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 선 한지민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금방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기도 했다. 드라마틱한 헤어의 변신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건 그녀의 얼굴과 눈빛이었다.

 

금색 반지는 악토눈(Actonoon).

금색 반지는 악토눈(Actonoon).

 

한결같다는 말은 한지민에게 완벽하게 유효한 단어다. 몇 년에 걸쳐 몇 번의 한지민을 만나는 동안 그녀는 거짓말처럼 한결같았다. 아름다운 외모와 특유의 에너지도, 스태프들을 대하는 태도도 늘 기대한 것을 뛰어넘은 채 거기 있었다. 배우로서의 그녀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스스로의 이미지를 깨고 넘으며, 역할의 비중을 가리지 않으며, 뭐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이며 한지민의 영역을 쌓아간다. 나쁜 여자보다 착한 여자가 더 치명적이며 변신하는 여자보다 한결같은 여자가 더 위대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면서 말이다. 우리에게는 한지민이라는 여배우가 있다.

 

금색 반지는 악토눈(Actonoon).

금색 반지는 악토눈(Actonoon).

 

짧은 머리가 이리도 잘 어울리다니요!
그런가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짧은 머리를 좋아하는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시도하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영화 <러브 어페어>를 참 좋아하는데, 아네트 베닝의 짧은 머리를 볼 때마다 언젠가 저렇게 짧은 머리를 해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죠. 

이제까지 꽤 다양한 분위기의 화보를 찍었어요.
예전에 화보에서 짧은 머리를 시도한 적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화보 촬영을 할 때는 다양하게 변신하고 싶어요. ‘나에게 이런 분위기가 있구나’를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이니까 때로는 결과물이 좋지 않더라도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 해요. 화보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면, 다음 작품의 캐릭터에까지 연관시키기도 해요.

긴 생머리를 관리하는 게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관리하나요?
오래 앉아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미용실을 잘 가지 않는 편이에요. 대신 집에서 수시로 트리트먼트를 해요. 머릿결이 많이 상해서 에센스만 바르면 별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모발 전용 수분크림을 발라 머리를 촉촉하게 한 뒤에 에센스를 발라요. 촬영할 때 드라이기나 고데기를 많이 써서 평소에는 드라이기조차 사용하지 않고 선풍기 바람으로 말리는 것 도 하나의 관리예요.

 

흰색 민소매 톱은 데무 박춘무(Demoo Parkchoonmoo).

흰색 민소매 톱은 데무 박춘무(Demoo Parkchoonmoo).

 

어머니와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엄마랑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시기가 잘 맞아서 다녀오게 되었어요.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출발할 때 비행기가 지연되어서 갈아탈 시간이 10분밖에 없었죠. 정신없이 뛰어가서 탔는데 짐을 옮길 시간이 부족했던 거예요. 다음 날 가방이 도착할 때까지 엄마랑 비누로 샤워하고 옷도 못 갈아입었죠. 덕분에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어요.

여행 루트를 짜고 직접 캐리어를 끌고 다닌 여행은 오랜만이었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가족끼리 갈 때는 아빠와 형부가 있고, 일하러 갈 때는 매니저가 잘 챙겨주니까요. 다섯 개 도시를 옮겨 다녔는데 제가 엄마 캐리어까지 끌면서 기차 시간 알아보고 숙소도 찾아가고 그러니 마치<꽃보다 할배>의 짐꾼이 된 기분이었어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많이 걷고 이렇게 부지런하게 움직인 여행은 처음이에요.

 

흰색 민소매 톱은 데무 박춘무(Demoo Parkchoonmoo).

흰색 민소매 톱은 데무 박춘무(Demoo Parkchoonmoo).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궁금해요.
점점 더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도 체력이 있어야 할 수 있으니까요. 운동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데 안타깝게도 빨리 지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니까 시간이 있으면 무조건 헬스장으로 가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확실히 몸이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평소 자세가 안 좋았어요. 운동을 하면서 평소 자세까지 신경 쓰고 고치려고 노력해요. 몸은 정말 정직해요. 몸무게 변화는 없는데 체지방은 줄고 근육량이 늘더라고요.

특히 어떤 운동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어요?
얼굴살이 많이 빠져서 유산소 운동은 하지 않아요. 체력 강화, 근력 운동, 런지 같은 동작을 땀이 흠뻑 날 정도로 해요. 운동할 때는 짧게 하더라도 집중해서 올바른 자세로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죽 소재 튜브톱은 수우(Suuwu).

가죽 소재 튜브톱은 수우(Suuwu).

 

그렇게 좋아하던 라면을 끊었다죠. 그게 잘되던가요?
라면을 3개월 정도 끊었는데 사실, 최근에 좀 먹었어요. 아예 안 먹으면 스트레스를 받으니 가끔씩은 먹어야겠더라고요. 밀가루,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했는데 차근차근 줄여나가고 있어요. 대신 아침마다 해독주스를챙겨먹고 물, 과일, 채소를 가까이 하려고 노력해요.

최근에는 요리의 영역까지 도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건강을 생각하면서부터는 사 먹고 배달시켜 먹는 걸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요리에 취미를 갖게 되었어요. 요리책도 사 보고 많은 도전을 하고 있는데 아직은 실패하는 게 더 많아요.

 

흰색 셔츠는 루키버드(Rookie Bud).

흰색 셔츠는 루키버드(Rookie Bud).

 

곧 영화 <장수 상회> 촬영에 들어가요. 더 비중 있는 작품도 많이 들어왔을 텐데, ‘금남의 딸’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뭔가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굉장히 따뜻했어요. 제가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이고 윤여정, 박근형 선생님, 강제규 감독님 등 신인 때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분들이라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역할은 작지만 누구보다 저에게 도움이 되는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해요.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 준비할 시간이 있으니까 더 다양한 역할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언제 봐도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져요. 애써 밝으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당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내재된 에너지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해요. 제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놓아버리는 거죠. 처음에는 잘 안 되었는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니까 그게 또 되더라고요. 누구보다 저를 위해서예요. 그래야 제가 편안하니까.

 

흰색 셔츠는 루키버드(Rookie Bud).

흰색 셔츠는 루키버드(Rookie Bud).

 

여배우로서 보여줄 게 많은 좋은 나이예요. 30대를 충분히 즐기고 있나요?
20대에는 막연하게 30대가 되고 싶었어요. 많은 감정을 알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죠. 시간이 쌓이면서 저도 모르게 조금씩 성숙해진 것 같아요. 20대에는 뭐든 용기 내 도전하는 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제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이제는 아닌건 빨리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받아들이려고 해요. 무엇보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바라는 게 있나요?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자신 있게 관객들에게 제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커지고요. 연기는 제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싸우면서 스스로 나약해지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내가 되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