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에서 여성 창업자는 희귀한 존재다.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들은 맨스플레인을 늘어놓기 바쁘다. 앱을 기반으로 한 유료 짐 보관 서비스 마타주를 세상에 내놓은 마타컴퍼니의 창업자는 이주미 대표. 엔씨소프트, CJ그룹 등의 회사를 거친 경험을 발판으로 40세에 창업한 마타컴퍼니는 순조롭게 3년 차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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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과 팬츠는 코스(Cos). 셔츠는 유닛(Unit). 슈즈는 모노바비(Monobarbie). 귀고리는 해수엘(Haesoo.L). 시계는 까르뱅(Carven).

마타컴퍼니 창업 전에는 회사원이었습니다. 카카오, 엔씨소프트. CJ그룹 등에서 근무했는데 어떤 일을 했나요? 
첫 직장은 크게 보면 지금 카카오의 전신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이후 엔씨에서 일했고요. IT업계에서 기획과 마케팅을 7~8년 정도 했고, 그 이후에는 대기업에 들어가 전략, 사업기획 파트에서 8년 정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꼭대기에 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프로그래머 출신은 아니었군요. 
네. 대신 IT업계에서 기획을 하면서 계속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들과 일할 기회는 많이 있었죠. 엔씨에 있을 때는 개발자 30~40명에 마케팅은 저 혼자였으니까, 마케터를 처음 보는 개발자도 많았어요.

프로그래머들과 일하는 경험은 어땠나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일 수 있었을 텐데요. 
좋은 프로그래머는 그냥 “안 돼요”라고 하지는 않아요. 이걸 하려면 이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식이죠. 일하면서 개발자들의 고충도 많이 알게 됐어요. 비유하자면 집을 차곡차곡 쌓아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냥 집을 만들어달라고 할 때 힘들다고들 하더군요. 존중할 건 존중하고 할 건 해야 해요. 개발직군과 비개발직군의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회사가 겪고 있는 문제예요.

개발자가 많은 회사는 남성적일 것이란 인식이 있는데, 직접 겪어보니 어땠나요? 
지금 제가 물류 쪽에 있잖아요. 흔히 생각하는 마초적 남성의 세계가 물류 쪽이라면, 남자 개발자의 세계는 좀 더 섬세하고, 약간 ‘덕후’스러운 면이 있어요. 술도 안 마시고 회식도 잘 안 해요. 게임 얘기하고 컴퓨터 장비 얘기하는 걸 좋아하죠. IT 쪽에서 일했을 때는 남녀 차이를 거의 못 느꼈어요. 오히려 대기업에서 이질감을 더 느꼈던 것 같아요.

창업 대신 기존 기업에서 끝장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임원이나 대표까지 말이죠. 
당연히 있었어요. 끝까지 올라가기 어렵겠다는 걸 깨닫고 사업을 결심한 거였으니까요. 조직 내에서 여자임원이 대기업 계열사 통틀어서 손에 꼽을 정도로, 그것도 마케팅 계열의 한두 분이 다였기 때문이죠. 30~50명이 참석하는 전체 팀장회의에 가면 여자분들은 3명 정도 있는데 바로 그 밑에서 실무를 하는 선임은 다 여성이에요. 이 조직 구조에서 내가 해머를 만들어서 천장을 깰 것이냐를 두고 저도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에너지가 열 배 스무 배는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팀장대행급인 조직장까지 가봤는데 거의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처럼 해봤어요. 하지만 그게 제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더라고요. 회사에서 난리부리며 일하다 집에 오면 헛헛하고 슬펐어요. 남자들은 수가 많기 때문에 단점이 있어도 ‘원 오브’가 되지만 여자들은 높이 오를수록 단점이 많이 부각되는 점도 있어요. 대기업을 나올 때 걸렸던 건 인사팀에서 저를 잡으며 한 말뿐이었어요.

무슨 말을 했어요? 
회사에 여성 롤모델이 없는데 지금 나가면 여자 후배들이 결국 여자들은 어느 턱에서 그만두는구나 한다면서, ‘그런 선례를 남기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웃긴다고 생각했어요. 여자들이 더 올라가게 조직구조를 만드는 게 순서지 그 구조를 견디기 힘들어 나가서 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이런 논리로 잡다니 비겁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되게 걸리긴 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는 여자 후배 네트워크를 계속 이어가고 있어요.

