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서미의 높은 천장 아래로 커다란 샹들리에가 드리워졌다. 거대한 물방울처럼 반짝이는 조명은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들었는데 그 수가 무려 1800개나 된다.

1. ‘Drop Chandelier’와 조명 작가 스튜어트 헤이가스. 2. 450여 개의 안경알로 만든 ‘Optical Chandelier’. 3. 고양이 도자기 인형으로 만든 램프 ‘Raft’.

1. ‘Drop Chandelier’와 조명 작가 스튜어트 헤이가스. 2. 450여 개의 안경알로 만든 ‘Optical Chandelier’. 3. 고양이 도자기 인형으로 만든 램프 ‘Raft’.

갤러리서미의 높은 천장 아래로 커다란 샹들리에가 드리워졌다. 거대한 물방울처럼 반짝이는 조명은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들었는데 그 수가 무려 1800개나 된다. 투명하거나 푸른빛을 내는 페트병의 바닥 부분만 잘라 가느다란 줄에 정교하게 매달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이번에는 숟가락, 펜, 그물, 시계, 손수건, 병뚜껑이 걸린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물건들은 해변가에서 주운 쓰레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깨끗하게 씻고 윤기를 내서인지 버려진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컬러를 통일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어우러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 밖에도 안경과 도자기 인형, 일회용 플라스틱 물잔 등 그냥 지나치고 말 법한 그저 그런 물건이 전시장 천장 아래로, 바닥 위로 환한 빛을 내뿜고 있다.

영국 출신의 스튜어트 헤이가스는 크리스티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헌치오브베니슨 런던(Haunch of Venison London)의 소속으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지금은 조명 작가 스튜어트로 불리지만 지난 15년간 그의 직업은 사진가였다 “사진을 찍을 때 조명을 사용하다 보니 조명이라는 오브제와는 늘 친근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관심 있는 물건을 조명에 접목하여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2003년 버려진 물건으로 만든 <잃어버리고 찾은>이란 주제의 조명 작품을 선보였고 미술관계자들의 관심이 쏟아지면서 그의 작업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2007년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선보인, 근처에 버려진 페트병을 주워 샹들리에를 만드는 퍼포먼스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의자와 테이블 등 가구도 만들던 그는 그 후로 조명 작업에 더 집중하며 작품의 수준을 발전시켰고 영국을 대표하는 컨템퍼러리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갤러리서미의 구애로 이뤄졌다. 전시장 내 벽에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샹들리에가 걸릴 천장에 가벽을 설치하는 등 작품이 더 좋은 환경에서 노출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지난해 전시 준비를 위해 한국을 찾았어요. 그때 서울의 이곳저곳을 구경했는데 상인들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지게가 특히 흥미롭게 다가오더군요. 사진을 찍어가 직접 모양을 디자인하고 만들었어요.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인 만큼 처음 공개하는 거예요.”

소재의 특성을 포착하는 남다른 심미안을 지닌 그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허투루 눈을 돌리는 법이 없다. 런던의 도로에 떨어져 있는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를 모아 회전하는 미러볼로 만드는가 하면 상판에 깨진 사이드 미러의 유리를 붙여 사이드 미러 모양의 테이블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는 안경. 덕분에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안경으로 만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안경의 다리만 모아 만든 조명, 알만 이어 만든 조명, 온전한 안경으로 만든 조명 등 안경을 이용한 작품만 해도 여러 개다. 흥미로운 건 하나의 물건에서 파생된 소재인데 그것으로 만든 작품의 형태는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라는 거다.

“물건을 모으는 것이 취미지만 아무거나 모으지는 않아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케치를 먼저 하는데 스케치를 하면서 완성된 형태의 그림이 그려지면 그때부터 물건을 수집하러 다니는 식이죠. 벼룩시장과 자동차 트렁크 세일을 애용합니다.” 스튜어트의 작품은 버려진 물건뿐 아니라 진부한 것으로 취급당하는 물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도자기로 만든 인형을 모아 만든 작품 ‘Raft’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즘은 작은 도자기 인형을 모으는 젊은 사람들을 찾기 힘들어요. 사람들은 그 물건을 할머니, 할아버지나 모을 법한 구식 취미 생활의 전유물로 생각하니까요. 사물에 대한 그러한 편견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물건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형태와 특성에 따라 세부적인 범주로 분류해 새로운 형태로서 소재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스튜어트의 작품은 우리의 편견과 좁은 시야에 대한 경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 시작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가장 창의적인 형식으로서의 빛의 예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New Exhibition

1. <조선화원대전> 화원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다. 조선 시대 회화에서 독보적 경지를 이룩한 화원들의 활동상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 그들의 정교한 필력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2012년 1월 29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

2. <예술가의 서재> 책을 소재로 작업하는 서유라, 안윤모, 임수식, 최은경 4명의 작가들의 설치, 회화작품을 모았다. 책에 대한 해석이 예술의 형태로서 어떻게 승화되는지 비교해가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11월 15일까지, 롯데갤러리

3. <Dialogue> 뉴욕 구겐하임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마친 이우환 화백의 개인전으로 최근 회화작품을 위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고요하고 정제된 듯하나 한층 대담해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1월 15일~12월 18일, 갤러리현대 신관

4. <소통의 기술> 필연적으로 불협화음을 낳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소통을 이야기한다. ‘소통의 미끄러짐’을 주제로 그것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시각을 고민해보기 위해 마련된 전시다. 12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

5. <조영환 개인전> 연남동의 쉬어가는 갤러리 플레이스막에서 계절과 잘 어울리는 전시를 준비했다. 빛의 줄기로 공간과 기억을 표현해내는 조영환 작가의 아크릴 조형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1월 1일~13일, 플레이스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