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디를 가나 <응답하라 1994> 이야기다. 풋풋한 대학 시절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우리의 20대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촌스럽다고 웃었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교복을 벗고 멋내기를 시작했던 20대 초반, 다양한 세대들의 그 시절을 추억한다.

1 꼼 데 가르송 셔츠와 팬츠를 입은 박혜라. 2 80년대의 유산, 파워 숄더를 멋지게 재해석한 2013년 가을/겨을 발맹 컬렉션. 3 1980년대를 대표하는 팝 아이콘 마돈나. 4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꽃미남 그룹 듀란 듀란

1 꼼 데 가르송 셔츠와 팬츠를 입은 박혜라. 2 80년대의 유산, 파워 숄더를 멋지게 재해석한 2013년 가을/겨을 발맹 컬렉션. 3 1980년대를 대표하는 팝 아이콘 마돈나. 4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꽃미남 그룹 듀란 듀란

 

Back to ’80s

파워 숄더와 아방가르드 룩의 나날들 “20대 초반부터 패션에 워낙 관심이 많았어요. 소위 한 ‘멋’ 하는 아이였죠. 상의는 헐렁하고 하의는 타이트한 역삼각형 실루엣이 유행했는데 실제 어깨보다 두 배나 넓은 파워 숄더 재킷을 입었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요즘으로 치면 발맹이나 마르탱 마르지엘라 재킷 같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깨를 더욱 강조하려고 남자 옷을 입기도 했어요. 당시만 해도 패션 브랜드가 많지 않았어요. 해외 브랜드는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멋쟁이들은 주로 양장점에서 옷을 맞췄죠.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종로에 있는 양장점 ‘익스프레스’나 ‘8과1/2’에서 똑같이 만들어 입었어요. 당시는 영국 팝이 굉장한 인기였지요. 듀란 듀란은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꽃미모와 잘 차려입은 스타일로 화제를 모았죠. 그땐 남자들이 여자들만큼 치장했는데 스모키 메이크업도 하고, 화려한 재킷이나 블라우스를 입곤 했어요. 소위 ‘앤드로지너스 룩’이었던 거죠.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와 마돈나도 엄청난 인기였어요. 저는 ‘마돈나 빠’였는데, 그녀가 한 모든 게 멋져 보여서 ‘Like a Virgin’을 부를 때 입은 레이스 레깅스를 따라 입기도 했어요. 에어로빅 붐을 타고 형광색이 유행하자 야광색 워머를 레깅스 위에 덧입기도 했죠. 요즘에도 형광색 액세서리나 티셔츠를 보면 그때가 떠올라요. 이렇게 화려한 패션에 심취해 있다가 파리에 갔을 때 아방가르드 룩을 접하게 되었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죠. 꼼 데 가르송과 요지 야마모토의 아방가르드 실루엣에 한눈에 반했어요. 그렇게 여행을 갈 때마다 구입해 한국에서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일본 사람 같다’고 하고, 어머니는 ‘어디가 앞이냐?’고 물으셨죠. 당시에는 꼼 데 가르송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러나 이런 유행들도 1990년대 들어오면서 모두 사라졌고, 사람들은 일제히 1980년대 스타일은 너무 촌스러워서 두 번 다시 유행하지 않을 거라 단언했었어요. 그런데 2010년대 들어오면서 파워 숄더부터 시작해 화려한 글램 록 트렌드가 떠오르는 걸 보면 영원히 촌스러운 것도 영원한 트렌드도 없는 것 같아요.” – 박혜라(주얼리 디자이너)

1 90년대 초반 스트리트 무드를 담아낸 2014년 봄/여름 럭키 슈에트 컬렉션. 2 당대 가장 섹시한 모델을 캐스팅했던 게스걸 광고. 3 90년대 초반에 구입해 지금까지 입는 지향미의 마인 코트. 4 청재킷을 즐겨 입던 지향미의 90년대 모습

