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팝, K- 뷰티에 이어 K- 패션에 주목할 때다.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의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다녀온 패션 에디터들이 그 이유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8 레지나 표의 밝은 미래
유돈 초이와 이정선(J.JS LEE)의 뒤를 이어갈 런던의 떠오르는 한국 브랜드 레지나 표. 2014년 가을/겨울 런던 패션 위크에서 패션 필름과 런웨이를 결합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레지나 표의 디자이너, 표지영과 나눈 흥미로운 대화.
‘레지나 표’는 어떤 브랜드인가? 꾸미지 않은 듯한 세련됨을 추구하는 브랜드다. 조형물이나 회화, 설치미술 등 예술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요소를 옷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건축적인 실루엣과 과감한 컬러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브랜드를 설립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여성복 석사를 마쳤다. 좋은 기회에 졸업 작품이 네덜란드의 한 네프컨스 패션 어워드(Han Nefkens Fashion Award)에서 수상을 했고, H&M의 자회사인 위크데이와 함께 협업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이를 계기로 작년에 ‘레지나 표’를 설립했다. 현재 브랜드 경영과 동시에 크리스토퍼 레이번에서 여성복 라인 시니어 컨설팅 디자이너로 일하며,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강의를 한다. 2014 가을/겨울 컬렉션에 대해 소개해달라. 1950년대 화가 엘즈워드 캘리의 작품에서 영감을 떠올려 풍부한 컬러와 다양한 소재를 믹스매치했다. 여기에 사진가 로저 메인의 춤추는 소녀의 사진에서 받은 느낌을 살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를 느끼는 소녀의 에너제틱한 모습을 주제로 삼았다. 단순히 입는 옷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컬렉션을 완성했다. 런던 패션 위크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영국 패션 협회에서 디지털 스케줄의 참가 승인을 받았다. 쇼는 패션 필름과 모델의 워킹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소규모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했고, 많은 바이어와 프레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대해도 좋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올가을에 네덜란드의 뵈닝겐 미술관에서 후세인 샬라얀 등과 함께 패션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클래식 아이템을 만드는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

1 디그낙의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 2 디자이너 강동준. 3 허환 시뮬라시옹의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 4 디자이너 허환과 카를라 소차니.

1 디그낙의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 2 디자이너 강동준. 3 허환 시뮬라시옹의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 4 디자이너 허환과 카를라 소차니.

9 Hello Milano!
허환 시뮬라시옹과 디그낙의 강동준이 밀라노 패션 위크의 메인 쇼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에 진출한 강동준은 특유의 재단 실력을 바탕으로 동양적인 실루엣의 슈트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쇼가 끝난 뒤 바이어들에게 많은 미팅 제안을 받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파리 패션 위크 동안에도 쇼룸을 운영했는데, 밀라노 컬렉션의 영향을 받아 성황리에 끝났죠.” 강동준의 설명처럼 이번 시즌 디그낙의 밀라노 컬렉션의 첫 단추는 잘 채웠다. 런던에서 공부한 디자이너 허환은 록밴드 앨범 커버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이 눈길을 모았다. 멀티숍 10 꼬르소 꼬모의 설립자이자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카를라 소차니는 허환 시뮬라시옹을 보고 “가장 기대되는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다. 다음 시즌에도 밀라노 컬렉션에서 볼 수 있게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호평을 했으니 이들의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건 당연하다.

