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들우드, 패출리, 베티버, 유칼립투스가 발산하는 향은 달콤한 꽃향도, 상큼한 과일향도 아니지만 이들은 심신을 평안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1. 시슬리의 오 드 깡빠뉴 윌르 뿌르 르 벵.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삼림 허브 향의 보디 오일. 125ml 10만2천원. 2. 겐조키의 퍼퓸드 베네피셜 워터 에너자이징 뱀부 스플레시. 대나무잎 향의 미스트로 심신에 에너지를 준다. 90ml 6만3천원. 3. 프리메라의 모이스트 업. 연꽃씨앗 추출물과 향이 바탕인 에센스. 100ml 4만원대. 4. 노에사의 무드퍼퓸 7. 우디향 향수로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한다. 30ml 25만원. 5. 아로마티카의 아로마테라피 롤온 프레시 브레쓰. 유칼립투스, 히노키 향의 롤온 타입 아로마 오일. 14ml 1만5천원. 6. 펜할리곤스의 잉글리쉬 펀. 숲이 연상되는 향의 향수이다. 50ml 17만8천원. 7. 더 디퍼런트 컴퍼니의 셀 드 베티버. 베티버와 패출리 향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 50ml 16만2천원. 8. 에르메스의 오 도랑쥬 베르트. 아침 이슬에 젖은 숲의 향조를 지녔다. 200ml 15만원. 9. 씨흐트루동의 꺄흐멜리트. 이끼, 쑥이 연상되는 향초. 270g 9만9천원. 10. 닥터브로너스의 유칼립투스 퓨어 캐스틸 솝. 액상형 목욕 비누로 유칼립투스 향이다. 238ml 1만3천5백원. 11. 크리드의 오리지날 베티베. 우디 그린 향의 향수로 샌들우드, 파인, 베티베 등이 함유되었다. 75ml 32만3천원. 12. 아쿠아 디파르마의 콜로니아 인텐자 오 데 코롱 스프레이. 남성 향수로 그윽한 시더우드 향이다. 100ml 15만5천원.

마카롱을 시식해달라는 파티셰 친구
‘어디서 나는 향이지?’ 가게에서 스무 개도 넘는 맛의 마카롱을 만들었으니 시식해달라는 파티셰 친구를 기다리고 있던 나의 발바닥은 이미 바닥에서 3센티미터는 붕 떠 있다. 벚나무가 파리 16구의 주택가 골목에 그림처럼 서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벚꽃의 향이 이토록 설레게 한다는 것도 신비롭다. ‘벚꽃도 향이 있었던가?’ 도시여자에게는 이 벚꽃향에 대한 쓸 만한 지식이 없다. 그냥 향기를 탐하기로 한다. 어느덧 곁에 와 있는 친구는 스무개가 넘는 색색의 마카롱을 내민다. 모두 맛보는 것이 우정이라면 기꺼이 집겠다마는, 걱정이 앞선다. ‘머리가 깨질 것만큼 달 텐데….’ 그런데 웬일인지 맛있다. 달아서 맛있는 것이 아니라 향이 맛있다. 재료를 물으니 이것은 바질이요, 이것은 무슨 나무껍질이며, 저것은 유칼립투스며 로즈메리란다. 사실 당시 나는 잔잔한 우울증과 혹독한 외로움을 끼고 있었다. 그러나 절묘하게도 그날 벚꽃향으로 씻긴 심신은 요상한 풀잎들로 치유되어갔다. 우울증 약인 졸로프트보다 효과가 좋았다. 이후 두 가지를 알았다. 꽃잎이 지는 시기까지 하루에 한두 시간쯤은 그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과, 모험심 강한 파티셰는 향 좋은 많은 허브와 마카롱을 친구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종류의 향기의 힘은 실로 위대해 쪼그라든 영혼까지 감히 울릴 수 있다는 것까지.

아이였을 때, 아버지는 작은 양옥집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꽤 넓은 정원을 버라이어티한 숲으로 만드는 것을 즐겼다. 정교한 조경수 대신 한쪽에서는 허수아비처럼 멋대로 낮게 자란 앵두나무가 새끼손톱만 한 붉은 열매를 한 가득 품고 있고, 바로 곁에는 화학비료를 주지 않아 유난히 알이 작은 적보랏빛 포도가 탱글탱글 여물어 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탁 트인 잔디밭을 만들 법도 한데 뜬금없는 삼나무 한 쌍과, 바로 따서 한잎 베어 물면 쌉쌀했던 상추, 알 수 없는 향이 나는 식물들까지, 정말이지 그때에는 잡풀로 이루어진 쓸모 없는 뜰인 줄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약용식물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송골송골 맺힌 이슬이 우스웠고 후루룩 달콤한 과실이 반가웠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볕좋은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벚꽃향을 맡았다. 이전까지는 막혀 있던 후각이었다. 깊은 영혼의 향기를 맛보고 나니 울음이 터졌다. 쓸쓸해서가 아니라 정화되고 있어서였다. 특히 안개 속을 노니는 숲의 향을 맡는다는 것은 긴 호흡을 하며 인생을 느리게 걷는 것 같다. 수목원을 찾으면 마음속 오욕칠정이 다스려지는 걸 보면. 그러다 다시 엉키면 그런 대로 설설 풀며 길을 걷는다. 향기를 벗하며 영혼을 달래며.

