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멋쟁이들은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스타일을 완성할까? 그녀들의 옷장을 들여다보고, 취향과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면소재 셔츠는 자니해잇 재즈(Johnny Hates Jazz), 팬츠는 다홍(Dahong), 뱅글은 소사이어티 오브 골든제이 (Society of Golden J), 목걸이와 반지는 개인 소장품.

면소재 셔츠는 자니해잇 재즈(Johnny Hates Jazz), 팬츠는 다홍(Dahong), 뱅글은 소사이어티 오브 골든제이 (Society of Golden J), 목걸이와 반지는 개인 소장품.

 

 

90년대 특급 스타 김지호는 여느 배우들과 다르게 털털하고 쿨한 X세대의 표상이었다. 여배우라면 지녀야 할 전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고, 그것은 그 세대가 원한 새로운 여성상이었다. 그런 김지호를 서울의 취향 있는 여자 중 한 명으로 인터뷰하고자 했던 건 요란법석하게 치장하지 않고도 평소의 모습 그대로 세련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웃을 때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주름과 미소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지 알고 있는 단단한 내면의 소유자임을 말해주었다.
취향이란 무엇일까요? 스타일과 다른 걸까요?
취향은 내적이고 정신적인 것이라면, 스타일은 그 정서적인 기호가 외적으로 표현된 방식이 아닐까요.

취향은 시간에 따라 축적되고 변하죠. 점점 취향이 확고해지기도 하고요. 그런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기호가 확실해지는 거죠. 예전에는 대다수가 선호하는 것을 따라서 좋아했다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경험에 의해 좋고 싫음이 분명해져요. 제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되어가는 느낌이죠. 불필요한 노력과 실수를 줄일 수 있게 되는 것도 좋아요. 기호가 분명해지는 것의 단점은 시도해보기 전에 이미 차단해버린다는 거죠.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싫어도 두루두루 만났다면, 지금은 힘들어 하 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식으로 관계의 반경은 점점 좁아지고 대신 농도는 깊어지는 듯해요.

기호와 취향이 좀 다른 걸까요? 
취향이 훨씬 포괄적인 의미이죠. 그중 고집 비슷한 확고함이 기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취향이 변한다고 생각하는데 전 취향은 변하지 않는 유전자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틀에 곁가지가 생기고, 모양이 바뀌는 것뿐이에요. 큰 흐름은 변하지 않죠.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에 내가 태어난 환경, 경험에 의해 성격처럼 형성되는 것 같아요. 트렌드가 바뀌고 누구를 만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서 스타일이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좋아한 것은 일맥상통해요.

그 일관된 취향은 어떤 것이죠?
전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 좋아요. 지나치게 화려해서 튀거나 부담스러운 것은 불편해요. 배기 팬츠나 디스트로이드 진에 티셔츠나 셔츠를 입고 거의 매일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다녀요. 지금 신고 있는 이 컨버스는 편해서 두 개나 구입했어요. 쇼핑은 주로 시장에서 해요. 오래 입어야 하는 옷은 꼼데가르송, 언더커버에서 구입하죠. 군더더기 없이 기본적인 실루엣에 디테일로 재미를 준 옷을 좋아해요.

시크하고 중성적인 톰보이 같은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런 취향을 지녔다고 알게 된 때는 언제쯤일까요?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언니가 중학교에 진학해 머리를 단발로 잘랐어요. 왜 그 나이 때는 언니가 하면 다 멋있어 보이잖아요. 언니 따라 머리를 쇼트 커트로 잘랐는데, 그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머리에 어울리는 옷을 입다 보니 중성적인 스타일이 만들어졌죠. 전 어릴 때부터 호불호가 분명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 엄마가 사다 주는 것을 대부분 받아들이잖아요. 근데 전 어릴 적부터 다들 좋다고 하는 것엔 흥미가 없었어요. 제 방식대로 변형해서 입곤 했죠. 근데 나이가 든 지금은 나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트렌드를 어느 정도 따라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고집만 부리면 시대에 뒤처지고 결국 ‘올드 피플’이 되고 마는 거죠.

