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멋쟁이들은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스타일을 완성할까? 그녀들의 옷장을 들여다보고, 취향과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면 셔츠와 드레스는 모두 미우미우(Miu Miu).

면 셔츠와 드레스는 모두 미우미우(Miu Miu).

 

 

취향 좋은 20대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 좀 어려운 일이었다. 취향이 좋을 것 같은 20대를 두고 김예림을 떠올린 건 목소리, 눈빛, 태도의 색이 하나로 분명했기 때문이다. 옷을 잘 입고 스타일이 그 누구보다 탁월해서가 아니다. 순수한 소녀에서 농염한 여자의 분위기까지 아우르는 김예림은 세상의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이미지화한다면 무엇에 비유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김예림은 ‘오로라’라고 답한다. “오로라는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색들이 각각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워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오묘한 빛이 되고 싶어요.” 그녀는 유연하고 즐거운 사고로 세상을 받아들인 후 김예림식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듭하며 분명 10년 뒤에도 인터뷰를 하고 싶은 멋진 여자가 되어 있을 것 같다.

 

이번 앨범 참 좋았어요. 예림 씨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 음색이 정말 다양한 비트와 멜로디와 잘 어울린다는 거예요. ‘이럴 것이다’라는 관념을 깨버리죠. 그런 의외성이 좋아요.
톤이 나긋나긋하고 몽환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말하듯이 노래하는 편이라 더 그럴 수도 있어요. 목소리에도 성격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아요. 제 성격이 극과 극이거든요. 사람들은 제가  낯을 가리고 쉴 때면 집에서 안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친구들이랑 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 엄청 좋아해요. 작업할 때는 분명 개인적인 면도 있는데, 활동적이고 적극적이거든요. 강한 비트의 노래엔 그런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성격이 나오는 것 같아요.

혼자 다니는 거 부담스럽지 않아요? 사람들이 알아볼 것 같은데. 
며칠 전엔 혼자 기분 전환 겸 포에버 21에 가서  액세서리를 샀어요. 혼자 다니면 오히려 사람들이 제가 김예림인지 잘 몰라요.

아티스트의 경우 그 사람의 캐릭터가 결과물에 반영되기 마련이죠. 취향은 어때요?
저에게 취향은 무궁무진한 거예요. 그래서 쉽게 바뀌어요.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서인지 이게 좋았다가도 또 저게 좋았다가 그렇거든요. 푹 빠진 디자이너의 옷이 있으면 쭉 입다가 어느 순간 안 입게 되요. 영화도 그래요. 제 취향은 흔들리는 거예요. 그리고 음악도 그렇지만 패션도 장르가 무너지는 시대잖아요. 상반된 것들이 공존하는 게 좋아요.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봐요?
그렇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경험할 나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옷 입는 스타일은 어때요?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보는 편인가요?
스타일은 취향보다 고정적이에요. 자연스럽고 심플하게 입는 것이 좋아요. 어릴 때는 바지만 입었어요. 편안한 것이 예뻐 보이더라고요.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앨범이 나올 때마다 콘셉트가 정해지고  화보 촬영도 하게 되니까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해볼 기회가 많아요. 오늘 입은 옷도 시도해보니 좋은데요. 평소에 이렇게 과감한 프린트의 옷은 잘 안 입는데 사랑스러워 보여서 재미있어요. 이렇게 하나씩 해보면서 ‘이런 옷을 입으면 내가 이렇게 되는구나’라고 알게 되는 과정이 즐거워요.

물론 성인이 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슈퍼스타 K> 출연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에요. 다양한 시도 중에 본인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 스타일이 있나요?

어떤 것이 딱 제 스타일인지 아직 정의 내리진 못했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지나치게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건 잘 안 어울린단 거예요.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자연스러우면서 강한 면이 함께 있는 그런 류가 잘 어울려요. 그건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스무 살이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겠죠? 
맞아요.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 일을 시작했으니까 모든 게 변했죠. 관심 있는 분야에 파고드는 면이 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함께 호흡을 맞추다 보니 상대에 대해 관대해져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이야기를 너무 들어서도 안 되잖아요.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취향도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내 고집이 있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는 취향은 의미가 없어요. 그렇다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똑같이 하는 건 취향이라고 할 수도 없죠.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언더커버, 아크네, 생 로랑이요. 생 로랑은 적당히 글래머러스하면서 세련된 것 같아요. 너무 예쁜데, 딱 내 옷같은 생각은 안 들어요. 왠지 앙상하게 마른 사람이 입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보고 좋은 것과 입어서 예쁜 거랑은 좀 다르니까요.

