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찰나를 사진으로만 남기는 건 아쉽다. 다행히도 단편영화 수준에까지 이른 패션필름 덕분에 이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살아 있는 패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2011년에 만든 패션필름 중에서 화제가 된 것만 선별했다. 영상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사진가, 영화감독, 아트디렉터, 영화 예고편 전문 제작자에게 감상평과 별점도 부탁했다.

Prada

이 영상을 뽑아낸 주인공은 수년 동안 프라다의 광고 사진을 찍고 있는 스티븐 마이젤이다. 작품의 영감은 1920년대의 전설적인 재즈 여가수인 조세핀 베이커. 그녀를 닮은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그리고 원색의 줄무늬, 바나나 프린트 의상과 액세서리를 걸친 모델의 익살스런 춤사위가 이번 시즌 프라다 룩을 더욱 경쾌하게 빛낸다.

영화 예고편 전문 제작자 김기훈 복고풍 화면에 복고풍 편집, 그 속에 세련된 투박함이 있다. ★★★☆
사진가 홍장현 광고 사진 속 모델의 춤을 영상으로 보니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매력적이다. ★★★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김진형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감 덕분일까? 의상 자체만으로 충분히 멋지다. ★★★★
사진가 김보성 이 좋은 모델을 가지고 러시 앤 캐시 광고 안무를 선보이는 과감함 ! 지면 광고의 파워는 어디에 있나? 스티븐 마이젤은 지면만 찍고 집에 갔나?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의 반응이 궁금할 뿐이다. ★★☆
영화 감독 장철수 우등생 프라다는 뭘 해도 잘해 보이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

Chanel

파리-모스크바 컬렉션을 기념하며 2008년에 제작된 , 파리를 배경으로 모델 라라 스톤과 작업한 . 모두 칼 라거펠트가 직접 제작한 영상이다. 디자이너를 넘어 사진가이자 감독으로 활약중인 그가 올해는 2011 크루즈 컬렉션을 위해 메카폰을 잡았다. 완성된 필름의 제목은 . 프랑스 남부의 니스와 칸을 배경으로 샤넬 뮤즈인 안나 무글라스, 아만다 할레치, 크리스틴 맥미나미, 프레야 베하 등이 상류층의 건조한 삶을 연기한다. 물론 이들은 감독의 의도대로 모두 샤넬의 크루즈 룩을 입고 있다.

김기훈 패션필름의 영상은 언제 봐도 흥미롭다. 그 흥미는 ‘의미’까지 담고 있었다. ★★★★
홍장현 절제되지 않은 어떤 감정선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샤넬의 정신일까? 칼 라거펠트의 무한한 재능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장편 영화를 만들 차례! ★★★★
김진형 샤넬만의 고급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영상은 움직이는 화보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25분은 좀 지루하다. ★★★
사진가 김보성 ‘샤넬은 아름답다. 고로 여자는 샤넬을 입어야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단편영화. ★★★☆
장철수 부르주아의 생활은 때론 고독하다. 하지만 그 은밀한 매력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

Bottega Veneta

보테가 베네타는 첫 단편영화인 의 주제로 ‘여행’을 선택했다. 지난 2월 뉴욕에서 촬영된 영상은 사진가 겸 영화 감독인 크리스찬 웨버가 완성했는데, 두 남녀를 비롯해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너처 러기지백과 트렁크, 여행 소품인 파우치도 화면 곳곳에 등장한다. 텍사스 출신 밴드 ‘발무레이’의 배경음악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영상이 탄생했다.

김기훈 영화 예고편을 작업할 때 무엇이 가장 어렵냐고 물으면 정서의 표현이라고 답한다. 섬세한 감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수를 보낸다. 세련된 영상미로, 깊은 고독을 표현한 감독의 재능에 ! ★★★★☆
홍장현 영화적인 발상, 과감한 나열, 거침없는 생략이 집중도를 높인다. 짧은 영상 속에 보테가 베네타의 제품은 감독의 의도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
김진형 몰입을 높이는 배경 음악과 남녀상열지사의 스토리는 영상에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2% 부족하다. 잔잔한 여운만 있다. ★★★☆
김보성 영상의 정교함을 보니 사진가가 만든 것이 맞나보다. 차별화된 영상미가 가히 패션필름답다. ★★★★
장철수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너처 제품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영상이다. 패션 필름의 목적을 잘 살렸다. ★★★

Vanessa Bruno

스테파니 디 구스토 감독과 배우이자 모델인 루 드와이옹이 지난 시즌에 이어 2011년 봄/여름 패션필름을 위해 다시 만났다. 영상에서 두 주인공, 루 드와이옹과 제시카 조프가 뿌리는 네온색 가루는 바네사 브루노가 새롭게 선보이는 색상을 의미한다. 편안한 디자인의 저지 원피스, 민소매, 쇼츠 등을 입은 그녀들은 마치 아이가 된 듯 뛰어놀며 자유분방한 움직임을 연기한다.