1 90년대 초반 스트리트 무드를 담아낸 2014년 봄/여름 럭키 슈에트 컬렉션. 2 당대 가장 섹시한 모델을 캐스팅했던 게스걸 광고. 3 90년대 초반에 구입해 지금까지 입는 지향미의 마인 코트. 4 청재킷을 즐겨 입던 지향미의 90년대 모습

 

Back to Early ’90s

청청 패션으로 표현한 개성 시대 “<응답하라 1994>는 정확히 제 세대 이야기예요. 그 시대를 대변하는 패션 아이템을 꼽으라면 단연 청바지죠. 10대나 20대 초반 세대들은 GV2, 겟 유즈드, 닉스, 게스 등 청바지 브랜드에 열광했죠. 물론 트렌드는 다양했어요. 힙합도 유행했고, 미니멀 스타일도 있었으며, 히피 룩도 볼 수 있었던 스타일 춘추전국 시대였어요. 그러나 청바지는 모두가 입었어요. 친구 한 명은 동대문에서 게스 라벨만 사다가 청바지에 붙이곤 ‘나 게스 입었어’라고 자랑하기도 했고요. 조금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청청 패션으로 입는 게 유행이었어요. 게스와 닉스는 요즘으로 치면 몽클레르와 캐나다 구스의 인기에 비견할 수 있어요. 또 90년대 초반에 타임이 론칭했는데, 내셔널 브랜드로는 타임과 마인이 최고였죠. 언니가 물려준 마인 재킷은 아직까지도 입고 있는데, 실루엣은 수선했지만 소재가 좋아서 지금도 입으면 그다지 어색하지 않아요. 액세서리는 소다나 쌈지 같은 가죽 전문 브랜드의 전성기였어요. ‘X세대’라는 타이틀 아래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난 나야. 남들과 달라’라고 생각했고죠. 지금과 그 시절의 다른 점이라면 트렌드와 셀러브리티에 대한 반응인 것 같아요. 그때는 유행하는 아이템이라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는데 요즘은 그대로 카피하는 데 급급하죠. 나한테 어울리는 것이 아닌 셀러브리티의 공항 패션, 연예인의 스타일 등 개성 없이 획일화된 것 같아 조금 씁쓸해요.” – 지향미(비주얼 디렉터)

1 말간 얼굴의 심은하는 당대의 뷰티 아이콘이었다. 2 ‘청담동 며느리 룩’은 페라가모 바라 슈즈로 완성됐다. 3 뉴요커 스타일의 대표 아이콘 기네스 팰트로. 4 검정을 즐겨 입은 홍혜진.

1 말간 얼굴의 심은하는 당대의 뷰티 아이콘이었다. 2 ‘청담동 며느리 룩’은 페라가모 바라 슈즈로 완성됐다. 3 뉴요커 스타일의 대표 아이콘 기네스 팰트로. 4 검정을 즐겨 입은 홍혜진.

 

