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나 뿌리는 향에 거부감이 있다면? 여기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향과 특별한 향을 입는 특별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새로운 향기를 찾는 과정은 과감한 컬러 로 염색하는 것만큼이나 흥분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나 만의 향수’를 골라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고르겠노라고 결심한들, 대체 뭐가 남성적인 향이 고 여성적인 향인지 또다시 미궁에 빠지고 만다. 이런 고전 적인 구분에 식상한 사람들은 관습을 초월한 색다른 향의 출현을 열렬히 반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시그니처 향을 만 들어보겠다고 결심한 여성들은 뻔한 향을 원하지 않아요. 마돈나가 뿌리는 향수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에디 션스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설립자인 프레데릭 말은 말한 다. 그는 그 향수가 여성용 향수든, 분무기에 담겨 나오든, 아니면 엄마가 쓰던 향수와 비슷하든 마음에 드는 향이라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의 향수 개발 담당 수석 부사장인 캐린 쿠오리가 이 말에 힘을 보탰다.“향 수가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선택권이 있다는 거예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혹은 그날 기분에 따라 원하는 경험을 선택할 수 있죠. 오늘은 청바지에 스웨터를 입고 다음 날은 정장을 입을 수도 있듯이요.” 쿠오리는 최근의 향수 시장을 분석한 결과 소비자들이 오 드 투왈렛을 선호하고, 이런 소비자들은 자신을 좀 더 빛내줄 수 있는 특별한 향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향에 민감해진 흐름을 증명이라도 하듯 헤어 브랜드의 최근의 행보에도 ‘향’은 빠지지 않는다. 케라스타즈의 엘릭서 얼팀 그랑 크루는 헤어 오일임에도 플로럴 향, 오리엔탈 향, 플로럴 프루티 향, 프루티 우디 향의 4가지로 출시했고, 대중적인 샴푸 브랜드인 엘라스틴에서도 이달에 3가지 향의 엘라스틴퍼퓸 샴푸를 내놓았다. 패션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향수를 한곳에 모아놓고 판매하던 국내 백화점에서도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르 라보, 조말론, 더 디퍼런트 컴퍼니, 메모, 바이레도 같은 부티크 향수를 단독 매장의 형태로 선보이기 시작했고, 분스나 SSG 같은 드럭스토어나 프리미엄 마켓에서도 기존에 볼 수 없던 향초와 향수, 디퓨저까지 갖춰두고 다양한 향의 제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남성의 향을 즐기는 여자들
여전히 플로럴 향은 향수의 가장 큰 축을 이룬다. 이딜을 만든 겔랑의 조향사인 티에리 바세나, 야생 장미를 하트 노트로 사용하곤 하는 까르띠에 퍼퓸 하우스의 조향사 마틸드 로랑처럼 말이다. 터키 장미를 사용하는 디올 퍼퓸의 조향사 프랑수아 드마쉬 역시 장미나 재스민 등의 꽃향기를 어떻게 더 진짜 꽃향에 가깝게 만드냐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자의 향과 여자의 향으로 구분하는 것은 줄어드는 경향이다. 프랑스의 주얼리 디자이너 오렐리 비더만은 이에 동의하는 여성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트러스 향조인 베티베르 카르방이라는 향수의 팬이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늘 그 향수만 애용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런데 신기한 건 저도 그 향이 무척이나 좋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아버지처럼 한결같이 그 향수를 뿌리죠. ” 이 향은 에르메스의 오도랑제 베르테, 아쿠아 디 파르마의 향수들, 그리고 어린이용 향수인 봉뿌앙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장미 향의 대가로 불리는 조향사 소피아 그로스만은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은 남성용 향수가 더 깔끔해요. 여성용 향수들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달콤한 경향이 있거든요.” 최근에는 남성 향수에 주로 사용되는 가죽이나 담배 향이 물씬 풍기는 향수로 신비로운 이미지를 가미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향을 레이어링하는 법
조향사에게 여러 향수를 한번에 레이어링하라고 하는 것은 칼끝으로 그의 심장을 찌르는 것과 같다.“ 그냥 아무렇게나 섞는 건 안 돼요”. 그로스만은 말한다.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는 향수를 골라 뿌려주세요. 하지만 갖고 있는 향수들이 거의 비슷한 향이라면 문제될 건 없어요” .조 말론의 한국 론칭 때 만난 조 말론 런던의 라이프스타일 디렉터인 데비 와일드는 에디터에게 향을 레이어링하라고 적극 권유했다. “그날의 기분이나 입은 옷에 따라 두세 가지의 향을 골라서 조합해보세요. 특별한 규칙은 없지만, 특별히 사랑받는 조합이 몇 가지 있긴 하죠”. 상큼한 시트러스 향을 좋아한다면 조 말론의 라임 바질 앤 만다린과 그레이프프루트를 함께 뿌린 후, 레드 로즈로 포인트를 주는 식이다. 그리고 팁을 덧붙였다“.향수 대신 잔향이 오래 남는 보디 크림을 사용해보세요. 보디 크림은 피부에 충분히 스며들어서 하루 종일 향기를 머금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향의 보디 크림을 바르고 나서 그날 기분에 맞는 향수를 뿌리면 자신만의 향을 완성할 수 있어요.” 할리우드의 셀러브리티인 니콜 리치는 자신만의 맞춤 향수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키워왔다. “어머니는 보디 크림, 오일, 그리고 향수로 마무리하지 않으면 외출을 하지 않으셨어요. 한 가지 향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셨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는 저도 따라 하게 되더군요.”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향수 ‘니콜’을 다른 향수와 섞어 뿌리는 것으로 그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블렌딩의 초보단계는 두 개의 싱글 노트 향수를 동시에 뿌리거나 하나를 먼저 뿌린 후, 그 노트를 포함한 다른 향수를 뿌리는 것이다. 이미 장미향이 포함된 향수를 뿌리고 나서 장미 향이 포함된 향수를 더함으로써 향이 일맥상통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향사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향에 대해 남다른 감각을 지닌 소수만이 과감히 시도할 수 있는 레이어링도 있다. 샤워를 할 때 이용하는 시트러스 계열의 보디 스크럽을 사용한 후 오렌지꽃 향이 느껴지는 조 말론의 코롱을 목과 손목 등에 뿌리고, 최근 인기 몰이 중인 톰 포드의 오드 우드로 마무리하거나 타타 하퍼의 달콤한 허브 향의 이리터빌리티 트리트먼트 오일을 귀 뒤에 살짝 바르는 것이다. 에디터의 경우, 최신의 여러 향이 섞여 만들어내는 향에 취해 아직 이를 대체할 ‘한 가지’ 향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향에 향을 더하고 입었더니 누가 맡더라도 ‘내 향’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일을 사용해볼 것
일반 향수보다 고농축된 데다 피부에 따스한 온기를 전달해주는 오일은 장 폴 고티에의 첫 번째 향수 르 말을 조향한 프랜시스 커크잔이 선호하는 것이다. “향수 대신 오일을 이용하면 좀 더 깊이 있는 향을 남길 수 있죠”. 우디 시트러스 계열의 롤온 오일인 메종 프랜시스 커크잔의 아쿠아 유니버살리스 포르테에는 오드 투왈렛보다 20퍼센트나 많은 향이 담겨 있다. 심지어 오일의 향은 향수보다 피부에 오래 남는다. 게다가 오일은 기존의 향수에서는 찾을 수 없는 노트를 제공한다. 보통 시어버터나 라벤더 오일을 베이스로 하고 여기에 약간의 로즈메리, 장미, 캐머마일 등의 오일을 섞으면 보통의 향수와는 또 다른 향수가 완성된다. 오일은 분명 앰버나 패출리, 머스크처럼 관능적인 향을 추구하는 여성에게 딱 어울리는 선택이다. 에센셜 오일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수만이 향유하는 희귀한 오일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바디샵, 록시땅, 아베다, 이니스프리를 비롯해 각종 드럭스토어의 한 켠에 구비되어 있으니까.

