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을 넘은 ‘필환경’ 시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상하며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전기가 없는 삶은 가능할까? 비전화 카페에서 엿본 하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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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 카페의 입구.

전기 없는 카페

지금부터 어떤 카페를 상상해보자. 플러그와 와이파이가 없는 카페. 냉장고, 에어컨도 없고 아이스 커피까지 없는 카페. 이를테면 전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카페 말이다. 아주 직관적인 의문이 생길 거라는 걸 안다. “그럼 어떻게 카페를 하지?” 덧붙여 세부적인 궁금증도 생겨날 것이다. “장사가 되나?” “너무 더울 것 같은데?” 아니면 애초에 왜 전기를 쓰지 않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 늘어가는 물음표 앞에 답을 찾기 위해 노 와이파이, 노 플러그 존인 비전화 카페로 향했다.

불광역 근처의 서울혁신파크 안에는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카페가 있다. 우거진 녹음 아래, 온통 초록빛으로 둘러싸인 이 카페의 이름은 비전화 카페. 말 그대로 전기가 없는 카페다. 하필 34℃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이곳을 찾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니 에어컨 바람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날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공간에 존재하는 건 손부채뿐이다. 카페에서 손풍기도 아닌 손부채를 쥐기는 또 얼마 만인가?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어두웠지만 생각보다는 밝았다. 너무 흐리지 않은 날이라면 책을 읽기에도 충분한 채광이 드리웠다. 최근 태양열로 빛을 내는 조명을 달았으니 이전보다는 더 나아졌다고. 모퉁이에는 화목난로와 장작이 쌓여 있고 테이블과 의자는 누군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듯했다. 투박하면서도 단정한 선이 느껴지는 가구는 직접 마무리한 듯 손자국이 남아 있는 내벽과 제법 잘 어울렸다. 카페에 들어서면 으레 들릴 만한 음악 소리도 없으니 더없이 고요하다. 몇 걸음만 옮기면 부글부글 끓는 아스팔트 길과 각진 회백색 건물이 가득한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다.

어쩌면 이 둥근 공간에서는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를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비일상적인 공간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고 모든 것이 괜찮을 것만 같다. 아직까지도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있다는 점만 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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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가구로 채운 내부.

커피 한 잔의 여유

이제야 조금 열기가 가신 몸으로 음료를 주문했다. 오픈 시간대에 방문한 덕에 운이 좋게도 전기 없이 원두를 로스팅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핸드로스터기에 커피콩을 넣고 가스불 위에서 흔들자 금세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르며 콩 볶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떤 나라의 전통악기를 흔드는 소리 같기도 하다. 카페를 운영하는 날이면 이렇게 아침마다 7~10분가량 직접 로스팅을 한다고 한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볶을 수는 없지만 필요할 때마다 바로 볶을 수 있어 언제든 신선한 커피를 만들 수 있다. 로스팅의 다음 단계는 원두 껍질을 분리하기 위한 키질이다. 키라니! 오줌을 싸면 쓰고 다닌다는 그 키가 맞다. 부드럽지만 힘있게 키를 밀었다 당기면 볶는 동안 분리되어 가벼워진 원두 껍질이 후두둑 날아간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는 압력차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사이폰을 사용한다. 마치 실험도구처럼 생긴 사이폰 안에서 물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조금씩 커피가 내려진다. 지금까지 그랬듯,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진다. 느긋하고 느릿하게, 비전화 카페의 시간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흰민들레커피는 커피 대신 토종 흰민들레 뿌리를 볶아서 내린 음료다. 카페인이 몸에 받지 않는 제작자가 커피를 즐기는 감성을 느껴보고 싶어 개발했다고. 조금 더 시원한 음료는 없나 싶어 ‘안녕, 월명리’라는 자두에이드도 시켜보았다. 탄산을 주입한 정화수에 국내 유기농 농장에서 공수한 자두청을 섞어 내어준다. 얼음이 없어 차갑지는 않지만 그 덕에 과일의 단맛이 더 잘 느껴진다. 막상 경험해보면 공간도 메뉴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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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빨대를 제공하는 자두에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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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따뜻한 색감의 벽면.

전기가 있어야 할까?

카페 이용에 있어 진입 장벽이 높은 건 사실이다. ‘카페지기’ 서루에게 실제 소비자들의 반응을 물었다. “상반된 반응을 보이세요. 공간이 예쁘고 편안해서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모르고 오신 분들은 전기가 없다는 말에 당황하시죠. 음료가 비싸서 그냥 되돌아가는 분도 많으세요.” 사실 비전화 카페를 방문하기로 했던 날은 일주일 전쯤이었으나 장마 기간과 겹쳐 촬영이 미뤄졌다. 태양열을 이용한 작은 전구가 하나 있을 뿐 별다른 조명 시설이 없으니 흐린 날에는 사진 촬영이 어려울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적당히 낮은 조도는 휴식을 취하기에 좋지만 반대로 말하면 휴식 외의 활동을 하기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카페지기 역시 이 공간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어두운 점이 가장 불편했다고 전했다. “처음 들어왔는데 너무 어두운 거예요. 일을 하는데 자꾸 눈앞이 침침해서 습관적으로 불을 켜고 싶었어요.” 이 외에도 시시각각 줄어드는 핸드폰 배터리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초조해졌다. 전기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소비자가 전기가 없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을 찾을 이유는 무엇인가? 소비자는 냉정하다. 비전화 카페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비전화 카페를 제작하고 운영하는 것은 비전화 공방이라는 단체다. 1년에 한 번, 비전화 제작자를 모집해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자립 기술을 함께 배운다. 각 기수마다 12명으로 구성되며 비전화 카페를 건축한 1기를 시작으로 현재 3기까지 활동 중이다. 비전화 제작자들은 동료와 함께 소비 중심적인 도시 공간에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한다. 공업제품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전화 정수기, 태양열식품건조기 등 전기를 쓰지 않고도 사용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태양열 냉장고 개발에 한창이다. 비전화 공방은 대체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해지는 라이프스타일의 전환까지도 추구한다. 그 일환으로 한 달에 이틀 일하고 30만원만 버는 ‘작은 일 만들기’가 있다. 비전화 카페를 운영하는 일 역시 이러한 ‘작은 일’에 속하는 것이다.

비전화 제작자 2기라는 서루에게 공간의 기획 의도를 물었다. “전기를 무조건 쓰지 말자는 게 아니에요. 전기를 적게, 어쩌면 아예 없이도 살 수 있는 삶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전기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니까요.” 비전화 카페는 과감하게 플러그를 뽑음으로써 사람들의 상상 너머에 존재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자는 제안이 아닌, 이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전시다. 모든 것이 빠르고 바삐 굴러가는 도시의 기준에서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행복과 풍요는 얼마나 될까?

카페 안팎을 오가는 비전화 제작자들은 식품저장고로 쓰일 다음 공간을 제작 중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더위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쉼없이 몸을 움직이면서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강렬한 햇볕 아래, 그들의 모습은 더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어느새 부채질을 그쳤다. 그제야 사방으로 뚫린 창으로 통하는 바람이 느껴진다. 바깥의 기온은 여전할 테지만 어쩐지 이제 제법 선선한 기운마저 든다.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일 것이라 여겼던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의외의 가능성을 보았다. 정전으로 온 도시가 어둠에 잠기는 날에도 비전화 카페의 나날은 평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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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과 나무로 지어 올린 비전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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