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선은 한국에서 불모지였던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학부를 마치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31세의 나이에 경찰대학 교수가 되었다. 이후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교에서 후학 양성과 연구에 힘쓰는 동시에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방송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복잡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예리한 관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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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떤 마음으로 심리학 전공을 선택했나요?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점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을 샀어요. 거의 못 읽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이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실수란 없다’였죠. 사회적 상황 때문에 실수로 포장되는 거지 그 사람 본심이라는 내용이 인상 깊었어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유심히 보면서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이나 행동을 할까 생각했어요. 저 사람의 행동이 말이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학부생일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죠. 특히 학부 3~4학년 때는 공부한 기억밖에 없어요. 책을 많이 읽었고요. 제 대학생활에서 지금까지도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2학년 겨울방학 때 세계문학전집 100권을 읽은 거예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사람을 보는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문학 작품을 많이 읽고,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라고 많이 권해요.

계속 읽고 있는 책이 있나요? 
지금도 해마다 <레미제라블>을 읽어요. 30~40대에 읽으면 20살 때 읽은 <레미제라블>과 와 닿는 게 달라요. 책을 통해 내가 달라진 것도 느끼죠.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문학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해요.

학부 졸업 후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는데요. 왜 범죄심리학이었나요? 
4학년 때 두 가지를 고민했어요. 통번역대학원에 갈까 아니면 심리학을 공부할까. 여러 가지 이유로 통번역대학원에 가기로 결정했었어요. 편한 길이고, 졸업하면 수입도 보장되는 길이니까. 그런데 막상 결정을 하고 보니 오히려 범죄심리학을 더 공부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이 될 때는 둘 중에 하나를 해본 뒤에 결정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해보고 나서 아닌 걸 아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국내에는 범죄심리학 전공이 없어서 유학을 떠났죠.

영국 리버풀로 유학을 떠났는데, 유학지 중에서도 낯선 곳 아닌가요? 
가기 전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현지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여길 오다니 정말 용감하다고.(웃음) 리버풀이라는 도시가 축구와 비틀스, 펍 말고는 뭐가 없는 곳이기도 해요.

그리고 범죄심리학이 있었군요. 유학 시절을 통해 무엇을 느꼈나요?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죠. 범죄가 지역마다 다를 것 같지만,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같기 때문에 한국에서 발생하는 범죄나 미국, 영국에서 발생하는 범죄나 공통점이 많아요. 그 점이 흥미로웠어요.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듯이. 그런데 박사 5년을 재미로만 하는 건 아니니까 힘들 때도 많았어요. 정말 밑바닥을 치는 것 같은.

어떤 동력으로 그 시기를 통과했다고 생각하나요? 
그 동력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누구나 자기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어느 날 박사논문을 쓰는데 패닉이 왔어요. 하루에 20페이지를 일곱 번 고쳤는데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정말 안 되나 보다…. 멈춰야 되는 걸 알면서도 계속 수정하고, 자기 통제를 잃은 느낌이었어요. 그게 11년 전이네요. 그런데 다행인 건 그 이후부터 아무리 힘든 게 와도 그때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그게 또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 정도는 아니야, 그때보다는 나아. 무서운 걸 몰랐던 20대여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요? 예나 지금이나 ‘여성은 험한 일을 하면 안 된다’라는 사회적, 가족적인 압박이 존재합니다. 범죄라는 건 험한 일의 범주에 드는 일이고요. 
가족의 압박은 없었어요. 하지만 경찰대에 교수 면접을 보러 가서 범죄심리에 대해서 시범 강의를 했는데, 그때 “여자인데 하실 수 있겠냐”라는 질문을 처음 받았죠. 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교수 면접에서 이런 몰상식한 질문을 받다니…그때 아, 이게 시작이구나 싶었어요. 내 전공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여자인데 할 수 있겠냐는 말이 나오다니. ‘이게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2009년의 일이거든요? 사실 아주 오래전도 아니죠.

그 후 31살의 나이로 경찰대학 교수로 임용되셨는데요. 나이로는 파격적인 인용이 아니었나요? 
당시로는 파격적인 게 맞는데, 범죄심리학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이 국내에 없어서 분야의 특수성 때문에 임용된 것 같아요. 교수 면접을 보고 자신이 있었어요. 내가 정말 열심히 했고, 나에게 맞는 자리와 시간, 기회를 만났다는 생각에 면접에 온힘을 쏟았어요. 남의 평가가 필요 없는 순간이 있어요. “나는 잘할 수 있다.”

