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은 끝났고 김강우는 한결같았던 지난 10년처럼 묵묵히 걸어간다. 쉬지 않지만 서두르지 않고, 그래서 더 빛날 수밖에 없는 순간 순간을 엮어서.

재킷과 셔츠, 팬츠, 신발은 모두 구찌(Gucci).

재킷과 셔츠, 팬츠, 신발은 모두 구찌(Gucci).

<돈의 맛>에 대한 질문은 이제 지긋지긋하죠?
정말 많이 받긴 했죠.

비비총 들고 풍선껌을 씹은 건 오랜만일 테고요.
슈트 입고 분위기 잡다가 이런 스타일의 화보는 정말 오랜만에 찍었어요. 덕분에 유쾌했어요.

칸 국제영화제는 충분히 즐기고 돌아왔나요?
재미있었어요. 칸이 끝나니까 비로소 다 끝난 느낌이었어요. 영화 끝나고 나서도 홍보 일정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 곳에서 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영화 상영 후 기립박수를 받을 때는 우리 작품이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고요. 무엇보다 행복했던 건 존경하고 신뢰하는 <돈의 맛> 팀과 함께 영화와도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는 거죠.

칸 해변에 앉아서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더니, 그렇게 했나요?
아쉽게도 그건 못했어요. 그래도 혼자 해변을 거닐면서 내가 배우라는 것도 잊고 마냥 즐거워한 순간은 있었죠.

아무리 지긋지긋해도 <돈의 맛>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네요.
주영작을 연기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데 전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감독님과 코드가 잘 맞아서 다행이었죠.

모자는 김서룡 옴므(Kim Seo Ryong Homme).카디건과 스카프는 프라다(Prada).팔찌는 엠코헨 바이 존 화이트(M. Cohen by John White)

모자는 김서룡 옴므
(Kim Seo Ryong Homme).
카디건과 스카프는 프라다(Prada).
팔찌는 엠코헨 바이 존 화이트
(M. Cohen by John White)

뭐가 그리 잘 맞던가요?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분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제가 표현해 온 방법과 다르게,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죠. 연출이나 대사를 현장에서 자주 바꾸시는 편인데 그게 통쾌하기도 하고 흥미로웠어요.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도 잘 맞아떨어졌고요.

오롯한 주영작이 되기 위해 어떤 게 필요했나요?
주영작은 말보다는 표정이나 뉘앙스로 이야기하죠. 세련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다들 너무 센 캐릭터라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했어요. 아, 그리고 영화 틈틈이 나오는 웃통을 벗는 신 때문에 몸매 관리하느라 애를 먹었어요.

관리 안 해도 늘 그 몸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전혀 아니에요. 이번 영화뿐 아니라 작품 할 때만 그 역할에 맞게 몸을 만들어요. 영화가 끝나고 홍보할 즈음엔 그 몸이 아닌데 다들 영화에 등장하는 모습을 기대하더라고요. 영화 끝나면 그동안 못 마신 술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운동도 쉬어요. 그렇게 빡빡하게 살긴 싫어요.

칸에 다녀오고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 외에 <돈의 맛>이 김강우에게 남긴 건 뭘까요?
이 영화를 두고 터닝포인트라는 말을 하는데 그건 별로예요. 이제까지 해온 영화가 다 소중하고 똑같이 열심히 했어요.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보여 줄 수 있었고,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으로 충분해요. 잃은 건 없어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Prorsum). 티셔츠는 게타노나바라바이 존 화이트(Gaetanonavarra byJohn White). 팬츠는 빈폴 맨즈(BeanPole Mens). 슈즈는 포인터 바이플랫폼(Pointer by Platform). 원형프레임 시계는 브라이틀링(Breitling).사각 프레임 시계는 예거르쿨트르(Jaeger LeCoultre).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티셔츠는 게타노나바라
바이 존 화이트(Gaetanonavarra by
John White). 팬츠는 빈폴 맨즈(Bean
Pole Mens). 슈즈는 포인터 바이
플랫폼(Pointer by Platform). 원형
프레임 시계는 브라이틀링(Breitling).
사각 프레임 시계는 예거
르쿨트르(Jaeger LeCoultre).

