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 에나멜은 물론, 아이섀도, 마스카라 등에서 농도 짙은 블루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파스텔 블루만이 대중적이었던 블루 계열 메이크업의 세계에서 그 표현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딥 블루의 아름다움.

여성스러운 눈매를 표현하려면 블루 아이라이너로 선명하게 눈의 라인만 그리는 것보다는아이섀도를 스모키처럼 번지듯 바르고 눈두덩 중앙은 살짝 펄감을 준다. 그런 다음 눈썹은 연한 갈색으로 그린다. 1. 클리오의 젤라이너 앤 브로우팟 3 네이비. 총 6.5g 1만8천원대. 2. RMK의 인지니어스 젤 아이라이너 02 딥블루. 3.5g4만9천원. 3. 나스의 우뜨레메르 싱글 아이섀도우. 2.2g 3만4천원. 4. 겔랑의 에끄레 4꿀뢰르 02 레 블루. 7.2g 7만2천원. 5. 시슬리의 휘또 옹브르 에끌라 15 미드나잇 블루. 1.5g 4만5천원. 6. 맥의 아이섀도우 노티컬. 1.5g 2만4천원. 7. 캐슬듀의 컬러샷네일 9446A 판타지블루. 16ml 5천원대. 8. 토니모리의 백스테이지 페인트 아이팟 5호 토파즈팟. 6g 8천원. 9. 비디비치의 16번 로얄 블루. 1.2g 2만5천원. 10. 메이크업 포에버의 아쿠어 섀도우 6E. 4g 3만2천원.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인생이란 그런 거야. 우린 그 안에 살고 있다고.” 지독한 사랑을 정의하려 애쓴 영화 <베티블루 37.2>의 대사를 떠올리면 덩달아 흐르던 음악, ‘베티 에 조르그’가 들린다. 그리고 여지없이 짙은 블루 컬러가 가득해 숨막힐 듯한 그 포스터 속 여배우 베아트리체 달이 오버랩된다. 그 깊은 블루 컬러의 이미지에 매혹당해 자신의 작은 방 한쪽 벽에 이 포스터를 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냥 블루가 좋아서였다. 화이트는 보고 있으면 뭔가 채워야 할 것 같았고, 레드는 뭔가에 열심을 다하라, 노랑은 밝으라고 강요하는 듯했는데 블루는 조용했다. 내 생각을 들어주고 상상하게 내버려뒀다. 베란다에서 자주 바라보던 검푸른 하늘은 나만의 우주, 나만의 세계를 짓게도 지우게도 해줬다. 어른이 된 우리는 확실히 어릴 때보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횟수가 줄었다. 블루는 그렇게 나이 듦과 함께 점점 곁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블루를 냉철하며 시원한색으로만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달랐다. 샤갈은 에덴동산을 파랗게 칠했고,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에게 푸른색 연미복을 입혔다. 두 팔만 겨우 움직인 화가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집을 파랑으로 지었다.

패션은 물론이고 메이크업 컬러에도 과감하고 도발적인 진한 블루 컬러의 네일 에나멜, 아이섀도, 마스카라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늘 여름이 되면 ‘아이스 블루’라는 이름으로 파스텔 블루 컬러의 아이섀도가 신나게 팔리긴 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 모델의 아이 메이크업을 보세요. 카프리 바다를 떠올리게 하죠. 하지만 언뜻 떠올리듯 맑은 바다색만이 아니에요. 진한 블루 컬러로 깊은 바다의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피부 표현은 빛나는 황금빛으로 했고요. 키스하고 싶은 메이크업이죠.” 엠마뉴엘 웅가로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메이크업 아티스트 샬럿 틸버리의 말이다. 세계적인 톱 모델들을 총출동시켜 블루를 전도한 파코라반 쇼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아론 드 메이는 이 매력적인 블루에 빛까지 가미했다. “해변의 색이지만 화려해야 해요. 빛을 만난 그림자 같은 깊은 블루 컬러죠. 어둡게만 보이지 않게 펄을 가미했어요.” 반면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알렉스 박스는 올해 제안하는 블루 컬러를 지극히 여리다고 표현했다. “여성스러우면서도 매우 차가운 이중성을 가졌어요.” 특히 알렉스 박스는 레오나드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베이스 컬러에 블루 컬러를 가미해 아름다운 피부 톤으로 연출하는 마법을 보여줬다. 파운데이션을 바르기 전에 파란색 컬러 크림을 수분크림과 섞어 얇게 펴 바른 것. 피부의 붉은 톤을 없애버려서인지 마치 푸른 정맥이 비칠 것만 같은 묘한 피부 톤을 만들어냈는데 무섭기는커녕 정말 매끈해 보였다.

11. 샤넬의 레 진스 드 샤넬 블루 라벨. 13ml 3만원. 12,13 에스쁘아의 아이섀도우 러스터 나이트 오션. 2.5g 1만원. 14. 랑콤의 옹브르 이프노즈 P207호 블루 드 프랑스. 2.5g 3만원. 15. 디올의 바니쉬 글로스 198 라군. 10ml 3만원. 16. 코레스의 아바시니아 오일 마스카라 03 코발트 블루 8ml 3만8천원. 17. 크리니크의 퀵라이너 포 아이즈 인텐스08 인텐스 미드나잇. 0.3g 2만4천원대.

디자이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블루 예찬은 이번 여름 시즌을 겨냥한 메이크업 제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크림 아이섀도나 촉촉하고 부드럽게 발리는 펄이 함유된 아이라이너 펜슬, 젤 아이라이너에 말이다. 프레스트 아이섀도인 경우에는 네이비 블루나 딥 스모키 블루, 풍부한 색소를 함유한 퓨어 블루가 돋보인다. 네일 에나멜은 진한 블루는 기본이요, 글리터가 첨가되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굵어진 글리터가 퇴폐적이며 화려하기만 한 인상을 줄 것 같지만 청량감과 로맨틱함을 모두 가진 파란색 산수국처럼 선명하고 예쁘다. 파스텔 블루로 일관하던, 아니 엄밀히 말하면 깊이 있는 딥블루 컬러를 마음에 쏙 들게 개발하지 못한 국내 브랜드들도 선전했다. 이렇게 제품이 좋아지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 브랜드에서 ‘제주의 하늘’ 같은 이름을 가진 블루 아이섀도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블루 메이크업의 핵심은 이렇다. 동양인은 보통 피부가 노랗거나 흰 편이면서 헤어 컬러가 짙기 때문에 블루로 눈화장을 하기 전에 먼저 피부 톤 표현에 힘써야 한다. 블루 컬러 메이크업 베이스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피부의 노란 기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핑크 컬러의 메이크업 베이스도 괜찮다. 그리고 아이 베이스나 파운데이션을 사용해 눈두덩에 얇고 꼼꼼하게 발라 칙칙함을 없애면서 한 톤 환하게 만들고 아이섀도를 발라야 제대로 된 블루 컬러를 표현할 수 있다. 블루 컬러의 의상이나 메이크업을 한 여자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블루의 날카로운 유머 감각은 맹랑해 보이기까지 한다. 작가 브르통의 말처럼 ‘걷는 것이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라면, 블루 섀도를 바르는 일은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 아닐까? 샤갈이 그린 <푸른 집>처럼 나이가 들어도 나만의 상상력을 간직하길 소망하는 것처럼. 나만의 작은 블루 섀도와 펜슬은 휴대가 쉬운 작은 바다이며 하늘이다. 자유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