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의식처럼 복잡하고 우아한 스킨케어가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값비싸고 귀한 성분이라도 피부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1021-186-1

28세까지 내 얼굴은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기 판처럼 여기저기 여드름이 솟곤 했다. 때로는 극도의 건조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기름이 폭발하기도 했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난감했던 날들이었다. 이런 내 피부가 안정을 찾은 건 몇 가지 인생의 변화가 일어난 후부터다.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을 떠난 것이 한몫했지만, 결정적 신의 한 수는 레티놀 성분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한 것! 연예인처럼 모공 없이 반들거리는 완벽한 피부가 된 것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서는 꽤나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그래도 난 여전히 내 까탈스러운 피부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몰라 불안에 떨며 지내고 있다.

한낮의 자외선과 너무 습하거나 건조한 환경을 피하는 것은 기본이고, 화장품 성분 중 코코넛 오일, 인공 향료, 글리콜산, 살리실산과 유분기가 과도한 크림 그리고 피부에 광채를 내준다는(펄을 함유한) 제품은 모두 피한다. 오로지 내가 믿는 것은 레티놀뿐! 하지만 아직 내 마음 한편엔 호화로운 성분의 화장품을 향한 미련이 가득하다. 십대 시절의 난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여주인공 줄리아 로버츠의 과한 스킨케어를 동경하며 으깬 아보카도와 달걀 흰자 팩을 직접 만들어 얼굴에 한참을 올려놓곤 했다. 뭐든 있어 보이는 것은 따라 해보는 모태 ‘스킨케어 덕후’였던 나의 욕망이 깨어난 건 2017년 즈음. 인스타그램에서 앞다투어 K-뷰티의 12단계 스킨케어법이 소개되면서부터다. 그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당시 <뉴요커>지에 대선 이후 최대 이슈로 스킨케어 열풍에 대한 에세이가 실렸을 정도. 12단계 스킨케어법의 마니아인 내 친구 엠마는 깐 달걀같이 희고 매끈한 피부를 가졌다. 그녀는 무엇을 바르든 언제나 최상의 피부 컨디션을 유지했다. 우연히 그녀의 집에 갈 일이 생겨 화장대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마트의 스낵 섹션 한가운데 선 아이처럼, 경이로움과 열망에 가득한 눈으로 화장품을 살펴보았다. ‘나도 바르고 싶다!’ 매혹적인 향이 나는 환상적인 패키지를 입은 고가의 크림들이 내 피부에 마법을 일으켜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피부에 그 화장품을 바르는 것은 9살짜리 여자 아이에게 코르셋을 입히는 일 같은 것임을 잘 안다. 감당 못할 값비싼 애물 덩어리라는 것을. 때문에 여전히 내가 바르는 화장품은 3가지뿐이다. 판옥실(과산화벤조일을 함유한 여드름용 클렌저 제품으로 약국에서 판매한다), 올레이의 민감성 피부용 보습 로션 그리고 처방받은 레티놀 젤. 트러블이 생길까봐 피부 화장은 거의 하지 않지만, 불가피한 경우엔 파운데이션을 얇게 발랐다가 최대한 빠른 시간 내 뉴트로지나 울트라 젠틀 데일리 클렌저 포밍 포뮬라로 말끔하게 씻어낸다. 이게 전부다. 그 어떤 화장대보다도 단출하다. 흔히 피부 좋은 사람들이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 꼽는 마스크, 필링, 고농축 세럼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제품들을 사용했을 때 아무 효과가 없는 건 운이 좋은(!) 경우. 오히려 뾰루지, 홍조, 각질 등 피부가 뒤집어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마스크에 농축된 다양한 성분은 민감성 피부에 트러블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요. 세럼 역시 예외가 아니죠. 아무리 평이 좋은 화장품이라도 본인에게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특히 고가의 저용량 세럼의 경우 민감성 피부의 수용력을 훨씬 넘어서는 활성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요.” 민감성 피부의 소유자라면 뉴욕의 피부과 전문의 휘트니 보우(Whitney Bowe)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화장품 연구원 니키타 윌슨(Nikita Wilson)도 이에 동의한다. “보통 화장품에 함유한 0.5% ~ 2%의 추출물 성분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보통의 브랜드는 0.5%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프레스티지 브랜드의 경우 특별함을 위해 높은 함량을 택하곤 하죠. 문제는 모든 피부가 고함량 화장품을 받아들이진 못한다는 거예요.” 반면 피부과 전문의 휘트니 보우는 민감 피부를 가진 사람이라면 트렌디한 신생 브랜드 제품보다는 거대 기업 제품을 택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유는 신생 브랜드는 임상 실험 등 제품 검증을 위한 자본력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자극이나 알레르기 반응에 대한 광범위한 테스트를 거치려면 생각보다 큰 자본이 필요한 데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노하우가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매달 쏟아지는 감각적인 패키지의 신상 스킨케어를 배척하라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화장품을 바르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단 한 번에 한 가지 제품만 추가로 바르고, 최소 2주가 지난 후 그 다음 제품을 테스트하는 것을 추천한다. 피부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지켜보는 것이다. 나처럼 극민감성이라면 턱선이나 목덜미에 제품 패치를 붙이거나, 소량만 발라 테스트해보는 걸 추천한다. 또한 이왕이면 민감성 피부에 안전한 성분이 든 화장품 위주로 고르는 것이 좋겠다. 히알루론산과 나이아신아마이드는 피부 개선 효과도 좋고 민감성 피부에도 안전하게 작용하는 성분이다.

12단계 K-뷰티 스킨케어와 6단계 프랑스 스킨케어를 향한 환상이 있긴 하지만, 내 화장대의 약국 화장품 라인업의 놀라운 효과와 실용성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일단 스킨케어 시간이 아침 2분, 저녁 2분으로 하루에 5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 고가의 마스크 하나만 추가해도 실제 스킨케어 시간은 5배로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비용 대비 그만한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트러블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특정 성분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더 큰 피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해요.” 뉴욕 웨스트 아이슬립 피부과전문의 카비타 마리왈라(Kavita Mariwalla)의 말이다. “BHA 클렌저를 사용한 후 살리실산 세럼을 바르고 레티노이드 크림으로 마무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모두 각질을 녹여 피부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성분이 든 제품으로, 각각의 화장품은 훌륭할 수 있지만, 한 번에 바르면 효과가 상쇄될 수 있어요. 화장품을 낭비하고 피부에 자극을 주는 일이죠.” 화장품도 과유불급. 원하는 효과를 주는 화장품을 하나만 발라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가성비로 따지자면 내 화장대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건조한 가을철 올레이의 보습 로션을 매일 세 번 바른다고 계산해도 한 달 스킨케어 비용은 20달러(겨울엔 30달러) 정도. 여러 단계의 스킨케어법을 택했을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다. 적절하고 현명하게 피부를 관리하면서 어느 이국적인 섬으로의 휴가비까지 모으고 있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