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등 스타일에 예민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본‘영화 속 최고의 겨울 룩’은 무엇이었나. 그들의 시선으로 해석된 겨울 의상 이야기 덕분에 이들 영화를 찬찬히 다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회적인 미니멀룩 vs. 손뜨개 니트 룩의 <로맨틱 홀리데이>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천직이라고 믿고 사는 나에게 영화 감상의 기준은 늘 배우들의 의상이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아무리 유명 브랜드의 값비싼 옷을 휘감고 나온다고 한들, 의상이 배역이나 공간과 따로 놀거나, 줄거리가 형편없다면 그 영화는 졸작일 수밖에 없고, 반면 영화의 요소요소가 한데 잘 어울려 영화 속 의상을 더욱 아름답게 빛낼 때의 감동은 쉬이 잊을수가 없다. 내게 그런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로맨틱 홀리데이>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겨울날,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뭐 따뜻한 크리스마스 영화쯤 되겠지!’ 라며 별 생각 없이 보기 시작한 이 영화는 서서히 나의 몸을 일으키게 만들더니 급기야 마음까지 앗아갔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LA에 살고 있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인 카메론 디아즈와 영국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케이트 윈슬렛은 우연한 기회로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서로의 집을 바꿔 생활하게 된다. LA에서 날아와 영국 시골 오두막집에서 살게 되는 카메론 디아즈의 패션,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검은색 실크 블라우스에 흰색 울 펜슬 스커트를 입고 있던 LA에서의 그녀는 부드러운 손뜨개 니트 의상으로 갈아입으며 시골 생활의 여유자적한 모습을 그려낸다. 그녀의 니트 룩을 더욱 세련되게 빛내주는 것은 시골 오두막집의 인테리어. 거실의 벽난로, 시골풍의 패브릭으로 감싼 소파, 침대 위의 벨벳 담요 등은 아이보리색과 베이지색, 회색의 톤 온 톤 니트 스타일링에 향수 짙은 감성을 드리운다. 시골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녀가 보여준 캐멀색의 여행 가방과 오버사이즈 선글라스의 젯셋 룩, 주드로와 사랑에 빠지면서 입고 나오는 몽골리안 양털 코트와 앙고라 니트 머플러, 다시 LA로 건너오면서 보여주는 세련된 레이디룩 등 완벽히 계산된 스타일링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아주 특별하다. – 최혜련(패션 스타일리스트)

설원 위의 아름다운 서사극 <러브 오브 시베리아>
이 영화는 꼬박 세 번을, 그것도 온몸과 마음을 스크린에 바짝 붙인 채 감상했었다. 처음 두번은 한창 세계 복식사에 눈을 뜨면서 고전 영화에 푹 빠져 있었을 때, 또 한 번은 작년 이맘때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드넓게 펼쳐진 설원의 웅장함과 러시아 사관생도들의 보수적인 밀리터리 룩, 여주인공인 줄리아 오몬드의 고전적인 드레스와 액세서리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차가운 날씨 때문에 더 아련하게 기억되는 두 주인공의 격정적인 사랑…. 알싸한 겨울이 되면 매번,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가 생각나는 이유다. 1885년의 모스크바가 배경인 이 영화는 특히 설원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영상이 압권이다. 그 풍경은 좁은 땅덩이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위엄을 담고 있는데, 사회주의 시절의 차갑고도 보수적인 러시아를 닮아 있다. 네이비색 제복을 입은 사관생도들의 젊음과 패기, 캐멀색 롱코트를 입고 풍성한 코사크 해트를 쓴 장교들의 권위적인 분위기, 그리고 미국 스파이 역할의 줄리아 오몬드가 보여주는 페이즐리 무늬의 스카프와 19세기풍의 붉은색 드레스, 모피 케이프 코트, 벨벳 초커, 모자 위로 흘러내리는 베일 장식 등 화려함을 부각한 러시안 무드의 의상은 하얀 설원 위라 더욱 또렷이, 그리고 더욱 명확히 대비되며 드러난다. 그 덕분에 영화 전반에 걸쳐 묘한 긴장감이 흐르며,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는 애절하게 전달된다. 줄리아 오몬드와 사랑에 빠진 죄값으로 시베리아로 유배되고마는 사관생도역의 올렌 멘시코프의 순수한 눈빛도 잊을 수 없다. 특히 그가 기차역에서 사관생도 동기들과 울먹이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군인들의 힘차지만 슬픈 목소리로 흘러 나오던 모차르트의 ‘더 이상 날지 못하리’가 지금도 귓가에 아련하게 맴돈다. – 박선영(<얼루어> 패션 디렉터)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재회 <러브 어페어>
