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있어 서울이 더 넓어졌다. 복잡한 강남을 벗어난 곳에 아틀리에를 마련한 디자이너들. 이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세계와 꼭 닮은 한적한 동네에 숨어서 각자의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한남동의 한적한 골목 안, 푸시 버튼의 발칙한 간판을 발견했다. 현관문을 열고 푸시 버튼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한남동의 한적한 골목 안, 푸시 버튼의 발칙한 간판을 발견했다. 현관문을 열고 푸시 버튼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PUSH BUTTON

한남동 5년 차
Unique, Quirky, Crazy, Fun .푸시 버튼을 설명하는 네 단어다. 그가 만든 즐거운 옷처럼 그의 아틀리에 여기저기에도 재미있는 요소들이 숨어 있다. 커다란 곰 인형 탈을 쓰고 있는 마네킹과‘ No Tears.’, ‘You are not Alone.’ 같은 말들이 쓰여있는 계단, 그리고 태국의 화가가 여자로 오해하고 그려줬다는 디자이너 박승건의 초상화 같은 것.

인테리어의 포인트 기분이 즐거워지는 재미있는 장치들. 그중에서 이곳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은 ‘See YouNext Summer’라고 적혀 있는 에어컨 덮개다.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 동네 번화가에서 살짝 떨어진 골목에 있어서 그런지 업타운과 다운타운의 느낌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 그리고 뭔지 모를 우아한 느낌도 있다. 이상한 곳이다.

강남에는 없는 이 동네만의 분위기 강남은 너무 딱딱한 도시 같다. 여기는 정감 있는 진짜 ‘동네’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강남에서 남에 집 앞에 주차하면 바로 신고한다. 여기는 남에 집 앞에 버젓이 주차하고 전화도 잘 안 받는다.

이 동네에서만 할 수 있는 일 ‘리움’이나 ‘공간 해밀턴’ 갤러리 같은 재미있는 공간을 들러보는 것. 이 동네는 특히 젊고, 새로운 예술가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많다. 그래서 인지 뭐든 다 해도 될 것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탐나는 다른 동네 성수동. 그곳에 많은 오래된 공장 같은 커다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런 공간에서 설치 미술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부속품이 들여다보이게 해체해서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계, 해파리처럼 생긴 조명, 호피무늬러그 등. 재미있는 소품들로 가득한 이보미의 아틀리에.

부속품이 들여다보이게 해체해서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계, 해파리처럼 생긴 조명, 호피무늬러그 등. 재미있는 소품들로 가득한 이보미의 아틀리에.

 

LEE BOMI

경리단길 2년6개월 차
디자이너 이보미가 생각하는 패션은 옷과 액세서리가 아니다. 그녀의 패션은 오늘과 다른 내일을 위한 모든 열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녀의 아틀리에에는 옷과 재봉틀과 가위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있다. 패션과 함께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즐거운 아이디어 같은 것.

인테리어의 포인트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한 일러스트, 즐겨 보는 아트 북, 전시회 포스터 등 아무렇게나 둔 작업의 흔적들. 뭔가 기획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작업에서 나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곳곳에 뒀다.

이 동네 데뷔 때부터 쭉 강남에 있다가 강북의 매력을 뒤늦게 발견하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강북 중에서도 특히 이 동네를 택한 건, 정형화되지 않고 유동적인 이미지 때문. 삼청동이나 가로수길 같은 곳은 뭔가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지만 이곳은 그런 것이 없다.

강남에는 없는 이곳만의 분위기 강남은 너무 상업화, 대중화되었다. 특히 가로수길. 지금 가로수길에 가는 사람들은‘ 핫 플레이스’에 가는 것뿐이다. 브랜드에 대한 인식 없이, 그냥 가로수길에 있는 숍 중 하나에 가는 것. 여기는 나를 알고, 내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 동네에서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남산 주변에 있는 독특한 공간을 구경하는 것. 주변에 아트와 패션이 함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겼다. 경사진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산책하기에도 좋고.

탐나는 다른 동네 북한산 밑자락의 효자동, 구기동도 좋다. 하지만 그 동네는 너무 떨어져 있어서 쉽게 갈 수가 없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커다란 나무 테이블, 나란히 놓여 있는 꽃무늬 의자들, 피팅룸 앞에 걸려 있는 커다란 꽃무늬 천, 거울 위에 붙여놓은 예쁜 새 그림까지. 아틀리에의 작은 소품 하나까지 참 그녀답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커다란 나무 테이블, 나란히 놓여 있는 꽃무늬 의자들, 피팅룸 앞에 걸려 있는 커다란 꽃무늬 천, 거울 위에 붙여놓은 예쁜 새 그림까지. 아틀리에의 작은 소품 하나까지 참 그녀답다.

 

THE CENTAUR

이태원 3년 차
예란지의 아틀리에를 코앞에 두고 한참을 헤맸다. 강남에서는 볼 수 없는 구멍가게와 조그만 미용실이 있는 이 동네가 진짜 서울이 맞나 싶고, 이런 곳에 디자이너의 아틀리에가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이것도 역시 고정관념이다. 동양적인 빈티지풍의 옷을 만드는 예란지의 묘한 매력과 이곳은 참 잘 어울린다.

인테리어의 포인트 매장에 걸려 있는 옷들과 빈티지 의자들, 피팅 룸의 문 역할을 하는 커다란 천, 2층 작업실 문 앞, 작업실의 레이스 커튼까지 오래되고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꽃무늬로 가득하다.

이 동네 2008년 여름, 혼자서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그마한 쇼룸을 갖고 싶었다. 그때 이곳은 지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었는데, 다른 곳과는 뭔가 다른 냄새가 있었다. 바로 다음 날 계약했다.

강남에는 없는 이 동네만의 분위기 고급스럽지도 않고, 유동 인구도 적다. 그냥 작고 한적해서 매력적인 동네다. ‘테일러블’ 곽호빈과 계원디자인예술대학교의 전시 공간 ‘공간 해밀턴’, 최정화의 갤러리 겸 카페 ‘꿀’, 스티브제이앤요니피 같은 좋은 사람들이 이웃사촌이다. 그래서 이 동네가 더 좋아졌다.

이 동네에서만 할 수 있는 일 쇼룸 맞은편 ‘까페 눈’에 가서 오가닉 커피를 마시는 것. 그리고 저녁7시에 문을 여는 ‘레이지 헤븐’에서 모히토를 마시는 것.

탐나는 다른 동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보다 매력적인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