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하가 새 미니앨범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맑고 애틋한 목소리를 가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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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퀸 드레스와 장갑은 모두 더 애쉴린(The Ashlynn), 이어링은 게이트리스(Gateless).

윤하는 모든 말의 단어를 신중히 골랐다. 하지만 단어가 정해지고 난 뒤의 고백에는 거침이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음악 활동을 할 수 없었을 때, 몸과 마음이 지쳐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의 이야기도 이제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고 했다. 6년 만에 발매한 5집 <Rescue> 후, 다시 미니 앨범으로 돌아온 윤하. 이전의 태도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마음을 울리는 애틋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새 앨범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어요?
‘비’를 주제로 한 5곡으로 앨범을 구성했어요. 음악적으로 봤을 때는 좀 더 ‘태초의 윤하스러운’ 모습을 담았달까요? 5집 앨범은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새로운 음악에 도전했다고 한다면, 이번 앨범은 자연스러운 본래의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확히 어떤 장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내러티브가 있는 멜로디가 담긴 곡들이 주를 이뤄요.

히트송이 많아서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여전히 부담이 클 것 같아요. 이번에도 그런가요?
그럼요. 늘 불안해하고 걱정이 많아서 앨범을 낼 때마다 스태프들이 고생을 해요. 괜찮다고 안심시키느라.(웃음)

이번 미니 앨범에 자작곡도 있나요?
타이틀곡의 제목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이에요. 나머지 곡들도 계절이나 날씨에 대해 이야기해요. 감정을 날씨에 빗댄 곡들이죠. 자작곡은 ‘Rainy Night’라고 피아노 곡이에요.

‘우산’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맑음’이 큰 사랑을 받았었죠. 날씨와 인연이 많네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요?
네. 햇볕 쬐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사실 예전에는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비에 관한 노래로 사랑을 받았더라고요. 요즘은 미세먼지 때문인지 비가 반가워요.(웃음)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만난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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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 드레스는 쟈니헤잇재즈 (Johnny Hates Jazz),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곡을 쓸 때는 오랜 시간 고민하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영감을 받으려고 여행을 떠났어요. 하지만 요즘은 일상에서 재미있는 소재를 발견하곤 하죠. 멀리 떠나면 떠날수록 괜히 조바심이 생기더라고요.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에 적어두고 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곡을 만드는 편이에요. 순간순간 누가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곡이 써질 때도 있고요. 이번 ‘Rainy Night’가 그랬어요.

직접 곡을 쓴다는 건 어떤 매력이 있어요?
음… 꿈에 비유를 해볼게요. 꿈을 꿨는데 그 꿈이 너무 선명해서 똑같이 해보고 싶어진다거나 똑같이 그 상황 속에 놓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해요. 내가 상상했던 곡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냈을 때의 희열. ‘거봐, 내가 된다고 했지!’라고 외치고 싶어질 때 정말 큰 보람을 느껴요.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무엇인가요?
사계절에 대해 노래한 첫 번째 트랙이요.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꽃이 피는 순간 사랑을 했고, 차가운 겨울처럼 성을 냈고… 듣자마자 가사가 귀에 쏙 박히더라고요. 이제는 내가 이런 가사를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됐구나, 싶었어요. 지금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있어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노래예요.

20대 윤하의 음악과 30대 윤하의 음악이 다른가요?
20대 때는 무책임했던 것 같아요. 물론 많은 고민을 하고 낸 앨범들이지만,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했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팀워크라든지, 내 앨범을 들어주는 사람들, 즉 타인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었어요. 30대가 되면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죠. 이를테면, 그루비룸이나 보이콜드와 작업을 했을 때,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상처를 줬더라고요. 지금은 오해가 다 풀려서 “그때의 누나는 정말 괴팍했어!”라며 우스갯소리로 저를 놀리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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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이어링은 베이비센토르 (Baby Centaur).

음악 작업을 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를 때요.