김기훈 영화 예고편 작업과 가장 닮아서 친근했고, 이질적인 화면 속에서도 흥미로운 스토리와 두 인물의 감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들처럼 어린아이 같은 재기로 아름다움을 즐기자 ! ★★★★
홍장현 정형화되지 않은 표현력이 자극적임에도 보는 내내 편안한 이유는 뭘까? 차 안, 바다, 숲 속 등 장면 전환이 많았는데, 억지스럽기보다는 자연스러웠다. 이게 바로 바네사 브루노의 힘일까 ? ★★★★
김진형 감각적인 교차편집과 강한 인상을 남기는 멋진 영상미가 눈에 들어온다. 상황에 따른 음악적 반전도 인상깊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모델의 어설픈 드럼 치는 솜씨 ! ★★★★☆
김보성 개성 넘치는 두 소녀의 움직임에서 볼 수 있는 자유 혹은 방종, 불규칙한 카메라의 움직임 속에서는 파격미가 느껴진다. 감독의 짜임새 있는 연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
장철수 그네인 줄 알고 올라탔더니 바이킹이다. 바로 이 느낌이었다 ! ★★★★★

Customellow

한 편의 동화책 같은 커스텀멜로우의 패션필름, ‘Boy, myself ’. 요즘 시대의 남성이 꿈꾸고 그리워하는 ‘소년’이 이 영상의 주제다.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스토리보드 작가 이승남, 사진가 목진우 등 11명의 국내 아티스트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 제작 과정은 블로그(blog.naver.com/boymyself)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기훈 간결한 표현은 때론 완성보다 강력한 마력을 지닌다. 어린 시절의 꿈이 그러하듯. ★★★
홍장현 아날로그적인 애니메이션과 담백한 음악이 자유로운 이미지의 브랜드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기존에 보여주던 광고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영상 속 소년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좋았다. ★★
김진형 요약하자면 ‘일러스트 애니메이션과 소년 감성의 배경 음악의 조화’라고 할까?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기분 좋은 만남이다. 잊고 있던 나의 유년기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
김보성 최근, 3D 애니메이션이 스크린을 메우고 있지만 꼭 화려할 필요는 없다. 간결해도 탄탄한 연출만 받쳐준다면, 애니메이션 자체의 감동은 배가 된다. 커스텀멜로우 영상이 매력적인 것도 이 때문인 듯. ★★★
장철수 빨대가 아닌 티스푼으로 차를 마신 느낌이랄까? ★★★★

Miu Miu

미우미우에서는 2011 봄/여름 시즌부터 ‘Feminine Love Affair’를 주제로 연출한 단편영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영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통해 각본가 겸 감독으로 인정받은 조 카사베티스가 그 첫 번째 감독이다. 그녀가 촬영 장소로 선택한 곳은 파우더룸. 영화 <브로큰 잉글리시>, <사랑해, 파리> 등에 출연한 여배우 제나 로우랜즈를 엄마로 둔 그녀에게 파우더 룸은 특별한 공간이었을 것 같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성 간의 미묘한 감정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김기훈 선남선녀가 당신 옆을 지나간다면? 남자는 여자를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여자 역시 여자를 바라볼 것이다. 영상으로 여자의 오묘한 심리를 조금 깨달았다. ★★★★
홍장현 파우더룸 속의 미묘한 감정선을 통해 내재된 여성의 ‘욕망’이 잘 표현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브랜드 이미지와 잘 맞는지는 모르겠다. ★★
김진형 전체적인 미장센은 고급스럽고, 배경음악과의 조화도 멋지지만, 뭔가 일어날 듯한 분위기에서 그치고 마는 패션 영상 특유의 애매모호함이 아쉽다. ★★★☆
김보성 저 예산 단편영화 같은 패션필름이다. 뛰어난 완성도보다는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데까지만 성공했다. ★★
장철수 스페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애써 멋 내지 않은 매혹에 감염됐다. 영상 속 배우처럼. ★★★★

Mvio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상혁이 단편필름 〈I Like That〉을 제작했다. 2011 가을/겨울 컬렉션 의상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6가지 제품(저지, 점퍼, 슈트, 블루종, 니트, 코트)을 고르고, 이에 해당하는 6가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소소한 일상의 영상을 통해 한 개인의 취향과 놀이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상의 의도였다.

김기훈 애매모호한 메시지로도 모자라 재미까지 없다. 차라리 좀 더 모험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
홍장현 브랜드의 철학이 위트 있는 전개방식과 잘 어우러진다. 옷의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는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상혁의 성향이 잘 묻어 나온 요소. ★★★★
김진형 의상에 따라 영상을 나눴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획 의도는 훌륭하지만 이에 비해 배우의 행동과 연출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옷에 관한 스토리였으면 어땠을까? 니트에 관해서, 슈트에 관해서, 제대로 보여줬다면 재미난 에피소드가 됐을 것이다. ★★★★
김보성 혼자 놀기의 진수의 끝장을 보여줬다. 재치 있는 연출도 한몫했다. 패션필름이라고 꼭 거룩한 척 무게를 잡을 필요는 없단 얘기다. ★★★☆
장철수 싱싱한 리듬 뒤에 따르는 따끈한 반전이 매력적이다. 감독의 의도였나? ★★★★

Citizen

시티즌이 2011년 바젤에서 선보인 리미티드 에디션, ‘Eco-Drive Satellite Wave’ 기능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SF 애니메이션 <애플시드 서틴>의 장면을 빌려왔다. 영상은 눈부신 녹색 광선이 도시를 비추는 첫 장면으로 시작된다. 두 주인공 듀난과 브리아레오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미래 도시인 ‘오륜뽀스’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들의 손목엔 미래적인 디자인의 시계가 채워져 있다. 이 영상 속에서 녹색 광선은 위성의 신호를 감지해 시간과 날짜를 맞추는 시티즌 시계의 특징을 묘사한 것이다.

