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과 마흔의 문턱을 지나서도 여전히 매력적인 여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의 여주인공은 물론 과거 20대의 전유물이었던 화장품 모델도 이들 차지다. 과연 그 비밀의 열쇠는 무엇일까?

지난해 화제가 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직장의 신>,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여왕의 교실>과 최근 가장 화제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공통점은? 바로 여주인공을 맡은 여배우의 나이가 30~40대라는 점이다. 지난 연말에 열린 지상파 텔레비전 3사의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김혜수와 이보영, 하지원이 대상을 수상해 30~40대 여배우들의 저력을 과시했다. 이처럼 지금은 서른 넘은 여배우들이 드라마와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는 일이 다반사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흔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청순하고 풋풋한 매력의 신인 연기자가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돼 톱스타 반열에 오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대부분 20대 차지였다. 송혜교를 비롯해 전지현, 손예진, 한지민, 김태희, 최지우, 이나영 같은 톱 여배우들 역시 신인 시절 드라마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돼 톱스타가 된 케이스다. 당시 20대였던 여배우들이 서른과 마흔의 문턱에 넘어선 지금까지도 톱 여배우로서 건재한 것에 대해 사회적인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30~40대 여성이 뷰티나 패션 업계뿐만 아니라 방송계나 문화계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소비층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들이 닮고 싶어 하는 30~40대 여배우들이 덩달아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는 얘기다.

꾸준한 운동과 절제된 식습관으로 타고난 미모를 지켜가는 여배우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30~40대 여배우들이 전성 기를 누리는 이유가 단지 이들을 찾는 수요층이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꾸준한 자기관리로 ‘아름답게’ 나이 든 여배우들이 없었더라면 서른 넘은 여배우가 설 자리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을 테니까.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꽃보다 누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카메라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여행지의 일상을 비췄고, 그동안 완벽한 화장과 의상에 가려졌던 김희애의 투명한 피부와 이미연의 탄탄한 몸매를 엿볼 수 있었다. <꽃보다 누나> 첫 방송과 함께 화제가 된 김희애의 견과류 사랑과 시간이 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하는 이미연을 보면서 일상에서 그녀들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궁금해졌다. 오랫동안 이들과 함께 작업해온 이들이라면 그 비결을 알고 있지 않을까?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그녀들을 오래 지켜봐온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고,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취재한 여배우들 모두가 꾸준히 하는 운동이 하나쯤은 있었고, 건강한 음식을 적당히 먹는 식습관을 갖고 있었다. 이미연은 3년 전부터는 많게는 일주일에 세 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필라테스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일부러 살을 빼지는 않지만 저녁에는 스스로 정한 시간 이후에는 절대 음식을 먹지 않고, 저녁 약속도 그 시간을 넘기지 않게 조절한다고. 이미연의 메이크업을 담당해온 정샘물인스피레이션의 정샘물 원장은 이미연의 변치 않는 아름다움의 비결로 절제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 폭넓은 독서와 배우로서의 열정을 꼽았다. “나이 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타입이에요. 시술보다는 운동과 식이조절, 피부 관리 등 스스로 절제하고 가꾸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어요. 그리고 자신이 여배우라는 사실을 잊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더 엄격해요.”
김희애는 집에서 스스로 관리하는 타입이었다. 일주일에 3~4일은 반드시 운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피트니스센터를 찾기보다 집에서 러닝머신과 스트레칭으로 관리한다. 피부 역시 수시로 팩을 하고 기초제품을 꼼꼼히 챙겨 바르는 등 특별한 시술보다는 집에서 하는 꾸준한 피부 관리가 그 비결이라고. 9년 가까이 김희애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디 바이 수성의 박정민 원장은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습관이 젊음의 비결이라고 이야기한다. “건강하고 탄력 있는 피부를 타고나기는 했지만 이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스스로 관리를 철저히 해왔기 때문이에요. 평소에 채소와 견과류를 많이 먹고, 최근에는 커피 맛을 알게 되어서 커피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지만 원래는 카페인 음료는 입에 대지 않고 몸에 좋은 차만 마셨어요.”
전지현 역시 운동 중독으로 소문이 나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이 나오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서서히 잊혀가던 시기에도 전지현은 꾸준히 몸을 만들었다. 영화 <블러드>에서 맡은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습관이 되면서 한때 매일 피트니스 센터에서 2~3시간씩 살았을 만큼 거의 운동 중독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영화 <도둑들>에서 멋진 몸매를 과시하며 여자들의 워너비로 떠올랐고, 다시금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요즘도 촬영이 없는 날은 아침 일찍 운동을 한 뒤에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1일 1식을 하는 간헐적 단식이 크게 이슈가 되기 전부터 스스로 간헐적 단식을 습관처럼 해왔어요. 저녁 7시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바로 운동을 한 다음 점심을 먹는 식으로요. 식사도 저염식 위주로 하고 한식을 즐겨 먹고 인스턴트나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피하는 편이에요. 외식을 하기보다 직접 요리해서 남편과 함께 먹는 걸 더 좋아해요.” 10년 넘게 전지현의 피부를 관리해온 스파 드 이희의 김연옥 원장의 말이다. 타고난 피부결이 워낙 매끄럽고 피부톤도 투명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은 에스테틱에서 디톡스나 리프팅 관리를 받는다.
한가인 역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여배우로 손꼽힌다. 최근 화제가 된 잡지 화보에서 전문 무용수 못지않은 유연함과 섬세하고 가는 몸매를 뽐냈던 한가인은 2년 넘게 매주 세 번, 하루 3시간씩 스트레칭과 현대 무용을 꾸준히 해왔다. 한가인을 지도해온 탄츠플레이의 김윤아 대표는 한가인의 성실성을 높게 평가했다. “사람들은 완벽한 외모와 몸매를 타고났다고 이야기하지만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지난 2년간 수업에 늦거나 말 없이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착실하고, 완벽주의자예요.” 평소 생활처럼 식습관도 바른 생활 그 자체다. 잡곡밥과 현미밥을 즐겨 먹고 고기보다는 심심하게 무친 나물을 좋아한다고.

