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의 그녀들과 열 명의 남자들이<얼루어>를 찾았다. 세상의 반이 남자라는 건, 우리의 인생이 그들과 겹쳐지고 나누어질 거라는 이야기다. 인생의 남자들과 함께한 사진들은 우리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상황에 대한 찰나의 증거다. 이들처럼, 다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나요?

발레리나를 사이에 둔 발레리노 [김수현 + 황혜민 + 엄재용]

무대 위에 오른 그들은 도무지 이 세계의 사람 같지 않다. 그러나 이제 발레리나들은 과거의 신성보다 현재의 친근함을 원하는 것 같다. 다양한 레퍼토리, 해설을 곁들인 발레 등으로 조금씩 다가왔고, <1박 2일>로 정점을 찍었다. 토슈즈를 벗고 운동화를 신었고, 막춤을 췄고, 복불복의 결과로 라면을 끓이던 유니버설 발레단은, 그 어느 때보다 친근해졌다.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 황혜민, 엄재용, 김수현도 그때 제주에 있었다. “원래는 발레리노들만 나가려던 거였어요. 그러다 다 함께 출연하게 되었죠.” 시청자 투어를 신청한 장본인인 엄재용이 말했다. 황혜민과 엄재용은 명실상부 유니버설 발레단의 대표 파트너. 함께 공연하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이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오랜 연인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황혜민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김수현은 떠오르는 신예. 워싱턴 유니버설 발레아카데미의 선배이며, 또 대선배의 여자이기도 한 황혜민 앞에서 어쩐지 그는 작은 모습이다“. 학교에‘ 성공한 무용수’의 사진을 걸어놓는 명예의 전당이 있어요. 늘 보면서 동경했죠. 그런데 막상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선배님을 정말 힘들게 했거든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마음도 비단결 같다는 황혜민은 그래도 아주 좋아지고 있다면서 김수현을 격려했고, 엄재용이 거들었다. “저는 이제 지는 해. 이 친구는 뜨는 해죠.” 유니버설 발레단의 가을 공연은 인도의 무희를 주인공으로 한 <라 바야데르(La Bayadere)>로 정해졌다. 10월 29일부터 11월 5일까지 딱 8번 올려진다. “대규모 무대세트와 150명의 출연진이 필요한 대작 뮤지컬이에요. 이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발레단은 전 세계에 5~6곳밖에 되지 않아요. 이번엔 앙코르 공연입니다.” 인도의 무희라니. 태닝한 피부가 매력적인 황혜민에게 특히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원래 정말 하얀 피부인데, 터키 공연을 다녀오면서 많이 탔어요. <라 바야데르>는 발레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특히 3막 ‘망령들의 왕국’은 발레계의 최고 명장면 중 하나예요” 10월 9일과 10일 오후 6시에는 예술의 전당 야외에서 프리뷰 공연을 연다. 누구나 환영!

전노민이 입은 슈트와 스카프가 달린 셔츠는 모두 장광효 카루소(Chang Kwang Hyo Caruso). 김보연이 입은 슬리브리스 원피스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진주목걸이와 모자는 모두 제이미앤벨(Jamie&Bell).

아름다운 날들 [전노민 + 김보연]

연예인 부부를 두고 사람들이 갖는 생각은 비슷하다. 절반의 동경과 절반의 의심. 늘 보여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반신반의 같은 것. 그러나 이 부부는 안심해도 좋다. 촬영을 예로 들자면, 당대의 여배우 김보연은 눈부신 미소를 지었고 전노민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야말로 빵빵 터졌다! 그들이 들려준 ‘결혼’이야기는 주옥같았는데, 전노민은 특히 우리 아빠를 포함한 세상 남자들에게 다 보여주고 싶을 정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1 잘못한 경우엔 잘못을 바로 인정할 것. “네”, “맞아요” 는 매직 워드다. 2 그녀에게 맞춰줄 것. “내가 입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것 같으면 난 바로 다시 갈아입어요.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 5분도 안 걸리잖아요. 괜히 고집 부리면 싸움이 되죠.” 3 그녀를 돌봐주고 챙겨줄 것. “이 사람은 내가 늦게 들어오면 잠을 잘 안 자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찍 들어오게 되죠.” 연예계 대표 연상연하 커플이지만 신기하게도 동갑처럼 보이는 그들“. 보톡스 한 대도 안 맞았어요. 하지만 정말 행복하니까 얼굴에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전노민은 고충을 털어놓는다.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거든요. 뭐 했지?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면 절대로 안 믿어요. 그래서 난 그냥, ‘하나도 안 빼놓고 다 한 거예요!’ 라고 말해버려요.” 그리고 두 사람은 말했다. “남자, 여자 별거 아녜요. 다 갖춰진 사람을 찾지 말고 함께 달릴 수 있는 사람을 만나요. 힐러리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줄 알았겠냐고.” 행복하다는 게,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보이는 커플. “남은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내 나이쯤 되면 여러분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러고는 손을 잡고 돌아갔다. “내 인생에 손을 잡고 길을 걸은 여자는 처음이에요. 이 사람은, 참 귀여워요.”

