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작되었다. 나를 괴롭힌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나? 어쩌면 내가 괴롭힌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회사에서 일어난 일만 말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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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늘 불안감을 달고 살았다. 손에 휴대전화가 없거나, 배터리가 나간 상태라면 특히 더 그랬다. 요즘은 회사에서 조심하려고 노력한다는 카톡이 문제였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팀장의 업무 수단은 전화도 이메일도 아닌 오직 카톡이었다. 모든 일을 다 카톡으로 해냈다. 보고서를 받는 일도, 견적서를 받는 일도, 각종 다양한 컨펌과 지시도 전부 단체 대화방에서 이뤄졌다. ‘내일 오전 11시 전체 회의’. 무슨 지령처럼 내려진 짧은 문장에 10명 남짓한 직원이 각종 다양한 ‘네, 네네, 네넨, 넵, 넹, 예, 옙’ 등 나름의 캐릭터와 감정을 담아 그야말로 ‘네’의 향연을 벌였다. 모든 숫자가 사라질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이는 “왜 확인하고 대답을 안 하니”, “내가 우습니” 따위의 2차 취조를 당해야 했다. 온종일 그런 식의 알림음으로 휴대전화는 이미 펄펄 끓고 있을 때가 다반사. 배터리가 쭉쭉 닳았다. 정해진 시간도 없었다. 카톡창은 24시간 울려댔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불안감은 증폭했다. 알람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새벽잠 없는 대표가 보낸 카톡 알림이 무슨 원자폭탄처럼 떨어졌다. 업무 지시를 비롯해 각종 인신공격에 공개처형도 서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선배가 없으니 밑에 애들이 뭘 배우겠습니까?”, “여긴 학교가 아닙니다”. 어느 날은 새벽 3시, 어느 날은 새벽 6시. 그 새벽마다 대표는 무슨 자아분열이라도 일어나는지 매일 다른 캐릭터가 되어 다양한 저주를 퍼부었다.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 반쯤 눕다시피 자지러지며 “야 뻥 좀 작작 쳐, 요즘 그런 회사가 어디 있냐” 며 무슨 허풍쟁이로 몰아세우거나 <미드소마>를 능가하는 공포 영화라도 한 편 본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팀장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위배됩니다.” 2019년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으니까.

다행히 그 회사 안에서는 퇴사자가 속출했을 뿐 더 이상의 비극은 없었다. 하지만 신문에서는 간간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올라오곤 한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빠르면 직장인의 73.3%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간호계의 ‘태움’ 문화, IT 업계 사주의 무자비한 폭행, 대기업 오너 일가의 폭언 등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갑질뿐 아니라 회사에서는, 조직 안에서는 몹시 다채롭고도 고약하고 교묘하며 치사한 방식의 괴롭힘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직장 내 괴롭힘은 이미 마지노선을 넘어 위태로운 지점까지 떠밀려와버렸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수 있다.

적을 알고 법을 알면 백전백승

직장 내 괴롭힘을 명시한 개정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당사자조차 긴가민가해서 당하고만 있던 사례들이 괴롭힘으로 판단돼 징계 대상이 된다. 그동안 분명한 폭력, 부당한 노동행위, 성희롱 등은 형법과 노동조합법, 남녀평등법으로도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은밀한 괴롭힘에 대응할 수 있는 법은 없었다. 잠깐,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 ‘직장 내 괴롭힘’이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개정된 근로기준법 제76조 2항을 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적혀 있다. 자칫 복잡해 보이지만, 한 문장을 3개의 항목으로 분리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다음 3가지 항목에 모두 포함되어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인정된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일 것.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을 것. 이 세 가지를 조합해보면 알 수 있다. 반드시 업무상, 근무환경상, 직장 내 지위상의 문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업무상’과 ‘적정 범위’를 보면 업무상 필요성과 사회 통념에 따라 판단한다. 즉,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괴롭힘으로 인정받으려면 업무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그 행동이 사회 통념상 문제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폭행 및 협박은 사실관계만 확인되면 인정이 가능하다. 폭언, 욕설, 험담 등은 피해자의 명예와 인격권을 훼손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면 인정된다. 근로계약 체결 시 명시했던 업무와 다른 업무를 반복해서 시킨다거나 원활한 업무를 방해할 정도의 주요 비품을 의도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쓰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라 김빠질 지경인데 결국,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상식’이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후배에게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며 반복적으로 술자리를 강요하거나, 회사 워크숍에서의 장기자랑 준비를 강요하는 일, 직장 상사의 흰 머리를 뽑거나, 라면을 끓여다 바치거나, 안마를 시키는 경우 모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일할 때 대가리 안 쓰냐”, “이럴 거면 때려치워 이 XX야”, “너희들 어차피 다른 데 갈 데도 없잖아” 따위의 폭언 또한 상식이나 사회 통념 안의 일이라 생각할 수 없다.

“세상에 그런 회사가 있어?”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발현된 후 수면 위로 드러난 경험은 각양각색이다. 지인 중 한 사람은 생각해보니 자신이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것 같다며 의심했고, 다른 누구는 근무 시간에 상사가 키우는 반려동물의 예방접종을 하거나 대신 세탁소에 다녀와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업무와 관련성은 없다. 또한 관심 가져야 할 것은, 괴롭힘의 장소다. 회사를 비롯해 외근이나 출장지, 회식, 기업 행사뿐 아니라 사적 공간에서 발생한 경우라도 인정이 가능하다. 특히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나 다양한 SNS를 포함한 온라인상에서 발생한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을 참고하길. 근로기준법 개정안 제76조 3항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이 사실로 판명되면 회사는 피해자가 요청하는 근무지 변경과 유급 휴가 등을 제공해야 한다. 가해자에게는 징계와 근무지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게 되면 근로기준법 개정안 109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대응 규정을 취업 규칙에 반영할 의무가 있는데, 10인 이상 사업장은 기존 규칙에 더해 금지되는 괴롭힘 행위, 예방 교육, 징계 조항,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추가하거나 관련 규정을 만들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 또한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5백만원이 부과된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고, 지금까지의 모든 조사와 처벌과정을 정부기관이 아닌 해당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이 가장 큰 아이러니다. 하지만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하던 은밀하고 치사한 괴롭힘을 법률에 도입한 건 우리 삶의 큰 진전이자,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며 다짐할 일이다. 나는 누구에게 ‘괴롭힘’을 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본의 아니게’라는 말처럼 비겁한 말도 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