Back to Mid ’90s

서른 살처럼 보이던 스무 살 “96학번인데 당시는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고, 인터넷이 초보 수준이라 획일적인 유행보다는 그룹별로 유행이 존재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아르마니와 프라다에 열광하던 명품 스타일 그룹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시장 자체가 대체로 명품 지향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때 청담동에 본격적으로 해외 패션 하우스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청담동을 휩쓴 블랙 슈트 룩은 굳이 따지자면 한국식으로 변형된 뉴요커룩인데 진짜 근원지는 어딘지 알 수 없어요. 잘나가던 브랜드는 아르마니, 프라다, 구찌였어요. 너도나도 아르마니의 스커트 슈트를 입고, 까르띠에 숄더백을 메고, 페라가모의 리본 펌프스를 신었는데 이게 바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청담동 며느리 룩이에요. 저는 프라다 마니아였는데 단정한 프라다 재킷에 질 샌더 팬츠를 입고 체인이 달린 숄더백을 메고 다녔어요. 20살인데 30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성숙한 모습이었죠. 지금은 믹스매치가 유행이지만 당시에는 색을 맞춰 입어야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들었죠. 소재는 물론 브랜드를 맞춰서 입었는데 구두와 가방은 물론 의상까지 통일했던 기억이 나요. 그 시절의 스타일 아이콘은 심은하! 심은하 머리띠, 심은하 가방, 심은하 신발 등 그녀의 이름이 붙으면 모든 것이 완판이었죠.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하지 않지만 당시 무척 유행했던 아이템이 두 개가 있는데, 바로 헤어핀과 하얀 스타킹이에요. 에비타 페로니라는 브랜드의 크리스털 장식 헤어핀은 10만원을 호가했지만 불티나게 팔렸고, 지금 레깅스를 입듯 그 당시는 모두가 하얀 스타킹을 신고 3~5cm의 펌프스를 신었답니다. 생각해보면 제일 예쁠 나이에 자연스럽고 풋풋한 모습 그대로 다녔어야 했는데 너무 완벽하게 꾸미고 다녔던 건 아닌가 싶어요.” – 홍혜진(‘스튜디오 케이’ 디자이너)

1 2000년대 초반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프라다의 나일론 백팩. 2 스웨트 셔츠를 즐겨 입은 최보원. 3 지오다노 광고 속 전지현은 당시 여자들의 워너비였다. 4 10~20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나이키 맥스

1 2000년대 초반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프라다의 나일론 백팩. 2 스웨트 셔츠를 즐겨 입은 최보원. 3 지오다노 광고 속 전지현은 당시 여자들의 워너비였다. 4 10~20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나이키 맥스

 

Back to 2000

한국식 아이비리그 룩 “세기말 스타일은 폴로 같은 캐주얼 아니면 정장 스타일로 나뉘었던 것 같아요. 스웨트 셔츠에 치노 팬츠를 입거나 프라다나 구찌 스타일의 정장 차림이었죠. 두 스타일 모두 즐겨 입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템은 스웨트 셔츠예요. 그때는 옥스퍼드를 비롯해 유명 대학 로고가 적힌 디자인이 유행이었어요. 배낭여행 중에 굳이 옥스퍼드까지 가서 스웨트 셔츠를 사서 정말 마르고 닳도록 입었죠. 명품은 프라다나 구찌가 인기를 끌었는데 스포티한 디자인이 유행이었어요. 프라다의 스포츠 라인이 엄청난 인기였죠. 프라다 스포츠라고 적힌 운동화가 그렇게 쿨해 보일 수 없었어요. 나이키도 인기가 많았는데 여자는 맥스, 남자는 조던 시리즈가 유행이었어요. 지금도 나이키 운동화는 맥스만 신어요. 20살의 트렌드가 저의 취향에 배어 있네요.”
– 최보원(‘호야앤 모어’ 디자이너)
“밀레니엄 학번이라 불리던 00학번이에요. 대학 입학식에 헐렁한 셔츠와 치노 팬츠에 닥터 마틴 워커를 신고 당시 유행하던 가방 브랜드인 루카스 백팩을 메고 갔어요. 돈 좀 있으면 폴로 아니면 보다 저렴한 지오다노를 입었죠. 닥터 마틴에 열광했는데 그 당시에는 신발을 한두 치수 크게 신는 게 트렌드였어요. 당시를 제일 잘 표현하는 아이콘은 바로 전지현이에요. 10명 중에 8명은 긴 생머리에 캐주얼한 셔츠와 치노 팬츠를 입고 투명 메이크업을 했었어요.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의 워너비였어요.” – 최경원(스타일리스트)

1 스키니 팬츠 열풍은 케이트 모스로부터 왔다. 2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으로 주목받은 커스틴 던스트. 3 2006년 첫 선을 보인 마크 제이콥스의 스탬백은 그해 최고의 잇백. 4 당시 한창 인기를 끌었던 티어드 스커트를 입은 소지현