이미 1932년, 39년 두 번에 걸쳐 제작된 영화를 리메이크한 1994년 작 <러브 어페어>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출중한 음악과 아네트 베닝의 청량한 모습으로 1990년대의 명작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라면 대한민국 드라마의 결정체 <사랑과 전쟁>에 가까워야 마땅하겠으나 <러브 어페어>는 1990년대적인 풍요로움이나 그 흔한 베드신 하나 등장하지 않으면서 사랑 그 자체의 순결함만을 끝까지 묵묵하게, 마치 산타를 돕는 루돌프처럼 밀고나간다.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고, 오해가 있고, 다시 서로를 그리워하는, 뻔한 스토리가 결코 식상하지 않았던 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의상과 분위기가 클래식하면서도 담백했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성층권까지 부상했던 90년대였지만, 아네트 베닝은 명성높은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옷을 선택하는 대신 간결한 블랙 앤 화이트 의상만으로 순결한 품성을 드러낸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깨달아가는 진지한 남자 주인공 역의 워렌 비티 역시 화이트 셔츠와 면 팬츠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더 이상 어리지 않은, 그래서 순간순간이 더 소중한 그들에겐 언어든 옷이든 과장된 모든 건 과유불급일 테니까. 그들이 서로의 상황을 정리하고 재회하기로 정한 날짜 5월 8일, 연인은 만나지 못했지만 결국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재회한다. 쓸쓸한 내면을 감추기에 좋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와 사랑의 상처를 감싸는 아이보리색 캐시미어 니트를 입은 여자… 그들이 다시 만나 마침내 필생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 순간, 서로의 몸과 마음을 모두 배려하는 클래식한 의상은 담백한 감동으로 빛난다. 트렌치코트와 캐시미어 니트 스웨터는 일 년 중 우리와 만나는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퇴적될수록 빛을 내는 좋은 친구와도 같다. 내가 매년 돌아오는겨울을 기다리고, 다시 <러브 어페어>를 보며 아름다운 인연에 눈물짓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 매니저)

1960년대의 프렌치 시크 <비브르 사 비>
1962년도 영화란 말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보면서 제작 연도가 믿기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이 심정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영화를 보면서 한 컷이라도 억지스러운 의상이 없는 영화를 찾을 확률은 높지 않은데 1960년대 프랑스 작가주의 영화를 보면참 군더더기 없다. 계산된 할리우드 영화가 백화점이라면 이들 영화는 맞춤양품점쯤. 이런면에서 장 뤽 고다르가 감독한 1962년산 <비브르 사 비>는 샤넬의 주옥같은 컬렉션을 모셔놓은 것 같았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배우 안나 카리나(나나 역)의 보브 커트는 요즘도 웬만한 헤어 디자이너는 그 느낌을 살려내기 어려운 감도의 커트(이런 커트가 나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당장 수십 년 유지한 긴 생머리를 자르고 싶을 만큼!)이고, 검은색 마스카라로 공들인 풍성한 속눈썹, 섬세한 아이라인, 차분하고 깊은 톤의 아이섀도 메이크업, 지적인 명도의 입술은 심지어 올해 유행할 룩이다. 의상은 더 인상적이다. 으슬으슬 추운 겨울 파리의 고풍스러운 골목에 어울리는 검은색 롱 트위드 코트와 단정한 주름이 잡힌 화이트 셔츠 아래 몸매가 드러나는 H라인 체크 스커트, 검은색 기본 카디건의 절제된 스타일링은 매춘부를 묘사하는 감독의 참신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나는 옷차림으로 그녀의 아이덴티티에 선입견을 갖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자신의 순수한 꿈인 영화배우를 동경하는 초반의 나나부터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 죽음직전의 나나까지 일관되었던 의상은, 의상으로 뭔가 세월이나 상황이 변했음을 설득하려는 많은 영화에 일침을 가한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 의상. 솔직히 한마디만 한다면 기본 아이템으로도 세련되게 표현해낼 수 있는 보디를 먼저 만들고 시도하는것이 좋겠다. 생각해보라. 코트를 제외한다면 이건 검은색 카디건, 화이트 셔츠, H라인 스커트만으로 만드는 승부다. – 강미선(<얼루어> 뷰티 디렉터)

니트 레이어링의 진수를 보여주는 <러브레터>