10 Good Start!
뉴욕 패션 위크의 시작과 동시에 <WWD>가 주목해야 할 신진 디자이너를 1면에 대서특필했다. 그 주인공은 ‘지 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오지은.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고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그녀는 간결한 실루엣의 중성적인 무드의 의상으로 뉴욕 프레스와 바이어를 사로잡았다. <얼루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일상에서도 파티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떠올리며 디자인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부드러움과 각이 살아 있는 크롭트 실루엣에 집중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더욱 단단한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녀는 기회가 되면 서울 패션 위크에도 참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11 버버리의 남자
버버리 프로섬의 2014년 가을/겨울 남성복 쇼. 런웨이에 등장한 유일한 동양 모델은 런던에서 활동 중인 한국 모델 김상우였다. 새까만 머리칼, 날카로운 눈매, 툭 튀어나온 광대뼈로 유럽을 사로잡은 그와 나눈 이야기.
당신에 대해 짧게 소개한다면? 셀렉트 모델 에이전시 소속의 신인 모델 김상우다. 나이는 21살. 골드 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생후 6개월 때 영국으로 가서 지금까지 런던에 살고 있다. 모델이 된 계기는? 골드 스미스 대학교에 다니기 전에,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다녔다. 모델을 필요로 하는 패션과 학생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학생이 모델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보았고, 직접 에이전시 문을 두드렸다. 버버리 프로섬 캐스팅 과정이 특별하다고 들었다. 버버리 프로섬 쇼는 그들이 ‘요청’한 모델만 캐스팅을 본다. 주로 영국 모델을 기용한다고 해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요청’조차 받지 못했다. 버버리 캐스팅에 간 친구를 캐스팅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캐스팅을 보러 올라오라고 했다. 그 후 세 번의 오디션을 거쳐 모델로 발탁됐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겐조 쇼에서 처음 한국 모델들을 만난 일! 잡지에서만 봤던 박성진과 박형섭, 김태환을 실제로 만나서 신기하고 반가웠다. 쇼장에서 한국 모델을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잡지나 광고 촬영도 했나? 스톤 아일랜드 광고 촬영을 시작으로 <GQ>, <I-D>, <HERO> 등의 잡지와 화보 촬영을 했다. 그중에서 닉 나이트와 찍은 <V Man>, 팀 워커와 함께한 <W> 화보 촬영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의 꿈은? 천천히 성장하는 모델이 되고 싶다.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다음 시즌에 더욱 많은 쇼에 서는 게 목표다. 한국을 알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1 준결승에 진출한 30명의 디자이너들. 2 스트리트 웨어를 시크하게 풀어내는 계한희의 룩. 3 지난해 H&M 디자인 어워드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은 김민주의 룩. 4 런던 패션 위크에서 점차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이정선의 룩.

1 준결승에 진출한 30명의 디자이너들. 2 스트리트 웨어를 시크하게 풀어내는 계한희의 룩. 3 지난해 H&M 디자인 어워드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은 김민주의 룩. 4 런던 패션 위크에서 점차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이정선의 룩.

12 영광의 얼굴
칼 라거펠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라프 시몬스와 리카르도 티시 등 쟁쟁한 디자이너들이 나의 옷을 만지고 컬렉션을 평가해주는 건 모든 신진 디자이너에게 꿈같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꿈같은 특별한 경험을 세 명의 한국계 디자이너가 누리게 되었다. 2014년 ‘LVMH Young Fashion Designer Prize’ 대회의 준결승에 진출한 계한희, 김민주, 이정선의 이야기다. 이 대회는 루이 비통-모엣 헤네시(LVMH) 그룹의 인사부 디렉터인 델핀 아르노의 적극적인 추진 아래 진행되는 패션 경연대회로, 두 번 이상 자신의 개인 컬렉션을 발표한 경험이 있는, 40세 미만의 디자이너들에게 열려 있다. 루이 비통, 디올, 지방시, 펜디, 세린느 등 LVMH 산하 모든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을 비롯 유명 패션 저널리스트와 주요 리테일 관계자들로 구성된 40명의 심사위원단이 직접 컬렉션을 심사하며 우승자는 4억3천만원 상당의 상금과 1년 동안 LVMH 그룹의 브랜드 운영 멘토링을 받게 된다고. 전 세계 1221명의 신진 디자이너가 지원한 가운데, 계한희와 김민주, 이정선이 각각 서울과 앤트워프, 런던을 대표하며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결과야 어찌되었건 세계적 규모의 패션 경연 최후의 30명 중 무려 3명이 한국인이라는 것은 그만큼 한국 패션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 세계를 상대로 멋진 도전을 펼치는 세 디자이너에게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백스테이지에서 포착된 닥터 자르트의 바운스 BB와 세라마이딘 크림.

백스테이지에서 포착된 닥터 자르트의 바운스 BB와 세라마이딘 크림.

