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녀처럼 고왔던 배우 김자옥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의 리즈 시절을 추억하며 동시대에 활동한 여배우들을 손꼽아봤다. 1970~80년대 한국 영화의 주역이자 뷰티 아이콘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그 시절, 그 여배우들.

1 60년대 패셔니스타였던 윤정희. 2 70년대 후반 라미화장품 라피네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3 영화 <태백산맥>(1975).

1 60년대 패셔니스타였던 윤정희. 2 70년대 후반 라미화장품 라피네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영화 <태백산맥>(1975). 

 

 

윤정희 
얼마 전 열린 제51회 대종상영화제에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등장한 배우 윤정희. 20~30대에게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로 깊은 울림을 남긴, 곱게 나이 든 여배우로 기억하겠지만 윤정희는 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한국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연 주역이다. 1966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그녀는 당당하고 상큼한 매력으로 사랑받았다. 첩보 영화의 여주인공부터 비련의 여주인공까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한 윤정희는 데뷔 후 은퇴하기 전까지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2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67년 영화 <안개>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강신성일과는 90편이 넘는 작품을 함께 했다. 또한 그녀는 베레모나 스카프를 활용한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60년대 유행을 선도한 당시의 ‘패셔니스타’이기도 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녀>의 천송이처럼 당시에는 윤정희가 걸친 의상과 액세서리는 물론 헤어 스타일과 화장법까지 인기였다. 눈꼬리를 살짝 뒤로 빼 눈매가 길어 보이게 연출하는 윤정희식 아이라인이 유행하기도 했다. “70년대 후반, 최고의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였던 라미화장품 라피네의 모델로도 활약했는데, 그때 찍은 광고를 보면 해외 광고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되고 예뻐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고원혜의 말이다. 한 해 200여 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호황기였던 시절, 최고의 여배우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던 윤정희는 프랑스로 돌연 유학을 떠나며 은퇴를 선언한 뒤 자취를 감췄고, 2010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을 비켜가진 못했지만 곱고 아름다운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1 80년대 아모레 부로아 화장품 모델로 활약한 이미숙. 2 이미숙, 안성기 주연의 영화 <겨울 나그네>(1986).

80년대 아모레 부로아 화장품 모델로 활약한 이미숙. 2 이미숙, 안성기 주연의 영화 <겨울 나그네>(1986). 

 

 

이미숙 
1979년 미스 롯데 출신으로 연예계에 입문한 이미숙은 도회적인 세련미와 관능미, 연기력까지 두루 갖춘 배우였다. 이미숙이 즐겨 하던 일명 ‘바람 머리’는 그 시절 여성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였다. 1979년 영화 <모모는 철부지>로 충무로에 입성한 그녀는 영화 <고래사냥>으로 흥행에 대성공하며 톱 여배우로 떠올랐다. 상업광고의 전성기가 시작된 80년대 이미숙은 아모레 화장품을 비롯해 유니레버, LG전자 등 내로라하는 광고의 모델로 활약한다. 김청경은 당시의 이미숙을 인형 같은 얼굴의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당당하고 관능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추억한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흥행하고, 연기력도 뛰어나서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기억이 나네요.” 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와 <겨울 나그네>로 흥행과 연기력을 모두 인정받은 이미숙은 1987년 결혼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다. 당시만 해도 여배우들이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하는 일이 빈번했던 만큼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 후로 10년 뒤인 1998년, 이미숙은 영화 <정사>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지금은 30~40대 여배우들이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멜로 작품의 여주인공은 20대 여배우의 전유물이었다. 긴 공백 기간에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성기 시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덕분에 이미숙은 여전히 누군가의 연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10대 아이돌과 연인으로 화보를 찍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중년 배우는 이미숙이 유일하지 않을까.

 

1 80년대 쥬단학 화장품 모델로 활동한 이혜숙. 2 정보석과 함께 출연한 영화 <젊은 날의 초상)>(1981).

1 80년대 쥬단학 화장품 모델로 활동한 이혜숙. 정보석과 함께 출연한 영화 <젊은 날의 초상)>(1981). 

 

 

이혜숙 
깐깐한 재벌집 사모님 역할로 친숙한 이혜숙도 20대 때는 윤아 못지않은 청순한 이미지로 뭇 남성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여배우였다. 작은 얼굴과 강아지같이 선한 눈매, 도톰한 입술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녀는 1978년 미스 해태로 데뷔해 이듬해 MBC 공채 탤런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뒤부터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을 도맡았다. 1981년 이미숙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장희빈>에서도 인현왕후 역을 맡았다. 1991년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제,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녀는 일본 쇼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한 원조 한류스타이기도 하다.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로 쥬단학 화장품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이혜숙은 시스루뱅의 원조이기도 하다. 속눈썹에 닿을 듯 말 듯한 길이로 잘라 숱을 치고, 드라이로 볼륨을 살린 앞머리는 당시 최고 인기였다. 세월이 흘러 귀엽고 싱그러운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그녀다.

 

1 70년대 아모레 하이톤 화장품 모델 시절. 2 임권택 감독의 영화 <상록수>(1978).

70년대 아모레 하이톤 화장품 모델 시절. 2 임권택 감독의 영화 <상록수>(1978). 

 

 

한혜숙
드라마 <하늘이시여>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한혜숙 하면 고상한 부잣집 맏며느리 혹은 시어머니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지만 70년대만 해도 김자옥, 김영애와 더불어 브라운관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197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한혜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아모레 하이톤 화장품의 메이크업 캠페인인 ‘오, 마이 러브’를 통해서다. 색조화장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 한혜숙은 지면과 TV광고를 통해 다채로운 컬러의 메이크업을 선보이며 연두색이나 하늘색, 연보라색 등 밝은 색상의 아이섀도를 눈두덩에 넓게 펴 바르는 파스텔 컬러 아이 메이크업 붐을 일으키는 데 한몫했다. 고전적이고 단아한 이미지 덕분에 멜로드라마보다는 대하드라마 같은 대작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아 선 굵은 연기를 펼쳐 보였는데, 드라마 <토지>의 1대 서희와 당시 최고 인기였던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한혜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