나는 겨울이 되면 체크무늬와 니트 그리고 교복으로 기억되는 영화 <러브레터>를 다시 보곤한다. 이번 원고를 의뢰받고 한밤에 또다시 이 영화를 틀었다. 다른 영화를 볼 법도 한데, 눈내리는 겨울만 되면 왜 꼭 <러브레터>가 생각나는 것일까. 분명 줄거리도 아름답지만 줄거리를 더 아름답게 빛내는 영화 속 의상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른 영화 의상처럼 화려한 것도, 그렇다고 트렌디한 것도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환상을 안겨주는데 영화 의상이 일조했다고 본다. 그것은 주인공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줌과 동시에 배우의 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조용한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장면, 하얀 눈밭에서 ‘오갱끼데스까’를 외치던 여주인공 히로코의 모습은 스크린 안에서의 앵글과 배우(모델로 보이고 마는)의 의상에 유독 민감한 사진가에게조차 그저 멋진연기를 하는 배우의 모습, 그리고 아름다운 설원의 한 장면으로 각인되었다. 묵묵히 배우의 연기를 도왔던 설원 위의 검은색 코트와 주황색 니트 스웨터는 죽은 연인을 생각하며 영원한 사랑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차분하고 순수한 성격을 잘 담아내고 있다. 반면, 죽은 히로코의 연인인 이츠키의 과거를 회상해주는 또 다른 이츠키는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성격에 맞게 체크무늬 셔츠와 붉은색 니트 머플러, 퀼팅 장식의 외투 등 편안하지만 제멋대로인 겨울 의상을 걸친다. 최신의 스타일링을 고집하지 않은 덕에 이 영화는 10년이 넘은 지금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거기다 ‘니트’라는 포근하고 노스탤지어적인 소재 선택까지. 이는 분명하게 계산된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클래식’ 영화로 남기 위해영화 속 의상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 오중석(사진가)

1950년대 레이디라이크 룩의 <파 프롬 헤븐>
잘록한 허리와 부풀린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2010 가을/겨울 루이 비통 컬렉션의 모델을 보는 순간, 나는 영화 <파 프롬헤븐>을 떠올렸다. 1950년대 무드의 레이디라이크 룩을 입고 열연한 줄리 앤 무어의 우아함이 돋보였던 영화. 부족할 것 없는 일상에서 여자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옷 매무새를 유지하며 한 남자의 완벽한 아내로 자리한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는 새틴 소재의 플레어드레스를 입고 연보라색 실크 스카프를 매고 단정한 펌프스를 신고 있는 그녀는 1950년대 무드의 보수적이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제대로 재현해낸다. 부유한 동네 친구들 역시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각양각색의 A라인코트를 입는 고급스럽고 단정한 겨울 룩으로 코넬리컷 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빛낸다. 어느 날 알게 된 남편의 외도, 그리고 다른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고백. 그럼에도 부풀린 가슴과 잘록한 허리는 유지해야만 하는 ‘우아한’ 여자는 그 완벽한 의상 때문에 더욱 슬퍼 보인다.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진주 목걸이를 한 채 붉은색의 캐시미어 코트에 붉은색의 실크 장갑을 낀 줄리 앤 무어의 모습은 애써 슬픔을 감추려는 듯 아슬아슬하지만, 다채로운 색상의 플레어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1950년대 무드의 레이디라이크 룩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 박형준(패션 스타일리스트)

흑백 영화 속의 밀리터리 룩 <쉰들러 리스트>
카메라 감독이라는 직업은 영화를 감상할 때 이상한 습관을 갖게 한다. 나는 스크린 속 빛을 쫓는다. 광선에 따라 달라지는 배우의 표정, 옷의 색깔, 공간의 분위기가 존재한다면 믿을수 있을까. 영화 속 요소들이 빛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영상의 미적인 가치는 미묘하게 달라지며 그걸 쫓기 시작하는 관객의 눈도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흑백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는 걸작 중 걸작이다. 감동적인 줄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흑백 영화 속에서도 오묘한 빛으로 각기 다른 분위기를 내는 영화 속 의상은 그 어떤 화려한 의상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분명 흑백 영화인데, 빛의 동선에 따라 미묘한 색채가 살아나는 남자의 슈트와 밀리터리 코트는 내 눈에서만큼은 결코 딱딱한 겨울 룩이 아니었다. 또한 넥타이가 좁은지 넓은지, 칼라의 깃이 솟았는지 누웠는지, 모자를 썼는지 안 썼는지, 코트의 길이가 긴지 짧은지 등 의상에 따라 배우들의 계급을 분류한 치밀함도 박수 받을 만하다. 아, 그리고 밀리터리 코트를 입은 군인들 사이로 나타난 어린 소녀의 붉은색 코트 룩은 과연 흑백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의 화룡점정이다. – 백승우(MBC카메라 감독)