<돈의 맛>이 끝나고 바로 <미라클> 촬영에 들어갔어요. 왜 이리 쉬지 않고 일하는 거예요?
예전에 작품을 좀 쉰 적이 있는데 작품을 안 하니까 오히려 더 피곤하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닌데 시기적으로도 잘 맞아서 바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미라클>에서 맡은 형사 양춘동은 어떤 인물인가요?
자유분방하고 표현에 있어서 솔직한 사람이에요. 표정도 많고 시끄러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럼 사람이요.

일부러 주영작 같지 않은 캐릭터를 찾은 건가요?
항상 전작과는 다른 작품을 찾아요. 그래야 저도 재미있게 할 수 있고 이미지도 정형화되지 않으니까요.

이제까지 당신이 선택한 작품들을 관통하는 요소를 들자면요?
무엇보다 진정성이 있어야 해요. 억지스러운 건 티가 나잖아요.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는 작품을,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의외로 코믹 연기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한번쯤 도전할 의향은 없나요?
코믹이야 말로 가장 힘든 장르인 것 같아요. 정말 잘 짜야 하는데 좋은 시나리오를 아직 못 받았어요. 잘 짜여진 코미디는 이제까지 그런 연기를 해온 분에게 가기 마련이잖아요.

죽고 못 사는 진한 멜로는 어때요?
예전에는 멜로를 일부러 안 했어요. 좀 더 살아보고 인생을 어본 후에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더 늦기 전에 멜로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건 수월한 편인가요?
그렇게 깊이 빠지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기본 호흡은 가지고 가죠. <돈의 맛>을 할 때는 실제로 말수가 좀 줄기도 했고요. 아마 저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크게 느끼겠죠.

스크린 밖에서는 어떤 모습인가요.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잘 못 가고 좀 예민한 편이에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몰라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일이다 보니 점점 더 내 성격을 모르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모르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죠.

최근에 트위터에 올린 아내와 아들의 사진이 인터넷 사이트를 도배했어요.
사생활을 노출 안 하는 편인데 그날 문득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돈의 맛> 촬영하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김강우에게 ‘돈의 맛’은 뭐냐는 질문이었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밤을 새우며 연기해 번 돈으로 사랑하는 아이의 입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줄 때의 달콤함’이더라고요. 그 글에 딱 맞는 사진을 같이 올리게 된거죠.

트위터를 본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요?
‘더 예쁘게 나온 사진으로 올리지’ 그러더라고요. 그 사진이 제 휴대폰 바탕화면이에요.

아빠가 된 건 완전히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었겠죠?
남자에게 아이가 생기면 다른 호르몬이 만들어진다고 들었어요.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부드럽게 바뀌는 것 같아요. 원래는 마초적이라는 이야기도 좀 들었는데 지금은 제가 생각해도 많이 달라졌어요. 저의 사소한 행동이 아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보여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나를 나라는 사람으로 이해했다면 이제는 내 아이를 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되요.

언제 제일 예뻐요?
항상 예쁘죠. 칸에 일주일 동안 갔다 와서 저를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하면서 폭 안기더라고요. 엉덩이를 두드려주니까 내 팔을 톡톡 두드리더라고요. 아, 정말 너무 예뻐요.

사람들이 김강우에게 오해하는 게 있나요?
무겁고 진지할 것 같다고 해요. 인터뷰를 할 때는 일 얘기만 하기 때문에 진지해지는 거예요. 사실 평소에는 일 이야기를 전혀 안 해요. 친구들 만나서도 일 얘기가 나오면 다른 이야기하자 그러고.

책이 나온다는 소문은 사실인가요?
이번 달에 여행에세이가 나와요. 친한 선배와 주고받는 에세이 형식의 책이에요. 태국을 다니면서 썼는데 맛집을 소개한다거나 쇼핑 장소를 추천하는 그런 책은 전혀 아니에요. 사실 태국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작년부터 준비해서 이제 나오게 되었어요.

슈트와 셔츠는 디스퀘어드2(Dsquared2).목걸이는 아나 아이힝거 바이 톰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즈(AnnaAichinger by Tom GreyhoundDownstairs).

슈트와 셔츠는 디스퀘어드2(Dsquared2).
목걸이는 아나 아이힝거 바이 톰
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즈(Anna
Aichinger by Tom Greyhound
Downstairs).