여유롭고 안정적인 삶을 가꾸며 행복하게 연기하는 여배우들
꾸준한 자기 관리로 빛나는 외모를 유지하는 것과 함께 나이 들며 삶을 안정적으로 가꿔가는 그녀들의 모습에 우리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낀다. 전지현은 결혼 이후 훨씬 여유롭고 안정된 모습으로 연기를 즐기기 시작했고, 고소영과 김희선은 결혼을 통해 예전보다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한발 더 가까워졌다. <꽃보다 누나>에서 김희애가 빛났던 이유도 단지 맑은 피부와 세련된 옷차림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누나들’을 모시고 여행하는 것에 서툰 이승기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은 쉽게 곁을 허락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일 것 같았던 김희애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게 했다. 생각해보니 에디터가 배우 오연수의 팬이 된 계기도 비슷했다. 지난여름, 화보 촬영장에서 만난 그녀는 양손 가득 빵을 준비해 왔다. “이른 아침 촬영이라 스태프 모두 아침을 거르고 나왔을 것 같아서 준비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물론 단지 빵 때문에 그녀의 팬이 된 건 아니다. 눈썹 사이를 일자로 메우는 과감한 메이크업을 시도했는데, 화보 촬영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전문가인 스태프들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하며 싫은 내색 없이 장시간의 촬영을 즐겁게 마쳤다.
나이가 들수록 무르익어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또 다른 여배우는 송혜교다. 열일곱 살 나이에 교복 모델로 처음 데뷔한 송혜교는 올해로 데뷔 17년 차 여배우가 됐다. 데뷔 초 그저 예쁘기만 했던 송혜교가 고혹적인 빛을 발산하기 시작한 데는 외적으로 점점 더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진 이유도 있겠지만, 제한된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오고 있는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때마다 작품 선택을 잘못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그녀의 연기도, 얼굴도, 감정도 갈수록 섬세해졌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송혜교는 연기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나이 드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천천히 성장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뭔가 대단한 ‘젊음의 비결’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특별한 건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녀들은 모두가 좋은 건 다 알지만 귀찮아서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않는 것들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었고, 밖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그 나이에 걸맞은 생활을 조화롭게 가꾸며 살고 있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패션 디자이너들의 영감이 되고 있는 배우 틸다 스윈튼은 성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나에게 성공이란 자기 자신을 보살필 수 있고, 다른 사람으로 꾸미거나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때다.” 김희애와 이미연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 카메라 앞에서 민낯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꾸미거나 감추지 않아도 될 만큼 스스로 아름답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름답게 나이 든 여배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자 나이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좀 더 너그러워지기를 바란다. 나이 든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아름답게 나이 든 여배우라 하더라도 설자리가 없을 거라는 이미연의 말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