‘잔인하게 우아한’ 트위드 재킷 룩의 <세비지 그레이스>
‘겨울 패션’이라는 선정 기준이 있지만, 이 영화는 겨울의 ‘크루즈 패션’의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1972년, 런던의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세비지 그레이스>는 근친 상간, 존속 살해라는 어두운 소재를 다루지만, 정작 그 속의 인물들은 줄곧 태연한 표정이다. 속은 찢기고 텅 비었을지언정 겉으로는 고고하게 살아야 하는 그들은, 플라스틱을 발명한 베이클랜드 명문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하이엔드 패션은 극도로 긴장과 허무함을 끌어올려 말 그대로 ‘잔인하게 우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아들에 대한 집착과 질투심에 불타는 바바라 역의 줄리 앤 무어. 그녀는 늘 곱게 세팅된 머리에 샤넬 트위드 재킷을 입고 진주 목걸이를 빈틈없이 걸친다. 심지어 아들의 여자 친구와 밀월여행을 떠난 남편을 쫓아 공항에 갈 때도 붉은색 실크 드레스를 휘감고 있다. 상류사회에 입성했지만 낮은 출생 신분과 얄팍한 지식으로 인해 귀부인을 ‘연기’해야만 하는 그녀에게 삶이란 ‘치장의 연속’인 것이다. 특히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붉은색 블라우스와 트위드 재킷(칼 라거펠트가 줄리 앤 무어를 위해 특별 제작한)을 차려입은 장면에서의 그녀는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흘린다. 불안정한 눈빛을 한 아들 토니 역의 에디 레드메인 역시 화려하진 않지만 한눈에도 좋은 소재와 날렵한 패턴의 산물임이 분명한 옷들만 골라 입고 있다. 이 가느다란 몸의 영국 청년은 마린 티셔츠와 흰 반바지(아마도 구찌의 크루즈 룩)를 입은 소년과 몸에 착 붙는 잿빛 슈트(아마도 지방시)를 입은 남자를 자연스럽게 오간다. 특히 프랑스와 마요르카를 여행할 때 입은 밋밋한 흰 셔츠는 그의 얼굴 가득한 주근깨마저 아름답게 만들었다. 상위1%의 의생활이 이토록 치밀하게 구현된 데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1950년대 미국식 레트로 풍 의상을 디자인한 가브리엘라 살라베리의 공도 크지만, 그 비밀은 따로 있다. 바로 실제 인물인 바바라 베이클랜드의 옷과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을 적극 활용했던 것. 실제보다 더 확실한 재현은 없는 법이니까. – 정윤주(<보그걸> 피처 디렉터)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겨울 스타일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너는 참 좋겠다. 세상 온갖 예쁜 옷들을 죄다 입어볼 수 있으니까!’ 친구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이유 때문에 평소에는 편한 옷만 선호하는 역효과가 있다. 편한 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더욱 근사한 스타일링이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난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스타일을 감상하는 일이 즐겁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인 그녀에게서 나 역시도 무궁무진한 스타일링 팁을 훔친다. 그런 면에서 영화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의상을 감상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일단 그녀가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귀가 솔깃해지지 않나. 게다가 마치 그녀의 실제 옷장에서 꺼내 입은 듯한 영화 속 의상들은 은근한 멋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예를 들면 목이 늘어진 저지 티셔츠도 그녀가 입으면 금세 세련되게 ‘봉주르’ 인사한다. 저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칼라가 큼직한 회색의 모직코트를 걸친 그녀의 선택은 검은색 털부츠와 스웨이드 소재의 크로스백. 이것이 바로 그녀식의 겨울 룩이다.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아이템에 드라마틱한 액세서리를 살짝 곁들이는 센스는 영화를 보는 내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금속 버튼 장식의 밀리터리 코트에 검은색 롱부츠를 신고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마침 근사한 빈티지 자동차가 액세서리처럼 서 있다.다른 배우였다면 분명 자동차가 주인공으로 보였을 만큼 근사한 차였다. 싱글 생활에200% 만족하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우리 또래의 여자들이 공감할 만한 줄거리도 꽤 괜찮다. – 이영진(모델 겸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