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를 목욕탕에서 하는 게 당연하고, 공부하란 말보다 물 아껴 쓰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란, 목욕탕집 막내 아들이 전하는 목욕탕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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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욕탕은 시골에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아, 그 녹차밭?” 그건 보성이다.
“아, 머드 축제?” 그건 보령이고.
보은은 속리산과 대추가 유명한, 인구 3만 명이 조금 넘는 시골이다. 그곳에 목욕탕이 처음 문을 연 게 1964년, 55년 전 일이다. 그동안 물을 데우는 방식도 볏짚과 나무를 때는 것에서 목재와 석탄, 석유를 거쳐 전기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전한 건 목욕탕을 나설 때, 때를 벗은 손님들의 개운해하는 얼굴. 이 상쾌함을 유지하기 위해 목욕탕 물 밑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성인 5천원, 어린이 3천원

목욕탕의 입장 요금은 성인과 어린이로 나뉜다. 여기에서 어린이는 미취학 아동까지다,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순간 성인 요금을 내야 한다. 요금은 지역별로 자연스레 형성되는 시장 가격으로 정해지는데, 성인의 기준이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나뉘게 된 계기는 초등학생이 성인만큼의 물을 쓰기 때문이 아니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어린이의 특성상 카운터에서 ‘몇 살이에요?’라고 물어보는 것보다 ‘학교 다녀요?’라고 물어보는 게 서로에게 편하기 때문이라고.

여전히 아주 가끔 요금을 덜 내기 위해 아직 학교 안 다닌다고 하는 부모님의 거짓말은 순수한 아이의 고백으로 인해 곧장 탄로나곤 한다. 서로 뻘쭘한 상황은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니까 요구르트를 공짜로 주겠다는 임기응변으로 넘어간다.

목욕탕도 예외는 아니다. 깎아달라는 이유도 다양하다. 단골이니까, 한 번에 여러 명이 왔으니까, 어쩔 때는 아침에 왔다 갔는데 저녁에 또 왔으니까, 어린이 요금을 내기에도 너무 어린 아이니까. 이럴 때 주인의 대처법은 일회용 샴푸나 보디클렌저, 칫솔 등을 공짜로 주는 것이다. 성인 한 명의 요금이 5천원이고, 일반적으로 할인을 요구하는 금액이 10%인데 1회용품의 판매가격이 딱 그 정도다. 그러니 샴푸 하나를 받으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요구가 관철됐다고 느낄 만하고, 1회용품을 도매가로 구입하는 주인도 만족할 수 있는 거래가 된다. 목욕탕 카운터를 본다는 게 단순히 산수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는 요금을 받지 않을 때도 있다. ‘받지 않는다’가 아니라 ‘받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하는 건 손님이 주면 받고, 공짜로 해달라고 하면 안 받기 때문이다. 아이가 물을 쓰면 얼마나 쓰겠냐는 마음도 있고, 아이를 씻기기 위해 고생하는 부모님을 응원하는 의미도 있고, 대개 그런 손님들은 금방 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건 질량 보존의 법칙

우리 목욕탕의 경우 여자 손님에게는 입장 시 2장의 수건을 주고, 남탕에는 수건을 쌓아두고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수건의 분실 방지, 다른 하나는 손님의 부상 방지다.

먼저 분실. 목욕탕 수건에 ‘사용 후 반납해주세요’ 또는 목욕탕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기는 것은 광고보다는 분실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목욕탕에선 매일같이 많은 수의 수건이 사라진다. 해져서 버려지는 것도 있고, 손님의 목욕 바구니를 따라 나서는 아이도 있다. 목욕 바구니를 가져오는 손님의 비율이 높은 여탕의 분실률이 높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젖은 수건을 손에 들고 나가는 경우는 없으니까. 집에서의 습관처럼 반납을 깜빡하고 챙겨갈 때를 대비해 수건에 새긴 이름 덕분에 재방문 시 수건이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손님의 부상 방지는 남탕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남자 손님들은 목욕 바구니를 가져오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입장할 때 수건을 주면 옷장에 둬야 하고, 목욕 후 물기를 닦기 위해 다시 옷장까지 가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이때 바닥에 떨어지는 물기는 방수 효과가 좋은 목욕탕 장판과 맞물려 미끄러지기 딱 좋은 환경이 된다. 이걸 고치는 것보다 수건을 욕탕 입구 옆에 두는 게 빠르고 안전하기 때문에 방식을 바꿀 수가 없다.

