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먹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동물을 먹어야 한다면 고통이나 두려움 등 기본적인 감정을 느끼는 그들을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미국의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의 말이다. 그래서 그들을 올바르게 대하는 곳들을 묻고 찾았다.

얼마 전 방송된 SBS 스페셜 <동물, 행복의 조건>의 반향은 컸다. 누군가는 항생제를 맞고 자란 고기가 사람 몸에 좋을 리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어떤 이는 열악한 환경에 경악했다. 비좁아터진 육사에서 오물 범벅이 되어 고개만 겨우 내민 돼지, 한우 값 폭락으로 사료 값 마련이 어려워지자 굶어 죽도록 방치된 소의 눈을 어느 누가 감히 똑바로 바라 볼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수지타산과 효율성이 최우선인 ‘공장형 축산업(Factory Farming)’의 등장 이후 생겨난 풍경이다.

TV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마트에서 봤던‘목 초 먹고 자란 닭’은 어디에 있는 걸까? 최고 품질이라는 투플러스 등급의 한우도 저토록 비좁은 축사에서 자라나? 공장형 축산업이 문제라면, 다른 방법으로 가축을 키우는 곳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어쩌면 채식보다는 인도적으로 자란 동물을 먹는 게 사람에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착한 육식의 가능성을 찾는 나의 모험심 넘치는 질문들에 처음부터 실망스러운 답변이 되돌아왔다. 괴산과 아산의 축산농가를 수시로 방문하는 한살림의 돈우육 매입 담당자 이세준 대리는 가축의 완전한 방목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런 곳이 있다면 저도 보고 싶어요. 보통 한우가 판매되려면 700kg은 되어야 하는데 풀만 먹여서는 한우가 400kg을 넘기기가 어렵거든요. 젖소도 마찬가지예요. 풀만 먹어서는 젖이 일반 젖소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는 데다가 탄수화물, 단백질 등 영양분도 모자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축산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가축의 배설물은 환경오염과 직결되고, 사료용 곡물의 수요는 제3세계의 곡물 가격을 상승시킨다. 산업 종사자의 생계, 건강, 가축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축산업과 관련된 문제들을 보다 현명하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다방면에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그 노력 중 하나가 수입곡물을 대체할 사료를 개발하는 일이다. 담양에 자리한 한농다란의 닭들은 유기농 곡물과 야생 산초, 댓잎과 솔잎, 칡잎 등을 발효해서 만든 차를 먹고 자라고, 양지농원의 토종닭들은 게르마늄, 솔잎 등을 혼합한 사료를 먹는다. 한살림은 괴산과 안양에 자체적인 사료 공장을 운영하며 대표적인 사료작물인 옥수수를 대신할 국내산 보리를 발아시키는 법을 한창 연구 중이다.

항호르몬제와 성장촉진제 등의 약물 주사를 제한하는 것은 이제 의식 있는 축산업자 사이에서 상식이 됐다. 신세계 푸드에 물품을 공급하는 이천 성지농장의 돼지는 항생제를 맞지 않는다. 위생에 문제는 없냐고? 애초에 가축이 수많은 항생제와 항호르몬제를 맞고 자라게 된 것은 열악한 사육환경 때문이다. 바람과 햇볕이 전혀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이 세상 어디에 있겠나. 중요한 것은 약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1990년대 정부 지원으로 급격히 늘어난 슬러리 돈 사는 돈사 바닥을 땅에서 띄우고, 바닥을 격자로 만들어 똥오줌이 아래로 빠지도록 되어 있죠. 이런 환경에 사는 돼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코로 땅을 파는 자연적인 습성을 경험할 수 없어요. 그래서 슬러리 돈사로 바꾸지 않은 농장주인들과 함께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톳밥돈사입니다”라고 이세준 대리는 말한다. 충남 예산에서 가나안 농장을 운영하는 이연원 대표 역시 톳밥돈사 지지자다. 돈사 바닥에 볏짚과 톳밥을 깔아주면 분뇨가 자연스레 분해되어 냄새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퇴비는 훌륭한 거름이 되어 친환경 농업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햇볕과 바람이 드는 3평 남짓한 공간에서 국내산 발아보리로 만든 사료를 먹는 소와 돼지가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된다.이런 축사에서조차 오직 폐사율이 높은 생후 70일을 넘긴 돼지에게만 톳밥돈사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는 현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비자가 납득할 만한 공급가격에 맞추기 위해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기 돼지에게까지 톳밥돈사를 제공하는 비효율적인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돼지의 삶의 주기가 자돈, 육성돈, 비육돈으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비정한가. 상대적으로 인도적인 환경에서 자라기는 하지만 이들 또한 결국에는 고기가 될 ‘상품’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돼지가 생후 180~190일
기간 내에 도축된다는 사실이었다. 돼지의 자연수명이 15년이니 사람으로 치면 세 살짜리 아기일 때 죽는 셈이다. 닭도 마찬가지다. 닭은 본디 30년을 살 수 있지만 한살림과 제휴하는 양계장의 닭조차 보통 1년 6개월 만에 도태 처리된다. 알을 낳지 못해서가 아니다. 한 살을 넘겨 몸집이 커지면 달걀의 난황과 난백이 풀어져 ‘시장에 팔 만한’ 알을 낳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가축의 삶에 대해 쏟아지는 증언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한국의 식품 장인(디자인 하우스)>에 실린 마령농장 정태한 대표의 말은 쐐기를 박았다. “닭이 백숙용이 되려면 8개월이 걸리는데 시중에서 판매하는 삼계탕용 영계는 겨우 25일 만에 그만해져요. 성장촉진제와 항생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죠.”

애초의 기대에 걸맞은 고기와 달걀을 거두려면 직접 기르거나,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부 농장과 직거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점차 도달했다. 물론 이 조차도 쉽지 않다. 접근성과 가격이 문제다. 마령농장 유정란의 가격은 한 알에 1350원, 백숙용은 한마리에 6만원이니까.

대량 축산업을 하지 않는 농가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진 곳이 대부분이에요.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 없이 가축에 대해 이토록 깊은 이해와 지식을 체득하기란 불가능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하는 분들에게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야 하죠. 그래야 우리도 계속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니까요”. 신세계 푸드의 축산바이어 정해진 과장의 말이다. 그만큼 정성을 들이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시가와의 엄청난 차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돈 있는 사람만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는 비딱한 시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현대인이 소비하는 고기의 수요를 맞추려면 가축의 대량생산은 필요악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토록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많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공장형 축산업이 퍼진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대부분 공산품의 물가가 20배가량 올랐음에도 불구, 달걀 가격은 고작 2배, 고기 가격은 5배 남짓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 수치야 말로 우리가 육우제품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다.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너무 많은 고기를 먹고 있다. 탬플 그랜딘 교수의 말처럼 ‘그들을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 곳들이 사라진다면 고기의 공급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먹을 때 좀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게 되겠지만 소 근육에 지방이 얼마나 골고루 퍼져 있는지를 기준으로 소의 등급을 매기는 일이 덜 당연해질지도 모른다. 탱글거리지 않는 달걀 노른자를 자연스럽게 여기게 될 수도 있고, 조금 질긴 삼겹살은 그것대로 맛있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요원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그런 미래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미래는 지금보다 긍정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