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즐기는 작은 기쁨이 바로 뷰티가 된다. 뷰티의 정신을 정립하고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지구를 위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뷰티 에디터의 두 가지 고백.

# 1 아이들은 산책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산책할 거야’라고 말한다면 아마 놀러 나가거나 그냥 쏘다니다 온다는 뜻으로, 어른들의 말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산책의 걸음마를 시작한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산책하면서 느낀 자연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지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매번의 산책으로 ‘자연에의 감동’과 함께 선물 받는 것이 바로 ‘책임감’이니까. 나는 집 앞의 산책길을 ‘수목원’이라고 부른다. 한강고수부지길에 불과하지만 한강변을 따라 길 양쪽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으니 나에게는 수목원이나 다름없다. 이곳으로 산책을 나서면 정말 수목원을 거니는 것 같다. 누구든 주변을 살피면 자신만의 수목원을 찾을 수 있다. 듬성듬성 가로수가 서 있는 도로변이나 화단이 있는 골목길일 수도 있다. 천천히 수목원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면 그동안 도시에서 내 시선의 반경이 고작 90도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수목원에서는 어쩐 일인지 상하좌우로 270도쯤은 되는 것 같다. 그냥 정면을 보고 걸을 뿐인데 넓은 시야각에 3층 정도 높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순간 만나는 공기와 햇살은 삶의 빛깔을 바꾼다. 자연을 벗삼는 것은 영생을 꿈꾸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을 숨쉬게 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바쁜 삶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 자신과 타인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이해하는 일은 오직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것들을 누리려고 스스로 자연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짓밟힌 꽃 한 포기를 바로 세우고 휴지를 줍는다. 지구를 살리는 뷰티적인 삶은 화장품 관련 행동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 내 몸을 스스로 사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아가고 있다. 이는 내 주변의 편리한 ‘리모컨적인 존재’들을 치워 얻는 ‘보디 메이킹’을 포함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무적으로 시간을 갖고 자연에서 몸을 움직이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이건 아름다운 몸과 아름다운 지구를 만드는 뷰티 행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 2 헤르만 헤세는 에세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에서 다음과 같이 자연의 너그러움을 알려주었다. “아마추어 정원사나 게으름뱅이들, 꿈꾸는 사람들은 어느새 봄이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소스라치며 벌떡 일어나 바삐 서두른다. 게으르게 놓아두었던 것들을 뒤늦게 만회하려고. 어쨌든 자연은 너그럽다. 결국 그 게으른 자의 정원에도 풍성한 채소밭이 만들어지고, 즐거운 여름꽃도 무성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기쁨과 환상을 맛보고 싶어서 그것들을 만들어내고 가꾼다. 그러나 헤세의 말처럼 자연은 동시에 가혹하기도 해서 얼마간 인간들이 마음대로 빼앗아가도록 내버려두기도 하고, 언뜻 한 번쯤 속아 넘어가는 척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나중에 가서는 더욱 강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그래서일까? 지구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무자비한 자연 훼손으로 인해 건강한 삶을 돕는 천연 성분을 얻을 수 있는 자원이 고갈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르는 자연의 산물은 알고 보면 실로 경이롭다. 섬세하고도 진귀한 향기를 지닌 허브, 고산의 눈 쌓인 대지를 뚫고 올라올 만큼 강인한 생명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야생화가 고작 화장품 원료로 쓰인다는 것은 더 경이(!)로운 일이지만. 아무튼 정원에서, 귀한 식물에서 얻은 뷰티 아이디어는 지금 지구의 정원을 지키고 있다. 알프스 고산에서만 조금 자라는 식물인 솔다넬라 알피나에 관심을 기울인 라프레리는 야생화를 훼손하는 대신 알프스 내에서 천연 재배를 시작했고, 멸종되어가던 이 식물은 이제 그 위험에서 벗어났다. 맘먹고 지갑을 열 수밖에! 작년에 론칭한 브랜드인 보타닉힐 보는 귀한 꽃을 훼손하지 않고 화장품을 만든다고 해 애용할 브랜드로 점 찍었다. 보타닉힐 보의 기초 스킨케어 제품의 주성분은 농축된 영양핵 플라셉토이다. 14명의 박사가 3년 반 동안 연구하여 찾아낸 특별한 기술 ‘TOP-C2X’를 사용해,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플라셉토를 추출한다. 꽃 하나에서 주성분인 플라셉토를 약 800만 개까지 배양할 수 있어 꽃 800만 송이를 지키면서 화장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프리메라의 미라클 씨드 에센스도 애용하는 제품이다. 청정지역인 전북 정읍 농민들과 ‘아리따운 구매’를 통해 유기농 연꽃씨앗 구매 협약을 맺었다는 얘기를 접했는데 그 맑은 동기처럼 효과도 좋아서 매우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메이크업 제품은 매년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호를 위해 필란트로피라는 특별한 후원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는 샹테카이의 한정판들을 수집한다. 2006년부터 시작된 샹테카이의 환경 보호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지구의 위기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사회공헌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수익의 5%나 기부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타사 튜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멋진 날들>이라는 저서에서 향기로운 것을 곁에 두면 몸도 마음도 아름다워진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나도 타사 튜더처럼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고 마음먹었다. 가그린 대신 세이지로 입 헹굼액을 만들었다. 냄비에 물을 넣고 끓으면 세이지 잎을 넣어 뚜껑을 덮고 20분간 끓인 후 식혀서 만든 양칫물인데 그만한 게 없다. 감기가 와서 추울 때 난방 온도를 올리는 대신 반신욕을 하고 이불 위에서 요가 동작을 하면 어김없이 몸이 더워진다. 기성품 보습팩을 한 달에 네 번 사용했다면 이제는 한 번만 사용한다. 나머지 세 번은 빵을 찍어 먹다 만 꿀을 모아 팩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끔이기는 하지만 식초를 넣지 않은 종지 안의 올리브 오일도 설거지 통에 넣는 대신 클렌징 겸 마사지 오일로 대체하기도 한다. 실제 머스크 원료가 들어간 향수도 구입을 중단했다. 수컷 사향노루의 분비샘에서 나오는 머스크를 얻기 위한 과도한 사냥으로 사향노루가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는데 머스크 향수를 뿌려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화장품 안전 협약에 가입한 제조사의 화장품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미국의 연구 단체인 환경실무그룹이 주관하는 캠페인 ‘The Compact for Safe Cosmet ics’에 가입한 회사들은 암이나 선천성 결함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제품에 사용하지 않고 위험한 물질을 안전한 대체물로 바꿀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 참가한 회사들의 정보를 확인하는 일은 지구를 위한 작은 뷰티 실천으로 손색없다(그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동백기름을 짜서 머리와 얼굴에 발랐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다. 피부에 윤기를 주기 위해 수세미물을 만들어 화장수로 썼으며, 피부의 얼룩을 빼거나 희게 하기 위해서는 꾀꼬리의 똥, 입술을 붉게 물들이기 위해서는 흔한 붉은 꽃물을 들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그것들을 훼손하지 않고 자신이 쓸 만큼만 재배하거나 서로 교환해 얻은 화장품들이다. 화장의 어원은 그리스어 코스메티코스이다. 우주와의 조화라는 뜻이다. 육체와 정신이 우주와 조화를 이뤄서 균형이 잘 맞는 상태가 아름다움이다. 내가 아름다워지려면 지구를 먼저 아름답게 가꿔줘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