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화장품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스타가 그 제품을 사용해서 피부가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음에도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판매되는 불편한 진실을 바라보는 뷰티 에디터의 복잡한 심경.

중요무형문화재 38호인 궁중음식 전문가 정길자 씨는 한 지면을 통해 이렇게 말한 적이있다. “‘조리는 노동’이라는 태도로 음식을 대하면 안 됩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제 손을 구 정물에 담가가며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배려의 행위라고 할 수 있거든요. 한국음식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정성’으로 집약되죠. 음식에 정성이라는 간이 배어야 비로소 한국음식이고, 좋은 음식이 되는 거랍니다.”

화장품 역시 이렇게 음식을 조리하듯 정성껏 만들어진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심해 만든 제품을, 그 제품이 가진 빼어난 미덕을 자랑하는 대신에 스타를 전면에 내세워 그 이미지를 팔기 시작하면서 주객이 전도된다. 심지어 이름도 스타의 이름을 딴 ‘홍길동(물론 ‘가제’다!) 크림’이 되기도 한다. 온갖 좋은 성분을 가져다가 고심해 만든 한 크림의 아이덴티티가 ‘ 홍길동’이 되는 순간이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제로 홍길동이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대중들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연기도 하고, 화장품을 만드는 그녀는 재능도 많지’라고. 에디터는 청개구리 타입이다. 내가 사용할 화장품은 전문가가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인간형이 많지 않은 탓에 스타 마케팅은 꽤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시류를 지켜보고 있자니 철학자가 되기에는 인내심이 부족했고, 건축가가 되기에는 재능이 부족했기 때문에 뷰티 브랜드를 시작했다고 고백한 이솝(이전 에이솝) 창립자인 데니스 파피티스와 같은 처지(!)로 느껴진다. 연예인이 되기에는 미모가 부족했고, 화장품 회사를 차리기에는 돈이 부족했던 에디터는 양쪽 모두를 아우르며 일하는 뷰티 에디터를 택했으니까. 데니스 파피티스의 선택이 괜찮아 보이는 것처럼 에디터의 선택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심경이 복잡미묘하다. 어떤 날에는 오페라 <햄릿>의 오펠리아의 극단적인 아리아인 ‘콜로라투라’의 선율처럼 감정이 극에서 극을 오가기도 한다. 정말 괜찮은브랜드가 탄생했고, 대중들에게 소개하려고 애쓰는데 스타를 등에 업은 사인회, 할인, 사은행사 ‘3종 세트’의 그림자에 가려져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사업을 접을 때 말이다. 좋은제품인데 사라져 안타깝다”는 푸념을 뷰티 에디터들끼리 늘어놓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국내에서 스타 없이는 정말 힘든 것일까? 심지어 스타를 마케팅에 쓰지 않기로 유명한 유명 해외 브랜드조차도 국내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스타 마케팅에 동참하기도 한다. 복잡한 심경에 또 하나 일조하는 건 바로 자신이 광고하는 제품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별로 없는 스타를 마주하는 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값을 올려가며 철새처럼 브랜드를 옮겨가는 스타들, 그리고 광고 찍는 일을 노동’으로만 생각하는 스타들. 그런 마인드로 과연 브랜드의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을까?