이후 숙명여대로 자리를 옮겼죠. 새롭게 과가 신설된 건가요? 
사회심리학과 대학원이 생겼죠. 사회심리학과는 사회학 더하기 심리학이어서, 사회학 전공 교수님도 계시고 심리학 전공 교수님도 계세요. 저는 범죄심리학, 사회심리학 등을 가르치죠. 제가 오면서 석사 범죄전공이 생겼어요. 감사하게도 지원자가 많죠.(웃음)

여대이므로 학생이 여성이에요.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해주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학생들이 자기 탓을 너무 많이 해요. 안 좋은 상황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책을 너무 많이 해요. 그런데 본인은 몰라요. 얼마 전에도 학생들에게 책 읽고 느낀 점을 물었는데 반성을 많이 했다는 거예요. 스스로 칭찬할 점은 없었냐 했더니 전혀 없다고. 늘 내가 뭘 못했고 부족한 점을 찾더라고요. 그렇게 교육이 된 것 같아요. 자기 잘못과 부족함을 찾는 게 미덕인 것처럼.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대학생이면 성격이 이미 형성된 후죠. 그런 거 있잖아요? 때로는 무심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가끔 ‘뭔데’, ‘어쩌라고’ 하는 것도 있고. 그런데 그 반대가 아름다운 거라고 자꾸 교육을 받는 것 같아요.

한번쯤 심리학도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요. 자신의 심리를 궁금해하는 것과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텐데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정말 중요한 질문이에요. 중요한 건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실제로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들어온 학생이 많은데, 나와 내 가족, 나와 내 부모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하고, 심리학을 공부할 때 학문과 내 문제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해요. 그걸 못하면 심리학을 학문으로 공부하는 게 힘들죠. 상담을 받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 공부를 하러 왔다는 학생들이 실제로 있어요. 그런데 내가 심리학자로 상담할 수 있으려면 나의 문제와 상담하러 온 사람과 분리할 줄 알아야 하죠. 기자의 질문도 질문자의 경험이 녹아 있잖아요? 인터뷰를 옮긴다고 해도,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의 시선으로 나가듯이 심리학도 같아요. 그걸로 직업을 하려면 분리해야죠. 내가 배우는 것과 나와, 내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범죄심리학은 더 중요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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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을 본 경험으로는 어떤 학생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를 하나요? 
무슨 일이든 근성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근성과 책임감이 관건인 것 같아요. 내가 이걸 택했는데 책임을 다하지 않고 포기하면 미련이 남지 않을까요? 하지만 어떤 사람이 심리학에 잘 맞는지 묻는다면 사람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유리해요.

대중 매체에서 프로파일러를 많이 다루면서 범죄심리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를테면 사람들이 프로파일러와 범죄심리학 전문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던데요. 
우선 저는 범죄심리학자죠. 범죄심리학을 공부한 지 15년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저는 범죄심리학자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프로파일러가 소비되는 방식을 보면 많이 걱정돼요. 천재로 묘사하거나, 자극적으로 그려지죠. 제일 걱정되는 건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어 하는 많은 중고생이 드라마 속 멋진 모습만 생각하는데 그건 절대 아니에요.

어떤 점을 오해하고 있어요? 
프로파일러는 경찰이죠. 봉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경찰은 봉사 의식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직업이에요. 남들 눈에 멋있어 보이는 직업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고 들어오면 실망하죠.

꾸준히 방송 출연을 하며 대중과 만나고 있습니다. 강의와 연구로 바쁜 와중에 방송 출연까지 소화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방송에 기대하는 역할이 있나요? 
방송에 기대한다기보다는 시청자에게 기대해요. 저는 지금 <그것이 알고 싶다>에만 출연하고 있는데, 방송이 나가면 실시간 검색어에 사건이 오르내려요. 유명한 사건이 아니어도 같이 걱정하고, 아파하고, 제대로 수사해달라고 요구하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수소문 끝에 찾았다’ 이런 것도 대부분 일반 시청자들이 도와주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만 출연하는 이유가 있나요? 
다른 방송은 사건 자료 없이 질문지 한 장 날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자료가 수백, 수천 페이지인데 그걸 다 분석하거든요. 저도 읽었기 때문에 책임지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또 국민적인 관심이 높은 사건은 취재 전화가 수백 통이 걸려오는데 그러면 학생들 가르치고 논문 쓰고 하지를 못해요. <그것이 알고 싶다>만 하는 이유는 전문성을 가지고 책임 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송이자 시청자들이 도와주는 방송이어서가 맞겠네요. 실제로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예요.

