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밀봉당하곤 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여성스러움’이자 ‘미덕’이던 때는 21세기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여성에 대해 말하는 작가 정재윤과 팟캐스터 이지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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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윤의 그림 

정재윤이 인스타그램에 선보였던 9컷 만화 ‘재윤의 삶’이 한 권의 단단한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서울에 사는 여성의 여러 모습과 생각이 그 안에 있다.

인스타그램 속 ‘일상 툰’은 한 컷의 그림이 많다. <재윤의 삶>은 9컷인데 이유가 있나? 
2016년도 중순부터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인스타그램에 한 장만 업로드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장에 다 실으려면 4컷 아니면 9컷 같은 포맷이어야 했는데, 4컷은 네러티브가 생기기에 부족하다고 느껴서 9컷이 됐다.

정방형의 작은 창이 답답하지는 않았나? 
SNS에만 올리려고 시작한 게 아니고, 독립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크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영 안 읽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제 여러 장을 올릴 수 있는 탬플릿이 생기니까 플랫폼이 변화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도 변화하더라.

9컷의 장점이 있다면 뭔가? 
일단 단점부터. 수고에 비해 티가 별로 안 난다는 게 단점이다.(웃음) 좋은 건, 내 그림이 막 예쁜 그림으로 승부를 보는 만화는 아니니까, 한 페이지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된 연출로 얹혀 있을 때 생기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밀도가 있고, 그 안에서 손글씨에 포인트 컬러를 넣는 식으로 해서 한 페이지로 봤을 때도 딱 형식이 잡혀 보이는 맛이 있다.

본명이 재윤이고, 작품의 제목은 <재윤의 삶>이다. 다른 페르소나가 아닌, 실명으로 이어가는 것에 부담은 없나? 
원래 연재하던 인스타 계정도 대학생 때부터 쓰던 계정이다. 거기에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보려고 만화를 올렸는데 모아서 보기 편하라고 ‘#재윤의삶’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놓기 시작한 거다. 점점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제 계정, 원래 있던 사진을 정리하고 만화 계정으로 돌렸다. 그래서 필명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중간에 바꾸는 것도 의미가 없게 느껴졌고 굳이 필명을 쓸 이유도 없을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최근 SNS를 통해 책을 구매하는 것이 지지의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반성에서 나온 얘기였다. 책이 나오니까 나는 어땠나 생각해보게 됐다.

그래서 책을 내본 사람은 꼭 책을 사서 본다. 책은 빌려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는 걸 아깝게 생각하기도 하니까.
정말 그렇다.(웃음) 나도 책을 많이 사 보는 건 아니고, 콘텐츠를 많이 봤다.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애플뮤직만 해도 한 달에 3만원 정도를 낸다. 영화를 볼 때도 한 번에 1만원, 1만5천원은 거리낌 없게 쓰면서 왜 이렇게 책을 안 샀나 반성하게 됐다. 이제는 학생도 아니니까, 조금 더 사야겠다. 저도 반성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

첫 인터뷰가 온라인에도 게재되었는데 의외로 댓글의 80%가 남성이더라. 
진짜 의외다. 댓글 내용상 10대~20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80%가 30대 초반 남자분들이다. 너무나 확실하게 기사를 안 읽었고, 만화를 안 읽은 댓글이라 처음에는 충격을 받기보다 ‘아, 이 사람들 아무것도 안 읽었잖아…’ 싶었다. 제목에 여혐, 생리, 가슴 같은 단어들이 들어가서 제목만 보고 들어온 것 같다. 오히려 팔로어 분들이 위로를 해주었다.

뭐라고 위로를 해줬나? 
너무 상처받지 말라고. 설리와 화사를 떠올리시면서 악플은 현대 여성의 ‘머스트’ 해브라면서.(웃음) 싸움 잘하게 생겼단 댓글도 있었는데, 칭찬 아닌가? 만만하게 보이기보다 싸움 잘하게 생겼으면 다행이다. 자칫하면 이 사람 고소할 수도 있겠는데? 하는 경각심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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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작가가 아니고 광고계에서 일하는 것으로 안다. 이 인터뷰도 평일 퇴근 후에 이루어지고 있는데, 작업은 주로 언제 하는가? 
책에 실린 작업의 반 정도는 취업하기 전에 작업했다. 입사하고 처음 2년 동안 적응이 필요하지 않나. 만화에서는 ‘회사는 월급만 받는 곳이지’라고 그린 부분이 있는데 사실 지금 회사도 일도 잘 맞는다. 하지만 입사 후 2년 정도는 작업을 천천히 했다. 회사 다니는 생활 패턴이 몸에 익고 나서는 퇴근한 후, 주말에 작업실 가는 식으로 있는 시간을 쪼개서 했다.