광고 모델을 교체하는 시즌이 시작되면 담당자들은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 “광고 모델을 바꾸려고 하는데 이 연예인은 어때요? 오프더레코드로요.” A 연예인을 썼을 때 그달 매출이 얼마가 뛴다는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이거야말로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수치다. 설문조사로 얻은 모델 호감도와 매출의 연관성을 읊는 마케터의 말은 머릿속을 미궁으로 몰고 간다. 이럴 때는 솔직히 말해준다. “그녀는 글쎄요. 톱 여배우이기는 하지만 국내 브랜드 제품 모델이면서도 공공연히 해외 브랜드만 사용한다고 하는 걸요? 화장품에 별로 관심도 없고, 피부도 좋지 않고요. 뷰티에 관심 많은 뷰티 모델을 발굴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그러나 대부분의 광고 담당자는 피부가 좋든 나쁘든, 자사 제품을 사용하든 하지 않든 스타의 유명세만 얻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모델을 선정하는 기준은 뭘까? 담당자의 답변 중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젊은 여성들에게 호감도가 높고, 고급스러운 외모에, 주름 없이 탄력 있는 동안 피부를 지녀야 한다’였다. 그러나 실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한 담당자는 솔직히 털어놓는다. “무조건 인기가 많고 예뻐야 해요. 피부는 상관없어요. 촬영 후반작업으로 완벽하게 만들면 되니까요.” 우리가 뻔하게 생각했던 이유가 아직도 캐스팅의 절대 기준이다. 또한 단기계약을 한 스타들이 이 브랜드에서 저 브랜드로 계속 이삿짐을 쌀 때마다 어느 브랜드의 모델인지도 헷갈린다. 이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명확하지 않은 점과 스타의 인기를 단기 매출로 연결하려는 의도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브랜드의 입장은 철저히 인기가 기준이다. “지금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으로 반짝 떴기 때문에 솔직히 이 인기로 어필하는 거예요. 톱급이 아닌 연예인을 3개월 이상 계약한다는 건 무리예요. 앞으로 판도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요.” 그런가 하면 국내 스타를 기용하지 않던 해외 브랜드도 그해 가장 중요한 신제품이 나올 때는 일시적으로 모델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과거부터 스타 모델의 출연 정도에 따라 소비자의 태도가 다르게 나타났고, 각각의 스타 모델에 대한 태도 유형이 소비자 광고 태도, 브랜드 태도, 구매 의도에 다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과가 아직도 이 세계를 지배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캐스팅의 기준을 가진 브랜드도 분명 존재한다. 한 국내 메이크업 브랜드 담당자는 말한다. “국외로 진출하기 위해서예요. 한국 토종 브랜드라서 해외에 수출하는 데 있어 국제적 감각을 지닌 한류 모델이 절실히 필요했거든요.”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한 자연주의 브랜드는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자연 미인이며 브랜드 이미지와 잘 어울려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한 렌즈회사는 자사 제품을 실제로3 1년째 사용해오고 있는 송중기를 모델로 발탁해 현재 광고 효과까지 누리고 있는 행운을 가져갔다. 모델들이 프로모션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차라리 진정성이 느껴진다. 숨37은 한효주와 함께 CM송을 만들어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신선하게 어필했다.

끝으로 모델 선점에 울고 웃는 최근의 뷰티업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 소개한다. 이달부터 랑콤의 한국 모델로 이나영이 낙점되었다. 현재 글로벌 모델인 줄리아 로버츠, 케이트 윈슬렛, 엠마 왓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짠하다. 최근까지 이나영을 눈독 들이고 있던 다른 화장품 브랜드 담당자의 얼굴이 아른거려서다. 반면에 더페이스샵 담당자는 승진해야 할 판이다. 올해 초 수지로 모델을 교체해 3년을 계약해놓았단다. 현재 수지가 광고하는 피지 잡는 수분크림은 날개 돋친듯 팔리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 판매량이면 제품이 좋아서이지 수지 때문에만 잘 팔리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바람이 있다면 인지도가 톱스타에 못 미치더라도 진정으로 메이크업을 즐기는 연예인이 메이크업을 보여주는 광고를 하고, 피부관리를 좋아하고 추천해줄 만큼 노하우가 있는 스마트한 연예인이 스킨케어 제품의 모델을 하는 것에 가치를 인정해주는 소비자가 되는 것, 소비자들이 스타를 통해 브랜드의 존재감은 기억하되 제품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것으로 여겼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혼 없이마 ‘스크’만 빌리는 스타 마케팅에 집중하는 여력을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좀 더 쏟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절실히 필요한 건 조리에 ‘정성’을 들인 진짜 화장품이니까. 지리산 자락의 풍광을 영양분삼아 귀한 음식이 된 꾸덕꾸덕한 약선 장아찌 같은 그런. 아무래도 그런 장독대 앞에서는 스타가 홀로 빛나는 일은 없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