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해 그 속에 함유된 ‘글루텐’이 나쁘단다. 그래서 글루텐 없이 한 달을 살아봤다.

밀가루 금식을 선언한 날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첫마디는 “밀가루를 안 먹는다고? 네가?”였다. 그렇다. 지금껏 나는 ‘빵순이’, ‘간식상자’ 등의 애칭을 가진 밀가루 중독자로 살아왔다. 사실 밀가루를 안 먹겠다는 다짐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밀가루를 끊으면 살이 빠진다던데, 다이어트도 할 겸 밀가루를 끊어볼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기획 회의를 거쳐 한 달 동안 식단에서 밀가루를 제외하는 ‘업무’로 번진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밀가루를 섭취하지 않아서 오는 변화를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밀가루와 보리 등에 함유된 글루텐 성분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글루텐이 들어 있을 만한 음식도 아예 먹지 않았다. 첫날부터 고비는 찾아왔다. 레스토랑에서 미팅 겸 식사를 했는데 메뉴판이 전부 ‘파스타, 샌드위치’였던 것이다. 밀가루를 넣지 않은 듯한 음식은 ‘닭고기 카레’뿐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주문한 카레. 그런데 카레에도 밀가루가 들어 있었다! 세상에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참 많았다. 빵집 근처에는 갈 수도 없었고 분식집을 가도 괴로웠다. 라면과 튀김, 만두는 쳐다볼 수 없었다. 치킨에 맥주도 마시지 못했으며 디저트는 감히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먹을거리가 제한되다 보니 자연히 예전보다 음식을 덜 먹게 됐다. 이전에는 밥을 먹은 후에도 끊임없이 초콜릿, 파이, 과자, 빵 등의 간식을 먹곤 했는데 밀가루를 먹지 않은 후부터는 자연히 간식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밥으로는 해물, 고기, 야채로 이루어진 한식과 일식, 식전 빵을 제외한 샐러드 등을 먹었다. 간식으로는 과일이나 견과류, 고구마, 떡 등을 먹었고 그렇게 좋아하던 야식은 완전히 끊게 되었다.  

몸의 변화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밀가루를 먹지 않은 지 5일이 지났을 무렵 볼록하던 아랫배가 들어간 것을 느꼈다. 다른 변화도 있었다. 달고 살던 간식과 야식 덕에 늘 몸이 무겁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는데, 일요일 아침 7시에 눈이 떠진 것이다!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였다. 그 외 한 달간 살이 2kg 정도 빠졌고, 피부톤이 약간 맑아졌다. 식후의 더부룩함도 거의 없었다. 밀가루 금식을 하고 있는 친구들 역시 위와 장이 편해져 화장실 가기가 더 수월해졌고 피부 트러블이 확 줄었다고 했다. 밀가루를 먹지 않는 동안 깨달은 건 밀가루가 생각보다 식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밀가루를 먹지 않으니 패스트푸드와 당분 높은 간식을 자연히 멀리하게 되었고, 먹을 수 있는 것이 한정돼 더욱 건강한 음식을 찾게 되었다. 몸에 찾아온 긍정적인 변화가 밀가루와 글루텐의 유해성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서구형 식생활에서 벗어나 좀 더 ‘덜 가공된 음식’을 찾아 먹다 보니 몸무게는 줄었고, 피부도 좋아졌다.

 

밀가루와 글루텐에 관한 오해와 진실
밀가루는 모두가 알고 있듯 밀의 낟알을 분쇄해 만든 가루를 일컫는다. 최근에는 본래의 영양분을 잃어버린 ‘정제 밀가루’가 헬스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제된 밀가루 안에는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이 체내에 영양분 흡수를 막고 저혈당증,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셀리악 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셀리악 병을 예방하기 위해 ‘글루텐 프리’ 식단을 찾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이화여대의 식품영양학과 권오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 형성되는 단백질인 글루텐이 약 1%의 확률로 셀리악 병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는 있어요. 하지만, 이는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된 결과로 동양인은 서양인들에 비해 체질상 이 병에 걸리는 비율이 훨씬 낮습니다.” 글루텐이 복통과 설사 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조차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면서까지 조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단, 잦은 밀가루 음식 섭취로 인해 만성 소화장애를 겪고 있다면 밀가루 음식을 자제하는 게 좋다. 소화기 내과 전문의 김창섭은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유난히 소화가 잘 안 된다면 몸에 잘 맞지 않는 것으로 이런 사람들은 밀가루를 적게 먹으면 확연히 속이 편안해짐을 느낄 것”이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여드름과 밀가루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피부과 전문의 오세용의 설명은 이렇다. “정제된 밀가루는 몸의 혈당지수인 GI를 높이면서 그 속에 함유된 미세 영양소는 적어 피부에 좋지 않아요. 이처럼 혈당 지수를 높이는 음식은 과다한 인슐린을 분비해 피지 분비를 증가시켜 여드름을 악화시키죠.” 깨끗한 피부를 원한다면 밀가루보다는 당 지수가 낮은 통곡물 같은 재료 위주로 식사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분을 최소량보다 많이 섭취하고도 허기를 느끼며 단 음식을 계속 찾는 탄수화물 중독자라면 밀가루 음식을 끊어보기를 권한다. 탄수화물 중독에 걸리면 당분 섭취를 못했을 때 신경이 예민해진다. 이에 또 탄수화물을 찾게 되고 안 먹으면 스트레스가 쌓여 과다하게 당질을 섭취 하면 영양이 불균형해지고 살이 찐다. 밀가루를 끊으면 탄수화물 중독에서 벗어나 허기를 덜 느끼게 되고 먹는 양이 줄어 살도 빠지게 된다. 

 

만약 당신이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힘들며, 피부 트러블이 심하고 만성위염을 달고 산다면 디톡스를 위해 한 번쯤은 밀가루를 끊고 살아보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평소 앓는 질병이 없고 건강한 식생활을 즐기는 이라면 밀가루를 무조건 끊을 필요는 없다. 패스트푸드, 단순 당질 식품 등이 아닌 지중해식 통곡물 파스타와 호밀빵처럼 건강한 밀가루 음식과 글루텐 프리 제품도 충분히 많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안 먹는 것보다는 잘 먹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