취향이 명확해지고 기호가 분명해지는 건 삶에 어떤 의미일까요?
자기 자신이 명확해지는 거니까 좋은 것 같아요. 새로운 것들을 언제나 환영한다면 말이죠. 전 책을 읽을 때 사람을 묘사하는 글귀를 좋아해요. 누군가를 마주하고 있어도 볼 수 없는 것까지 느낄 수 있잖아요. 취향이 분명해진다는 건 사람을 묘사해놓은 단어 하나하나를 읽을 때의 기분일 것 같아요. 자신만의 기호가 있다는 것은 멋있는 거죠.

브라운관에서 봤을 때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대화를 해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눈빛이나 분위기가 그런가 봐요. 생각이 많아 그런 게 아닐까 해요.

멋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누구예요?
레이 세아두요. 패셔니스타로 불리는 사람들은 보통 저마다 시그니처 룩이라는 게 있는데, 레이 세아두는 딱히 그런 것 없이도 무슨 옷을 입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거든요. 내면의 정체성이 뚜렷해서 어떤 옷이든 자기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똑같이 명품을 입었는데 한 사람은 ‘이 옷 때문에 멋있어 보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다른 또 한 사람은 ‘내가 입으면 멋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요? 교과서적인 말 같지만 멋은 내면에서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본인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때는 언제일까요?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요. 감정 상태와 외부의 요소가 합일될 때가 있어요. 나다운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제 취향, 남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제가 상상하던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앞으로 어떤 여자가 되고 싶어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요. 누구보다 옷을 잘 입고, 누구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저에겐 의미 없어요. 제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것을 받아들이는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Her Essential Items

취향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하는 김예림의 옷장은 점점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데님 팬츠, 쇼츠, 여성스러운 플리츠 셔츠가 있는가 하면, 록적인 바이커 재킷,  워커 부츠 등 쿨함이 느껴지는 날 선 아이템도 공존한다.

 

1 “클래식 샤넬 백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보이 샤넬백을 보고 마음을 바꿨어요. 빛바랜 체인 장식과 블루 컬러 가죽은 어떤 룩에도 무난하게 잘 어울려요.제가 번 돈으로 처음 장만한 건 알렉산더 왕의 백이에요.”

2 선글라스는 주로 검은색을 꼈는데, 레오퍼드 프린트 선글라스는 이 카렌 워커 제품이 처음이었다. 지금 가장 많이 쓰고 다닌다.

3 이빨 모양의 지방시 목걸이는 첫눈에 반해 샀다. 올라잇으로 활동할 때 흰색 크롭트 티셔츠에 데님 팬츠를 입고 다른 목걸이와 레이어드했었다. 평범한 룩에 힘을 실어주어서 좋다.

4 신발의 반 이상은 검정이다. 기분 전환용으로 샀는데 여성스러운 의상에 매치하면 뭔가 쿨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아크네는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 데님을 패치한 흰색 가죽 재킷은 아주 더운 여름을 제외하고 사시사철 입는다.

비엘케이 데님 팬츠는 형태의 흐트러짐이 적고 깔끔한 멋을 전한다.

7 코스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홍콩에서 산 화이트 셔츠. 앞에는 장식이 없고, 뒤에는 주름 장식이 있다.

8 “미국에 살 때 빈티지 숍에서 구입한 5달러짜리 데님 팬츠를 잘라 쇼츠로 만들었어요. 편해서 자주 입게 돼요. 이처럼 꾸밈없는 아이템은 제 취향을 대변해요.”

투박한 멋이 나는 올세인츠 재킷은 파리에서 구입했다. 재킷은 묵직한 느낌의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10 마땅한 첼시 부츠가 없어서 고민하자 지인이 추천해준 까르미나의 부츠. 진짜 편하고 오래 신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라 쉽게 질리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