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림은 2011년 <슈퍼스타 K3>를 통해 그룹 ‘투개월’의 보컬로 데뷔했다. 2016년 봄,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김예림은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세상과 관계를 끊고 사라졌다. 그리고 2019년 5월, 림 킴(Lim Kim)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부터 진짜 자신의 노래를 독립적으로 부르겠다고 선언한다. 그 첫 결과물은 ‘하드코어 힙합’ 살기(SAL-K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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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아워 레가시 바이 비이커(Our Legacy by Beaker). 톱은 캘빈 클라인 퍼포먼스(Calvin Klein Performance). 팬츠는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커프는 캐이어링(Careeri ng).

편집장이 당신을 이 땅에 발 붙이고 있는 여성으로 당당하고 솔직하고 쿨한 모습으로 촬영하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몇 년 전까지 가장 많이 들은 조언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대중 음악을 하는 가수였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노래를 해야 했으니까요. 자주가 아니라 항상 들었던 말이죠. 근데 한 3년 전부터는 그런 거 ‘일(1)’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요.

이제 땅에 발 붙이고 살 마음이 없다? 
음악적으로는요. 이제 저 혼자 음악을 해도 되는 환경이 됐거든요. 어떤 음악이 땅에 붙어 있는 걸까, 혹은 어떤 음악이 땅에서 이만큼 붕 떠 있는 음악일까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다만 새로운 활동을 하기 전에 이런 생각은 하게 돼요. 땅에 발 붙인 매체나 많은 사람이 저의 새로운 모습에 궁금증을 느끼는 게 재미있다고요. 저는 원래 바닥에 단단하게 발 붙인 음악을 하다가 갑자기 이 세상에 없는 음악을 하게 된 사람이잖아요.(웃음) 뭐가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많지 않은 기준들 안에서 정확한 답을 찾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뭘 하고 싶어요? 
꼭 이 세상에 있을 법한 무언가가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걸 있는 것처럼 소개하는 게 재미있어요.

땅에 발 붙인 김예림을 만나러 왔는데, 정작 본인은 이제 둥둥 떠다니고 싶다고 하네요. 그 간극이 당황스럽다기보다 오히려 반가운데요. 
저는 지금처럼 둥둥 떠 있는 상태가 좋아요. 그게 좋을 수 있는 건 에디터님처럼 땅에서 든든하게 버틴 채 지지해주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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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은 야드666세일(Yard666sale). 이어커프는 캐이어링.

김예림과 림 킴, 뭐라고 부를까요? 
지금 제 아이덴티티는 림 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둘 다 상관없지만요.

림 킴의 새 노래 ‘살기(SAL-KI)’는 5월 24일 발매됐죠. 실은 그로부터 한 달 전쯤 6곡의 데모가 더 담긴 비공개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을 관계자를 통해 듣게 됐어요. 노래가 다 끝나고 아주 본능적인 질문을 품게 됐죠. “왜?” 
아마 많이들 그러셨을 거예요. 그동안 김예림이 부르던 노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요. 한 3년 정도 새롭게 작업했어요. 처음부터 뭘 확 바꾸고 싶은 사명감 같은 걸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냥 어릴 때부터 듣던 음악, 보고 자랐던 것, 감정이나 마음 같은 것들이 쌓여 있다가 그런 방식의 통로를 만난 것뿐이죠.

그렇다면 그간 ‘김예림’의 이름으로 발표된 노래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이번 노래와는 접점이 거의 없다고 해야 맞으니까요. 
일단 지난 시간의 활동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좋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때는 막연하게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 거죠.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상태로 회사에 들어가게 됐고요.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로 거대한 시스템 안에 속해버린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그런 삶을 예상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사람이었어요. 일이 잘될 때도, 1위를 할 때도, 그게 전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내 감정이 아니니까 아무것도 즐기거나 느낄 수 없었죠.

다시 원래 내 옷을 입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그냥 직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시스템의 안정과 화려한 생활을 버리는 게 아깝지 않았어요? 
전혀. 당시에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누구는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길 원했어요. 그러지 못하는 걸 힘들어했죠. 하지만 동시에 화려함이나 안정성을 선뜻 포기하지 못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쉽게 버릴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니까요. 근데 저는 정말 상관없었어요.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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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아워 레가시 바이 비이커. 톱은 캘빈 클라인 퍼포먼스. 팬츠는 캘빈 클라인 진.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커프는 캐이어링. 슈즈는 자라(Zara). 발토시는 모호(Moho).