퇴사할 때 현재 마타주 서비스에 대한 개요가 있었나요? 
아이템을 만들고, 투자사 관계자를 만나는 등의 준비를 하고 회사를 나왔어요. 준비를 더 많이 하고 나왔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한때 하긴 했는데 요즘엔 빨리 나온 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마타주 서비스의 경우 물류, 창고업이기 때문에 창업 스케일이 큰 편이죠. 어떤 사업을 구상했나요? 
저는 트래픽을 모으고 나서 돈을 버는 게 매우 고통스럽다는 걸 기업에서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를 팔더라도 돈이 또박또박 들어오는 유료 모델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직접적으로 명백한 사업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활에 직접적 가치가 있는 것. 저희 사업은 돈 떨어지거나 유료 고객이 없어지거나 하면 명백하게 끝나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명백한 것 같아요.(웃음)

마타주는 어디에서 착안한 서비스였나요? 처음 이 서비스를 알았을 때에는 한 박스, 한 달도 보관해준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가는 현상과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징도 있고요. 선진국 도시에서도 창고 서비스가 많았어요. 저 역시 계속 자취하면서 오피스텔에 살았는데 수납이 제일 고민이었어요. 원룸에 옷장이 한 칸, 두 칸 있는데, 두 칸으로도 사계절 옷을 다 가지고 있을 수 없잖아요. 엄마 집에 보냈다가 다시 가져오곤 했죠. 일본과 서구 쪽 모델을 두루 찾아보고 한국에 맞는 방식을 최대한 찾아냈어요.

시행착오를 겪고 수정한 가장 큰 부분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요원이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해 현관에서 짐을 개켜서 넣어드리는 풀 서비스를 했어요. 그런데 남자분들이 현관에 오래 머무는 게 여러모로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지금은 박스를 보내드리고 셀프로 포장해서 요원에게 전달만 해주시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셀프 포장식으로 바꾸면 서비스 퀄리티가 떨어졌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직접 포장하는 걸 고객들은 훨씬 좋아했어요.

물류 쪽에서 활동하는 여성이 많지 않죠? 남자들의 일이라고 여겨져온 분야입니다. 
많이 느껴요. 창고를 계약하고, 물류시설 설치하고, 물류업 컨퍼런스를 가도 거의 홍일점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되게 신기해하시고, 가르치려고 하시는 분들도 많고.(웃음)

물류업계에서는 어떻게 적응하려고 노력했나요? 
처음에는 연약해 보이면 깔보지 않을까 싶어서 터프하게 보이려 했던 적도 있었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신경을 많이 썼었어요.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절대 풀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다녔어요. 그렇게 자기검열을 하며 경직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힘이 다 빠져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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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됐을 문제네요. 
맞아요. 힘을 하나도 못 써도 남자대표가 사업을 한다고 했으면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 이미지가 회사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기 때문에 자기검열을 더 심하게 했던 것 같아요.

대표가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도 있었나요? 
여성대표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투자를 받을 때 불리하다고 얘기하신 분이 있었죠. 투자자 입장에서는 대표를 보고 투자를 하는데, 어느 날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 것도 리스크이기 때문에 걱정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다른 분들도 겉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같은 생각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엔젤투자방식으로 초기투자를 받았는데, 어떤 장점이 있나요? 
엔젤투자는 초기에 어느 정도 일어설 때까지의 비용만 대주고 인큐베이팅이 같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도 그런 케이스였고, 1년 정도는 엔젤투자비용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어느 정도 셋업 후에는 외부에서 투자사를 찾아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졸업한 거죠.

마타주가 너무 잘된다면 언젠가 대기업이 뛰어들지 않을까요? 
실제로 미팅을 몇 번 해봤는데, 정보만 챙기고 어느 날 연락이 뚝 끊겨요. 건강한 방식은 대기업이 저희를 카피하는 게 아니라 저희랑 코워킹을 하거나 인수해서 마타주를 더 크게 키우는 방향인데 그런 방법을 잘 선택하지 않죠. 그래서 초기에 빨리 크는 것, 빠른 속도가 스타트업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장점인 것 같아요.

작은 사업체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기업에 있어보니, 똑같이 한다고 해서 똑같이 나오지도 않고 우리가 스스로 재미있고 사명감이 있어야 디테일한 서비스를 할 수 있더군요. 만약 마타주가 대기업에서 진행된다면 중간 중간에 의사결정에서 여기저기 깎이면서 최종 프로덕트는 달라질 수 있어요. 자본이 있으면 잘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 들어온다면 저희는 한발 빨리 앞으로 나아가야겠죠.