헤어 조한석(전노민), 박수영(김보연)
메이크업 이가빈(전노민), 이수민(김보연)

이준오가 입은 네이비색 재킷은 카이 아크만(Kai-Aakmann). 빨간색 줄무늬 티셔츠는 A.P.C. 생지 데님 팬츠는 일모스트릿닷컴(Ilmostreet.com). 이융진이 입은 시폰 소재 셔츠와 가죽 소재의 프린지 스커트는 모두 커밍 스텝(Coming Step). 니트비니는 제이미앤벨.

아주 특별한 커플[이준오 + 이융진]

그들의 음악은 도시를 사는 사람에게 안정을 준다.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앞서나가거나, 지금 가진 게 얼마나 많은지 세어보기라도 하라는 듯 하듯‘ 소소한 일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외로움과 약간의 우울은 필연적인 것이고,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해보라는 충고처럼 진부하고 쓸데없는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캐스커(Casker)의 음악이 좋다‘. 어차피 세상 혼자 사는 거’라고 말하는 듯한 진지함과 그 속의 따뜻함 정서 때문에. 우리나라 일렉트로닉 신의 중심으로 불리는 그들은 지금 2년 반 만에 선보일 새 앨범 작업이 한창이었다. 리더 이준오의 왼쪽 눈이 좀 부어 있는 건, 밤낮 가리지 않은 작업의 훈장이다. “차라리 나이트에서 만났으면 재미라도 있죠. 저희는 오디션에서 만났어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묻자, 너무 멋이 없는 이야기라면서 그가 말했다. 원맨 밴드였던 캐스커가 러시아에서 막 돌아온 보컬 이융진을 영입해 활동한 지 벌써 6년. 전성기 때의 이상은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보이시했던 이융진은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만한 아름다운 여자가 되었다. ‘내가 작은 게 아니라 얘가 유난히 큰 것’이라고 이준오가 강조할 정도로 시원한 키를 가진 그녀는 인터뷰 사상 처음으로 스커트를 입었고, 리더이기 전에‘ 엄청 오빠’인 이준오는 반쯤 놀리고, 반쯤 흐뭇해했다. 짓궂게 물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이성으로 느낀 적이 없나요? 이융진의 대답 “저는 남자 친구 있어요.” 이준오의 대답 “그랬다면 지금까지 함께하지 못했겠죠.” 캐스커는 이번 앨범으로 변화를 꾀한다. 이융진이 두 곡을 작곡했고, 지금껏 모든 곡 작업과 후작업까지 손수 해온 이준오는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을 시도한다. 윤상의 대부분의 곡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한 작사가 박창학을 찾았고, 마이앤트매리 정순용과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에게 피처링을 맡기기도 했다. 고집스러운 장인처럼 혼자만의 공방에 살던 그는 지금의 변화를 ‘반쯤 열어두기’라고 표현했다. 이준오가 만든 폐쇄적인 세상이 좋았던 까닭에, 나 역시 당신처럼 새 앨범이 못 견디게 궁금하다. 앨범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 발매될 예정이다.

최씨일가[최보원 + 최용빈 + 최현준]

포토그래퍼 최용빈은 기자를 뛰게 만든다. 모두가 그와의 작업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 촬영 날짜를 잡지 않으면,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럼에도 그는 이달 11일은 빼놨다. 포토그래퍼 겸 주얼리 ‘Hoyanmore’의 디자이너 최보원의 손도 평소보다 바빠졌다. 아들 현준이 돌을 맞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최씨 도령을 소개한다. 사진 속에서 천진함을 내뿜고 있는 그의 이름은 최현준. 태어날 땐 3.1kg, 현재는 10kg에 육박하는 건강남. 잘 걸을 줄 알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못 걷는 척하는 연기파. 그럼에도 활달한 엄마 아빠를 닮아서 낯은 잘 가리지 않고 호기심이 다분하여 사람의 얼굴을 빤히 관찰하곤 한다. 하얀 가제 수건은 그에게‘ 라이너스의 담요’다. 손에 손수건을 쥐고 흔들다가 냄새 맡는 걸 좋아하고, 수건을 덮으며 까꿍 놀이를 하면 너털웃음을 짓는다. 촬영 당시 나이는 364일.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면, 한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건 한 세계를 창조하는 일일 거다. 아이를 낳은 후 두 사람의 인생은 조금 달라졌다. 패션 피플로 소문난 이들이 옷 사는 것도 잊었고, 최보원의 미소는 더욱 아름다워졌으며, 최용빈은 촬영 틈틈이 연예인과 함께 아들의 동영상을 본다. “정말 귀엽다니까.” 남자 둘과 함께 사는 최보원은 한 해 동안 부럽다는 이야기를 태어나 가장 많이 들었다. 끝으로 마감 중에 타전된 소식을 전한다. 부디 골프공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10년 후엔 아들의 캐디백을 메고 다니리라는 아빠의 원대한 꿈과는 달리, 최현준은 돌잡이에서 ‘필름’을 잡아 하객들을 박장대소하게 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 이럴 때 쓰는 거겠지.