신기하게도 남탕에서는 집에서 가져온 수건을 쓴 다음 습관처럼 수건통에 집어넣는 사람들 덕분에 수건이 없어지기는커녕 그 수가 더 늘어난다. 집에 가서야 알게 되겠지만, 다음에 와서도 그 수건을 찾는 손님은 없다.

 

목욕탕 100배활용하기

집집마다 샤워 시설이 잘 갖춰진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목욕탕은 자주 가야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어쩌면 명절에만 가는 곳이 된 지 오래다. 오랜만에 들른 목욕탕에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첫째, 사우나에 들어갈 때 찬물을 담은 대야를 가져간다. 사우나에서 땀을 빼면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로는 체내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 혈압을 낮추는 것, 혈관의 탄력을 높이는 것, 땀 배출로 노폐물을 빼주는 것 등이 있는데 이러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10~15분 정도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이 정도 버티는 게 힘든 사람은 대야에 찬물을 담아가 수건을 적셔 얼굴을 덮고 있거나 발을 담그면 얼굴에 전해지는 열을 줄이고, 혈액순환을 촉진할 수 있다. 그리고 집에서 하기 번거로운 페이셜 마스크나 헤어 마스크를 하고 사우나에 들어가면 열로부터 피부와 모발을 보호함과 동시에 스팀 효과로 제품의 흡수를 높일 수 있다.

둘째, 남탕은 아침과 저녁에 문 닫기 전, 여탕은 오후 4시쯤이 가장 붐빈다. 명절 같은 대목을 제외하고 평소 손님이 많은 시간이 그렇다. 시골 목욕탕 한 곳의 데이터니 빅데이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목욕탕 카운터 경력 45년이 넘는 부모님의 ‘짬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 여유로운 입욕을 하고 싶다면 이 시간을 피하길 추천한다.

셋째, 여럿이 목욕을 한다면, 목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목욕탕에 오기 전에 맞추는 게 좋다. 남녀가 섞인 온 가족이 목욕을 하러 오면 입구에서 나오는 시간을 조정하는데 시간을 오래 하고 싶어 하는 여자팀과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남자팀의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 차이가 크다면 목욕탕 근처에서 할 것을 찾거나 갈 때는 각자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목욕 후 먼저 나와 기다리는 시간은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3분의 연속이다.

넷째, 단체로 갈 경우 보름권, 한달권 등의 정기권이 있는지 확인한다. 목욕탕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자주 오는 손님들을 위해 15회, 30회 입장권을 선불로 구입할 시 할인 혜택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인원 수에 따라 이 정기권을 구입하고 한두 번에 나눠 사용하면 요금 깎아달라고 하고 샴푸를 받는 것보다 큰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목욕의 단짝, 우유와 요거트

한때 목욕탕 필수템으로 우유와 요거트가 있었다. 둘 다 마시는 용도가 아닌 피부 마사지용으로 사용됐는데, 우유에는 AHA 성분으로 각질 제거 효과가 있으면서 자극 염려도 적은 편인 락틱산(젖산)이 함유돼 있어 바르고 문지르는 것만으로 피부가 부들부들해지는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요거트는 우유를 발효시켜 당이 젖산으로 바뀐 상태라 각질 제거 효과도 좋고, 단백질과 비타민 B2 성분이 각질층을 부드럽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것들의 가장 큰 장점은 유통기한이 지난 상태여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마실 수는 없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피부에 좋다고 하니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목욕탕에서 이런 유제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비린내. 우유를 바닥에 쏟아본 사람들은 안다. 마실 때에는 몰랐던 냄새가 확산될 때의 당혹감. 게다가 따뜻한 물과 섞이면 냄새를 제거한 우유에서도 비린내가 난다. 요거트는 처음에는 배수구가 막힌다는 이유로 건더기가 있는 요거트만 금지했다가 우유와 같은 이유로 건더기가 없는 플레인 요거트도 사용을 금지한다. 그렇다 해도 이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보디 클렌저와 스크럽, 크림 등이 너무 잘 나오고 있으니 그리 아쉬워하지는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