김기훈 만약 내가 ‘애플시드’를 알지 못했다면 훨씬 재미있게 봤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지도. 내가 사랑하는 듀난은 절대 이렇지 않아! ★★
홍장현 3D, 모션그래픽, SF 애니메이션 등 테크닉적인 영상으로 시티즌의 첨단 기술을 연상할 수 있었다. 바젤 페어에서 선보인 이유가 있었다! ★★★
김진형 미래형 시계인가. SF적인 애니메이션은 눈길은 끄나. 글쎄, 브랜드 이미지 상승과 구매로까지는 연결되지 않을 듯. ★★☆
김보성 다시 보고 다시 봤다. 하지만 보도자료를 보기 전까지 위성으로 시간을 맞춘다는 내용인 줄 몰랐다. ★★☆
장철수 시계를 통해 봐야 하는 것은 시계가 아닌 시간이었다! ★★★★

Swarovski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스와로브스키가 크리스털의 우아함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는 이 영상은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사진가인 브뤼노 아베이가 만들었다. 영상을 요약하자면 ‘내면의 자아를 찾아 떠나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때로는 영롱하고 때로는 몽환적인 크리스털의 빛을 담아낸 감각적인 영상미가 돋보인다.

김기훈 예고편이든 광고든 영상의 목적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화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꿈을 꾸지 않을까? 비로소 그 꿈이 실현된 영상을 내 눈앞에서 만났다 ! ★★★★☆
홍장현 주얼리 브랜드의 특성과 영상미를 모두 즐길 수 있다. 화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링의 다양함이 스토리 전개와 잘 어우러져 집중하게 만든다. ★★★
김보성 태몽의 환상이란 바로 이런 것? ★★★★
김진형 스와로브스키만이 표현할 수 있는 크리스털의 아름다움과 몽환적인 영상의 조화! 이 모든 것을 감탄할 때쯤 임산부가 꾼 태몽임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반전이었다 ! ★★★★☆
장철수 크리스털이 안내하는 판타지의 세계에서 눈부신 영상의 빛을 보았다. 영롱하게 빛나던 크리스털은 아름다웠다. ★★★★☆

3.1 Phillip Lim

필립 림이 올해 CFDA 스와로브스키 어워드의 남성복 디자인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을 자축하며, 단편 영상 를 선보였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모든 옷은 3.1 필립림의 2011 가을/겨울 컬렉션 제품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 일상적인 룩도 장소, 음악, 스타일링에 따라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를 위해 촬영 장소는 텅 빈 쇼핑몰과 주차장을 골랐다. 옷만 잘 만드는 디자이너인 줄 알았는데 영상도 그에 못지않게 잘 만들었다.

김기훈 지나치게 감각적이어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한 장면을 봐도 패션필름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
홍장현 모든 화면에서 극명하게 부각되는 그림자와 기하학적 공간이 컬렉션 테마를 시각적으로 잘 전달했다. ★★★
김보성 조형적인 영상미를 잘 살렸다. 단조로운 내용이 아쉽지만 강렬한 대비 때문일까? 힘이 느껴진다. ★★★★
김진형 모던한 색감과 깔끔한 분위기의 조화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잘 설명한 것 같다. 단지, 강렬한 한 컷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장철수 그의 손을 거쳐 도시 속에 사는 남성의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됐다. ★★★☆

Incase

앤디 워홀, 스티키 몬스터 랩에 이은 인케이스의 아홉 번째 협업 파트너는 로스타다. 그래픽 디자인과 추상화 그림으로 유명한 재미교포 아티스트 로스타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혼란스러운 감정을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작업 과정을 담은 단편영상에서는 그의 거침없는 드로잉 기술을 볼 수 있다.

김기훈 과거,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와인병에서 찾을 수 있듯이, 언젠가는 협업 작품이 고스란히 담긴 아이폰 케이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홍장현 섬세한 아트워크의 제작 과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클로즈업 앵글만한 것도 없다. 붓을 쥔 아티스트의 손은 빠르지만 섬세하며 치밀하게 움직였다. ★★
김진형 훌륭한 결과물의 작업 과정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 결과물이 나의 스마트폰과 연결되니 구매 욕구가 생길 수밖에. ★★★★
김보성 재미난 이야기가 없어서 였을까? 패션필름의 범주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CF의 긴 버전인 듯. ★★★☆
장철수 예술가, 그들의 작업, 그리고 차별화된 결과물이 만나 또 하나의 예술을 낳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