일과도 연관을 느끼나?
연관이 있기는 하다. 콘텐츠를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또 개인 작업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일이다. 광고는 클라이언트가 있고 전하려는 메시지가 확실하고 팀 작업이고 데드라인, 자본도 있다. 내 개인 작업과는 구성하는 요소들이 완전히 반대다. 아직까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로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하다. 내가 말하고 다니진 않지만 회사에서도 아는 척해주고, 팀에서는 응원을 많이 해준다.

<재윤의 삶>이라는 책이 완성되기까지 3년 정도가 걸렸다. 스스로 변화를 느끼나? 
엄청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조금 더 통쾌한 내용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확 공감을 해줄 수 있고 나도 속 시원하게 얘기해보고 싶었다면 지금은 이 맥락 속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다시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게 됐다.

촬영을 한다면 노브라로 하고 싶다고 했는데. 
<재윤의 삶>이 확 유명해진 계기가 가슴 이야기를 했던 ‘우연하게도’라는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것도 이 에피소드다. 친한 작가인 이슬아 작가가 공식석상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노브라로 행사를 하거나 촬영을 하는 걸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이번에 헤어 메이크업까지 준비해주신 상태로 사진가의 카메라 앞에 섰는데, 한번 해보고 싶었다. 해볼 수 있는 범주 안에서 해보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가슴 이야기처럼 여성만의 이야기가 공감을 많이 받았다. 주로 어디에서 소재를 포착하나?
일상적인 얘기니까 정말 일상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가슴이나 생리는 모두가 경험하고 가지고 있는 신체 기관인데 그걸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이거에 대해서 엄청 고통스럽고 불편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나는 조금 어색했다. 그게 그 자리에 있으니까. 매달 하니까. 그래서 그냥 그게 그 자리에 있다. 그런 경험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지?에서 출발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브래지어를 하는 고통, 생리를 하면서 생기는 불편 같은 것들에 대해 작업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별로라는 게 아니라 내가 잘 풀어낼 수 있는 얘기는 아니었다. 자궁을 바탕으로 한 ‘정재궁(생리상담사)’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한 번씩 생리를 할 때 자궁이라는 신체 기관이 자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독립적 자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서, 그럼 통화를 한번 하자는 식으로 풀어냈다.

어느 순간 생리, 가슴 이야기를 하는 게 편해졌다. 이전에는 가족, 친구와도 말하지 않는 주제였지 않나. 어떤 계기가 있었나? 
하다못해 엄마하고도 생리 얘기나 가슴 얘기를 터놓고 안 한다. 금기시하는 친구도 많다. 왜 있는 걸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라는 의문은 계속 있었다. 내 경우에는 대학을 가면서 부모님 집을 떠나니 생각이 좀 더 자유로워졌다. 그런 얘기가 뭐 어떠냐 얘기해보자 할 수 있었던 건 확실히 요즘 흐름이 주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영어 선생의 에피소드는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재능을 발견해준 고마운 사람 같기도 하고, 잠재적 성범죄자의 그루밍 과정 같기도 하다. 
나도 그려놓고 궁금했다. 이건지 저건지 모르겠다가 나의 기억이다. 나도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데, 이걸 본 사람들도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어릴 때 그런 선생님이 있었던 게 생각났다며 마음 따뜻해지는 얘기를 해준 친구들도 있고, 너무 ‘크리피’했다 너무 찝찝하고 수상했다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느낌이 내겐 다 있다. 따뜻한 사랑과 찝찝하고 애매하고 불쾌한 감정이 같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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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성장 과정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만화는 각색을 했지만, 이 에피는 만화 중에서 몇 안 되게 가감 없이 실제 경험을 그린 에피소드이긴 하다. 꼭 하나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두 가지 감정이 혼재하는 상태를 그려보고 싶었다. 나처럼 혼재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뭉쳐 있는 그 상태가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과 상상을 발휘한 것, 어느 쪽이 더 흥미를 끄는가. 
독자분들은 내 경험을 솔직히 드러낸 걸 좋아하는 게 아니고, 연출과 구성이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내 만화가 일상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이게 연출 편집을 통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연재를 하면서 인상적인 독자 반응이 있다면?
2016년도에 독립출판 페어에 나가서 ‘재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이벤트를 했었다. 그때 그 엽서를 가지고 계신 분이 인증을 해주셨는데 기분이 너무 묘했다. 이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아직도 나를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니.