1 스키니 팬츠 열풍은 케이트 모스로부터 왔다. 2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으로 주목받은 커스틴 던스트. 3 2006년 첫 선을 보인 마크 제이콥스의 스탬백은 그해 최고의 잇백. 4 당시 한창 인기를 끌었던 티어드 스커트를 입은 소지현

 

Back to 2006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지금은 스트리트 패션이 유행이지만 제가 스무 살이던 2006년에는 ‘할리우드 스타 파파라치’ 사진으로 스타일을 배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파파라치 사진을 모아놓은 웹 사이트를 들락거렸죠. 케이트 모스, 기네스 팰트로, 카메론 디아즈 등 당시 옷 잘 입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리얼 룩이 가장 큰 인기를 모았는데 아직도 케이트 모스가 처음 스키니 진을 입고 왔을 때 충격이 생생해요. 청바지는 부츠컷과 스트레이트컷만 알던 제게 다리에 딱 달라붙는 팬츠라니! 개인적으로는 커스틴 던스트의 스타일에 가장 열광했어요. 그녀가 슬리브리스 톱에 빈티지 베스트를 걸치고 무릎을 덮는 티어드 스커트를 입은 사진을 들고 다니며 비슷한 스커트를 구입했어요. 그리고 여름 내내 티셔츠만 바꿔가며 그 티어드 스커트를 매일 입었는데 지금은 돈 주고 입으라고 해도 도저히 못 입을 것 같아요.” – 소지현(<보그> 온라인 에디터)

1 스트리트 패션 신의 슈퍼스타 안나 델로 루소. 2 거의 매일 레깅스를 입었던 고소현의 20살 시절. 3 하이톱, 그래픽 티셔츠, 비니 등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을 멋지게 소화한 이호정. 4 유니크한 스타일로 패션 블로거들의 표적이 되는 모델 한느 개비

1 스트리트 패션 신의 슈퍼스타 안나 델로 루소. 2 거의 매일 레깅스를 입었던 고소현의 20살 시절. 3 하이톱, 그래픽 티셔츠, 비니 등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을 멋지게 소화한 이호정. 4 유니크한 스타일로 패션 블로거들의 표적이 되는 모델 한느 개비

 

Back to 2010 & Now

스트리트 붐붐붐 “저희 때는 청바지를 스키니와 동일시했어요. 오히려 스키니에서 레깅스로 넘어가던 세대로 하의 실종 패션이 이슈였죠. 대학교 2학년 때는 프렌치 시크 열풍이었던 기억이 나요. 잡지를 보면 파리지엔, 프렌치 시크라는 단어가 항상 있었고, 쇼핑몰 또한 그런 스타일을 표방하는 곳이 부지기수였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가로수길이 가장 핫한 곳이었어요! 근처에 홍대가 있었는데도 유행하는 아이템이나 사람들의 스타일을 보기 위해 가로수길로 갔죠. 온라인 쇼핑몰에 올릴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고요.” – 고소현(모델)
“지금의 패션은 ‘스트리트’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정 연예인을 따라 하기보다 스트리트 사진을 더 많이 봐요. 트렌드는 힙합이 다시 유행하는 것 같기는 한데 딱 하나만 유행한다고 규정 지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 패션이 뒤섞이면서 다양한 스타일이 형성되고 있으니까요. 아이템도 무척 다양해서 특정하게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워요. 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 아닐까요? 예전에 유행했던 아이템들이 다시 유행하는 건 흥미로워요. 지금 친구들이 열광하는 ‘보이런던’은 1990년대에도 유행했다고 하더라고요. 브랜드의 경우 외국 디자이너보다 로우 클래식 그리고 스티브 J& 요니 P, 럭키 슈에뜨 같은 우리나라 디자이너 브랜드가 더 핫한 것 같아요! ” – 이호정(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