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서울에도 들어서는 순간 긴장이 탁 풀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자연을 느낄 수 있거나, 오래된 것을 재활용해 꾸민 친환경의 공간이다.

앤 드뮐미스터, 톰 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스

세상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관심에도 늘 초연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곳, 이건 앤 드뮐미스터와 톰 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스 매장에 관한 이야기다. 도산공원 앞을 지나다, 혹은 TV나 책에서 한번쯤은 봤겠지만 이 건물은 온통 초록색 풀로 뒤덮여 있다. 건물인지, 자연의 한 부분인지 언뜻 보기에 헷갈리는 그 모습은 길을 가다가도 멈춰 서서 찬찬히 들여다보게 하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직사각형이 아닌 유기적인 형태의 건물은 마치 작은 화분들이 붙어있는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커다란 건물을 온통 뒤덮은 이 식물은 수호초다. 진짜 살아 있는 수호초. 건물 한쪽 옆으로 난 유리문을 열고 톰 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스로 들어가면 동굴 속 같은 초현실적인 지하 공간도 있다. 이곳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 벽은이끼로 덮여 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 건축가 조민석. 그는 자연과 인공사이의 혼성적 유기물을 만들고 싶었다는데, 성공이다.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문 밖의 시끄러운 세상과 멀어진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주소 강남구 신사동 650-14
전화 02-3442-2570

더 우드스튜디오

멋없이 빽빽한 서울에서 40분. 정체 모를 허름한 공장이 띄엄띄엄 있는 작은 동네에 내리자 백구 두 마리가 치맛자락을 잡고 흔든다. 서울특별시 지척에 이런 동네가 있었나. 사진가 조남룡이 두 명의 지인과 함께‘지은’더 우드 스튜디오가 있는 공간. 반듯하게 난 길도 없고, 예쁘게 그려놓은 간판도 없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나무와, 무시무시한 기계와 공구가 다인 공간. 이 공간의 정체는 나무를 자르고, 붙여서 무언가를 만드는 목공방이다. 잠시 돌아다녔더니 코트 자락이 온통 톱밥천지다. 요즘 조남룡은 소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섞어 가구를 만든다. 소나무, 밤나무, 느티나무의 겉모습이 다다른 것처럼 그 나무를 잘라 가구를 만들면, 한 가구에서 다양한 색과 무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시간을 보냈던 이 소나무, 밤나무, 느티나무는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한다. 조남룡은 나무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즐겁다. 철이나 플라스틱 가구는 아무 말이 없어 도통 친해지기가 어렵다.
주소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45-1
전화 031-261-3004

유니북스

동그란 틈새로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연출한 천장 조명과 나이테를 그대로 살려 쓴 나무 문, 잔디를 프린트한바닥과 요란하게 가공하지 않은 나무소재로 둘러싸인 공간. 그러나! 이곳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다. 문장 앞에 ‘그러나’를 붙인 것은 알록달록한 색 하나 없는 이 간결한 곳이 어린이에게 흥미롭지 않을 거란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다 어른의 착각이다. 어린이에게 색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나름의 색을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여백을 주는 것이 옳다. 이게 바로 건축가구만재가 이곳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그린’의 의미다. 친환경적인 소재와 자연의 모티프로만 친환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곳은 색의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어린이들의 친환경 공간이다.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자신만의 색을 찾아내 이 공간을 채울 것이다. 완벽히 비워놓은 공간을 채우는 건 그러니까 다만 아이들의 몫이다.진작에 이런 곳이 있었다면, ‘회색’과‘남색’을 사랑하는 우리나라 어른들이‘색’에 좀 더 관대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소 강남구 도곡동 514-1
전화 1577-0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