최근 인상적으로 본 콘텐츠가 있다면?
넷플릭스광이다. 애니메이션 중에 <보잭 홀스맨(Bojack Horseman)>이라는 작품이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연출도 너무 좋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캐릭터를 쌓는 과정도 너무 대단하다. 한번 정주행한 이후로 공부하듯이 다시 복습한다. 내 인생의 애니메이션이다.

다음 책도 출간 예정인가? 
예전에 독립출판으로 냈던 <서울 구경>이라는 장편 만화를 다시 내려고 준비 중이다. <재윤의 삶>과는 다른 풍이니 이것도 같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재윤의 삶>으로 하지 못한 얘기를 <서울 구경>에서 했다. 다른 얘기도 할 수 있다는 걸 실험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새로운 작품은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스스로를 다듬은 상태에서 준비해보고 싶다.

어떤 작업을 하든 시간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기최면처럼 ‘있는 척하지 말고, 멋 부리지 말고, 힘 빼고’ 이걸 계속 되뇌었다. 멋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애매한 목표와 그걸 계속 떨쳐내고 싶어 하는 게 지금의 나인 것 같다. 여기서 나온 웃픈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재윤의 삶>이 나올 때 ‘20대 여성의 이야기’라는 캡션이 붙어서 나오는데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 더 이상 20대 여성의 이야기만 하는 작가로 남는 게 싫더라. 척하지 않는 태도는 지키되 이제 내가 30~40대에 만들 수 있는 이야기는 뭘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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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희의 말 

‘셀럽 맷’이라는 이름으로 팟캐스트 <독일 언니들>, <영혼의 노숙자>를 운영하며 오프라인에서도 청자와 만나고 있다. 생리, 섹스, 자위, 여성 등의 이야기가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얼루어 코리아>와는 두 번째 만남이다. 처음에는 팟캐스트 <독일 언니들>의 운영자로 만났었는데. 이제 독일을 떠나 혼자 한국에 왔으니 <독일 언니들>은 휴면 상태인가? 
그렇다. 시즌 2가 나올 것처럼 해놓고 시즌 1 이 종료됐는데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다. <독일 언니들>을 함께 한 ‘드라마퀸’은 독일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고 있다. 내가 유튜브 스타를 만들어줄 테니 돌아오라고 하는데 먹히지 않는다.(웃음)

한국에 온 후에는 혼자만의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운영 중이다. 인기 팟캐스트로 손꼽히는데 어느 정도 되나? 
아이튠즈에서는 순위가 좀 높은 편이다. 전체 50위 정도다. 전체 재생 수는 1800만 회를 넘었다.

팟캐스트 외에도 점점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실제로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다. 처음으로 한 오프라인 행사는 무엇인가? 
김보람 감독님과 <피의 연대기> 질의를 같이 했다. 김보람 감독과 팟캐스트를 같이 하고 있으니까 바로 연락이 와서 같이 하게 됐다. 질의는 여러 번 했다. 총 네다섯 번 한 것 같다. 본격적인 행사는 ‘세계여성의 날’에 있었던 <왜 안 돼 페스티벌>이 처음이었다.

<왜 안 돼 페스티벌>은 어떤 행사였나? 
여성의 날을 맞이해서 여자들이 왜 나대면 안 되냐는 주제로 했다. 나와 당시 한국일보에 계시던 박선영 기자님 그리고 정세랑 작가님이 나오셔서 각자의 경험담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어땠나? 
너무 떨려서 대본을 손에 쥐었는데 손이 파들파들 떨리는 거다. 그래서 두 손을 꼭 쥐고 했던 기억이 난다. 행사를 계속하면서 조금 익숙해졌다. 나를 보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 있다는 거에 처음엔 정말 놀랐다. 나를 목소리로만 알던 사람들인데 굳이 시간을 내서 얼굴을 보러 올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많이 와주시고 응원도 해주셔서 기뻤다.

<피의 연대기>는 생리를 전면에 내세운 주제로 화제가 됐다. 질의를 통해 더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감독님이 담고 싶었지만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질의에서 많이 푸는 것에 중점을 뒀다. 예를 들면 PMS(생리전증후군) 같은 것. 1시간 조금 넘는 다큐멘터리에 모든 걸 넣기는 조금 부족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미레나 시술을 받는다든가, 생리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것도 넣고 싶었다. <피의 연대기>는 여성 관객들이 대다수이기는 하지만 생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일이 없지 않나. 각자의 경험을 큰 목소리로 나눌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뜻깊었던 것 같다.