지금은 어때요? ‘살기(SAL-KI)’를 시작으로 한 음악과 비주얼은 진짜 림 킴이라 할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스무 살 이후 사회 생활이라는 걸 하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생겼어요. 아주 많이요.(웃음) 지금 림 킴의 음악에는 그 발언과 선언이 담겨 있어요. 근데 그게 또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무슨 뜻이죠? 
뭐냐 하면요. 저라는 사람을 ‘1’이라고 치면요. 제 음악도 똑같이 ‘1’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림 킴의 음악은 저와 제 마음을 1:1로 대변하진 않아요. 오히려 제 안에 내재된 성향이 담긴 캐릭터가 이만큼 크게 극대화된 거라 할 수 있어요. 어떤 의미에선 좀 과장되게요.

림 킴의 이야기지만, 완전한 림 킴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음, 이런 거예요. 제가 동양 여성으로 해외에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감정이 있을 거잖아요. 이를테면 공격성 같은 거요. 내가 품고 있는 공격성은 이 정도인데, 그걸 훨씬 더 증폭해서 표현해버리는 거죠. 탁구공만 한 공격성을 농구공만 하게요.

왜요? 
이게 만약 저만의 일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저는 저랑 비슷한 감정과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었어요. 그럼 힘이 커질 테니까요. 여성으로서, 동양 여성으로서 현실에서 느껴지는 나약함이 있거든요. 마법처럼 그 힘을 증폭해버리고 싶었어요. 음악을 통해서요.

증폭된 힘이라는 개념이 좋네요. 그들만의 연대를 넘어, 그런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분명히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바깥으로 나와서 발언하면 좋겠어요. 그럼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이 생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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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와 팬츠는 모두 J.W. 앤더슨 바이 분더샵(J.W. Anderson by Boontheshop). 이어링은 캐이어링 × 언더커버(Careering × Undercover). 이어커프는 캐이어링.

해외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 경험과 지금 림 킴의 용기가 관련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한국 여성, 동양 여성에게 씌워진 이미지나 시선의 위험성은 꼭 해외에 사는 교포나 유학생이 아니어도 경험할 수 있어요. 아주 가깝게는 해외여행만 가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물론 다 그렇다고 일반화할 순 없지만 해외 언론과 여론이 동양 여성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만 봐도 문제가 많아요. 이상한 방식의 페티시적인 시선이 깔려 있는 경우도 흔해요.

그럼 림 킴이 차용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서양인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있어요. <킬빌> 같은 거요. 저는 처음에 그들이 좋아하는 동양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다가, 나중에 그 기대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는 이미지를 추구해요. 음악도 그렇고요. 동양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기존의 모든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수고 싶어요.

SNS 속 여성들이 림 킴을 보며 통쾌해하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호불호가 있죠.(웃음) 예상했던 일이에요. 걱정되거나 두려운 건 없어요. 오히려 재미있어요. 사람들이 공감해주길 바라면서 준비한 것들이 있는데, 그게 현실이 됐을 때의 재미.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위안과 위로가 있어요. 고맙기도 하고요.

림 킴은 최근 ‘존버는 승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죠.
근데 그 말 여기 쓰셔도 돼요?(웃음) 혼자 세상에 나온 지 3년인데요. 오로지 혼자 버틴 시간이죠. 단순히 제 개인의 이야기만 하려 했다면 불가능한 시간이었을 거예요. 다른 어떤 사람들과 함께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많이 한 거 같아요. 버티면 누구나 승리할 수 있어요.(웃음) 앞으로도 어딘가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 더 잘 버티려고요.

그런데 갑자기 확인하고 싶어요. 이제 ‘김예림’의 발라드는 다시 들을 수 없나요?
글쎄요. 저도 궁금해요. 만약 부른다고 해도 그때와 같은 감정일 순 없겠죠. 그땐 ‘건조’ 그 자체였으니까요.(웃음) 제 마음이 다시 그런 노래를 하고 싶다면 하면 돼요. 근데 아직은 아니에요.

그럼 지금은?
네, 직접적이고 독립적으로 말할래요. 아주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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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는 젠틀몬스터× 앰부쉬(Gentlmonster×Ambush). 셔츠는 베르사체(Versace). 부츠는 펜디(Fe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