40대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특히 여배우에게 나이 듦은 보통의 여자들보다 더 크게 다가올 것 같아요. 
어릴 땐 살이 쪄도 몸에 탄력이 있어서 어떤 옷을 입어도 예뻤던 것 같아요. 이제 그런 싱그러움은 없죠. ‘김지호 스타일’이라고 불린 20~30대 때 입었던 옷은 몸에 맞아도 입을 수 없어요. 느낌이 변해버려서 지금의 제 모습과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옷장을 싹 정리했어요. 마흔을 넘기니 가볍고 편안한 것들이 더욱 눈에 들어와요. 컬러도 톤 다운해서 우아하고 지적이게 보이고 싶죠. 그런데 에너지가 떨어지고 활력을 찾고 싶을 땐 30대에는 절대 시도하지 않던 과감한 색과 프린트 의상을 입기도 해요. 액세서리나 주얼리도 즐겨 하지 않는데, 요즘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세밀한 커팅으로 빛을 내는 실버 주얼리가 좋아졌어요. 얼굴빛을 밝혀주어 더욱 생기 있어 보이거든요. 하지만 주름이 늘어나고 몸매가 예전 같지 않아도 나이가 드는 건 좋은 일이에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고 세련된 도시 여자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제 단점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얼굴톤과 맞지 않는 색, 얼굴형에 어울리지 않는 네크라인, 몸매의 단점을 숨겨주는 실루엣에 대해 알고 있어요. 전 과해서 부담스러운 모습보다 그냥 수수하게 세련된 걸 좋아해요. 샤를로트 갱스부르처럼 말이에요. 어떤 옷을 입어서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화려하게 치장해서 예쁜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수수하게 입으면서 멋질 수 있는 건 어려운 일이죠!
내면이 받쳐줘야 그렇게 입을 수 있겠죠? 이렇게 입어도 나는 멋있다는 자신감 말이에요.

여배우가 돋보이고 싶지 않다는 말이 꽤 역설적으로 들리는데요. 패션계나 연예계나 돋보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집단이잖아요.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지 않나요?
물론 일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요. 남들이 나만 바라봐주기를 원하지도 않고 나만 튀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내가 있다는 존재감이면 충분해요.

Her Essential Items

과장됨 없이 담담한 스타일을 즐기는 김지호의 옷장에 자리한 의상과 소품은 역시나 내추럴 무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거라면 유명 브랜드든 시장 제품이든 가리지 않는다고. 도트 무늬 카디건이나 미래적인 선글라스 등은 담담한 스타일에 김지호식 포인트를 주는 아이템이다.

 

꼼데가르송의 도트 프린트 의상을 좋아한다. 베이식한 디자인에 위트를 더해 힘들이지 않아도 스타일이 살아난다.

2 디올의 선글라스. 복고적인 느낌과 미래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낸다.

추위를 많이 타 여름에도 리넨 소재 머플러를 두른다. 머플러는 사시사철 빼놓을 수 없는 시그니처 아이템.

4 홍콩에서 구입한 가죽 부츠는 내추럴 룩에 힘을 더할 수 있다.

5 “십자가 펜던트 목걸이는 딸을 낳고 남편에게 선물 받은 것이에요. 섬세한 커팅의 목걸이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거고요. 액세서리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주얼리의 경우 제가 구입한 건 거의 없어요. 최근 실버 목걸이를 하기 시작했는데, 빛을 더해주어 얼굴이 더 화사해 보이더라구요.’

1 “김지호 스타일’을 정의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실용성이죠. 요즘 제일 많이 들고 다니는 에코백은 어깨에 멜 수도 있고, 수납공간이 많아 실용적이에요.”

2 엠주의 반지들. 장식이 많은 것보다 심플한 밴드형의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3 옷차림을 완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건 컨버스 운동화. 거의 매일 신기에 디자인이 예쁜 것은 한 번에 두 개씩 사놓고 신는다.

시장에서 구입한 후드 달린 롱 재킷. 구조적인 디자인으로 멋 내지 않은 듯 멋을 낼 수 있다.

꼼데가르송의 배기 실루엣 팬츠는 내게 제일 잘 어울리는 핏이다.

아베크롬비 앤드 피치의 체크 셔츠는 티셔츠와 레이어드할 때 유용하다.

7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휴대용 램프 루미오. 펼치면 불이 들어온다. 가지고 다니면 어디서든 책을 볼 수 있어 집 안에서도 들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