생리를 하지 않을 권리라는 건 새로운 이야기다. 생리를 중단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니까.
<피의 연대기>에 18살 친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부터 가는 게 맞긴 하지만 십대에 산부인과에 가는 일이 실제론 드물지 않나. 이 친구는 섹스를 할 나이가 되었고, 섹스 경험이 많아질 텐데 내 몸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산부인과 의사와 상담을 한다. 미레나가 그 친구에게는 잘 맞았기 때문에 시술을 하고 생리를 중단하게 됐다. 처음엔 나도 충격적이었다. 생리를 안 할 수 있다니. 그런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나누는 거다.

<피의 연대기>, 그리고 여러 행사와 담론을 통해 정보가 많아지고 있다. 스스로는 어땠나? 
해면 탐폰처럼 생리대를 대신할 수 있는 용품이 그렇게 다양하다는 걸 몰랐고 생리컵도 <피의 연대기>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옛날 과학자들에게 생리는 미지의 것이었고, 설명하지 못하니까 여성들이 열등하다고 말해왔던 ‘여성 혐오의 역사’ 같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됐다.

한국 여성들은 삽입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식약처와 여성환경연대에서 한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의 80% 이상이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를 사용하고 탐폰을 쓰는 비율이 10% 남짓이다. 세계적 기준으로도 패드형 생리대를 사용하는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사실 질 안으로 손을 넣는 경험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유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면역력이 떨어져 질염에 걸려 질정도 넣어야 했는데, 손을 넣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익숙해지니까 또 하게 된다.(웃음)

최근에는 피우다와 섹스 워크숍을 시작했는데. 어떤 계기로 함께 하게 됐나? 
어덜트 라이프스타일 숍인 피우다 측에서 팟캐스트에 광고를 주면서 알게 됐다.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보니까 단지 즐거움을 위한 섹스토이를 파는 게 아니었다. 섹스토이를 질 안에 삽입하면 혹시라도 염증이 생길 수 있는데 인체에 무해한지 하나하나 다 실험해보고 검증된 제품을 판매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또 레즈비언 부부가 운영한다는 것이 독특하다고 생각해서 같이 워크숍을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마침 기회가 닿았다. 우머나이저 본사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제품 후원을 해주었고. 섹스 워크숍은 기회가 되면 계속 진행하려고 한다.

섹스 워크숍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 
섹스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것 혹은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대한 경험담을 많이 나눴다. 특히 섹스 부분은 여러 여성의 ‘TMI’가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걸 밖으로 소리내지 않으니까 나 혼자만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고 대부분 겪는 고민이나 고충이 다 비슷하다.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친한 사이에서도 하기 힘든 이야기인데. 
나도 워크숍에서 처음 해보는 이야기도 있었다. 예를 들면 남자친구가 함부로 내 몸을 만지는 것에 대해서 귀찮다고는 생각했지만, 독일에서 연애를 해보니 이 사람은 섹스 무드가 아닌 이상은 만지지 않는 거다. 매너 있다, 나를 존중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거다. 내 몸을 만지는 걸 나는 ‘이 사람이 날 원하고 있다’라는 시그널로 오랜 시간 동안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조금 슬프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더라. 오신 분들의 TMI도 엄청 많이 들었다. 자위 자세라거나, ‘엎드려서 하면 턱 관절이 나간다’ 조심하세요 뭐 이런 것들.

결국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인가? 
남자가 나를 만지는 것을 내가 그런 식으로 해석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페미니즘의 시대에 무슨 비난을 듣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거고 거기에 대해 말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해지는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방송에서 섹스 이야기를 많이 하고는 있지만 음담패설처럼 들리는 건 싫다. 솔직하고 유쾌하게 이 경험을 나누는 정도여야지, 찐득한 느낌이 드는 건 지양하고 있다.

경험담을 나누는 목적이 있다면?
섹스에 대해 아주 소극적이었던 누군가에게 조금 적극적이어도 되겠구나, 내가 원하는 걸 요구해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섹스토이도 이제는 ‘반려가전’이라고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우머나이저 사야지’ 이러지는 않듯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싶다. 우선 섹스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적극적으로 하기에는 음란하거나 음탕하게 볼까봐 부담스러워하는 시선이 한국 사회에서는 더 심한 것 같다.

원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꿈이라고 했는데, 꿈은 그대로인가? 
지금도 늘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팟캐스트를 매주 하나씩 올리는 것도 혼자 하기에는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생각으로는 하던 걸 열심히 하고, 유튜브를 올해에는 꼭 시작하려고 하니 그걸 먼저 하려고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대본만 잘 쓸 수 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하고 있는 거에 집중할 때 같아서.

팟캐스트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최근 방송에 작가 분이 많이 나오시는데, 너무 작가 분들만 나오시니까 문학 팟캐스트가 되는 게 아닌가.(웃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더 만나보고 싶다. 영화, 예술, 과학 분야 모두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