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적이고 고급스러우며 절제를 아는 퍼플의 다채로움. 퍼플에는 짙은 호소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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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 컬러 패션 아이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포인트 아이템으로 제격이라고 반색하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옷으로 입기에는 부담스럽다고 손사래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팬톤이 트렌드 컬러로 선정한 이후 이번 시즌까지 키 컬러로 군림하는 퍼플 컬러. 예부터 왕족이 즐겼다 하여 많은 디자이너가 럭셔리한 분위기를 극대화할 때 사용하는 컬러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옅은 라벤더부터 울트라 바이올렛에 가까운 퍼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퍼플 컬러가 런웨이를 가득 메웠다. 퍼플 컬러를 구성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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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관능.

언제나 실용적이면서 관능적인 무드를 잃지 않는 톰 포드의 컬렉션을 살펴보자. 첫 번째 룩부터 하늘거리는 페일 블루 셔츠에 퍼플 새틴 팬츠를 입고, 퍼플 모피 모자를 쓴 모델이 등장해 좌중을 압도했다. 블랙앤화이트로 완성했다면 그저 지나가는 룩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는 의상이다. 광택이 은은하게 도는 팬츠는 퍼플 컬러였기에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여성성을 보여주었다. 삐딱하게 쓴 모피 모자와 앵클 스트랩 슈즈 역시 퍼플 컬러로 포인트를 줘 관능미를 부각했다. 톰 포드 컬렉션 전반에 사용한 새틴 소재와 퍼플 컬러는 테일러링에만 집중될 수 있는 디자인에 관능미를 추가해 톰 포드 고유의 세련된 현대미를 극대화한다.

둘, 플로럴과 력셔리.

꽃의 귀재로 알려진 에르뎀은 장미 패턴에서 영향을 받아 클래시컬한 화려함으로 시선을 모았다. 에르뎀은 우연히 로마의 귀족 팜필리 가문의 마지막 공주 오리에타 도리아 팜필리(Orietta Doria Pamphilj)의 삶을 접하고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살았던, 지금은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으로 잘 알려진 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오래된 가구, 벽지, 페인팅 등은 에르뎀의 손을 거쳐 화려하고도 고급스러운 플로럴 룩으로 완성되었다. 귀족적인 분위기를 높이기에 퍼플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굵은 주름을 잡은 드레스를 뒤덮은 퍼플 컬러, 그 위를 장식한 블랙 플로럴 패턴, 대담한 리본 스카프까지. 마치 공주가 살아서 나온다면 이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상상한 사람은 비단 에디터뿐이 아닐 것이다. 한편 드리스 반 노튼 역시 장미를 모티브로 한 컬렉션을 소개했다. 그러나 에르뎀이 화려함의 절정이라면 드리스 반 노튼은, 언제나 그랬듯 ‘엘레강스’를 이끈다. 고급스럽지만 지나치지 않고 약간은 도도하게 우아한 모습이랄까. 그가 영감을 받은 정원의 장미는 서정적인 터치로 시스루 드레스 안에, 펜슬 스커트에, 터틀넥 셔츠에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수놓여 있다. 공기를 따라 함께 일렁일 것 같은 옅은 퍼플부터 묵직하고 강렬한 딥 퍼플까지 모든 디테일을 아우르며 다채로운 분위기를 이끈다.

셋, 절제.

동물의 가죽을 모티브로 한 애니멀 프린트의 인기는 본능이다. 이 같은 트렌드는 모피 사용을 중단하는 디자이너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욱 커질 전망. 원초적인 애니멀 프린트의 주된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컬러의 몫인데, 야성미를 잠재우는 것이 바로 퍼플 컬러다. 백 컬렉션 넘어 기성복에서도 히트를 노리는 케이트 스페이드 뉴욕은 레오퍼드 코트와 블라우스, 하이웨이스트 팬츠를 모두 퍼플 컬러 계열로 치장했다. 레오퍼드의 거친 느낌이 퍼플 컬러를 입어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새틴 소재의 퍼플 터번과 레오퍼드 프린트의 토트백, 플랫폼 펌프스 역시 세련된 데일리 룩을 완성하는 데 일조했다. 셀리 라폰테 역시 마찬가지. 보드라운 니트에 파이톤 프린트 팬츠와 슈즈, 스타킹까지 퍼플로 통일한 모습은 서로 다른 소재가 부딪혀 일으키는 리드미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시즌 단 하나의 컬러에 집중해야 한다면 퍼플 컬러를 선택할 것. 위 키워드를 차치하고서라도 다소 어두운 겨울 옷장에 조금의 악센트가 되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선택할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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