨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시니 함께 연기하는 저는 너무 좋아요.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며 끝나는 마지막 장면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서부극을 패러디한 리의 시나리오는 결국 리와 오스틴의 이야기예요. 마치 서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팽팽한 긴장감 속에 서로를 노려보는 장면은 두 사람의 대립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2009년에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올해는 <트루웨스트>로 무대에 섰는데 2011년에는 어떤 작품으로 만나게 될까요?
내년에는 무대가 아닌 브라운관을 통해서 먼저 인사드릴 것 같아요. 뮤지컬학과 학생들을 소재로 한 캠퍼스 드라마인 <왓츠업> 촬영이 한창이에요. 드라마는 처음이지만 오만석 씨도 함께 출연하고 뮤지컬이 주제여서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