방송에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 경험이 많은가요? 
몇 년 전 신문기자가 묻지 마 범죄에 대해 물어서 개인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이 원인이라고 정말 열심히 설명했죠. 다음 날 기사에 ‘묻지 마 범죄, 우리 사회의 낙오자들이 저질러’ 이렇게 나왔어요. 그 이후로 사건 터졌을 때 기자들이 자료도 없이 그냥 즉석으로 의견 물어보고 하는 건 잘 안 하고요. 이 인터뷰 요청도 고민했는데, 안 좋은 경험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결국은 다 사람 상처니까.

‘범죄’는 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민 정서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과거보다 성추행, 동물 학대, 이별 범죄 등에 대한 범죄가 알려지는 일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사건에 대해 댓글로 범죄냐, 아니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범죄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모여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거예요. 이건 하면 된다, 안 된다에 대한 것이니까말이죠.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에요.

범죄심리학자로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범죄 유형은 무엇인가요? 
불법촬영이에요. 요즘은 기능 좋은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폰이 너무 익숙한 시대죠. 그렇지만 불법촬영이 범죄이고 하면 안 된다고 교육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불법촬영을 당한 입장에선 얼마나 충격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불법촬영에 대한 연령별 반응도 매우 달라요. 사실 불법촬영이 많이 늘었어요. 전에는 지하철에 ‘불법촬영 조심하세요’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찍지 마’로 바뀌었죠. 그렇게 바뀌어야 해요.

많은 여성이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라는 사회적인 시선에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요.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나요? 
제게 10년 전 면접 볼 때 첫 질문이 “결혼했습니까?”였어요. 저 혼자 황당해했을 뿐, 당시에는 그런 질문이 별 문제 없다고 여겨지던 거였어요. 많이 바뀌고 있지만 계속 바뀌어야 하죠. 분명히 아주 빨리 변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어요. 변화하는 데 있어서 어느 부분에 저항이 강한지를.

우리가 살면서 범죄자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갖춰야 할까요? 
너무 뻔한 답변일 수 있지만, 공감이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머리론 쉬운데 정말 어렵거든요. 자기가 공감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정말 어려워요. 남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더라도, 상대의 입장을 알고 하는 것과 신경 안 쓰는 것과는 천지차이예요. 그걸 상대방도 알고요.

많은 추악한 범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일반 대중보다 범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은 어떻게 이루시나요? 
어려운 일이죠. 이게 범죄다 아니다 대신 저 사람은 이런 행동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충격을 덜 받아요. 모두 사람이 하는 행동이니까요. 물론 아주 평범한 사람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힘들죠. 그럴수록 일상이 중요해요. 저의 요즘 관심사는 떡볶이예요. 지방의 유명한 떡볶이를 맛보는 일이죠. 범죄라는 것은 그럼에도 아주 드문 일이고, 내가 오늘 5백원을 고민하는 건 아주 가까이 있는 일이에요. 계속 범죄만 생각하면 살 수가 없죠. 저는 일상에서 편의점 투 플러스 원과 맛있는 떡볶이가 주는 기쁨을 누리고 있어요.

만약 10년 전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여행을 더 많이 가라. 30대 때 제일 돈을 잘 쓴 게 먼 곳으로 여행을 한 것이에요. 40대가 되면 허리 아파서 못 가요. 특히 언어가 달라서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가보길 권해요. 중국의 만리장성에 갔는데 옆에 있던 중국인 할머니와 말도 안 통하는데 서로 대화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내가 그 나라의 언어를 몰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경험. 스스로 번 돈으로 여행 가는 기쁨을 누려보길 바라요. 후회 없어요.

인생에서 여러 선택을 할 때, 무엇이 중요하게 작용했나요? 
내가 이걸 할 수 있다, 없다를 미리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에미넴의 노래 ‘Lose Yourself’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냥 무엇이든 하는 것. 그래서 나이키의 광고 문구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해요.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