이국적인 열대 과일향과 톡톡 쏘는 시트러스 향, 섹시하고 달콤한 꽃 향기는 매혹적이고 자극적이며 여자를 여자로 만드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이 계절에는 다른 향취에 푹 빠질 테다. 샌들우드, 패출리, 베티버, 유칼립투스, 삼나무 같은 향조에. 어찌나 신비로운지 여자를 넘어선 깊은 영혼을 지녔을 법한 인간으로 만들기도 하는 그 향들. 점차 영혼을 길들인다고도 하니 혹여 진정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식물학 박사인 제임스 A.듀크는 말한다. “내 손자가 귀가 아프다면 나는 에키네시아를 먹일 것이며, 잠을 못 잔다면 캐머마일을, 멀미를 하거나 토하면 페퍼민트 차를 먹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손주라는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기에 듀크 박사가 말한 식물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향요법은 전통 종교의식이나 미용, 치료 등을 목적으로 후계자들에게만 은밀하게 전수되었다. 인도, 중국, 바빌로니아, 이집트, 로마, 그리스 등지의 사원이나 신전에서는 유향, 몰약, 샌들우드와 같은 허브가 널리 사용되었다. 이런 식물원료 이외에도 연꽃, 장미, 은매화, 웰계수, 성스러운 나무인 엘더, 서양 산사나무, 계피, 올리브, 로즈메리 등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에서 얻은 전통의 향기가 재평가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이러한 향은 지금도 변함없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건강과 아름다움을 준다. 피로할 때나 우울할 때, 머리가 아플 때 같은 일상에서 흔히 겪는 작은 트러블을 개선해줄 뿐만 아니라 문명의 발달로 인한 온갖 스트레스를 치유하며 향기로운 삶을 부여하는 심리적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신의 선물이라고 일컬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심신을 이완시키고 원기를 북돋는 달콤한 향이 아닌 굳이 진정시키는 깊은 우디&그린 향을 되짚어보는 것은 어쩌면 동양 의학의 관점에서일지 모른다. 통찰력을 키우는 라우렐, 회복과 자양의 역할을 하는 베티버, 심신을 평안하게 하는 샌들우드, 낙관적인 마음을 선물하는 유칼립투스, 자신을 믿게 하는 진저, 고요하게 창조력을 발휘하게 돕는 코리앤더, 현실을 자각하게 하고 일깨우며 과도한 생각이나 근심이 일 때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패출리까지 현대인에게 모두 필요한 것들이다.

자연이 묻어난 향으로 내 영혼이 산책하는 즐거움
향기는 믿지 못할 만큼 아름답게 질서를 지킨다. 식물은 주검이 되어서 다시 파릇한 새싹으로 곁에 돌아와 영혼을 어루만진다. 순간순간 폐허가 된 영혼을 치유하는 그만의 방식은 어느 심리치료사에도 뒤지지 않는다. 거창한 정원이 아니더라도 작은 화분 하나, 이들 향이 가득한 향수나 오일, 비누와 그저 친구가 되면 된다. 봄 향기의 반은 땅 몫이다. 그 땅에서 자란 온갖 식물이 향기를 발산한다. 사무실의 책상 위에서, 베란다의 화분 위에서, 너른 뜰 위에서, 우람한 숲 속에서. 한라산 남사면 자락에 자신이 이름한 ‘청재설헌’이라는 집에 살며 식물을 키우는 작가 김주덕은 그녀의 저서를 통해 말한다. ‘새벽에 뜰로 나서면 아래 뜰까지 금목서 향기가 가득하니 어찌 금목서를 홀대할까. 금목서 향기를 두고 어떤 이는 코티분 향기 같다고도 하고 달콤하다 하는 이도 있고 맵다는 이도 있으나, 나는 그저 그리움의 향기라 한다’라고.

그렇다면 나는 이 봄에 꽃 차를 마시고 싶다. 캐머마일 꽃 한 다발을 말려 포푸리를 만드는 것도. 유칼립투스나 캐머마일 꽃을 내 작은 화분에 심고 꽃이 피면 얼음 속에 넣어 얼려볼 것이다. 그리고 패출리나 샌들우드, 계피향이 은은한 작은 향수도 하나도 필요하다. 어성초처럼 냄새가 징한 것도 아닌데, 삼백초처럼 독특한 향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향기 깊은 작은 화장품 하나에 영혼을 달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는 매일 자연이 묻어난 향으로 산책하며 자연을 느끼는 것과 진배없다. 몸과 마음에 고요함이라는 놀라운 감각이 심어진다. 언젠가는 이렇게 읊조리겠지. ‘어느덧 향은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영혼에 도달해 있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