마타주를 통해 더 해보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만약 옷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고객들이 입을지 안 입을지 모르는 옷 보관하는 게 아니라 입을 옷을 보관해요. 돈을 주면서까지 보관하는 건 내년에 확실히 입을 것들이기 때문이에요. 처음 창업하면서 3단계까지 생각했었는데 두세 번째 단계가 렌털과 처분이에요. 안 쓰는 것을 처분하거나 남에게 빌려주거나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고객이 수익금도 받고 그 돈으로 보관도 가능한 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마타주의 여성 고용 비율이 90%가 넘는다고요. 
맞아요. 맹세코 여성에게 특혜를 줘서 뽑은 건 아니에요. 이 업을 좋아하고 오래 남아 있는 분들이 신기하게도 여성분들이에요. 지게차 운전, 배송 직군만 빼고는 다 여성입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서비스가 많아요. 앱을 그렇게까지 잘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요즘엔 다 비대면으로 가기 때문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는 것 중 하나예요. 창고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바꾸는 것, 깔끔한 디자인도 그런 요소 중 하나고, 박스도 흰 박스는 비싸거든요. 그래도 내 옷과 물건을 담는 거니까 과감하게 했습니다.

회사생활을 15년 가까이 한 경험은 어떤 도움이 되나요? 
다양한 경험을 한 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되죠. 어떤 일에 맞딱뜨려도 어떻게 해결해야 되겠구나 하는 게 있죠. 단점은 너무 많은 걸 알아서 용기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결혼도 그렇고 뭐도 그렇고 뭘 몰라야 한다고 하잖아요?(웃음) 그 부분은 저도 경계하려고 해요. 고정관념을 깨는 게 스타트업의 힘이거든요. 기존 기업에서 내가 경험했던 잣대를 자꾸 들이밀면 스타트업의 용기를 잃어버리게 되죠.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경험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돼요.

대표 입장에서는 무엇이 가장 힘든가요? 
저역시 꼬꼬마 때부터 고생스러운 직장생활을 해봐서 직원들에게 공감이 잘돼요. 어떤 때는 독하게 또 강하게 가져가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도 제 스스로 불합리한 상사가 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스타트업이라고 다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거든요. 그 경계를 지킨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직급에 맞는 역할에 대해 고민의 시간이 많았는데, 필요한 걸 알려줄 수 있다면 미움받고 무서운 어른이 되어도 괜찮다고 결론을 냈어요.

좋은 직원을 채용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나요?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해요. 대기업에 비해 보상이나 복지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분들이 원하는 게 오롯이 돈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여기서 무언가 배워갈 거고, 2년이 됐든, 3년이 됐든 여기서 나갈 때는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나갈 때만큼은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졸업시켜줘야겠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이 친구들이 스타트업에 왔을 땐 안정감, 빵빵한 복지를 바라고 온 건 아닐 거예요.

회사를 다닐까, 창업을 할까의 문제는 회사원들의 영원한 딜레마일 수 있는데요. 
정해진 것에서 갑갑함을 유독 많이 느끼는 주체적이고 성취감을 좋아하는 친구냐 어떻게든 적응하려는 친구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이 일이 맞나 안 맞나는 사십세 정도 되면 의미 없는 고민이에요.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야지 이제 와서 적성에 맞나 안 맞나 하는 생각은 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성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대기업에 갈 때 월급루팡 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일 없이 하루 8시간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워요.(웃음) 그래서 적당히 가끔은 고통도 있고, 가끔 성취감도 있고 양면이 다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체크하는 게 있다면? 
기사도 많이 보고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모두 해요. 트위터를 보면 사람들이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저도 배운 점이 굉장히 많아요.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워딩이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깜짝 놀라서 필터링하기도 하죠. 유튜브도 유료 회원이었다가 광고를 보는 것도 제가 필요하다 생각이 들어서 광고까지 모두 봅니다.

창업자들이 갖춰야 할 태도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굳건한 멘탈.(웃음) 잘되는 데는 잘되는 대로 급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이 있어요. 시작하자마다 굴곡 없이 가는 회사는 아마 없을 거예요. 다른 대표들도 똑같이 이야기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뭘 하고 있지?’ 하는 질문을 하는 때가 와요. 그럴 때 내가 왜 이 사업을 했다는 것에 대한 초기 질문으로 많이 가요. 너무 상황이 힘들어지니까 내가 이걸 왜 하려고 했는지 이유를 계속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죠. 내가 찡그리고 있거나 우울해하고 있으면 전체 회사에 영향을 미치죠. 어떤 일이 있어도 회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기 때문에 멘탈 관리와 컨트롤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무조건 멘탈이 1순위예요.

10년 전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넌 사업을 하게 될 거니까 빨리 하라고 할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예전에는 무서운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닐까, 너무 까칠한가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냥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누가 너 조신하지 않아, 너무 까탈스러워 라고 한다고 해도, 할 말은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요. 일을 조금 덜 해도 된다…는 아마도 불가능할 거예요.(웃음) 100살까지 살아야 하는데 지금부터 안정성을 찾아 60년을 산다면 너무 지겨울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