이렇게 오랜 시간 음악을 해왔는데도요?
하나의 꿈을 어느 정도 그려냈다고 하면, 그 다음 꿈을 실현해야 할 때, 갑자기 앞이 깜깜해질 때가 있어요. 매번 앨범마다 그래요. 한 앨범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갑자기 공황 상태가 되는 거죠. 내가 이 다음에 뭘 하려고 했었지? 하고요. 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갈 거라고, 그동안 지나온 힘든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극복하려고 해요. 노래를 할 수 없을 만큼 목 상태가 좋지 않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그래서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을 때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결국은 이겨냈고 지금은 힘든 일이 있어도 분명히 지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마음의 중심이 잡혔군요.
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자세를 바로잡다’ ‘다시 돌아오다’라는 뜻을 넣으려고 해요. 제게 의미가 커요.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이었어요?
제가 무엇을 하든 저를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이죠. 이것도 시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내가 예뻐서, 내가 잘해서 나를 봐주는 줄 알았어요. 정말 솔직하게요.(웃음)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제 길을 찾지 못해 헤맬 때도, 내가 성공하지 못했을 때도 제게 남아 온전히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그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잘해나가야죠.

음악으로 윤하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이 앨범에 이런 뜻이 담겼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예요’라고 강조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런 건 다 필요 없더라고요.(웃음) 그저 제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본연의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을 제대로 했으면 해요.

아직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나요?
저를 베타 버전 삼아서 프로듀싱 작업을 해보고 있어요. 언젠가는 프로듀서로서 성장하고 싶어요. 작은 역할이라도 좋으니까 연기도 다시 도전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영화를 몇 편 찍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그걸 대체 무슨 생각으로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도전한다면 조금 다른 자세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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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패턴 드레스는 레지나표(Rejina Pyo), 슈즈는 슈츠(Schutz).

‘별이 빛나는 밤에’의 ‘윤디(DJ 윤하)’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죠. 지금은 ‘작업실 라디오’라는 자체 콘텐츠로 청취자를 만나고 있다고요?
많은 분이 기다려주신 모습인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제게 가장 편안한 콘텐츠이기도 하고요. 진짜 라디오처럼 매주 코너가 달라지는데, 고민 상담 코너와 아무 사연 대잔치라는 코너도 있죠. 그런데 정말 아무 말을 적어서 보내주시더라고요.(웃음) 참 재미있어요.

라디오의 장점이 뭐예요?
제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자체가 고마워요. 밖으로 새나갈 일이 없다고 믿으니까 비밀을 털어놓는 거잖아요? 그런 권력을 주다니…(웃음) 그리고 여러 사연 속의 삶을 접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공감할 수 있어서 안심이 돼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달까요?

‘별밤’에서의 애틋한 추억이 있어요?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이 ‘별밤’을 들어주셨어요. 저를 딸처럼 생각해주셔서 시장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은 그 지역 특산물을 보내주시기도 하고요.(웃음) 손으로 직접 편지를 보내주신 택시 기사님들도 많았어요. 그저 감사하죠.

라디오가 가진 의미가 크겠군요.
예전에 라디오국에 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라디오는 팬을 만드는 매체가 아니라 편을 만드는 매체’라고요. 제가 DJ가 되었을 때 초반에는 텃세가 있었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전직 DJ가 어떻게 했는지 더 공부해와라’ 하고요. 그런데 어느 정도 라디오에 스며들어서 그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분들도 모두 내 편이 되어줘요.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다 용서해줄 친구처럼요.

배우 김지원과 가수 백아연 역시 그런 친구인가요?
셋이 정말 자주 만나요. 어느 날 생각해보니 우리가 항상 집에서만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집순이 모임’이 되어버렸어요.(웃음)

셋이 모이면 뭘 하며 보내요?
일단 넷플릭스를 켜요.(웃음) 맛있는 걸 먹으면서 수다 떠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윤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이런저런 일을 다 겪고도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노력하는 모든 선배님이요. 특히 한 명을 꼽을 수는 없어요. 아! 얼마 전에 양희은 선배님이 라디오 ‘여성시대’ 20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SNS에 올리셨더라고요. 어떻게 한 프로그램을 20년이나 하시는지! 배철수 선배님도 정말 멋있으시고요.

윤하 역시 그런 아티스트로 남고 싶은 건가요?
네. 누군가의 인생을 위로해주는 가수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요즘 이문세 선배님의 노래를 다시 듣고 있는데, 제가 모르는 노래가 거의 없더라고요. 단순히 히트 송이어서가 아니라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음악의 힘인 거죠. 제 노래도 오랜 시간 누군가의 ‘인생 BGM’으로 기억될 수 있길 바라요.

이번 앨범도 그럴 수 있을까요?
네!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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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 드레스는 소누아(Sonua).