향초나 디퓨저는 향이 스미게 한다.
간접적으로 향을 즐기는 것은 어쩌면 향을 즐기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거나 반대로 가장 소극적으로 향을 즐기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향초나 디퓨저를 사용해 자신이 있는 공간에 향이 퍼지게 한 뒤 자연스레 그 향이 배도록 하는 것은 향을 뿌리거나 바르는 것을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향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는 바이레도의 오리엔탈 계열의 향초인 우드 이모텔, 메모의 홈 컬렉션 중 마라케슈 키스, 제이니미나 아로라의 디퓨저들, 볼루스파의 향초인 에덴 앤 피어, 설화수의 향초인 윤조지향 등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의 향초들은 플로럴 향조 일색에서 벗어나 스파에서 느낄 수 있는 허브의 향이나 오리엔탈 계열의 생소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향을 품고 있다. 설화수의 윤조지향의 경우 첫 향은 솔향으로 정신을 맑게 깨우고 유향이 이어져 마음을 정화하기에 그만이다.

이런 향까지 들어 있다니!

꽃이나 과일 향은 사랑스럽지만 올가을 새로 선보인 향수들 중 어떤 것들에는 우리가 이전에 결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은 노트들이 포함되어 있다.

1. 레이디 가가의 페임 그녀의 향수가 피와 정액 같은 냄새를 풍긴다는 온라인 루머가 있었다. 취재 결과 그녀의 향수에 독성 식물에서 얻은 벨라도나라는 으스스한 노트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 노트는 감지하기가 쉽지 않지만 페임은 이 노트를 음산하게 발산한다.

2. 스텔라 맥카트니의 릴리 이 향수의 이름은 메인 노트인 백합과 폴 맥카트니가 그의 첫 아내의 닉네임으로 사용한 ‘린다 아이 러브 유(LindaI Love You)’의 첫 알파벳에서 따온 것이다. 송로버섯 향을 첨가해 다소 관능적인데 이 버섯을 좋아하는 스텔라 맥카트니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3. 톰 포드의 까페 로즈 향수에 커피? 글쎄 별로 특별한 발상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톰 포드의 향수라면 구미가 마구 당기는 게 사 실이다. 톰 포드는 장미 향에 커피 향을 더했다. 결과는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장미에 친근함과 따스한 온기를 선물한 커피인 셈이다.

4. 딥티크의 볼루테스 향수에 담배 향이라니! 그것도 딥티크가 말이다. 이 향수는 스모크 향을 풍기는데 원래 스모크 향은 섞는 방식에 따라 차갑고 강하거나 아니면 따스하고 감싸는 향으로 발향된다. 볼루테스의 경우, 아이리스와 꿀 향이 섞여 강렬한 파이프 담배 같은 향을 뿜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