13 코리아 뷰티의 자존심
뉴욕 컬렉션 백스테이지 현장, 맥, 에스티 로더, 나스 같은 해외 브랜드만 있을 것 같은 그곳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바로 닥터 자르트! 2012년 봄/여름 뉴욕 컬렉션을 시작으로 백스테이지의 메이크업을 시작한 닥터 자르트는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규모를 좀 더 확대해 오프닝 세레모니와 리차드 채 컬렉션을 담당하고 있었다. 메이크업을 받은 모델들에게 특히 인기를 끈 제품은 비비 크림. 미국 세포라의 약 700여 개 매장에서 판매 중인 닥터 자르트의 비비 크림은 현재 미국에서 비비 크림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

 

1 마르니 백스테이지에서 메이크업 중인 변명숙. 2 미쏘니 쇼에서 사용된 맥의 오뜨앤노티 래쉬 마스카라. 3 넘버21의 페이스 차트. 4 백스테이지의 맥 제품들. 5 마르니 쇼의 메이크업을 총괄한 톰 페슈.

1 마르니 백스테이지에서 메이크업 중인 변명숙. 2 미쏘니 쇼에서 사용된 맥의 오뜨앤노티 래쉬 마스카라. 3 넘버21의 페이스 차트. 4 백스테이지의 맥 제품들. 5 마르니 쇼의 메이크업을 총괄한 톰 페슈.

14 K-Artist’sTouch
화려한 런웨이 뒤편, 의상과 어울리는 궁극의 뷰티를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있다. 맥의 수석 아티스트 변명숙이 2014년 가을/겨울 밀란 패션 위크에서 보내온 백스테이지 리포트를 공개한다.
Missoni 미쏘니 쇼에서는 속눈썹을 강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마스카라를 아주 많이 덧바르되, 소녀처럼 사랑스럽게 표현해야 했다. 기존의 ‘짙은 마스카라 룩’ 하면 떠오르는 도발적인 섹시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또 미쏘니 쇼는 한 명의 모델에 아티스트 두 명이 붙어서 작업해야 할 만큼 타이트한 스케줄에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쇼 시간이 겹치는 게 많았는지, 여느 시즌과 다르게 이번 밀란 컬렉션은 바쁜 일정에 치여 백스테이지에 늦게 도착하고 또 빨리 떠나는 톱 모델이 많았기 때문이다. 런웨이에 오르기 직전까지 메이크업을 하다 겨우 옷을 입혀 내보내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식은땀 꽤나 흘렸다.
Marni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컬렉션은 단연 마르니였다. 옷과 메이크업, 헤어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지는 쇼였다고 생각한다. 메이크업은 정말 특별했다. 메이크업을 총괄한 톰 페슈가 제안한 이번 룩에 쓰인 제품은 단 세 가지. 브라운 핑크 톤의 립스틱과 내추럴 핑크 톤의 립스틱, 그리고 캐러멜 톤의, 은은한 회갈색 시머를 더한 크림 컬러 베이스가 전부였다. 두 가지 색 립스틱을 섞어가며 입술은 물론 눈두덩과 얼굴 전체의 음영을 표현하고 회갈색 시머링 베이스로 하이라이트를 줬다. 보통 가을/겨울 메이크업은 무겁고 매트하게 표현하기 마련인데, 마르니 쇼의 메이크업은 어두운 색상을 유지하되 크림 제형의 제품을 손으로 섬세하게 펴 발라 투명하고 촉촉하게, 결과적으로 가벼운 느낌으로 표현한 게 특징이다.
No.21 넘버21에서는 글리터에 중점을 둔 메이크업을 했다. 피부는 촉촉하게 표현하되, 아이라이너 위로 입자가 굵은 글리터를 두껍게 덧발라 예쁜 눈매를 만들었다. 특히 이번에 쓴 글리터는 ‘3D 글리터’라 불리는데, 골드 컬러 입자라도 각도에 따라 푸른색, 은색, 핑크색 등 다양한 컬러가 나타나며 복합적이고 오묘한 효과를 냈다. 입술은 살구색 톤의 핑크 컬러로 매끄럽고 은은하게 물들였다.
Last Words 이번 시즌 미쏘니와 마르니, 넘버 21, 로베르토 카발리, 포츠1961 등 총 9개의 밀란 컬렉션에 참가하며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메이크업 기법이 단순해졌다는 것이다. 눈, 코, 입마다 화장품을 따로따로 많이 바르는 것보다 중심이 되는 제품 하나로 가볍고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 손을 사용해 제품의 밀착도를 높이고 크림 타입의 제품으로 은은하고 투명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메이크업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또 느낀 점 한 가지는 바로 아시아 모델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시안 뷰티’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이 많이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동양인 모델의 아이라인이나 눈썹을 그릴 때에도 과거에 비해 무척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연출하는 것을 보고 아름다움의 기준이 전체적으로 많이 글로벌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