글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에세이 읽는 걸 좋아했어요. 여행 다니면서 그 순간의 느낌을 그냥 지나쳐버리기 아까워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글로 쓰는 건 어쩐지 거부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 용기를 냈어요. 내가 좀 더 편하게,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나요?
좋아하는 일이고 고민하지 않고 한번에 쓰는 편이에요. 글을 쓰기 위해 메모를 자주 하죠. 자다가도 생각이 나면 일어나서 메모하고, 거기다 살을 붙이는 건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좀 더 발전시켜서 시나리오를 써보는 건 어때요?
사실 옛날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에세이 쓰는 게 재미있어요.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자유롭게 쓸 수 있잖아요.

습관적으로 찾는 영화나 음악이 있나요?
자극을 받고 싶을 때 말론 브란도의 영화를 봐요. 그의 거침 없는 스타일을 정말 좋아해요. 꾸며낸 게 아니라 진짜 그대로의, 본능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잖아요. 그런 기운을 받고 싶을 때 찾아봐요. 음악은 많이 듣지는 않는데 한 곡 꽂히면 맨날 그것만 듣는 편이에요.

가볍지 않은, 어떤 클래식한 섹시함은 타고난 건가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해요. 사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가 크죠. 나이를 먹어도 멋있었으면 좋겠고 중후한 섹시미를 가지고 있었으면 해요. 젊은 남자가 가진 섹시함은 섹시함이라기보다는 젊음에서 오는 건강미인 것 같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잘살고 똑바로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멋이 섹시함인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야 그런 모습이 보이고, 그걸 연기로도 소화할 수 있는 거겠죠.

정도를 걷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일찍 안정된 가정을 꾸린 것도 그렇고요. 그만큼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뜻이겠죠?
다혈질이고 고집도 세고 이기적인 면이 있어요. 그걸 알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두는 것도 사실이고요.

누구나 남에게 엄격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하기란 힘든 일이죠. 그 잣대를 배우의 영역에 가져온다면요?
배우는 똑똑한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하려면 눈치도 있어야 하고 상황 판단도 빨라야 해요. 눈에 총기가 없으면 금방 들통이 나죠.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면서 배우를 한다고 말하면 부끄러울 것 같아요. 책도 많이 읽고 신문도 많이 보고 뭐든 경험하고 배우려고 노력해요.

이 길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나요?
영화와 관련된 일을 이것저것 하고 다녔어요. 연기는 그중 하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운명인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할 줄 아는 것도 이것 뿐이더라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에 대한 소중함을 못 느꼈어요. 단순히 생계의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이 너무 재미있어지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는데 그런 고민이 조금씩 흐릿해지더니 이제는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재킷은 모스키노(Moschino). 티셔츠는아페쎄(A.P.C.) 팬츠는 클로즈드(Closed).시계는 예거 르쿨트르. 팔찌는 미안사이바이 셀러브레이션(Miansai byCelebration). 신발은 라코스테(Lacoste).

재킷은 모스키노(Moschino). 티셔츠는
아페쎄(A.P.C.) 팬츠는 클로즈드(Closed).
시계는 예거 르쿨트르. 팔찌는 미안사이
바이 셀러브레이션(Miansai by
Celebration). 신발은 라코스테(Lacoste).

일생 일대의 모험을 꼽는다면요?
재미있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예요. 배우를 하게 된 거요. 내 성향이 연기를 하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거에요. 뭔가 표출할 방법이 연기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게 인생 최고의 모험이에요. 제일 싫어하는 게 취미를 특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취미생활이 없어요.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최근 당신에게 희열을 가져다준 순간이 있었나요?
얼마 전 밤새워 촬영을 마치고 세트장에서 나오는데 햇빛이 되게 환하게 비치더라고요. 저쪽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엄마가 한참 고민하더니 사진을 같이 찍자며 다가왔어요. 기뻐하는 모습이 참 좋더라고요. 배우의 역할 중에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잖아요. 누군가 나로 인해 그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런 순간을 같이 느낄 수 있다는게 참 좋았어요. 칸의 레드 카펫을 밟는 것보다 더 뜨거운 순간이죠.

가까운 시간 안에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다음 책을 내고 싶어요. 글자 하나하나까지 제가 다 쓰고 고쳐서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영화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요.

일부러 영화만 하는 건 아니죠?
절대 아니에요.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언제든 하고 싶어요. 이거 좀 크게 써 주세요.

나이가 들어가는 건 배우 김강우에게 어떤 변화를 주고 있나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고, 그 시간이 쌓여가는 거니까 분명 더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서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걸 느껴요.

한 남자로서의 김강우에게는요?
피로 회복과 피부 재생의 속도가 늦어진다는 걸 의미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