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서울에도 들어서는 순간 긴장이 탁 풀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자연을 느낄 수 있거나,
오래된 것을 재활용해 꾸민 친환경의 공간이다.

스프링 컴, 레인 폴

봄은 왔는데, 비는 오지 않았다. 빗방울 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그래도 이곳은 아름다웠다. ‘스프링 컴, 레인 폴’은 빈 공책처럼 꾸밈없는 물건을 만드는 디자인 회사‘공책(O-check)’의 쇼룸이자 카페이다. 이곳에는 소박한 디자인의 빈 공책도 있고, 못 쓰게 된 한옥집의 창문을 떼다 만든 장식장과 테이블도 있다. 물론 모두 구입할 수 있는‘제품’이다. 구경하다 지치면 잠시 앉아 쉬며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살 수 없는 것 중에도 탐나는 것이 좀 있다. 그냥 나무를 반듯하게 자르기만 해서 만든 부엌 천장의 형광등 갓, 오래된 한옥문에 포스터를 붙여둔 잘난 척 하지않는 장식품 같은 것. 커다란 창문 앞에서는‘ 공책(O-check)’의1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공책전시도 하고 있었는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기에 며칠 전 들었던 이소라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물론 이소라처럼 서글프게 부르지는 않았다.
주소 마포구 서교동 382-13
전화 02-3210-1555

이서

가로수 길에서는 할 게 없다. 카페와 가게가 넘쳐나는 길은 지겹도록 식상하다. 어쩌자고 똑같은 가게가 이 평화롭던 길을 점령한 걸까? 하지만 또 가로수 길로 가는 이유는 여전히 그곳 어딘가에 반짝이는 공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윤이서의 쇼룸같은. 이서는 찬찬히 산보하듯 걸어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눈에 띄는 간판도 없고, 눈을 잡아 끄는 화려함도 없다. 어쨌든 누구든 운 좋게 이곳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 공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러곤 한 군데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된다. 새와 돌을 프린트해 만든 쿠션, 셔츠의 소매를 잘라 만든 전등과 못 쓰는 유리병을 잘라 만든 꽃병, 자투리 천을 이어 만든 의자 같은 신기한 물건이 가득하니까. 그러고 보니 커다란 창문 앞에 재활용을 상징하는 삼각형의 화살표가 붙어 있다. 내가 직접 한 것도 아닌데, 뾰족하던 마음이 좀 착해지는 것 같다.
주소 강남구 신사동 535-7
전화 02-512-3686

숲 커피 플라워

소공동 양복점 골목 중간 즈음을 지나다 보면 낯선 풍경과 마주해 여기가 어딘지 어리둥절해진다. 19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오래된 양복점들 사이에 북유럽의 어느 거리에 있어야 할 것 같은 공간이 갑자기 등장한다. 이곳의 이름은‘숲 커피 플라워’. 정체는 다양한 식물이 가득한 카페. 그러니까 이름 첫머리의 숲은 나무가 울창한 바로 그 숲이 맞다. 이 작은 숲을 만든 김현식은 이 공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리프레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플로리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인지 몰라도 어려운 식물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고, 식물을 보는 눈도 남다르다. 그냥 두면 사라져버릴 목화꽃을 꺾어다 벽에 걸어두기도 하고, 빈 유리병에 식물을 꽂아서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무심하게 깡통에 화분을 심어두기도 한다. 그런데 또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 오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이게 바로 숲 커피 플라워의 매력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곳에 가면 식물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다. 물론 식물을 곁에 두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주소 중구 소공동 112-20
전화 02-765-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