형제는 용감했다[박지원 + 루카 + 잘로]

촬영을 못하는 줄 알았고, 아이들을 찍는 게 그렇게 어렵더라는 말을 실감했다. 디자이너 박지원의 레스토랑 ‘파크’에서 벼룩시장이 열린 날. 하루 종일 파크를 찾은 많은 사람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지친 막내는 차 안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 스태프가 안아서 스튜디오에 데려다 놓을 때까지도 도통 깨지 않았다. 천사처럼 잠든 아이를 한참 바라보며, 다른 날을 기약해야 하나 거의 포기할 때쯤 기적적으로 눈을 뜬 잘로. 이 사진은 그렇게 찍은 것이다. 두 아들은 디자이너 박지원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영어로 대화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전형적인 엄마이기보다는 친구에 가깝다. 형 루카는 여섯 살. 동생 잘로는 세 살. 엄마의 이국적인 얼굴과 축구 코치인 아버지의 체격을 모두 물려받았지만 성격은 다르다. 박지원과 함께 세운, 두 아이의 상반신을 시원하게 드러내 ‘자연의 아이들’ 처럼 찍자는 계획은 루카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대신 그는 화이트 셔츠를 어른스럽게 채웠고, 촬영할 때는 애교 있는 모습으로 스태프들을 즐겁게 했다. 반면 자다 깬 잘로는 무뚝뚝하다 못해 엄숙까지 한 ‘마초맨’이다. 같은 유아원에 다니는 미미를 좋아하고, 그의 쌍둥이 오빠를 거의 연적 보듯이 하는 육식남이랄까. 그는 촬영 내내 부동의 자세로 카메라를 노려봤다. 축구 코치인 아버지가 있는 독일에서 사는 형제는 어머니의 나라에 오는 것을 좋아하고, 죠스바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엄마를 좋아한다. 박지원과 두 아이들은 그렇게 2010년 9월의 한때를 남기고 독일로 돌아갔다. 다음에 올 때면, 두 아이는 부쩍 자라 있을 것이다.

참 괜찮은 인연[정도준 + 정희원]

얼굴은 엄마를 닮았지만, 아버지는 딸에게 길고 가는 팔다리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인생을 즐기라고. 될지도 모르는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눈앞에 있는 오늘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그 오늘의 총체인 인생이 즐거울 수 있다고 가르쳤고, 기쁠 희, 아름다울 연자를 써서 딸의 이름을 손수 지었다. 플로리스트 정희연의‘ 즐거운 인생’은 따지고 보면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이름을 그렇게 짓기도 했지만, 아기 때부터 희연은 유쾌했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로, 세계적으로도 존경받는 정도준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서예’야말로 인생과 정신의 총체같은 예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다감한 얼굴로 삶을 고쳐 앉게 만드는 스승이다. 자식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일인일기 (一人一技)’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을 찾아주는 게 부모의 의무라고 이야기했다. 딸에게는 그게 미술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딸이 요리와 꽃 중에서 미래를 고민했을 땐 꽃을 권했다. “가능하다면 인생을 주인공으로 살길 바랐죠. 요리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끼니는 미뤄둬야 하잖아요.” 정희연은 아버지를 바빠도 자상한 아버지로 소개한다. “일요일 저녁은 꼭 가족이 다 함께 외식을 했어요. 그러곤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원하는 책을 한 권씩 사 주셨죠.” 한남동에 있는 예술가의 집은 층층이 재미있다. 5층에는 아버지의 아틀리에가, 지하에는 장녀의 스튜디오가, 1층에는 정희연의 플라워 스튜디오가 있다. 내 공간이 가장 작은 것 같다는 막내딸의 말에 아버지는, 그 자리가 땅값은 가장 비싼 자리라고 일축하며 함께 웃는다. 부녀는 팔짱을 끼고, 아빠하고 나하고를 부르듯 손도 잡았다가, 포옹을 하기도 했다. “이거 삼십 년을 키워서 처음 안아보네요” 정도준은 말했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나를 만나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해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세상에서 아주 좋은 인연 만난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마음을 펼쳐놓는 걸 어색해하는 세상의 모든 딸처럼, 그녀는 농담의 형식을 빌려 말했다. “참 괜찮은 인연이야, 아빠. 다음 세상에도 부녀의 인연으로 만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